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9화 >
* * *
경기 종료 이후.
신우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먼저 50세이브 고지를 넘으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움을 준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브라이스 하퍼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셨는데, 어떻게 된 상황인가요?”
“딱히 신경전을 벌인 건 아닙니다. 그저 쳐다보기에 쳐다봤을 뿐입니다.”
신우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찾아온 기자들은 한국기자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각종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인 기자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일본인 기자들의 질문은 묘하게 날이 서있었다.
“리그의 대선배 격인 브라이스 하퍼 선수와의 신경전은 썩 좋은 모습은 아닌데, 굳이 대응할 필요가 있었나요?”
“선배이기 이전에 상대선수일 뿐입니다. 또한 이곳은 메이저리그입니다. 기세에서 진다면 본 대결에서도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신우의 당당한 대답에 일본인기자는 헛기침을 해댔다.
주위에서도 그의 영양가 없는 질문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기에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상 수상이 유력하고 사이영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루키시즌에 이러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라도 있나요?”
기자의 질문에 신우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멘탈관리가 잘 되어서인 듯 합니다.”
“주위의 지도자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시나 보죠?”
“예.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 인터뷰를 위해 코치와 감독들 역시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신우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언제 도와준 적이 있었나?’
‘딱히 도와준 건 없었던 거 같은데...’
‘자식! 우리한테 공을 돌려주는군.’
다소 의아한 대답이긴 했지만, 그들은 각자 좋을대로 생각을 했다.
매스컴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좋게 나갈 확률이 높기에 굳이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약간의 오해와 함께 훈훈하게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미국인 기자가 물었다.
“본인이 공언했던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언했던 목표.
바로 메이저리그 최다세이브 기록이다.
반쯤은 강제로 이루어진 공언이지만 매체에게는 좋은 떡밥이었다.
각국에 이미 보도가 나갔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도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루키시즌에 나댄다고 했던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 기록에 가까워지면서 언론은 그의 공언을 다시 수면 위로 띄우고 있었다.
또한 야구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졌다.
공언한 것을 지켜낸다.
그 목표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목표였기에 반응은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신우 역시 그러한 반응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 강하게 나가야 된다.]
[당연히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지르자!!]
[오-! 좋은데?]
[가즈아-!]
[어리버리 타면서 대답하면 분위기 깨진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그들은 강한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우의 생각은 달랐다.
“대답은...”
* * *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활약중인 정신우 선수가 50세이브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스 하퍼와의 대결에서도 강력한 피칭으로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명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화를 삭히지 못한 채 배트를 부러트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브라이스 하퍼와 눈싸움을 벌이며 긴장어린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신우 선수는 ESPN 기자의 (본인이 공언한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은 기록을 달성하고 하겠다.)라는 대답으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 크-! 오늘 브라이스 하퍼와의 대결은 진짜 일품이었다.
ㄴ 눈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거 봤음?
ㄴㄴ 필리건들 앞에서도 쫄지 않아서 존멋!!
ㄴㄴㄴ 동양선수가 이렇게 하는 건 첨인 듯.
- 9월까지 무실점 실화냐?
ㄴ 연속이닝 무실점기록도 51이닝임. 이대로 가면 이것도 기록갱신할 듯.
ㄴㄴ 선발도 아니고 보직이 클로저에서 갱신하는 건데, 의미 있나?
ㄴㄴㄴ 클로저가 연속이닝 무실점기록 하는 게 더 어려운 거 모름?
ㄴㄴㄴㄴ 야알못 또 어그로 끄네.
ㄴㄴㄴㄴㄴ 먹이를 주지 마시오.
- 기록달성 후 대답하겠다라는 대답 존-멋!
ㄴ 여러모로 역대급 선수인 듯.
ㄴㄴ 솔까 지난번에 기록갱신한다고 했을 때 입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 고침.
ㄴㄴㄴ 시누 덕분에 메쟈 보는 맛 난다.
ㄴㄴㄴㄴ 요즘 시누 기사 보고 아침부터 국뽕에 취한다-!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
그와 동시에 국내에서 신우에 대한 평가는 무섭도록 치솟기 시작했다.
당연히 에이전시들 역시 그러한 사실을 캐치했다.
“정신우한테서 연락 없어?!”
“예...예.”
“젠장!! 당장 조건 올려서 보내도록 해! 아니지, 이 과장!!”
“예!”
“네가 당장 넘어가!”
“어디를요?”
“어디긴 어디야?! 미국이지!! 가서 정신우한테서 사인 받아와!!”
뒤늦게 대부분의 에이전시들이 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우의 사인을 받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좌절시키는 기사가 다음날 업데이트 됐다.
[뉴욕메츠의 정신우 국내 굴지의 에이전시인 D.E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
신우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 * *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50세이브를 달성한 다음 날.
신우는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김이나 실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설마 원정경기까지 따라올 줄이야.]
[저 정도 끈기라면 한국 들어가서도 서포트 잘하겠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사실 뉴욕에 찾아온 에이전시는 D.E에이전시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귀신 같이 냄새를 맡은 다른 에이전시들 역시 신우를 직접 찾아왔다.
조건 역시 D.E에이전시와 근접한 조건들이었다.
억대의 계약금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매니지먼트 계약은 통상적으로 계약금이 오가지 않는 것을 감안했을 때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더 좋은 조건이 들어오자 신우는 바로 계약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원정경기까지 따라오는 D.E에이전시의 적극성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억대 계약금을 포기해야 했지만 사실 계약금이 오가는 순간부터 위약금이란 족쇄가 채워지기에 다소 꺼려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과의 계약에 먼저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장애물을 넘은 신우는 이제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최다세이브까지 이제 12개.’
신우는 다시 한 번 목표를 확인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메츠와 필리스의 2차전.
평소에도 격한 반응을 보였던 두 팀의 대결이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심했다.
특히 불펜 근처의 관중석에서의 야유는 더더욱 컸다.
“어제처럼 또 하퍼에게 눈을 부라려 보시지!!”
“이 새끼야! 루키면 루키답게 찌그러져 있으라고!”
그 야유의 절반은 신우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1회부터 앉아 있었으면 난리날뻔 했었네.’
클로저인 신우는 6회가 끝난 뒤에 불펜에 나왔다.
덕분에 야유를 조금 덜 들을 수 있었지만, 그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필리건들의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어으-! 귀 썩는다.]
[하여간 이놈들은 백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네.]
[그래도 요즘에는 레이시스트들이 없어서 다행인 듯.]
[하긴 우리 때는 난리도 아니었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던 사회분위기였다.
실제 메이저리그에도 최초의 흑인선수가 등장한 것이 1947년이었다.
[내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선발로 나왔을 때, 장난도 아니었지. 나 데뷔한 4월에만 데드볼이 죄다 헤드샷이었잖아.]
[크-! 알지.]
[진짜 로빈슨 처음 데뷔할 때는 난리도 아니었지.]
재키 로빈슨의 채팅이 올라오자 다들 동의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
메이저리그 전체 구단의 영구결번인 42번의 주인이기도 한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이었다.
‘정말 이런 야유를 듣고 있으면 그때 야구했다는 게 존경스러워요.’
[어쩔 수 없지. 그때는 사회적으로 덜 성숙하던 때였으니까.]
로빈슨과 그때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주위의 야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우가 야유를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레전드플레이어들과의 대화가 있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멘탈을 관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야유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잘하면 오늘도 기회가 오겠는데?]
그때 사이영이 말했다.
그의 말에 신우는 스코어를 확인했다.
7회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스코어는 3 대 1.
메츠가 앞서고 있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내가 너희들 지는 거 보려고 돈 내고 오냐?!!”
“좀 제대로 해라!!”
“그러고도 너희가 몇천만달러씩 받냐?!!”
덕분에 필리건들의 야유가 필리스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응원하는 선수들에게 욕설을 내뱉는 팬들이라니.
필리건들의 악명은 역시 하루이틀 안에 얻어진 게 아니었다.
‘어쨌건 내게는 다행이지.’
이틀 연속 세이브 기회.
신우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불안한 점도 있었다.
‘지난 번처럼 제구가 흔들리면 어떻게 하지?’
신우는 한차례 영역에 발을 들이고 방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제구가 흔들리며 고생을 했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에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됨.]
그때 사이영이 말했다.
‘예?’
[저번에는 1이닝을 던지는 내내 그 영역에 들어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하퍼를 상대하고 나왔잖아?]
‘그랬죠.’
[그러니 체력소모가 더 적었을 거임.]
‘정말요?’
[내 말은 못 믿음?]
‘그건 아니지만...’
무려 사이영의 말이다.
그의 말을 믿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아한 건.
‘원래 사이영 선배님은 제게 조언을 잘 안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매튜슨이 매번 해줬으니까, 내가 해줄 필요가 없었던 거지.]
[ㅇㅈ. 우리가 하기 전에 매튜슨이 먼저 선수를 쳐서 기회가 없었던 거임.]
이번에는 레프티 그로브였다.
뒤이어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이 무섭게 올라갔다.
[우리도 할 때는 제대로 함.]
[우리라고 뭐 저승에서 놀기만 한 줄 아냐?]
[최소한 쟤보다 잘할 자신 있음.]
묘하게 경쟁이 붙은 레전드플레이어들이다.
어쨌건 나쁜 건 아니었기에 신우는 그들의 훈수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때 한 선수의 이름이 올라갔다.
[그 영역에 들어가면서 불안하면 커터 던질 때 이렇게 해봐.]
그의 이름은 치프 벤더였다.
[공을 채는 순간에 중지에만 약 80퍼센트의 힘을 가하는 거다.]
‘80퍼센트요?’
[그래. 그리고 공을 잡을 때도 검지가 왼쪽 실밥에 닿아서 흰 부분이 거의 가려지게끔 던져봐.]
‘이렇게 잡으면 되는 건가요?’
신우는 곧장 야구공 하나를 집어 그립을 잡아봤다.
보통 신우가 커터를 던질 때는 포심과 비슷한 형태로 던진다.
단지 중지가 오른쪽의 실밥을 더 가리는 형태다.
이 형태가 바로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던질 때 잡던 그립이다.
그런데 치프 벤더가 말해준 그립은 정반대였다.
중지가 아닌 검지를 움직여 왼쪽의 실밥을 감싸는 형태를 만들었다.
[정답, 이해가 빠르네.]
[이거 거의 슬라이더성 커터 아님?]
그때 스판이 물었다.
[맞아.]
[오올-! 슬라이더의 창시자가 슬라이더가 아닌 슬라이더성 커터를 가르쳐주는 거임?]
‘슬라이더의 창시자요?’
[몰랐음? 치프 벤더가 슬라이더를 최초로 던진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