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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43화 (143/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43화 >

* * *

씨티필드의 외야에 K라는 글자의 포스터가 끝없이 붙어 있었다.

[19개의 K가 외야 관중석을 수놓고 있습니다.]

[정말 저렇게 많은 K마크가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메츠 직원의 손에는 3장의 종이가 더 들려 있습니다.]

카메라의 앵글이 멀어지더니 전광판을 비추었다.

필리스는 8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9회초! 필리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 이어집니다.]

전광판을 비추던 카메라의 화면이 전환되면서 마운드를 비추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3개! 이 아웃카운트 중 단 하나라도 삼진으로 잡아내면 정신우 선수는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8이닝 0실점 3피안타 19탈삼진.

이 엄청난 기록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후우...”

기묘한 적막에 한숨을 내쉰 신우가 가볍게 공을 쥐었다.

[긴장 됨?]

‘조금은 됩니다.’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긴장에 잠식되면 안 된다.]

[ㅇㅇ 긴장되더라도 너만의 공을 던지는 걸 떠올려.]

‘예.’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조언을 들으며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3개.

[정신우 선수 역사에 이름을 써넣는 1구를 던집니다!]

쐐애애액-!!

딱!!

“파울!!”

[초구 뒷그물을 때리는 파울입니다!]

역사적인 9회가 시작됐다.

신우는 순식간에 5개의 공을 뿌렸다.

[볼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정신우 선수 여섯 번째 공을 던집니다!]

쐐애애액-!!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갔다.

동시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부앙!!

매섭게 돌아간 배트가 공을 때리려는 순간.

휘릭!!

공이 바깥으로 휘며 뚝 떨어졌다.

퍽!!

부웅!!

“스윙! 아웃!!”

[삼진입니다!! 20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는 정신우 선수!!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20번째 탈삼진이 나온 것이다.

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억지로 잡고 있던 집중의 끈이 놓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매튜슨님이 후원하셨습니다.】

【긴장을 놓지마!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일갈에 신우는 놓칠 뻔 했던 끈을 잡았다.

기록을 달성했다고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다.

‘감사합니다.’

매튜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신우가 긴장의 끈을 잡은 채, 다음 타자를 상대했다.

딱!!

[초구 강타! 하지만 타구는 높게 떴습니다! 중견수 위치를 잡고...]

퍽!

“아웃!”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완봉승까지 단 1개의 아웃카운트를 남겨둔 정신우 선수! 그리고 타석에는 오늘 경기 세 타석 모두 삼구삼진을 당한 로버트 버레이가 들어섭니다!]

[역사를 아예 새로 쓸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로버트 버레이.

[ㅋㅋㅋㅋ 재밌네.]

[꼭 이렇게 흘러가더라.]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웃음을 뒤로 하고.

신우는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사인을 교환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모든 힘을 쥐어짜내.]

[숨을 깊게 몰아쉬면서 최대한 힘을 실어라.]

‘예.’

조언과 함께 신우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위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르는 패스트볼! 로버트 선수는 꿈쩍도 하지 못합니다!]

쐐애애액!!

딱!

“파울!!”

[2구 하이 패스트볼에 배트 돌았지만, 파울이 됩니다! 순식간에 투스트라이크로 몰린 로버트 버레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삼구삼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로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자식! 또 패스트볼을 던지겠지? 어디 한 번 던져봐!’

로버트는 악에 받친 표정으로 신우를 노려봤다.

그리고 패스트볼을 기다렸다.

그 순간,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3구를 뿌렸다.

쐐애애애액-!!

‘걸렸어!!’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로버트가 눈을 빛내며 배트를 돌렸다.

부앙!!

테이크백 했던 배트가 굉음과 함께 돌아가는 순간.

‘어?’

로버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왜 안와?’

지금쯤이면 홈플레이트 앞에 도착했어야 될 공이 저 멀리 있었다.

그 순간, 공 너머로 신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본 로버트는 깨달았다.

‘이런...제에에엔장!!’

자신이 제대로 낚였다는 걸.

부앙!!

퍽!!

“스윙! 아웃!!”

[삼구삼진!! 써클체인지업에 완벽하게 속은 로버트 버레이! 네 타석 연속 삼구삼진을 당합니다!]

허무하게 타석 위에 주저앉은 로버트를 비추던 카메라가 마운드를 비추었다.

그곳에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꼿꼿하게 서서 로버트를 바라보는 신우가 있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쓴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습니다!!]

중계화면에 방송국에서 준비하고 있던 멘트가 떠올랐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 21개로 갱신!」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홈인 씨티필드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9이닝 무실점 3피안타 21탈삼진을 잡아내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특히 필리스의 강타자인 로버트 버레이를 상대로 4타석 연속 삼구삼진을 잡아내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해 이목을 끌었습니다.」

신우의 기록 경신소식은 큰 화제가 되었다.

전 세계의 야구팬을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도 신우의 기록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신우 정이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죠.]

[정말 놀라운 기록입니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신우 정은 112구를 던졌는데, 90구를 스트라이크존에 집어넣었어요. 스트라이크비율이 무려 80퍼센트죠.]

신우의 공격적인 피칭을 잘 알려주는 기록이었다.

[이 정도 성적이라면 그렉 매덕스와 클리프 리를 잇는 존 어태커는 시누라 봐도 되겠네요.]

존 어태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꽂아넣을 수 있는 투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대표적인 투수였다.

전설의 플레이어들의 이름이 나올 정도로 이번 신우의 기록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제 메이저리그 2년차인 정신우 선수가 과연 올 시즌 어떤 성적으로 시즌을 끝낼지 궁금합니다.]

신우의 역사적인 시즌에 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 * *

메이저리그의 숨가팠던 전반기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메츠 직원들은 이전보다 더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 이유는 바로 올스타전 때문이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돼! 무려 12년만의 올스타전이라고!”

“예!”

“이쪽도 다 정리를 해!”

“레드카펫 라인 정리가 덜 됐잖아!”

25시즌 올스타전은 씨티필드로 결정이 됐다.

2013년 올스타전 이후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메츠 입장에서는 이번 올스타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했다.

올스타전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방영된다.

거기에 그날 방송되는 메이저리그 경기는 올스타전 단 한 경기인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구단이 회사나 다름없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만큼 좋은 홍보수단은 없었다.

베켓은 올스타전 준비가 한창인 구장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올스타전은 우리 팀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해. 내셔널리그 선발투수가 바로 시누니까!’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신우.

그는 내셔널리그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선다.

거기에 직전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 소식은 모든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다루고 있었다.

이보다 완벽한 홍보는 없었다.

“후후후!”

자신의 입지가 단단해짐을 느끼는 베켓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올스타전을 앞두고 메츠는 원정길에 나섰다.

하지만 신우는 이번 원정에 동행하지 않았다.

등판이 예정에 없는 만큼 특별히 휴식을 준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후반기부터 이제 1선발이네?]

[우리 시누 성공했누.]

바로 선발 로테이션의 수정이다.

메츠는 전반기 휴식일이 거의 없었다.

간혹 휴식일이 걸려도 신우가 등판한 다음날 쉬거나 하다보니 로테이션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올스타 휴식기간은 로테이션을 바꾸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

“흐흐...너무 좋은데요.”

[얼씨구.]

[부담은 안됨?]

“뭐, 1선발이나 3선발이나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냥 등판할 기회가 더 많은 거죠.”

[그건 맞음.]

[의외로 1선발이란 거에 의미를 두는 애들이 많더라고.]

[하여간 이런 거에는 또 대범하다니까.]

[그나저나 오늘 훈련도 끝냈는데, 이제 뭐할 거임?]

“오늘은 이미 선약이 있죠.”

[선약?]

“신우야! 이제 슬슬 가야지!”

“예!”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랑 약속이냐?]

‘이번 카퍼레이드에 어머니랑 같이 나가니까요.’

[아하!]

카퍼레이드는 올스타전의 주요행사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선수가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는 대회니만큼 신우는 어머니와 함께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니만큼, 어머니도 좀 차려입으셔야죠.’

[ㅇㅈ]

[확실히 돈 쓰고 와라.]

‘옙!’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방을 나섰다.

오랜만의 쇼핑이었다.

* * *

올스타전은 축제의 날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온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없었다.

“이걸 다 사인하라고요?”

“예.”

에이든이 평소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우는 고개를 떨어트리며 클럽하우스 한켠에 준비된 야구공과 유니폼에 사인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

“이제 미디어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이후에 언론과 또 인터뷰가 있습니다.”

“장난 아니네요...”

“원래 스타는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에이든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니 빨리 사인하시죠.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흐어...”

산처럼 쌓인 유니폼과 야구공을 보며 신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옥 같은 사인 퍼레이드를 끝내고 신우는 씨티필드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컨벤션센터로 이동했다.

에이든의 안내를 받아 센터의 대기실에 들어섰다.

“오-! 시누.”

그런 신우를 한 중년사내가 반갑게 맞이했다.

셔츠와 청바지로 편한 복장을 한 백인 중년남성은 신우도 아는 얼굴이었다.

“토니 감독님.”

“하하! 무슨 감독이야, 그냥 토니라고 부르게.”

토니 윙키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다.

작년부터 자이언츠의 감독직을 맡은 그는 그해 자이언츠를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뉴욕 양키스에 패배하긴 했지만, 부임 첫해부터 자이언츠를 우승시킨 저력은 높게 평가받았다.

“이번 올스타전을 앞두고 마이크가 신신당부를 하더군. 자네를 1이닝만 던지게 하라고 말이야.”

“저도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에이든이 말했다.

토니 윙키스는 장난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올스타전 이후에 우리 팀과 경기를 하는데, 조금 더 던지게 하면 안 될까?”

“농담이시죠?”

“하하! 물론 농담이지. 자네는 예전에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사람이 너무 진지하다니까.”

에이든과도 연이 있는 듯 장난을 주고 받았다.

“어쨌건 이번 올스타전 동안 같은 팀이니 잘 부탁하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 됐습니다! 들어가시죠!”

진행요원의 말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스타전을 하루 앞두고 정신이 없는 신우였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신우의 객실이 분주했다.

“어머니, 헤어스타일 어떠세요?”

김이나의 질문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예뻐요. 그런데 조금 화려하지 않나요?”

“오늘 같은 날은 조금 화려해도 괜찮아요. 무엇보다 어머니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걸요?”

“그래요?”

“네. 이제 화장으로 넘어가시죠. 어머니 화장 좀 부탁할게요.”

“네.”

김이나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초청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부탁을 하고 방을 나섰다.

“김 실장님.”

“어머, 신우씨. 머리 다 만지셨네요?”

그런 김이나의 앞에 신우가 나타났다.

평소 신우는 머리에 대충 왁스를 바르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포마드 스타일로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신우의 피부는 평소보다 더 매끄러웠다.

“저도 꼭 화장을 해야 됩니까?”

피부톤이 평소와 다른 건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화장에 익숙지 않은 그였기에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김이나는 단호했다.

“물론이죠. 아무리 운동선수라지만, 이런 특별한 이벤트에서는 조금 꾸며주는 게 오히려 좋아요. 불편하시더라도 팬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시누를 잘 아누.]

[팬들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누.]

“알겠습니다.”

팬들을 위해서라는 말에 신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준비 끝내고 가도록 하죠. 이러다가 퍼레이드 시간에 늦겠어요.”

“예.”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는 여러 행사가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레드카펫과 카퍼레이드였다.

신우는 어머니와 함께 이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김이나는 특별히 두 사람을 위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이었다.

잠시 후.

신우가 먼저 준비를 끝내고 거실에 앉아 쉬고 있었다.

‘화장하는 게 엄청 힘드네요.’

[ㅋㅋㅋ 그래도 잘 어울리네.]

[난 이상한데?]

[그러게 뭔 남자가 화장이냐?]

[아이고 노친네들아. 요즘 애들은 남자도 화장한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때였다.

딸칵-!

방문이 열리며 김이나가 나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어머니가 걸어 나왔다.

평소의 스타일이 아닌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는 마치 딴 사람 같았다.

“엄마 진짜 예쁘네요.”

“그래?”

“예. 평소에도 그렇게 다니세요.”

“후후, 잘 어울리시죠?”

“네. 정말 잘 어울리세요.”

“얘도 참...어서 가자.”

부끄러움을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공장에 다니던 어머니가 이렇게 꾸미신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했다.

“그럼 갈까요?”

이제 행사에 참석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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