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60화 (160/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60화 >

* * *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오렴.”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신우가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D.E에이전시의 김이나와 김태성이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서오세요. 짐은 제가 들게요.”

“감사합니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예. 컨디션 최고입니다.”

대답을 하며 차에 오르자 짐을 실은 김태성이 조수석에, 김이나가 신우와 함께 뒷자리에 앉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의 노보텔 앰버서더 독산이었다.

1라운드 첫 번째 대회가 열리는 고척 스카이돔과 인접해 있어 대표팀의 숙소로 자주 꼽혔다.

오늘 이곳에서 대표팀 공식소집과 함께 선수단 오리엔테이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오늘 대표팀 선수단이 모두 모이는 건 처음이죠?”

“예. 앞서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지 못한 선수들이 모여 연습은 한 것으로 압니다만, 전체가 모이는 건 처음입니다.”

“정신우 선수도 대표팀이 처음이시니 떨리시겠습니다.”

김태성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떨립니다.”

“하하! 메이저리그에서 60개 이상 세이브를 기록하고 20승 이상을 거둔 투수가 떨린다고 하니 신기하네요.”

신우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창문밖을 보자 어느덧 호텔 인근에 도착해 있었다.

호텔 주위에는 팬들 수십명이 모여 혼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제 밤부터 신우씨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하더라고요.”

“어제 밤부터 말입니까?”

김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보기 위해 밤부터 기다리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차에서 내려 저들에게 사인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일정이 잡혀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도착했네요.”

어느덧 차는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한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정신우 선수, 반갑습니다. 김진우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시간이 조금 늦어서 회견장으로 바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아, 저건 정 선수 짐인가요?”

“예.”

김진우 팀장이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 신우의 짐을 챙겼다.

“저희 직원이 숙소로 옮겨두도록 하겠습니다. 가시죠.”

뭔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 두 사람의 스케줄에 맞추는 일정이 아닌 단체의 일정이기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면 기자회견이 먼저 진행되고 이후에는 선수단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질 겁니다. 거기에서 선수단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숙소는 2인 1실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정신우 선수는 박광수 선수와 함께 숙소를 이용할 예정입니다.”

이동하면서 빠르게 설명이 이어졌다.

뒤에 서있던 김이나가 내용을 적어 내려가면서 신우에게 말했다.

“제가 나중에 한 번 더 브리핑 해드릴게요.”

“감사해요.”

[일 잘하누.]

[대표팀이라 그런지 정신없네.]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회견장으로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곧 대기실에 도착했다.

“오-! 신우야, 어서와!”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기는 무슨.”

이동진 감독이 반갑게 신우를 맞이해주었다.

그때 이동진 감독의 머리 위로 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감독님, 저도 소개 좀 시켜주시죠.”

“아! 그렇지 이쪽은...!”

“민태훈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신우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이동진은 물론 민태훈 그리고 주위의 모든 이들이 놀란 눈을 했다.

“날 알고 있나?”

“물론이죠! 제가 한국에 있을 때도 민태훈 선배님은 한국의 거포 아니셨습니까? 그리고 제가 신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오셔서 강의도 해주셨습니다.”

“어? 그...그랬나?”

“예! 그때 민태훈 선배님이 강의해주셨던, 프로페셔널함을 익히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민태훈은 자신이 강의를 나가면 자주 하던 말이 나오자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으하하! 이 친구 마음에 드네. 기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데요?”

“내가 그랬잖아. 이 녀석 사람이 되었다니까.”

“응? 기자들이요?”

“아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요. 국내기자들이 우리 후배님 엄청 싫어하잖아. 인터뷰하기 어렵다고 말이야. 한국에서도 스케줄 관리가 철저해서 약속잡기도 어렵다면서? 거기다가 미국에서는 더더욱 어렵고.”

“아...제가 좀 유별나게 훈련일정이 타이트해서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서 그랬는데. 그런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그게 당연한 거지. 타자도 그렇지만 투수들의 루틴은 더욱 예민하잖아.”

민태훈은 순식간에 신우의 대변인이 되었다.

[수다쟁이였누]

[그보다 너 사회생활 쩌네]

[메이저리그를 정복한 투수가 선배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님의 조언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해버리니 바로 헤벌쭉 되버리지.]

[ㅇㅈ]

‘이게 다 선배님들 덕분입니다. 선배님들의 비위를 맞춰드리려면 제가 눈치가 빨라져야 했거든요.’

[와-! 여기서 우리를 판다고?]

[이쉑 이제 우리한테도 약 치려고 하네.]

[안 통한다 이놈아!]

[크허험-! 그래, 다 우리 덕이지.]

[통하는 놈도 있는데?]

[헐...]

레전드들의 채팅과 민태훈의 변호를 동시에 들으니 정신이 조금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장입니다.”

KBO직원의 안내와 함께 회견장으로 들어갔다.

* * *

회견장에는 장태호 역시 참가했다.

“오늘 정신우한테 할 질문 준비했지?”

“그럼! 어떻게든 한 방 먹여야지.”

“골탕 한 번 먹어봐라.”

주위 동료기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장태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국 선수에게 골탕을 먹여서 뭐한다고.’

아직 몇몇 기자들은 엘리트의식이 있었다.

대학물을 먹고 고졸인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게 같잖은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극히 일부의 일이지만, 저들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문제는 쟤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건데.’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참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

“왔다!”

그때 회견장이 술렁였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필기도구나 노트북으로 타이핑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회견장의 단상으로 대표팀 감독, 투수코치 그리고 선수단을 대표해서 민태훈과 정신우가 들어서고 있었다.

“와...뭐냐? 어떻게 민태훈한테 떡대가 밀리질 않아?”

“저러니까, 메이저리그에서 통했지.”

실제 신우를 처음 본 기자들이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우의 피지컬은 동양인의 것이 아니었다.

원래 키는 컸지만 마른 체질이었던 그는 엄청난 운동을 통해 벌크업에 성공, 웬만한 서양인들에게 밀리지 않는 체격을 만들었다.

“공식프로필보다 큰 거 같지 않아?”

“시즌이 끝났는데도, 저 정도면 스프링캠프 직후에는 얼마나 크다는 거야?”

감탄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

대표팀이 자리에 앉고 곧 회견이 시작됐다.

이동진 감독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대표팀의 감독이란 중책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두 번째 대표팀 감독이었기에 이동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인사말을 이어나갔다.

그 말을 들으며 신우는 김이나가 준비해준 인터뷰 예상질문들을 확인했다.

옆에 앉아 있던 민태훈이 물었다.

“그게 뭐야?”

“아, 에이전시에서 예상질문들을 적어준 거예요.”

“그런 것도 해줘? 좋은 에이전시네.”

“정말 좋은 곳이에요.”

진심을 담아 말하는 사이.

투수코치인 이진철과 민태훈이 차례대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꼭 우승할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대표팀 주장을 맡은 민태훈 선수의 소감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활약중이신 정신우 선수입니다.”

민태훈이 건네준 마이크를 받은 신우가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대표팀 합류인만큼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백한 인사말이었다.

너무 담백해서 회견장에 적막이 흐를 정도였다.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중앙스포츠의 양민철입니다. 이번 대표팀 참가에 많은 팬들이 우려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질문시간은 조금 나중에...”

“인사말이 너무 짧아서 인터뷰 좀 더 따고 싶은데요.”

“맞습니다!”

“너무 짧아요!”

몇몇 기자들이 양민철의 말에 동의하며 나섰다.

다분히 어그로성 질문에 주위의 기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당당한 얼굴로 신우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대답하기 어렵나요? 아니면 에이전시한테 물어보셔야 되나요?”

“사회자님, 답변할 시간이 되나요?”

“예? 아, 예. 괜찮습니다.”

“먼저 양민철 기자님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아, 그전에 확실히 하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만, 에이전시는 어디까지나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입장이지. 절 컨트롤하진 않습니다.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가 어떤건지 기자면 아실 수 있지 않나요?”

“뭐라고요?!”

욱하는 양민철에게서 시선을 돌려 무시한 신우가 답변을 이어갔다.

“많은분들이 저의 대표팀 합류에 대해 우려하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다면 애초에 거절했을 겁니다. 제가 합류를 결정한 건 어디까지나 잘할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수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국제대회가 있던 시즌에는 부진했습니다.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어요.”

“우우-!”

“그만 좀 해라!”

양민철이 다시 말하자 몇몇 기자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변을 이어갔다.

“데이터가 전부였다면 애초에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도 못했겠죠. 한국인이 이전에 사이영상을 받았던 데이터가 있었나요?”

“그건...”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대답에 양민철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여기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결국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이번 대회를 우승으로 끝낸 뒤, 제가 26시즌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우승?”

“그 말씀은 이번 대회의 목표가 우승이란 겁니까?”

“우승에 자신 있으십니까?!”

기자들이 신우의 멘트를 캐치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신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우승이 목표입니다.”

* * *

「대표팀에 합류한 정신우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목표는 우승이라 공언을 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WBC 우승 이후 26시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겠다!」

「나는 데이터를 벗어난 선수다!」

온갖 어그로성 제목들이 기사에 도배가 됐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기사들에 들어가 댓글을 달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정신우 인터뷰 쩌네.

ㄴ 패기가 남다른 듯.

ㄴㄴ 이 정도는 해야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각!

-인터뷰 동영상으로 봤는데, 질문했던 기자 바로 쭈그리 되던데 ㅋㅋ

ㄴ 개웃김 ㅋㅋ

ㄴㄴ 양민철 기자 어그로성 질문 자주 던지더니 한 방 제대로 맞았네.

-그런데 너무 자만심 쩌는 거 아님?

ㄴ 2년 연속 사이영 수상이면 쌉가능.

ㄴㄴ 아직 사이영 수상 안 하지 않음?

ㄴㄴㄴ 사이영은 확정이지 ㅋㅋ MVP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문제인데.

ㄴㄴㄴㄴ 원댓작성자 양민철이누?

ㄴㄴㄴㄴㄴ ㅋㅋㅋㅋ 맞는 듯.

-자만심이 어쨌건 정신우 인성은 쩌는 듯.

ㄴ 이건 또 뭔솔?

ㄴㄴ 오리엔테이션 끝나고 호텔 로비에 나와서 팬들한테 일일이 사인해줌.

ㄴㄴㄴ ㄹㅇ?

ㄴㄴㄴㄴ ㅇㅇ (링크) 여기가면 동영상도 있음.

ㄴㄴㄴㄴㄴ 와 개쩌네...이걸 다 해주네.

-메이저리거들이 팬서비스 오지긴 하는데, 시누도 팬서비스 오진다.

ㄴ 데블스가즈아 : 나도 오늘 가서 받고 옴.

ㄴㄴ 엌ㅋㅋ 아재 간만임.

ㄴㄴㄴ 이 양반은 성지순례 다니누.

신우의 기사들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을 때.

실시간검색어 역시 신우의 이름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정신우], [정신우 팬서비스], [정신우 사인 동영상] 등.

신우가 호텔의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좋아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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