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4화 >
* * *
M-스포츠 촬영팀은 아침 일찍부터 촬영준비에 들어갔다.
“그냥 쑥 지나가는 거니까, 실수가 있어선 안 돼.”
“예!”
이준태PD는 몇 번이나 당부했다.
카퍼레이드는 한 번밖에 진행하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제대로 찍지 못했다고 해서 다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번을 당부해도 모자를 게 없었다.
‘그나저나 인파가 대단하네.’
카퍼레이드가 열리는 현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안전펜스 너머에는 엄청난 숫자의 팬들이 집결해 있었다.
한국인도 많이 보였지만,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특히 어린이 팬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중에는 신우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이들도 다수 보였다.
‘나중에 쟤들 인터뷰를 따도 좋을...’
콕콕-!
그때 누군가 이준태 PD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준태는 깜짝 놀라며 옆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스마트폰을 든 흑인 소년이 서있었다.
“하이! 혹시 시누의 나라에서 왔습니까?”
“응?”
“영어 못해요? 아씨...한국어를 배워야 되나?”
“아...아니. 영어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야?”
“아-! 지금 유튜브 라이브 하고 있어요! 시누 알아요? 시누의 나라에서 온 거예요? 코리아 맞죠?”
질문세례를 받는 이준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뷰를 받게 된 건가?’
새삼스레 신우의 위상을 알게 된 그였다.
그때였다.
“와아아아아!!!”
“어?”
“시작했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한 대의 트럭이 지나갔다.
스타트는 내셔널리그 감독인 토니였다.
순서를 미리 알고 있기에 이준태는 급히 무전을 보냈다.
“바로 다음이 신우가 올 거야!”
(예!)
(준비 됐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우-! 우-! 우-! 우-!!”
“왔다!!”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 * *
신우의 카퍼레이드는 생중계로 한국으로 방송됐다.
수많은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면으로 한 대의 트럭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픽업트럭의 뒤에 앉아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됐다.
-픽업트럭 뭐임 ㅋㅋ
ㄴ 좀 촌스러운데.
ㄴㄴ 카퍼레이드 행사가 쉐보레에서 후원하기 때문에 저렇게 함 ㅋㅋ
ㄴㄴㄴ 그래도 올스타인데 스포츠카 같은 거 타고 하지.
-시누 인스타에 사진 올라왔네.
ㄴ 링크점.
ㄴㄴ 신우가 인스타도 함?
ㄴㄴㄴ 가끔 올라옴.
ㄴㄴㄴㄴ 시계 좋은 거 찼네.
-미국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듯?
ㄴ 미국에서 시누 인기 장난 아님.
ㄴㄴ 특히 누욕 가서 두유 노 시누? 하면 사람들 반응 장난 아니다.
ㄴㄴㄴ 두유노클럽 ㅇㅈ.
그렇게 픽업트럭을 타고 도착한 레드카펫 행사장.
붉은 카펫이 깔린 곳에서 내린 신우와 어머니는 포토존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 괜찮아요? 사람들 많은 거 꺼려하셨잖아요.”
“조금 어지러운 거 뿐이야. 너무 걱정하지마렴.”
“혹시 불편하면 바로 말씀하세요. 김 실장님이 저기서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응.”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힘들기는 하지만...’
수백명의 사람들이 주시하는 상황.
일반인이라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평생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녀가 힘든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힘을 냈다.
‘아들이 주인공인 축제의 장인데. 망칠 순 없지.’
아들을 위해서 그녀는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 * *
신우는 두 번째 올스타전 참가였다.
‘이전과는 좀 다르네요.’
[그래?]
‘네. 마치 주인공이 된 기분입니다.’
[ㅋㅋㅋ 주인공 ㅇㅈㄹ.]
[맞말이긴 한 듯.]
[ㅇㅇ 작년보다 사인요청이 많아졌네.]
[많아진 수준이 아닌데?]
스판의 말에 신우도 동의했다.
레드카펫을 지나 이제 구장으로 들어가야 될 시간이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다.
[대부분 시누 네 유니폼 입고 있누.]
[다 네 팬인 듯?]
[유니폼으로 떼돈 벌겠네.]
유니폼 수익은 선수에게도 들어간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저 유니폼 수익 적은 거 아시잖아요.’
[ㅋㅋㅋㅋ 선수협이 꽤 웃긴 짓을 하긴 했어.]
[서비스타임이 적으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들어오나?]
‘그렇다 하더라고요.’
선수의 유니폼 수익을 비롯해 각종 라이센스 비용은 모두 선수협회에 들어간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시즌이 끝난 뒤에 협회에서는 그 비용을 모든 선수들에게 분배했다.
수익은 많이 번다고 해서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니었다.
분배기준은 서비스타임으로 결정한다.
메이저리그 서비스타임 오래된 선수일수록 가져가는 수익의 퍼센티지가 많았다.
[뭐,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연차가 쌓이면 나중에는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테니. 당장은 손해보는 거 같아도 참아야지.]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푼돈 아님?]
‘그래도 몇 억인데요.’
[이번 시즌 끝나면 최소 천만달러는 받을 놈이.]
[천만달러가 뭐냐? 역대 기록 갱신 각이지.]
[ㅇㅈ]
[보라스랑도 슬슬 논의도 해라.]
‘그렇지 않아도 올스타전이 끝나고 밥 먹기로 했어요. 그때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요.’
신우는 대화를 나누며 팬들에게 다가갔다.
“시누!!”
“팬이에요! 사인 좀 해줘요!”
“우리 애랑 사진 좀 찍어줘요!”
“헤이! 시누! 여기 보면서 손 한 번만 흔들어줘!”
기다렸다는 듯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신우는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갔다.
[잘 배웠누.]
[이런 경험이 아이들의 인생에 무척 중요하지.]
[잘 해줘라.]
‘예.’
신우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잠깐 시간을 내는 이 순간이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신우는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물론 다른 팬들에게도 성심성의껏 사인과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 감독, 저거 잘 찍어.”
이준태PD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카메라 감독에게 지시하며 신우의 모습을 쫓았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팬서비스가 좋아지긴 했지만, 정신우가 하는 걸 보면 좀 배워야겠어.’
팬서비스를 하는 신우의 모습이 전 세계로 방영됐다.
* * *
약속대로 신우는 올스타전에서 세 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그들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
하지만 이미 물이 오를대로 오른 신우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애런 저지 삼진입니다!! 1이닝동안 2개의 탈삼진을 잡아낸 정신우 선수가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습니다!]
[이대로 이닝이 마무리되겠지만, 정신우 선수는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올스타전에서 신우의 역할은 1이닝이 전부였다.
수많은 스타들이 출전하는 경기이니만큼, 다른 투수들에게도 기회를 균등하게 분배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고했어."
"시누! 나이스 피칭!"
더그아웃에 들어온 신우는 다른 스타플레이어들의 환영을 받으며 두 번째 올스타전 출전을 마무리했다.
* * * *
올스타전이 끝난 뒤.
신우는 스마트폰에 뜬 알림에 당황했다.
‘평소보다 너무 많은데...’
알림의 개수는 수천개에 달했다.
누구님이 팔로워를 했다.
누구님이 댓글을 달았다 등.
모든 알림이 인스타그램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너 인스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언제누?]
‘어...호텔 나서기 전에 게시글 올리고 확인 안했죠?’
[ㅋㅋㅋ 쌓일만하네.]
[인싸쉑!]
[팔로워가 얼마나 늘어난 거냐?]
‘잠시만요.’
신우가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원래 신우의 팔로워는 13만명가량이었다.
그런데.
‘헐...30만명인데요?’
[와...반나절만에 17만명이 는 거임?]
[실화냐?]
[말이 됨?]
놀라운 상승폭이었다.
[너 그동안 인스타에 게시글 안올렸음?]
‘딱히 안 올렸죠. 올릴 것도 별로 없었고요.’
[그냥 일상만 올려도 이미 백만 넘었겠다.]
[자주 올리지 않으니까, 팬들이 찾아오질 못했던 거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타박에 신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신우는 새로 달린 댓글들을 읽어갔다.
-정신우 선수! 매일 응원하고 있어요!
-어머님이 너무 미인이세요.
-정신우 선수 파이팅!
-올스타 선발 축하드려요!!
댓글들은 하나 같이 응원하는 글들이었다.
-오랜만에 업데이트 돼서 좋았어요!
-메이저리그 생활 좀 자주 올려주세요 ㅎㅎ
-호텔 정말 좋네요! 숙박료는 구단에서 내주나요?
-정신우 선수는 경기 없는 날에는 뭐하면서 보내시나요?
질문들도 정말 많았다.
대부분이 메이저리그 생활과 관련된 질문들이었다.
또한 자주 업데이트를 해달라는 요청들도 많았다.
‘사람들이 메이저리그 생활에 관심이 많네요.’
[일반인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긴 힘드니까.]
[간혹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세하게 알긴 힘들지.]
[그래도 요즘 미국쪽 애들은 유튜브나 그런 걸로 방송도 하지 않나?]
[ㅇㅇ 가끔 함.]
[NFL이나 NBA쪽 애들은 자기네들 파티하는 것도 올리고 그러는데 뭐.]
[NFL 애들이 돈자랑은 제대로 하지.]
NFL.
미국의 3대 스포츠 중 하나다.
평균연봉은 메이저리그보다 낮았지만 톱클래스 선수들의 연봉은 더 높았다.
경기당 연봉은 NFL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메이저리그는 한시즌에 162경기를 치른다.
반면 NFL은 한시즌에 16경기만을 한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시즌 외에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시간이 많았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이것저것 다 하는 거지.]
‘그렇군요. 한국에서는 NFL이 그렇게 인기가 없어서 잘 몰랐네요.’
[ㅇㅇ 그럴 수밖에 없지.]
[걔네들처럼 돈자랑 하라는 건 아닌데, 팬들이 원하면 조금씩 해줘. 소통하는 것도 팬서비스의 하나다.]
[ㅇㅈ. 그리고 톱클래스 선수들이 잘 나가는 걸 보여줘야, 그걸 보고 꿈을 키우기도 함.]
[ㄴ 이거 맞말. 사실상 동기부여가 가장 잘 되는 게 돈임.]
[맞는 말이지.]
[조금씩이라도 소통해라.]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을 보던 신우가 다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수백의 팬들의 댓글을 보며 신우의 생각이 깊어졌다.
* * *
다음 날.
김이나는 일찌감치 사무실에 도착했다.
출근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때 한 장 찍어야지!”
스마트폰을 꺼낸 그녀가 책상과 창밖이 잘 보이게끔 구도를 잡았다.
찰칵!
화면을 터치하자 사진이 찍혔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구도를 바꾸며 수십장의 사진을 찍은 끝에 원하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뉴욕에 온 뒤로 팔로워가 많이 늘었단 말이지.”
뉴욕의 사진을 자주 올리다보니 팔로워가 하루에 많게는 10명씩 늘어났다.
매일 늘어나는 팔로워를 보며 그녀는 더욱 열심히 사진을 올렸다.
“어? 신우씨도 오랜만에 업데이트를 했...”
업데이트 알림을 누르는 순간.
김이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팔로워가 35만명?! 분명 엊그제만 하더라도 10만명대였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건 13만명이었다.
프로야구선수가 그 정도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건 대단한 숫자였다.
사실 신우의 인지도라면 이보다 높아야 되는 게 당연했다.
백만을 찍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신우는 그동안 인스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1년에 고작 7개의 게시글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니 사용하지 않는 계정이라 생각하고 찾아오질 않는 것이다.
언팔을 하는 일도 많았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올렸네.”
오늘 올린 게시글은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댓글 수천개가 달리며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김이나는 댓글을 보다 자신의 인스타로 돌아갔다.
그리고 초라한 댓글과 팔로워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역시 인기인은 다르구나.”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실망할 때가 아니지. 정신우 선수가 인스타를 하면 오히려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야.”
2010년 후반부터 시작된 인플루언서 시장의 엄청난 성장.
특히 셀럽들의 SNS활용은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낳았다.
실제 업체들과의 미팅에서도 모델이 SNS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액수가 달라지고 했다.
“물론 정신우 선수가 SNS를 한다고 해서 크게 액수가 달라지진 않겠지만...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아. 이 부분을 확실하게 어필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