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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50화 (50/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50화 >

* * *

신우는 보라스와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신우만 고기를 썰고 있었다.

보라스는 와인을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신기한 선수로군.’

보라스는 신우를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속에 능구렁이가 백만마리는 들어 있는 거 같군.’

7500만달러.

24살의 신인이 거절하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신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딸칵-!

때마침 스테이크를 썰던 신우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다 드셨습니까?”

“예. 아우, 과식했네요.”

[스테이크 2kg을 흡입하다니. 사람이냐?]

[돼지지.]

‘선배님들이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와-! 이걸 우리 탓을 하네.]

‘쩝...’

채팅에서 눈을 돌려 보라스를 바라봤다.

“그럼 잠깐 계약 이야기 좀 다시 할까요?”

“아, 예.”

“메츠의 계약을 거절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계약기간이 너무 길어요.”

메츠가 제시한 계약기간은 총 8년이다.

계약이 끝나면 신우의 나이는 32살이 된다.

“계약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까?”

“협상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비쳤으니, 가능할 겁니다. 얼마나 단축시키길 원하십니까?”

“4년이요.”

대답이 바로 나왔다.

그리고 보라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요. 3년 동안 최저연봉을 받을 바에는 연봉조정신청을 1년 미루는 걸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보라스 역시 4년을 생각했다.

만약 연장계약을 맺지 않는다면 신우는 최저연봉을 받아야 된다.

즉, 구단이 3년동안 최저연봉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연봉조정기한을 1년을 사는 것과 같은 개념이었다.

물론 신우가 현재 성적을 연봉조정자격이 생기는 서비스타임 3년차까지 유지하면 그들이 제시한 연봉보다 월등히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만약의 경우다.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확실한 보상을 얻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연봉조정신청에 가게 된다고 해서 꼭 지금보다 좋은 조건을 받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연봉조정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협상이 아닌 양측이 주장하는 금액 중 한곳의 손을 들어주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즉, 백퍼센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구조란 소리였다.

“연봉과 관련해서는 다시 한 번 협상을 해야겠군요.”

“기간이 줄었으니 800만 달러를 요구하는 건 어렵겠죠.”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투수의 대우는 높지 않았다.

연봉 상위 5명을 제외하면 천만달러를 넘게 받는 선수가 없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신우의 스탯이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누적된 커리어다.

천만달러 이상을 받는 마무리투수들은 몇 년 동안이나 빅리그에서 누적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었다.

반면 신우는 아직 그 데이터가 부족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간이 고작 3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우는 서비스타임을 채워야 된다는 제도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리그 톱클래스 수준의 연봉을 받는 건 당장은 어려움이 있었다.

“예. 총액을 2500만 달러 정도로 잡으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대신 클럽옵션 같은 변수는 빼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확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끔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있다는 듯 말하는 보라스의 모습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 2500만 달러면 한화로 얼마였지?’

바로 계산이 서지 않는 신우였다.

[290억 정도 될 걸?]

‘하...하하...’

헛웃음이 나올 금액이었다.

아니, 아직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그때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말했다.

[메쟈가 이런 곳인지 몰랐음?]

[이 정도는 받아야지.]

[쪽팔리게 쫄지마.]

[어차피 네 가치가 거기에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구단에서도 안 줌.]

[이게 팩트지. 그 돈을 준다는 건 구단에서 네 상품가치가 그 정도는 된다고 판단한 거임.]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가치.

그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니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 * *

다음 날.

신우는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등판할 수 있으려나?'

파드리스와의 2차전.

투수전이 펼쳐지며 6회 스코어가 1 대 0.

파드리스가 앞서고 있었다.

‘으흠, 점수가 좀 나야 되는데.’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신우가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출전할 기회는 또 다시 없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마무리투수라는 자리가 이럴 때 가장 싫었다.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오늘은 나갈 기회가 생길 거 같네.]

그때 스판의 채팅이 올라갔다.

‘응?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타자들의 움직임이 어제와 달라.]

‘타자들이요?’

신우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타석에 서있는 타자가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공을 때렸지만 외야수가 가볍게 포구했다.

‘아웃인데요?’

[그런 움직임을 말하는 게 아니야.]

[하여간 시야가 좁다니까.]

[얌마!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을 봐야지.]

‘과정...’

신우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이번에는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타석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폈다.

[가장 좋은 건 눈을 보는 거다.]

매튜슨의 조언에 시선이 타자의 눈으로 향했다.

그때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알론소의 눈빛이 어제와 다르다는 걸 말이다.

마치 먹잇감을 보는 것과 같은 눈빛이었다.

타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파울!!”

볼카운트가 불리해져도 풀스윙을 가져갔다.

그럼에도 헛스윙은 나오지 않았다.

끈질기게 공을 커트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어제와 달랐다.

어제 알론소는 결정적인 순간에 헛스윙을 당하면서 물러섰다.

덕분에 팀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패배를 맞이했다.

‘눈이 따라가고 있는 건가?’

[정답!]

[올~]

[감각은 있다니까.]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채팅에 확신으로 변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거죠?’

[글쎄. 그건 본인밖에 모르지.]

[선수라고 해서 개인 사생활이 없는 건 아니잖아?]

[매일매일 컨디션이 똑같을 순 없지.]

[중요한 건 오늘은 어제보다 집중력이 좋다는 거.]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그건 바로 선구안이다.

눈이 공을 따라가야 헛스윙을 당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의 몸상태가 항상 좋을 순 없다는 거다.

특히 선구안은 그날의 컨디션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컸다.

[내가 한창 마운드에 오를 때는 타자들의 이런 변화를 체크하고 공을 던졌지.]

[하긴 나도 그럴 때 있었음.]

[뭔가 타석에 있는 타자들의 상태가 평소와 달라보였지.]

[그런 날에 내가 잘 긁히면 완봉은 기본이었지.]

[우리 때 완봉 안 던진 사람이 어딨음?]

채팅창에서 벌어지는 자기자랑에서 눈을 뗀 신우는 타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스판의 말을 들어서인지 조금 더 타자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 * *

딱-!

[이건 큽니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8회말.

알론소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다.

[넘어갔습니다!! 시즌 10번째 홈런을 기록하는 피트 알론소!]

[5월 들어 홈런이 없었던 알론소였기에 부진이 길어지나 싶었지만 역시 중요한 순간에 때려주네요.]

[그렇습니다. 이로써 메츠가 드디어 역전에 성공합니다!]

중계화면의 스코어판의 점수가 바뀌었다.

오늘 경기 처음으로 메츠가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만들어진 세이브 상황! 이제 정신우 선수의 등판이 유력해졌습니다!]

[오늘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4경기만에 등판을 하는 셈입니다. 그동안 세이브 상황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등판기회 자체가 없었죠.]

[4월 한 달 동안 자책점 제로를 거둔 유일한 선수였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등판간격이 길어지면 좋았던 페이스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 그 부분이 다소 마음에 걸립니다.]

4월 한 달 동안 자책점 제로.

사실 매년 한 두 명씩은 나오는 기록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기록을 시즌 끝까지 이어가는 게 중요했다.

퍽-!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 올라갑니다. 추가점 없이 8회말 공격을 막아내는 파드리스! 경기는 9회초로 넘어갑니다!]

메츠의 공격이 끝났다.

“시누.”

메츠의 불펜코치인 글렌이 신우를 불렀다.

“갔다 올게요.”

“그래. 일찍 끝내고 집에 가자.”

“예.”

글렌의 농담에 대답을 한 신우가 불펜의 문을 열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우-! 우-! 우-! 우-!”

관중들의 챈트와 함께 그라운드를 가로지른 신우가 마운드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라 너무 긴장하지 말고.”

마이크가 공을 건네며 말했다.

“평소대로만 해.”

“예.”

5월 첫 등판.

1점차의 터프세이브 상황이었지만 신우는 크게 떨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공을 던지며 몸상태를 점검했다.

‘나쁘지 않네.’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가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 사이 내야수들에게 던져졌던 공이 신우에게 다시 돌아왔다.

[9회초!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참 오랜만의 등판이죠?]

[그렇습니다. 4월 29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등판해 삼자범퇴로 팀의 승리를 지킨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의 좋은 감각을 오늘도 유지하는 게 키포인트겠네요.]

[예. 등판간격이 길어지면 경기감각이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날짜로만 따지면 4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직 메이저리그 경험이 부족한 정신우 선수이기에 감각을 찾는 부분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첫 타자 타석에 들어섭니다. 1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했던 헌터 렌프로를 상대하겠습니다. 어제 때려낸 홈런의 비거리가 대단하더군요.]

[스탯캐스트에 의하면 비거리는 140m, 타구속도는 109.5마일이 기록됐습니다. 각도 역시 27도가 나오면서 이상적인 수치가 만들어졌죠.]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컨디션이란 소리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비록 타율은 낮지만 컨디션이 좋은 만큼 주의를 해야 됩니다.]

신우는 상체를 숙이고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커터.’

오랜만의 등판이다.

당연히 실전감각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가장 자신 있는 공을 던지는 게 좋다.

자신 있다는 건 많이 던졌다는 의미이고 심리적으로도 더 자신있게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사인을 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특유의 몸을 비트는 와인드업 동작과 함께.

“흡-!”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애애액-!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하게 회전을 하며 날아갔다.

코스는 존의 가운데.

후웅-!

헌터 역시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배트와 공의 궤적이 일치하는 순간.

‘걸렸어.’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존의 가운데를 파고들던 공의 궤적이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자연스레 배트와의 궤적과 멀어졌다.

‘응?’

그때였다.

헌터가 상체를 내밀었다.

그러자 변화하는 공의 궤적을 따라 배트의 궤적이 따라왔다.

이내.

딱-!

[때렸습니다!!]

두 궤적이 만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빠르게 날아간 타구가 그대로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울!!”

[폴대 밖에 떨어지는 파울입니다!]

[파울이 되긴 했지만 비거리는 상당했습니다. 역시 헌터 선수의 타격감이 이번 시리즈 들어 좋은 거 같습니다.]

[순간 홈런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만약 정신우 선수가 아닌 다른 선수의 커터였다면 넘어갔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익히 알려졌듯 정신우 선수의 커터는 다른 선수들의 커터보다 늦게 변화를 합니다. 당연히 타자 입장에선 한박자 늦게 따라갈 수밖에 없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만약 다른 투수의 커터였다면 헌터 선수가 정확한 타이밍에 쫓아가서 안타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정확한 해석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신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캬하-! 스윙 쥑이네.]

[신우 지렸누?]

[엌ㅋㅋㅋ 얼어버린 듯.]

‘아주, 제가 한 방 맞으려고 하니까, 좋아 죽으시죠?’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헌터를 바라봤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넘어가는지 알았다.’

그만큼 잘 맞은 타구였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맞아본 적이 없던 신우다.

그렇기에 심장이 아직까지도 뛰고 있었다.

[결과는 안 맞았다.]

그때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며 스스로 궁지로 들어가지마라.]

‘예.’

매튜슨의 조언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결과는 타이밍이 늦어 파울이 됐다.

누군가는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신우의 실력이었다.

[중요한 건 상대의 컨디션이 좋다는 걸 네가 알았다는 거다.]

[컨디션이 좋은 타자라면 어떻게 상대해야겠음?]

스판이 말을 덧붙였다.

컨디션이 좋은 타자.

그것이 의미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다.

원래 잘 치는 선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만 컨디션이 좋을 수도 있다.

전자와 후자의 상대방법은 다르다.

그리고 헌터는.

‘최근 유독 컨디션이 좋은 타자다.’

그것을 깨달은 신우는 타석에 들어서는 헌터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배트를 쥐는 손의 움직임, 타석의 흙을 고르는 발의 움직임, 마지막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까지.

거기까지 확인한 신우는 정답을 발견했다.

‘과정을 보면...’

상체를 숙이고 토마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연달아 고개를 저어 자신이 원하는 코스와 구종을 택했다.

‘결과가 보인다.’

모든 준비를 끝낸 신우가 2구를 뿌렸다.

구종은 포심.

코스는...

[정신우 선수, 2구 던집니다!!]

몸쪽.

쐐애애액-!

뻐어억!!

“볼!!”

[아-! 2구 볼입니다.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려고 했던 걸까요? 헌터 선수의 몸쪽에 너무 붙으면서 볼이 됩니다.]

높은 곳이었다.

상체를 뒤로 젖혀 공을 피했던 헌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리 유연하누.]

[컨디션 좋으니까, 헤드샷 날려서 내보내려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우는 3구를 준비했다.

이번에도 몇 번 고개를 저으며 구종과 코스를 정했다.

[3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뻐억!!

“볼!!”

[아-! 이번에도 너무 몸에 붙었습니다! 헌터 선수가 피하지 않았다면 데드볼이 나올 뻔 했습니다. 투볼!]

[음, 초구에서 홈런을 허용할 뻔 해서 그런 걸까요? 갑자기 제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1구에서 홈런을 허용할 뻔 했던 신우다.

그리고 던진 2구와 3구가 타자 몸쪽 높은 곳으로 연달아 들어왔다.

평소 칼같은 제구력을 보여주었던 신우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아...불안하게 왜 이러냐?]

[갑자기 제구 너무 흔들리는데?]

[감독이 올라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들 역시 불안함에 빠르게 댓글을 달았다.

그러는 사이.

신우가 다시 사인을 교환하고 있었다.

‘타자의 컨디션이 좋아 선구안이 평소보다 좋으면 어디로 공을 던져도 다 커트를 해내지 않습니까?’

[그렇지.]

오늘 경기에서 메츠의 알론소가 그러했다.

분명 풀스윙을 하는데 모든 코스의 공을 커트해냈다.

그리고 결국 안타와 홈런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일단 그 선구안부터 속여야죠.’

사람의 눈은 의외로 정확하지 않다.

하나의 물체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가정해도 이 물체가 눈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느끼는 속도는 달라진다.

이를 체감속도라고 한다.

눈과 가까우면 매우 빠르게 느껴지고 멀면 매우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신우는 두 개의 공을 던져 헌터의 눈에 자신의 공이 가진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느끼도록 만들어두었다.

즉, 함정을 파둔 것이다.

[이쉑.]

그리고 이제 함정에 걸린 먹잇감에 최후의 일격을 날릴 시간이었다.

[응용력 보소.]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누.]

[하여간 속에 구렁이 백마리는 담고 있다니까.]

‘제가 속에 담고 있는 건.’

킥킹과 함께 골반을 비틀어 어깨와 다리를 닫았다.

‘구렁이가 아니라 선배님들입니다만?’

패스트볼을 던지던 것과 똑같이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이전에 던진 공들과 같은 투구폼, 딜리버리 그리고 릴리스 포인트에 헌터의 스윙이 시작됐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그의 눈에 신우가 앞서 던졌던 패스트볼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신우가 던진 4구.

써클체인지업의 속도가 더욱 느리게 보였다.

‘젠장...!’

한참동안 다가오지 않는 공에 어떻게든 스윙의 속도를 줄이려 했지만 결국 그의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퍽!

“스트라이크! 투!!”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나는 스윙이 나왔습니다. 허를 찔린 걸까요? 어이없는 스윙에 투스트라이크가 됩니다.]

다시 공을 받은 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단 3개의 공으로 선구안이 좋던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어긋나게 만들었다.

헌터가 리그 최정상급 타자이고 자신만의 루틴이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금방 자신의 컨디션을 찾았을 거다.

하지만 타율이 낮다는 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신우는 그런 헌터가 먹잇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빈사상태에 빠진 먹잇감 말이다.

[정신우 선수, 5구 던집니다!!]

쐐애애애액-!

후웅-!

뻐어어억!!

“스윙! 아웃!!”

[하이 패스트볼에 헛스윙 삼진입니다!]

[오랜만의 등판이라 걱정했는데, 기우였나 봅니다. 정신우 선수가 완벽하게 타자를 제압했습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린 신우는 이후부터 파죽지세로 타자들을 제압해나갔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14개의 공으로 이닝을 지우는 정신우 선수! 시즌 13번째 세이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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