< 훈수로 메이저리거 - 166화 >
* * *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오늘 경기 두 번째 삼구삼진을 기록한 정신우 선수! 7번째 탈삼진을 기록합니다!]
결승전에서 신우가 다시 호투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4이닝 무실점 호투를 이어가는 정신우 선수!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하게 만들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아-! 정말 훌륭해요! 이런 투수가 대표팀 마운드를 지키고 있으니 든든합니다!!]
적중 수준이 아니었다.
신우는 예상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4이닝 퍼펙트.
단 한 명의 타자도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
‘이전 경기까지 합치면 16이닝 퍼펙트를 기록중이다.’
경기장을 찾은 장태호 기자는 기록지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첫 등판이었던 대만전, 두 번째 등판이었던 네덜란드 전. 그리고 오늘 일본전까지.
신우는 16이닝동안 단 하나의 안타나 사사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 대회에 투구수 제한이 없었다면...?’
야구에 만약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 경기의 제한 투구수는 100구다. 현재까지 던진 투구수는 47개.’
4이닝이 끝난 시점에서 47개다.
한 이닝에 11개의 공을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단순계산으로 봤을 때 9이닝까지 던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매덕스 게임을 할 수 있다면...’
침이 꼴깍 넘어갔다.
자신의 상상이 너무 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였다.
딱-!!
“와아아아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가고 있었다.
타구는 단숨에 외야 펜스를 때렸다.
튕겨져 나온 공이 중계되는 사이, 대타로 나온 한수혁이 2루로 슬라이딩을 했다.
촤앗-!!
“세이프!!”
스즈키 미노와의 노히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기록을 의식했는지 마운드에 발길질을 하는 그의 모습에 기자들이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투수전은 정신우 선수가 이겼네요.”
“아, 기무라상. 스즈키 투수의 노히터가 깨져서 아쉽게 됐네요.”
“하하! 그런 말씀 안해주셔도 됩니다. 기자로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스즈키 투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예?”
“잘 던지기는 하지만, 뭔가 말을 막하기도 하고. 사실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요.”
“아...그렇군요.”
“거기다 예전에는 기자의 멱살을 잡은 적도 있어서 언론인들 대부분이 싫어합니다. 아! 곤조기자는 좋아하더군요.”
“하하...”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곤조와 스즈키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동진 감독도 공격적이네요. 일찌감치 타자들을 교체해서 승부를 빠르게 들어가다니.”
기무라의 말대로였다.
이동진 감독은 대타카드를 중반이라 할 수 있는 4회에 사용했다.
심대현을 빼고 한수혁을 넣었다.
그리고 지금도 대타가 나오고 있었다.
‘대타카드를 사용한다는 건, 양날의 검과 같다. 하지만 이동진 감독은 지금 이 순간을 기회라고 판단내렸어.’
과연 이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
장태호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 * *
딱-!!
타구가 높게 떠올랐다.
[저런...]
[최악인데?]
레전드들의 생각과 같았다.
타구를 쫓는 신우의 눈에 중견수가 자리 잡는 게 보였다.
퍽!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두 명의 대타를 내고 나온 결과였기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번 이닝이 중요하겠누.]
[대타까지 내고 실패했으니, 분위기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지.]
[물론 마운드에 잘 막아내면 됨.]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신우가 글러브를 챙겼다.
그리고 마운드에 도착한 그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로진을 손에 묻혔다.
상체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신우의 눈에 두 선수가 보였다.
1루와 유격수에 새로 들어온 한수혁과 신대식이었다.
‘몸이 굳은 거 같은데요.’
[정답-!]
[오올-! 이제 다른 선수들 컨디션도 짐작할 수 있누.]
요기 베라의 경험 덕분이었다.
투수와 달리 포수는 그라운드 전체를 보고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해야 했다.
괜히 포수가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박광수는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가 대표팀의 마스크를 쓴 것은 타격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교체되서 들어오면 몸이 굳어 있을 수밖에 없음.]
[에러가 잘 나오는 이유도 그런 거고.]
[거기다 지금은 분위기가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다보니 조심해야지.]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한 신우가 손을 들었다.
“다들 긴장 풀고! 이번 이닝도 가볍게 삼자범퇴로 끝내자!!”
“예!!”
“얌마! 난 형인데 끝내자가 뭐냐?!”
“수혁이형! 타구 날아가면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연우도 센터 잘 부탁하고!”
“옙!”
“대식선배! 백업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마!”
신우는 일부러 내야의 선수들을 부르며 독려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말이다.
투수가 내야수들에게 부탁하는 일은 자주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내 생애 메이저리거한테 부탁을 다 받네.’
‘녀석이 기록을 작성중인데, 우리가 열심히 해야지.’
‘정신차리자 연우야!! 네가 에러를 범하면 아주 난리난다!’
신우에게 부탁을 받은 선수들은 마음을 다잡으며 수비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신우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때마침 타석으로 타자가 들어오는 모습에 시간을 적절하게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타이밍 쥑이네.]
[포수가 해야 될 일은 이제 네가 하냐?ㅋㅋ]
‘누가 하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신우가 마운드에 서고 타자가 타격준비를 끝냈다.
“플레이볼!!”
심판의 콜과 함께 신우가 박광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누구라도 하면 될 일이죠.’
[정답-!]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157km의 포심이 미트에 꽂힙니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넘어가는 타이밍.
하지만 신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딱-!!
“파울!!”
[2구 3루쪽 관중석에 떨어지는 파울입니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겨우 걷어냈군요.]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정신우 선수, 3구로 어떤 공을 던질지 궁금합니다. 사인을 교환한 정신우 선수, 3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타자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리는 순간.
휘릭!!
공이 뚝 떨어졌다.
타자는 급히 한쪽 무릎을 굽히며 스윙의 궤적을 바꾸었다.
하지만 공을 완벽하게 쳐내기란 무리였다.
딱-!!
[빗맞은 타구! 힘없이 유격수를 향해 굴러갑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신대식 선수가 안전하게 포구! 그리고 1루로 뿌립니다!]
퍽!!
“아웃!!”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바뀐 두 명의 수비에게 연달아 공이 갔지만, 안정적으로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두 선수입니다!]
[어려운 타구는 아니었지만, 중간에 경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안정적으로 타구를 처리하면서 아웃카운트를 올렸어요.]
의도한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좋게 흘러갔다.
수비로 들어와서 타구를 처리하면 긴장이 풀리게 된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이제 수비는 걱정하지 않고...’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타석으로 들어오는 타자를 바라봤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우리 시누에게 무슨 망발이냐?!”
“삼진이나 당해버려!!”
[타석에 들어서는 스즈키 미노와 선수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내팬들은 물론 메츠팬들도 다수 경기장을 찾았거든요? 그들의 야유까지 합쳐지니 경기장이 흔들릴 정도군요.]
[그러한 야유 때문인지 첫 타석에서 삼구삼진을 당했던 스즈키 선수, 이번 타석에선 정신우 선수가 어떻게 상대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두 사람의 대결에 집중하는 게 아니었다.
팬들은 신우가 어떻게 스즈키를 요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선수가 이룬 업적은 비교할 수 없었다.
라이벌 관계가 성립될리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신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인을 교환한 정신우 선수, 초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부웅!!
뻐억!!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에 휘어 들어가는 슬라이더에 배트 크게 헛돕니다!]
[좌타자의 몸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가 위협적입니다.]
스즈키는 타석에서 물러나 땅을 강하게 발로 찼다.
짜증 섞인 그의 태도만큼이나 속은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공이 이렇게 변하는 거야?’
그 역시 투수였다.
그렇기에 변화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었다.
헌데 신우의 공은 그러한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일단 횡으로 변하는 변화구들에 집중하자. 어떤 이유인지 오늘 종으로 변하는 공은 자주 던지지 않으니까.’
볼배합이 횡 변화구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다시 떠올리며 타석에 섰다.
‘내가 퍼펙트를 깬다.’
마음을 다잡은 그가 준비를 끝냈다.
뒤이어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스즈키의 배트가 돌았다.
그 순간.
휘릭!!
‘어?’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혹감과 함께 스즈키의 머리에 하나의 구종이 떠올렸다.
‘포크볼...!!’
부웅!!
하지만 깨닫는 게 너무 늦었다.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퍽!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구심의 냉정한 콜에 스즈키의 얼굴이 굳어졌다.
완벽하게 타이밍을 뺏겼다.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원바운드 되는 공에 허무하게 배트가 헛돕니다!]
[상대를 완벽하게 속이는 공이었습니다. 타자를 농락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대회 내내 정신우 선수를 물고 늘어졌던 스즈키 미노와 선수, 하지만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투스트라이크에 몰립니다!]
다시 마운드에 선 신우는 스즈키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었다.
신우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가 초조해한다는 게 보였다.
[트래시토크는 양날의 검과 같은 거지.]
[입밖으로 뱉고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최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입만 산 놈이 되는 거다.]
[예전에 무하마드 알리가 상대를 도발했던 이유 중 하나가 자신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절박함을 내기 위해서였지.]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을 보며 신우는 사인을 교환했다.
‘체인지업으로 가자.’
박광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미트를 내밀었다.
준비를 끝낸 신우가 와인드업을 했다.
‘젠장...젠장!’
그 모습을 보는 스즈키는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때려내고 싶었다.
자신의 말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한 압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흡!!”
기합소리와 함께 신우가 공을 뿌렸다.
‘기합? 포심?!’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
하지만 궁지에 몰린 그는 냉정하게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포심이라 단정지은 그가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넘어가라!!’
부웅-!!
모든 힘을 담아 휘두른 배트가 풍압을 일으키며 돌아갔다.
그 순간.
휘릭!!
공이 뚝 떨어지며 배트에서 멀어졌다.
‘아...안돼!!’
애처로운 한 마디와 함께 무게중심을 낮췄다.
하지만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부앙!!
너무 과도한 힘을 준 바람에 스즈키의 중심이 무너지며 볼품없이 쓰러졌다.
직후.
퍽!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 두 번째 타석 역시 삼구삼진을 당한 스즈키 선수, 중심을 잃고 타석에 쓰러집니다!]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완벽하게 앞서나가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준 대결이었어요.]
[오늘 경기 8번째 탈삼진을 잡아낸 정신우 선수! 자신을 도발한 스즈키 미노와 선수에게 레벨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타자로서 홈런을 때리겠다고 했던 공언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러한 장면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두 타석 연속 삼구삼진이쥬?
-클라스 차이 오지네.
-혓바닥에 기름칠 진하게 했던데, 하체에도 기름칠 했냐? 왤캐 자주 자빠짐?
ㄴ ㅋㅋㅋㅋ 합격목걸이 줘야겠누.
ㄴㄴ 드립 오졌네 ㅋㅋ
-이거시 바로 사이영 수상자다 시즌 2.
ㄴ 애초에 일본에서 노는 애가 사이영 수상자한테 드립치는 게 무리수였지.
ㄴㄴ ㅇㅈ
ㄴㄴㄴ 일본에서도 욕 오질나게 하더만.
한국의 커뮤니티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도 스즈키에 대한 욕이 난무했다.
그중 하나의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으며 상위권에 노출됐다.
-ばかやろう(바보자식)!
모든 이들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상황.
하지만 더그아웃에 들어선 스즈키의 생각은 달랐다.
‘투수로선 아직 지지 않았어!’
끝까지 정신승리를 이어가는 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최연우가 자리를 잡습니다!]
퍽!
“아웃!!”
[세 번쨰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5이닝에도 여전히 1루 베이스를 밟은 타자는 없습니다!]
또 한 번 삼자범퇴이닝을 만든 신우가 마운드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