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42화 >
* * *
[6회초,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다시 오릅니다. 5회에 보여준 트리플플레이는 압권이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포스트시즌에서 트리플플레이가 나온 것은 10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192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브루클린 다저스, 현 LA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인디언스의 2루수였던 빌 웜스건스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트리플플레이를 만들어낸 적이 있습니다.]
[오-! 그럼 100년만의 기록이란 거군요?]
[그렇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100년만의 기록을 다시 끄집어낸 겁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신우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6회 마운드에 오른 그는 세 타자를 상대로 13개의 공을 던지며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퍽-!
“스트라이크! 아웃!!”
[스탠딩 삼진입니다!! 정신우 선수! 낮게 깔리는 포심 패스트볼로 삼진을 추가합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삼진!!]
[컨디션이 매우 좋아보입니다. 투구수 관리도 잘 되고 있고요.]
아웃카운트 6개를 잡아내는 동안 신우는 단 14개의 공을 던졌다.
투구수를 체크하는 마이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대로라면 9회까지도 충분하겠어.’
마운드는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타선이다.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시리즈가 길어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마지막 경기라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해서일까?
타선은 터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 * *
“젠장-! 좀처럼 공격이 터지지 않는구만.”
맥주를 들이키는 데이빗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시누가 마운드를 지키는데 왜 이렇게 점수를 내지 못하는 거야!”
데이빗만 불만이 가득한 게 아니었다.
메츠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써 7회다.
5회의 위기를 신우가 막아냈음에도 메츠의 타선은 좀처럼 활로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
하지만 그들은 부디 메츠가 이기고 올라가기를 간절히 빌었다.
딱-!
“아-!”
경쾌한 타격소리.
그러나 뒤이어 나온 것은 안타까움의 탄성이었다.
[평범한 외야플라이가 나옵니다.]
[오늘 좀처럼 타격이 풀리지 않네요. 이럴 때 정신우 선수가 무언가 활로를 뚫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석에 신우가 들어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관중들이 일제히 챈트를 외쳤다.
“우-! 우-! 우-! 우-!”
“오오...대단하군.”
데이빗이 감탄을 터트렸다.
4만명의 관중이 일제히 쏟아내는 응원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신우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딱-!
[3구 때렸습니다! 1-2루간을 가로지르는 안타! 안타로 1루 출루에 성공하는 정신우 선수!!]
[오랜만에 터진 안타입니다. 원아웃이긴 하지만 메츠는 이 기회를 살려야 됩니다.]
신우의 출루로 기회는 상위타순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장타만 하나 나와주면...’
신우는 언제든지 스타트를 끊을 준비를 했다.
리드폭은 크지 않았다.
달리기가 빠르다고 해서 주루플레이가 능한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견제사를 조심하며 기회를 엿봤다.
딱-!
[4구 때렸습니다! 아-! 유격수 정면!! 유격수가 잡아 2루로! 그리고 1루로! 더블플레이입니다!]
공격의 맥이 또 다시 끊어졌다.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 메츠입니다. 꽉 막힌 타선이 경기를 어렵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해설위원의 말대로 공격이 풀리지 않는 메츠였다.
* * *
8회초.
빠각-!
[배트 부러졌습니다!! 타구 높게 떠올랐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1루수 파울라인 밖에서 안전하게 포구합니다! 안타 하나를 허용했지만 이후 타자를 안전하게 잡아내며 실점 없이 이닝을 마감합니다!]
[이번 이닝에서 투구수가 조금 늘어나면서 구속이 줄긴 했지만 전매특허인 커터로 타자를 잘 잡아냈습니다.]
투구수 34개.
20개의 공으로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냈다.
첫 두 타자는 가볍게 돌려세웠던 신우였지만 세 번째 타자부터는 달랐다.
5회에 첫 상대를 했던 타자와 다시 상대하게 됐다.
한 번 공을 봐서 그런지 타자는 신우의 공을 잘 커트해내며 신우의 투구수를 늘려갔다.
그리고 결국 안타를 하나 만들어냈다.
‘역시 한바퀴 도니까, 공에 익숙해지나보군.’
아무리 좋은 투수의 공이라 해도 타순이 한바퀴 돌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안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건 신우의 공에 여전히 힘이 있다는 소리였다.
‘타선이 어떻게든 점수를 내줘야 돼.’
좀처럼 점수를 내지 못하는 타선에 마이크는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메츠의 공격, 여기서 마이크 감독은 대타를 택합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기존의 전력으로 활로를 뚫지 못한다면 변화를 주어 새로운 공격을 시도해보는 게 좋습니다.]
[아-! 브루어스 역시 투수를 교체하네요.]
브루어스 감독 역시 노련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판단한 것이다.
‘시누를 지금 올렸다는 건 남은 불펜자원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거지. 현상유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유리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확히 맞아갔다.
딱-!
[또 다시 유격수 앞 땅볼입니다! 가볍게 잡아 1루로! 아웃입니다. 투아웃!]
메츠의 타격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댓글은 더욱 적나라하게 메츠의 타선을 비난했다.
[ㅅㅂ 무슨 신우만 게임하냐?]
[물빠따도 이런 물빠따는 처음 본다.]
[투수가 무실점으로 막아주고 있으면 어떻게든 점수를 내줘야지.]
[하-! 미치겠다 진짜.]
[이러다가 신우 내려가면 바로 지는 거 아님?]
[ㅇㅈ. 메츠는 월시 갈 자격이 없다.]
[아나...그래도 신우 때문이라도 월시 갔으면 좋겠는데.]
[신우도 한계로 보임. 어제도 20구를 던졌는데, 오늘은 벌써 30구가 넘었잖음.]
[젠장...불안불안하다.]
공격이 뚫리지 않으면 결국 마운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야구를 오래 본 팬들은 그것을 알기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더그아웃의 신우가 중계카메라에 잡혔다.
고개를 숙인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신우의 모습은 힘겨워보였다.
“후우...”
신우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육체는 불펜투수에 맞춰져 있었다.
또한 모든 공들을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건 일찍 등판을 한 오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힘드냐?]
매튜슨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조금요.’
그들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우는 진실을 말했다.
[이대로 내려가도 널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ㅇㅇ 이건 네 잘못이 아님.]
[공격이 터지지 않는데, 투수 탓을 누가 함?]
[9회에 올라가면 맞을 가능성이 더 높다.]
[너 어제와 오늘 합치면 50구 던졌음. 더 던져봐야 제대로 된 공은 안 나올거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만류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신우가 이대로 마운드에 올라가면 점수를 내줄 확률이 더 높다는 걸 말이다.
흐름은 이미 브루어스로 넘어갔다.
그것을 신우 혼자 겨우 붙잡고 있었다.
야구에 이런 말이 있다.
타격을 믿지 말라.
오늘 싸이클링히트를 터트리더라도 다음날에는 4삼진을 당할 수 있는 게 타격이었다.
메츠 타선이 바로 그 상태였다.
딱-!
“와아-!”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에서 들려왔다.
신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다이빙을 하는 우익수가 보였다.
뒤이어 글러브를 들어올리는 그의 모습에 우선심의 손이 올라갔다.
쓰리아웃이었다.
“후우-!”
신우가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누.”
그런 신우에게 마이크가 다가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나가겠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이는 마이크를 지나쳐 신우가 마운드로 향했다.
[아놔-! 그냥 못한다 하지 그랬냐!]
‘선배님들.’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선배님들이 현역이라면 그럴 수 있겠어요?’
[이쉑...]
적막이 흐르는 채팅창에 올라온 하나의 채팅.
그것을 본 신우가 웃었다.
‘거봐요. 그러지 않을 거잖아요.’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그러니 이해해주십쇼.’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눈을 감았다.
저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신우도 알고 있었다.
8회 마지막 타자와 상대하며 깨달았다.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말이다.
거기에 타자일순이 되었다.
자신의 공에 눈이 익숙해진 타자들은 공을 때려낼 것이다.
힘이 빠진 공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위험했다.
‘젠장...’
자신있게 대답해놓고는 흔들리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때였다.
“신우야!!!”
관중석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리고.
“가즈아!!!”
뒤이어 들려오는 응원에 신우가 피식 웃었다.
고개를 들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가즈아!!!”
“신우 파이팅!!”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씨티필드를 찾은 한국인들이 일제히 응원을 보내오고 있었다.
‘재밌네요.’
[뭐가?]
[?]
‘한국에서 꼭 이런 응원을 받아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 받게 된 게 재밌어요.’
신우가 로진을 묻히고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한 번 가보겠습니다.’
[가즈아!!]
[나도 모르것다!! 가즈아!!]
쏟아지는 응원을 받으며 신우의 9회 피칭이 시작됐다.
* * *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6구 승부 끝에 첫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 원아웃!!]
[대단합니다. 8회에 분명 포심의 구속이 떨어졌었는데, 이번 이닝에서 원래의 구속을 찾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신우가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우는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딱-!
[7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는 평범한 내야땅볼! 3루수 대시해서 공을 잡아 1루로 뿌립니다! 투아웃!!]
[타자일순이 되면서 아무래도 공이 눈에 익은 타자들입니다. 투구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신우 선수, 자신의 피칭으로 타자들의 배트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규이닝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게 된 정신우 선수!! 마지막까지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
신우가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정신을 집중해라. 마지막 타자다.]
[너의 투구수를 봤을 때, 감독도 다음 이닝에서는 교체할 거임.]
[9회말에 네 타석이 돌아올 확률이 높으니까.]
[마지막 한 명만 제대로 잡고 들어가자.]
‘예.’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을 교환한 신우가 와인드업과 함께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후웅!
뻑!!!
“스트라이크!!”
[초구 90마일의 커터에 헛스윙!!]
[구속은 떨어졌지만 공의 위력은 여전해보입니다!]
2구.
쐐애애액-!
후웅!!
뻑!!
[2구 78마일의 체인지업에 헛스윙! 투스트라이크!!]
[완벽하게 타이밍을 뺏어내는 영리한 투구였습니다!]
와인드업과 함께 신우가 3구를 뿌렸다.
“흐아아앗!!”
기합소리와 함께 떠난 공이 맹렬하게 날아갔다.
쐐애애액-!
타자의 배트 역시 회전했다.
후웅-!
공과 배트의 궤적이 일치하려는 순간.
공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배트의 위를 지나갔다.
뻐어억!!
“아웃!!!”
[삼구삼진!! 13번째 아웃카운트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끝낸 정신우 선수입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씨티필드의 모든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우는 모자를 벗어 관중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 * *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티켓의 주인이 결정됐습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워키 브루어스가 뉴욕 메츠를 2 대 0으로 누르고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중략)
한편, 뉴욕메츠의 정신우 선수는 이날 5회초 만루상황에서 등판해 100년만에 포스트시즌 트리플플레이를 성공시키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9회초까지 단 하나의 안타만 허용하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미국 언론 역시 메츠의 타선은 혹평하면서도 정신우 선수에게는 호평하며 그의 투구에 경이로움을 보냈습니다.]
신우의 가을야구가 끝났다.
그리고 이날.
MLB.COM에 신우의 포스트시즌 성적이 업로드됐다.
3W 0L 2S ERA. 0.00
(3승 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0.00)
7G 14.1IP 1H 0BB 23SO 0.07WHIP.
(7게임 14 1/3이닝 1피안타 0사사구 23탈삼진 WHIP 0.07)
성적을 확인한 국내 야구팬들이 각종 사이트에 자신들의 의견을 남겼다.
[이 성적을 남긴 마무리투수가 있는데 월시 못간거 실화냐?]
[와...1안타 맞은 거 아니면 사실상 퍼펙트게임 아님?]
[미쳤네.]
[이런 정신우를 거품이라고 말하는 애들은 도대체 뭐냐?]
[클로저가 디비전, 챔피언십시리즈에서 14이닝 던진 거 실화냐?]
[사실상 대부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던진 거 아님?]
[이 정도라면 그냥 선발을 하겠다.]
[레알 정신우는 깔 수가 없다.]
엄청난 신우의 성적에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반가운 닉네임이 글을 올렸다.
[글쓴이 : 데블스가즈아]
데블스가즈아의 게시물에는 한 장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그 사진에는 데블스유니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니폼에는 신우의 사인이 남겨져 있었다.
[직관다녀옴. 데블스 프런트가 사인 못받아서 대신 사인받고 왔다.]
[엌ㅋㅋㅋ 실화냐?]
[직관까지 다녀왔다고?]
[어쩐지 안보이더라 ㅋㅋㅋ]
[데블스가즈아 : 신우 까지마라. 마지막까지 정말 ㄹㅇ 열심히 던졌다. 떨어져서 아쉽지만, 난 벌써 내년 시즌 기대됨.]
[ㅇㅈ.]
[하긴 내년에는 어떤 모습 보여줄지 기대된다.]
[그런데 신우 언제 한국 들어올까?]
[ㄹㅇ 행사 여기저기 다닐 텐데, 거기서 사인 받고 싶다.]
신우의 귀국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워지는 커뮤니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