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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80화 (80/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80화 >

* * *

세이버매트릭스가 도입된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종가치라는 걸 본격적으로 매기기 시작했다.

이 구종가치는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들의 투구를 분석해서 어떤 구종이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내고 팀의 실점을 막아냈는가를 평가했다.

신뢰도는 그리 높진 않지만 어쨌건 팬들이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이러한 피치밸류를 평가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리고 2007년 이후 슬라이더는 단 한 번도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전에도 스플리터에 잠시 자리를 내준 적이 있지만 곧 왕좌를 찾아갔을 정도로 강력한 구종이다.

이러한 슬라이더를 최초로 던진 투수는 치프 밴더라는 게 정설이었다.

최초의 5인과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치프 밴더의 본명은 찰스 알버트 밴더.

그의 별명이었던 치프는 인디언인 치피와부족 출신임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1903년 데뷔해서 1925년까지 활약한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459게임 212승 127패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했다.

당대 최고의 투수들인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존슨, 사이영, 피트 알렉산더와 같은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그 역시 당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월드시리즈 6승은 1930년대 활약했던 투수인 레드러핑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역대 최다승 기록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가르침에 신우는 곧장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투구를 해보고 안된다면 오늘 경기에서는 포기해도 돼.]

치프 밴더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구종을 던지는 건 프로들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립과 던지는 방식만 알면 웬만한 공들은 던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같은 프로에게 통하는가이다.

심지어 이곳은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다.

어설픈 공이 통할리 없었다.

‘예.’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신우는 조금이라도 어설프다면 실전에서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뻐억-!

“나이스볼!!”

불펜포수의 외침과 함께 가볍게 피칭을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리자 신우는 밴더가 알려준 구종을 연습하기 위해 신호를 보냈다.

“이번에는 커터로 갈게.”

“오케이!!”

글러브에 공을 넣은 신우는 커터의 그립을 쥐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전의 커터 그립과는 다른 형태로 쥐었다.

치프 밴더가 알려준 슬라이더성 커터 그립이었다.

[미국에서 커터의 종류가 어떻게 나뉘는지 이제는 알지?]

‘예.’

신우가 처음 마이너리그에 들어갔을 때.

가장 놀랐던 건 투수들마다 던지는 공의 그립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선 프로계약을 한 뒤에도 스탠다드한 그립을 연습시키는 게 일반적이었다.

1군에서 어느 정도 통한 뒤부터는 본인의 그립을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마이너에서부터 선수들이 알아서 그립을 찾았다.

지도자가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닌 조언을 하는 문화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구종이라 하더라도 궤적이나 속도 모든 것이 제각각이었다.

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가 지금 던지는 건 플랫 커터에 가깝다. 하지만 그립에 따라서는 프론트 도어 커터와 슬라이더 커터까지 총 세 가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플랫 커터는 변화가 적은 대신,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구속도 포심 패스트볼과 큰 차이가 없다.

즉, 현재 신우가 던지는 커터와 비슷한 형태라는 소리였다.

프론트 도어 커터는 싱커성 움직임을 보이는 공을 뜻한다.

좌타자의 몸쪽을 파고들다 갑자기 존으로 들어가는 무브먼트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슬라이더 커터는 말 그대로 슬라이더와 같이 변화가 심한 구종을 말한다.

[실밥과 검지가 얼마나 붙냐에 따라서 커터가 아닌 슬라이더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게 된다.]

‘즉, 흰색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겠네요.’

[정답이다.]

‘릴리즈는 그대로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다만 마지막에 임팩트를 줄 때, 검지에 조금 더 공을 붙이는 느낌으로 가는 거다.]

대충 이해는 됐다.

가장 큰 문제는 마지막 순간, 공에 임팩트를 줄 때의 손가락에 가해지는 힘의 분배였다.

중지에 힘을 준다는 건, 강제적으로 회전을 바꿔준다는 이야기다.

포심 패스트볼은 역회전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신우는 중지에 더 힘을 주어서 사선으로 회전을 강제로 부여했다.

이러한 미세한 회전의 변화는 공기와 바람이 지나가는 경로가 달라지면서 공에 자연스런 변화를 일으켰다.

치프 밴더는 여기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립은 이렇게 쥐고...’

신우는 곧장 실전으로 옮겼다.

밴더가 알려준 방식으로 그립을 쥐고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가볍게 공을 뿌렸다.

‘여기에서...!’

스트라이드와 골반의 회전, 그리고 팔로스로와 릴리스 포인트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마지막 임팩트 순간, 신우는 중지에 더욱 힘을 가했다.

‘때린다!!’

파앙-!

그의 손이 허공을 때리며 마치 채찍이 허공을 임팩트할 때처럼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쐐애애애액-!

손끝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가다 크게 변화를 일으켰다.

퍽-!

“오우-! 나이스 무브먼트! 언제부터 슬라이더를 던진 거야?”

불펜포수가 슬라이더로 착각할 정도로 큰 각도로 휘어서 들어갔다.

[30점.]

하지만 치프 밴더의 평가는 박했다.

[릴리스 포인트가 너무 앞쪽에 형성되면서 변화가 빨리 일어났다. 무엇보다 다른 공들과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타자가 알아채는 것도 빠를 수밖에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2구를 던졌다.

이번에는 릴리스포인트에 더 신경을 썼다.

뻐억-!

“굿! 커터! 오늘도 날카로운데?”

[40점.]

의견이 또 갈렸다.

[이번에는 일반적인 커터와 별 다를 게 없었다. 플랫 커터에서 변화의 각이 조금 더 컸을 뿐이지.]

치프 밴더의 조언을 들으며 신우는 슬라이더 커터를 손에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손의 감각이 뛰어나도 바로 실전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낼 순 없었다.

뻐억-!

“굿굿!!”

신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투구를 하면서 여러 방법을 실험했다.

사실 이런 훈련법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새로운 구종을 장착한다는 건 여러 부작용을 낳게 된다.

예를 들어 체인지업이 있다.

체인지업을 던질 때 대부분의 투수들은 힘을 빼고 던진다.

구속을 줄이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 버릇이 다른 구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체인지업을 익힐 때는 다른 구종을 익히지 않는 게 좋지.]

‘제가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질 때까지 다른 구종을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인가요?’

[그래.]

[정답-!]

레전드플레이어들은 그동안 다른 구종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게 되자 곧장 다른 구종인 슬라이더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말인즉슨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기다렸다는 뜻이다.

[본래 슬라이더를 던질 때는 공을 채는 순간에 내전이 아닌 외전을 해줘야 된다. 즉, 포심 패스트볼과 다른 방향으로 손을 꺾어줘야 된다는 거지.]

[강제로 스핀을 걸어줘야 횡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지금 내가 알려준 슬라이더 커터는 네가 던지는 공에서 큰 변화가 없다.]

슬라이더를 어떻게 던지는지는 신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왼손으로 던질 당시에도 슬라이더는 자주 애용하던 변화구였으니 말이다.

[완성도는?]

‘당연히 형편없었죠.’

[하긴, 네가 그걸 잘 던졌으면 2군에 있었을 리는 없지.]

‘꼭 그렇게 팩트로 뼈를 때리셔야 됩니까?’

[꼬우면 잘 던지시던가.]

팩트로 두들겨 맞은 신우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보여드리죠.’

한국에 있을 때와 지금의 신우가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바로 승부욕이었다.

본래 그는 승부욕이 매우 강한 타입이었다.

하지만 멘토였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프로생활에서의 실패와 군대에서의 절대적 복종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심리적인 압박을 크게 받았다.

덕분에 본인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거니와 승부욕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건 아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신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얻고 스스로 야구를 해나가는 문화, 그리고 레전드플레이어란 믿을 수 있는 멘토가 다수 생기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승부욕이 다시 싹트고 있었다.

“흡-!”

뻐억-!!

그리고 그건 매우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 *

[9회초, 메츠의 공격이 끝났습니다.]

[1사 2루 찬스를 잡았지만 추가점을 내지 못한 게 아쉽네요.]

[그렇습니다. 반면 필리스는 2점을 뒤진 상태지만 9회말에 역전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9회말.

마운드에는 신우가 올라왔다.

[메츠는 당연하게도 정신우 선수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이틀 연속 등판이지만 큰 걱정은 없겠죠?]

[정신우 선수의 연투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났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이 선수를 신인이다, 연투는 버겁다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맞습니다. 올 시즌 총 7번의 이틀 연속 등판이 있었는데, 매 경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감했었습니다.]

신우가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오늘이야말로 저 새끼의 낯짝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려!!”

“공을 때리지 못할 거 같으면, 배트를 던져서 저 새끼의 발목이라도 분질러버려!!”

당연하게도 필리건들의 난폭한 야유가 쏟아졌다.

이틀 연속 들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일단 귀를 닫고 연습투구에만 집중했다.

[필리스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9회말에 타순이 좋습니다.]

[투수타순인 9번부터 시작이 되지만 당연히 여기에서는 대타를 낼 겁니다.]

때마침 카메라가 대기타석을 비추었다.

[예상대로 대기타석에는 대타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를로 미추 선수입니다.]

거구의 라틴계 선수가 배트를 돌리고 있었다.

[큰 신장만큼이나 한 방이 있는 선수입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약점은 분명합니다만 우완, 그리고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에게 2할 7푼 3리로 평균적인 타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 시즌 홈런도 11개를 때려냈네요.]

[그중 7개를 대타로 나와 홈런을 때려냈고 대타 타율만 보면 3할 1푼 8리로 이상하게 대타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풀타임을 뛰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은 선수입니다.]

즉, 신우의 상대는 아니란 소리였다.

누가 보더라도 카를로 미추보다는 신우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방심을 풀지 않았다.

[이 상황에 대타로 낸다는 건 확실한 무기가 있다는 소리다.]

‘예.’

[저런 애들은 겉으로 드러난 성적은 일단 무시해야 돼. 그것만 믿고 얕보다가는 불의의 일격을 맞게 된다.]

‘알겠습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대답을 들으며 신우는 연습투구를 마무리했다.

몸을 돌려 로진을 손 끝에 묻힌 그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힐끔 고개를 돌렸을 때.

더그아웃의 계단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선수를 발견했다.

브라이스 하퍼였다.

[저쉑 눈빛 하나는 지린다니까.]

[어제 너한테 당한 게 어지간히 열받았나 보다.]

눈빛만으로도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이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림도 없지.’

하지만 신우는 승리를 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눈앞에 있는 상대부터 신경써라.]

‘예.’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허리를 숙였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토마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깥쪽, 커터.’

토마스는 좋은 포수였다.

그렇기에 신우의 상태를 우선 체크하는 신중한 코스를 요구했다.

동시에 타자의 반응도 체크할 생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쳤다.

“후우...”

깊게 호흡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정신우 선수!! 또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비춘 신우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신우의 눈에 비친 풍경은 모두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좋았어.’

이틀 연속.

영역에 발을 들이는 신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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