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39화 >
* * *
정신우의 등판에 한국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들썩였다.
[어제 그렇게 던져놓고 또 등판시킴?]
[아니 이제 루키시즌인데, 혹사 아니냐?]
[저러다 애 어깨 망가지면 어쩌라고?]
[선수 본인이 올라가기 싫다고 말해야지!!]
대부분은 신우를 걱정하는 댓글들이었다.
전일 40구를 던졌다.
마무리투수에게는 너무 많은 투구수였다.
그런데 충분한 휴식 없이 이틀 연속 등판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를 하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챔피언십 시리즈니까 어쩔 수 없지.]
[ㅇㅇ 포스트시즌에 투구수 관리는 무리임.]
[단기전인데 일단 이기고 봐야지.]
어쩔 수 없다는 의견 역시 많았다.
그러는 사이 10회초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8번 타자 루이스 길로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죠?]
[그렇습니다. 컨택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선수가 아닌데,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긴장을 해서인지 안타를 1개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길로메.
메츠의 2루수를 맡고 있었다.
94년생인 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배트의 마크를 쳐다봤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었지만 좀처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챔피언십 시리즈라는 큰 무대.
그는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게 아니었다.
포스트시즌이 처음인 선수들은 대부분 루이스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게 당연했다.
어떤 일이건 처음 경험하면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긴장을 안하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었다.
후웅-!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허무하게 삼진을 당하는 루이스 선수! 아쉽습니다!!]
[음, 여전히 전반적으로 굳어 있는 모습입니다. 스윙이 부드럽게 나와야 하는데, 연결동작이 부드럽지 못합니다. 긴장에 몸이 굳어 있단 증거죠.]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루이스의 곁으로 신우가 지나갔다.
‘뭐지?’
가볍게 배트를 돌리는 그의 얼굴엔 긴장감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루이스였다.
루키시즌도 아니었다.
2년차임에도 이렇게 떨린데, 고작 루키가 떨지 않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 * *
신우는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바람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긴!]
[마지막에 손목 안 돌리지?]
[어깨에 힘 빼라.]
[또 홈런 노린다고 쓸데없이 힘 쓰지 말고.]
[그냥 치고 뭐빠지게 달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훈수가 연달아 쏟아졌다.
한 마디를 뱉으면 수십에 달하는 훈수들이 쏟아지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긴장이 될래야 될 수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뱉은 신우가 타석에 섰다.
사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말은 정확했다.
홈런을 노리는 건 어려웠다.
어제보다 체력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수의 그립이 보일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볼배합을 예측해야 했다.
‘뭘 던질까?’
[투수가 상대라면 쉽게 상대하겠지만, 이미 넌 2번이나 장타를 쳤기 때문에 어렵게 나올 확률이 높다.]
베이브루스의 조언.
[그러니 급하게 휘두르지 말고 공을 끝까지 봐. 이번에는 단타를 노리는 게 유리하다.]
타이콥 역시 한 마디를 거들었다.
‘콥 선배님은 어떻게 공을 치셨어요?’
[스윙방법?]
‘아뇨. 공을 어떻게 본다거나, 예측한다거나.’
[쉬워, 나만의 존을 그리고.]
타이콥의 조언대로 가상의 존을 만들었다.
[거기에 들어오는 공을 모두 쳐내.]
‘...그게 돼요?’
[돼.]
만약 저 말을 타이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면 믿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역대 타율 1위인 타이콥이 하는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투수란 족속들은 하다하다 안되면 꼭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던지거든. 그때를 노리면 돼. 거기까지만 끌고 가면 너의 승리다.]
[뭐? 투수란 족속?!]
[말 함부로 하네?]
[왜? 불만 있냐?]
[오냐! 불만 있다!]
[한 판 붙자 짜샤!]
갑자기 벌어진 싸움에 신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매튜슨이 나섰다.
[신우 정신 사납게 하지마라. 싸울거면 야구장에 가서 진지하게 붙던가.]
[좋아! 너 당장 나와!]
[이 경기 끝나고 붙자.]
[ㅇㅋ]
야구장?
‘저승에 야구장도 있어요?’
[당연히 있지. 지상에 있는 건 웬만한 건 다 있음.]
[거기 살던 애들이 와서 여기에서 창업하거든.]
‘크게 다를 게 없네요.’
[잡담은 거기까지 하고. 진지해져라.]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타격자세에 들어갔다.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초구를 뿌렸다.
신우는 존을 만들고 그 안에 공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초구에는 포심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던질 거다.
하지만.
‘경계를 한다면...’
투수가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우완 사이드암의 독특한 궤적에서 공이 날아왔다.
‘존을 빠져나가는 변화구를 택하겠지.’
신우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공이 지나가는 궤적을 바라봤다.
가상의 존을 뚫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의 궤적이었다.
퍽-!
“볼!!”
[초구 볼입니다!]
[슬라이더로 유인을 했는데, 정신우 선수 잘 참았습니다. 아주 침착해요!]
예상대로 그립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타이콥의 조언대로 자신의 공을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신우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타격을 준비했다.
* * *
딱-!
“파울!!”
“우우우-!!”
신우가 파울을 치자 야유가 쏟아졌다.
경기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적이었다.
4만명이 쏟아내는 야유는 듣고 있기만 하더라도 정신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벌써 몇구째지?”
“9구째.”
토마스의 질문에 레이먼드가 답했다.
“4개 연속 파울이지?”
돌아온 질문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볼 투스트라이크에 몰렸을 때.
다들 신우가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신우가 공들을 커트해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신우가 남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딱-!
“파울!!”
“우우우우-!”
[10구째 역시 파울이 됩니다!!]
[정신우 선수 대단한 집중력입니다. 존과 비슷하게 들어오는 공들을 모조리 커트해내고 있어요.]
10구 승부.
이런 장기전이 될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그건 신우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좋은 공을 안주네.’
[당연하지. 통산 2안타를 모두 장타로 때려낸 너한테 좋은 공을 줄 투수는 없다.]
[게다가 오늘 구심의 존 바깥쪽이 넓은 편이다. 평소라면 볼이 될 공도 모조리 쳐내야 돼.]
‘알겠습니다.’
구심은 매 경기 바뀐다.
그리고 구심마다 성향이 다르다.
존은 동일하지만 바깥쪽에 후한 판정을 내리는 이가 있다면 누구는 높은 공에 후한 판정을 내렸다.
오늘 구심은 바깥쪽 코스가 후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배터리는 끊임없이 바깥쪽 코스를 공략해왔다.
[노려야 될 것은 실투다. 이제 슬슬 하나쯤 빠질 때가 됐어.]
타이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타석에 섰다.
[벌써 11구째 승부! 투수도 더 이상 던질 게 없을 거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배터리의 머리가 아플 겁니다.]
[정신우 선수가 여기서 큰 거 한 방을 터트려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우가 또 다시 홈런을 쳐주기를 말이다.
타석에 있는 타자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망할...’
‘시누도 저렇게 기를 쓰고 하는데.’
‘타자인 내가 뭘 하는 거지?’
그때 투수가 11구를 던졌다.
“흡!!”
기합소리와 함께 날아온 공이.
쐐애애애액-!
포수의 미트를 향해 꽂혀갔다.
그 순간.
후웅-!
신우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딱-!
“어?!”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신우는 타구를 확인하지도 않고 1루로 내달렸다.
메츠의 선수들이 일제히 더그아웃의 난간에 매달려 타구를 쫓았다.
타구는 라인드라이브성으로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넘어간다!!”
“넘어가라!!”
메츠 선수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때 토마스의 눈에 베이스를 도는 신우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력질주를 한다고?’
이미 1루를 지난 신우는 2루를 향해 뛰고 있었다.
여전히 타구는 보지도 않고 있었다.
마치 뒤가 없는 사람처럼 베이스를 질주하고 있었다.
‘설마 느낀 건가?’
홈런을 치면 타자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우는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 말은 제대로 된 손맛을 느끼지 못했다는 소리다.
토마스의 시선이 다시 타구를 쫓았다.
그때 타구를 쫓는 중견수가 보였다.
중견수 역시 신우처럼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그리고 펜스에 근접했을 때 고개를 돌려 타구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시에 펜스를 밟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어?!”
“설마...”
땅에 떨어진 중견수의 모습에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향했다.
뒤이어 중견수가 일어나 손을 번쩍 들었다.
“아...”
“젠장!!”
“하필 이럴 때에...”
탄식과 함께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아...아웃입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잘 맞은 타구가 엄청난 호수비에 잡히고 마네요.]
[끈질긴 승부 끝에 정말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는데, 아쉽네요.]
그때 중계화면에 신우의 모습이 잡혔다.
어느덧 3루 베이스까지 도착한 신우가 중견수를 바라보더니 발로 땅을 찼다.
[정신우 선수 본인도 무척이나 아쉬운 듯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신우 선수는 타구를 친 직후부터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정말 타구도 보지 않고 달렸어요. 만약 저 공을 놓쳤다면 그라운드홈런도 가능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더 아쉬울 겁니다.]
[그래도 승리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 타석이었습니다.]
[동감입니다.]
신우가 보여준 집념.
그것은 단순히 시청자들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느꼈다.
특히 메츠의 타자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건 일종의 각성효과가 되었다.
* * *
더그아웃에 돌아온 신우는 숨을 골랐다.
“후우...후우...”
[최대한 숨을 몰아쉬어라. 그래야 심장과 폐가 빠르게 돌면서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보낼 수 있다.]
‘예...’
[아까운 타구였다. 중견수의 점프타이밍이나 속도가 조금만 늦었어도 장타가 됐을 거다.]
타이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늦지 않았으니 메이저리그겠죠.’
[정답이다.]
흔히들 좋은 수비를 하면 이런 말을 한다.
메이저리그급 수비를 펼쳤다.
저런 수비가 언제 어디서건 나올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메이저리그였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그곳에서 뛰고 있었다.
‘그래도 아쉽네요. 경기를 이길 수 있었는데.’
[뭐,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재밌어질 거 같으니까.]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딱-!
“파울!!”
[또 다시 파울입니다! 7구째 승부를 이어가는 지메네즈 선수!!]
[앞 타석에서는 무기력하게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번 타석에서는 끈질기게 투수를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타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출루한다!!’
그들의 목적이 단 하나로 압축됐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출루하는 것.
타자들의 목적은 그것 하나로 정해졌다.
[이제야 좀 재밌어지네.]
타이콥의 말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 * *
[10말!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메츠의 공격이 끝났다.
마운드에 오른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저 멀리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10회초 공격에서 귀중한 2점을 낸 메츠의 승리를 지킬 것인가?!]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 끝에 메츠는 선취점을 내는데 성공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3개!!]
이제 경기를 끝낼 때가 됐다.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마운드에 섰다.
[원점으로 가즈아!!]
‘예!’
10회말, 신우의 투구가 시작됐다.
* * *
[뉴욕 메츠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10회 연장 끝에 2 대 0의 스코어로 승리, 시리즈스코어를 원점인 2 : 2로 만들었습니다.
(중략)
전일 40구를 던진 정신우 선수는 이날 레이먼드 선수의 손톱부상으로 9회말 투아웃 상황에 다시 등판, 10회까지 총 4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정신우 선수는 10회초 투수와 11구 승부 끝에 장타를 때려냈으나 상대 중견수의 호수비에 잡히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우 선수의 타석 이후 뉴욕메츠의 타자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점수를 올리는 모습은 인상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기사가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신우 또 나왔누.]
[벌써 혹사각?]
[BK도 포스트시즌에서 혹사시키던데, 우리 한국인 불펜들은 왤캐 혹사만 당하냐.]
ㄴ 포시에 무슨 혹사임?
ㄴㄴ 단기전에선 모든 투수들이 동원되는 거지.
ㄴㄴㄴ 전일 40구를 던졌으면 좀 쉬게 해줘야지.
[정신우 타격 봤음? 지리던데.]
[레알 타격만 하더라도 한 자리 차지할 듯.]
[이러다가 투타겸업 하는 거 아님?]
[레알 내년에 투타겸업 하면 좋겠다.]
[마무리에 타자까지. 캬하-! 생각만 해도 쥑이네.]
정신우의 활약에 댓글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때 하나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요즘 왜 그 사람 안 보임?]
ㄴ 누구?
ㄴㄴ 데블스가즈아?
ㄴㄴㄴ 그러고보니 잘 안 보이네.
ㄴㄴㄴㄴ 어디 감?
데블스가즈아의 행방을 찾는 댓글에 빠르게 추천수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