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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93화 (93/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93화 >

* * *

[정신우 선수가 7회부터 올라옵니다. 이거 예상밖인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한 번이라도 지면 메츠는 탈락입니다. 그렇기에 전력을 아낄 이유가 없습니다.]

해설위원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신우는 연습피칭을 이어갔다.

뻐억-!!

그의 공이 미트에 꽂히며 평소와 같은 소리를 냈다.

‘몸이 다 풀렸다고 하더니 정말이었군.’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신우의 몸상태는 완벽했다.

“뒤를 부탁한다.”

“예.”

대답을 들은 마이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홀로 남은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본인의 루틴을 따랐다.

[7회 무사 2 대 1이라. 꽤 힘든 상황이네.]

[단타나 뜬공이라도 나오면 바로 끝이겠는데?]

[게임오버!]

신우 역시 그들의 말을 인정했다.

뜬공이라도 나오면 3루 주자는 홈을 파고들거다.

발도 빠른 대주자였으니 동점이 된다.

메츠의 타선을 생각하면 점수가 바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운드에 신우가 있으니 연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불펜이다.

[메츠는 널 냈으니 뒤에 낼만한 투수가 없다. 기껏해야 대니얼 정도겠지.]

[대니얼 올라오면 쫑이지.]

[크으-! 배수진 쳤자너.]

배수진.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어떻게든 자신이 경기를 끝내야 된다.

뒤는 없다.

그런 생각으로 신우는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치고 상체를 숙이고 사인을 교환했다.

[커터.]

초구는 커터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땅볼을 유도하면 3루 주자는 홈으로 파고들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타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체인지업은 던지지 못한다.’

체인지업은 뜬공비율이 높은 구종이었다.

뜬공이 나오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체인지업은 던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저 자식의 구종을 모두 노리고 치기에는 무리가 있어.’

모든 구종이 완성형에 가까운 신우다.

그렇기에 모든 구종을 노린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커터만 노린다.’

상대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공.

거기에 그라운드볼을 만들어야 되는 상황.

이 두 가지를 생각했을 때, 투수가 던질 확률이 가장 높은 공을 생각했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주자들을 시선으로 견제합니다.]

[정신우 선수는 세트포지션에서 자신의 공을 충분히 잘 던지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주자를 압박하는 능력도 뛰어나죠.]

투수와 타자가 각자의 결정을 내린 뒤.

신우는 주자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다시 미트를 바라봤을 때.

그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어 호흡을 고른 신우는 이내 다리를 뻗었다.

촤앗-!!

스트라이드와 함께 모든 힘을 모아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애액-!

[정신우 선수, 초구 던졌습니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우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보더라인을 살짝 걸치는 코스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그 순간 신우는 알 수 있었다.

‘커터를 노리고 있다.’

공을 던진 뒤에도 영역이 유지되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타자가 커터를 노리는 스윙을 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미 공은 손을 떠난 상태였다.

신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매튜슨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했습니다.]

그때였다.

오랜만의 도네이션이 도착했다.

채팅창과 달리 도네이션은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영역에 들어서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잊지마라.]

매튜슨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공을 던진 투수는 다섯 번째 내야수가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내야수.

레전드플레이어들에게 야구를 배울 때.

그들이 손이 닿도록 하던 말이었다.

(멍청아! 공을 던진 뒤에 밸런스가 깨지면 어떻게 하냐?)

(밸런스가 깨지면 다음 동작이 느려지잖아!)

(그러면 백업플레이가 느려진다니까?)

(투수는 공을 던진 뒤에 바로 수비 자세를 취해야 된다. 그래야 투구가 마운드로 와도 바로 대처가 가능하다.)

레전드플레이어들과의 훈련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신우는 투수가 아닌 내야수로서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딱-!!

거의 동시에 배트가 공을 때려냈다.

‘원바운드...!’

정확히 때리지는 못했다.

공의 윗부분을 때려 홈플레이트 앞에서 원바운드가 크게 됐다.

신우는 느려진 타구를 눈으로 쫓았다.

그때 주자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1루 주자는 2루로 달렸다. 하지만...’

등뒤에서 느껴지는 소리로 주자가 2루로 쇄도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에서는 아니었다.

‘주저하고 있다.’

리드폭을 크게 가져간 수준에서 주자가 홈을 파고들지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우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과 동시에 떨어지는 타구를 낚아챘다.

“퍼스트!!”

뒤이어 토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우는 그 목소리에 따라 1루로 발을 뻗었다.

그리고 팔을 뒤로 뻗어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날 신경쓰지 않으면 쌩큐지!!’

신우가 1루로 발을 뻗는 모습에 3루 주자는 곧장 홈으로 파고들었다.

한 번 스타트를 스톱했지만 충분히 자신있었다.

1루에 갔던 공이 홈으로 돌아오기 전에 홈으로 들어갈 자신이 말이다.

그때였다.

촤앗-!!

분명 1루로 발을 내디뎠던 신우가 몸을 다시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 던졌다고?!!’

신우의 손에는 공이 들려 있었다.

아직 홈까지는 거리가 있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급하게 몸을 돌려 3루로 내달렸다.

“시누!!”

그런 주자를 보던 3루수 로빈슨이 글러브를 뻗으며 외쳤다.

신우는 망설이지 않고 로빈슨을 향해 공을 던졌다.

“Fuck!!”

욕설을 내뱉은 주자가 급히 몸을 돌려 홈으로 달렸다.

[주자 걸렸습니다!! 런다운에 걸린 주자! 급히 홈으로 달리지만 몰아넣고 공을 포수에게 던집니다!]

이미 주자는 런다운에 걸렸다.

실수가 나올 가능성은 없었다.

결국 포수가 주자의 어깨를 터치했다.

“아웃!!”

3루심의 손이 올라갔다.

[실점의 위기에서 기지를 발휘해서 아웃카운트를 기록하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정말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3루 주자의 상황판단이 조금 빨랐습니다. 그걸 빠르게 간파한 정신우 선수가 1루로 공을 던지지 않으면서 주자를 묶어둘 수 있었습니다.]

[직접 몰고 간 것도 좋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아주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주자의 위치가 홈과 3루 베이스의 중간쯤이었기 때문에 둘 중 어느곳에 던진다면 변수가 생겼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몰고 갔기 때문에 주자 역시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서 당황하게 된 것이죠.]

[정말 대단한 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우의 순간적인 기지덕분에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그리고 주자는 1, 2루가 된 상황.

[크-! 멋졌다.]

[홈으로 던지지 않고 주자를 몰아간 거 나이스한 판단이었다.]

[주자쉑, 쥐새끼 되가지고 아주 어쩔 줄 모르더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선배님들 덕분이죠. 특히 매튜슨 선배님, 그때 도네 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튜슨의 도네가 아니었다면 깜박했을 거다.

제 5의 내야수라는 말을 말이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긴장해라.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니까.]

‘예.’

[남은 아웃카운트는 두 개다. 하지만 1사가 된 상황이니까, 오히려 쉬워졌지.]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땅볼 하나면 더블플레이가 완성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신우는 그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지 않았다.

“자!! 원아웃이다! 루이스!! 공 가면 놓치지 말고 제대로 잡아!”

“오케이! 물론이지!!”

신우의 외침에 루이스가 큰소리로 화답했다.

주위에 분위기를 환기시킨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후우...”

숨을 몰아쉰 그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남은 아웃카운트...’

상체를 숙인 신우가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한 번에 잡도록 하죠.’

오늘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

각오를 다지는 신우였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 8회초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31구째가 되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구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우가 마운드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럇!!”

[정신우 선수가 포효와 함께 더그아웃으로 돌아갑니다!]

“우! 우! 우! 우!!”

“와아아아아-!!”

“시누 너밖에 없다!!”

“네가 최고다!!”

“M.V.P!! M.V.P!!”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함성과 박수를 보냅니다! 기립박수가 일어나는 이곳은 씨티필드입니다!!]

신우가 팬들의 성원을 뒤로 하고 더그아웃에 들어갔다.

메츠의 팬들에게 신우는 MVP나 다름없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는 그의 모습에 박수와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

“후우...”

더그아웃에 돌아온 신우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고작 30여구.

사실 보통의 클로저라면 힘이 떨어질 투구수다.

하지만 신우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70구까지도 던질 수 있다.

평소의 상황이라면 말이다.

‘왜 이렇게 힘들지?’

그도 의문이었다.

왜 이렇게 힘든지 말이다.

[신경꺼라.]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왔다.

[지금 중요한 건 너의 정신을 집중하는 거다.]

‘아아...그렇죠...정신집중.’

[호흡을 정돈하고 다음 이닝에만 집중해라. 단 3명만 잡으면 경기는 끝난다. 그 뒤에는 푹 쉴 수 있어.]

‘네...’

매튜슨의 채팅을 본 신우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곧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 채팅이 하나 올라갔다.

[안 알려줘도 되냐?]

[시끄러워.]

[거 새끼, 눈치 더럽게 없네.]

한 사람의 채팅에 기다렸다는 듯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신우는 정신을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채팅이 보이지 않으니까.

[지금 알려주면 얘 멘탈이 퍽이나 남아 있겠다.]

[야야, 시끄러워. 채팅이나 올리자.]

[영.]

[차.]

이럴때는 단합이 참 잘 되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 모두 걱정하고 있었다.

신우의 상태를 말이다.

그들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팀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는 신우가 평소보다 더 강한 압박감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정신을 집중하면서 영역에 들어가 있으니 괜찮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외줄 위에 맨몸으로 올라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칫 잘못하는 순간 추락한다.

영역이 깨지면 지금의 부담감을 신우는 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기에 매튜슨과 레전드플레이어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 신우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 1년간 수백명의 사람들이 노력해 일구어낸 성과라는 걸 말이다.

그 무거운 짐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철저하게.

[네 피칭을 할 수 있게만 집중해라. 그게 지금 네가 할 일이다.]

매튜슨의 채팅이 유독 안쓰럽게 느껴졌다.

* * *

[9회초! 스코어는 여전히 2 대 1에서 정신우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7회와 8회말.

두 번의 공격기회에서 메츠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득점지원을 받지 못한 채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쓸쓸하기까지 느껴지는 신우의 뒷모습에 동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젠장...우리가 점수를 냈다면.’

‘망할! 거기서 왜 참지 못한 거지?’

‘저 녀석도 힘들 텐데. 왜 타석에서 제대로 못한 거냐?’

그들 역시 프로였다.

동료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런 그들의 생각과 달리 신우는 이미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후우...후우...”

영역에 들어섰지만 신우의 호흡은 거칠어졌다.

평소처럼 냉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 발을 걸치고 있는 듯한 감각.

이 묘한 감각에 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이번 이닝만 견뎌라. 제발 이번 이닝만 제대로 던질 수 있게 해줘!’

신우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영역에 한 발을 마저 넣었다.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오른 정신우 선수! 평소와 달리 호흡이 거칠어 보입니다.]

[마무리투수는 모든 공을 전력투구합니다. 1구, 1구에 모든 힘을 쏟아붓죠. 그렇기에 평균투구수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30구 전후가 한계투구수로 보죠.]

[즉, 이미 한계투구수에 도달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해설위원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신우가 한계에 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계로 보는 시청자도, 현장에 있는 관중도, 그리고 야구관계자들 모두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를 바꿔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면 끝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기에 그저 응원만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 응원을 받으며 신우가 초구를 뿌렸다.

뻐억-!

“스트라이크!!”

그의 공이 미트에 꽂히고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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