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31화 >
* * *
라이브볼 시대 최다승의 주인공.
워렌 스판.
최고의 좌완투수로서 손꼽히는 그를 기리기 위해 오클라호마 스포츠박물관에서 한시즌 최고의 좌완투수에게 워렌스판상을 수여하고 있다.
양대리그 통틀어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이기에 좌완투수들에게는 사이영상만큼이나 값어치가 있는 상이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21시즌을 뛰었으며 그 기간 363승 245패 3.09의 ERA를 기록했다.
총 5243.2이닝을 던졌으며 2583K, 382완투 62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WHIP 1.195, 92.4의 WAR를 기록하며 화려한 기록들을 남겼다.
워렌스판은 독특한 이력도 있었는데 바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퍼플하트훈장과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워렌스판은 메이저리그 은퇴 이후에도 독립리그, 멕시칸리그 등에서 뛸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선수였다.
‘정말 워렌 스판이에요?’
[ㅇㅇ]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야, 너 스판보고 왜 이렇게 놀라냐?]
[맞음. 우리 보고는 그렇게까지 안 놀라더만.]
‘사실 다른 선배님들은 너무 먼 과거라서 잘 와닿지가 않는데...워렌 스판 선배님은 라이브볼 시대의 투수시잖아요.’
[선배님들 질투하심?]
[ㄴㄴ]
[질투는 무슨.]
[그래서 애한테 뭐 가르칠 거임?]
현역시절 워렌 스판은 강력한 속구를 던졌다.
하지만 속구의 구속이 떨어짐에 따라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
당시 기자들은 워렌 스판의 공을 보고 스크류볼을 던진다고 기사에 썼다. 하지만 워렌 스판은 차후 인터뷰에서 스크류볼을 던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보인 그립은.
[서클체인지업이지.]
* * *
신우는 피처플레이트를 밟고 섰다.
그리고 글러브에 있는 공을 쥐었다.
[너 체인지업 던질 수 있지?]
‘네.’
좌완시절 신우는 여러 가지 공을 던졌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나름 열심히 던졌지만 주무기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만약 프로에서 통했다면 그는 1군에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던져봐.]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좌완으로 체인지업을 던지듯 가볍게 공을 던졌다.
그립이나 던지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 우완으로 던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촤앗-!
포수가 없었기에 그의 공이 그물망을 흔들었다.
평소 던지던 포심이나 커터와 달리 구속이 확실히 느렸다.
[팔 각도가 다르다.]
‘팔 각도요?’
[ㅇㅇ 커터나 포심은 거의 같은 위치에서 나오는데, 체인지업만 더 아래에서 나와. 사이드암 버릇이 남아 있는 거 같은데?]
‘다시 해볼게요.’
[ㅇㅋ]
신우가 다시 공을 던졌다.
촤앗-!
[조금 더 높이.]
공을 던지면.
[이번에는 팔 나오는 속도가 느려. 체인지업이 통하기 위해선 다른 구종과 차이가 없어야 돼.]
워렌 스판이 조언을 해주었다.
촤앗-!
[에헤이~이번에는 또 팔이 내려갔네.]
[멍충이누.]
[제대로 좀 하자~]
그리고 다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훈수도 이어졌다.
신우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체인지업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 * *
디비전시리즈 1차전.
메츠는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로 원정을 떠났다.
리글리필드는 보스턴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구장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인 리글리필드에서 열리는 1차전.
신우는 불펜에서 경기를 보고 있었다.
‘투수전이네.’
어느덧 5회가 지나가고 있었다.
현재까지 양 팀은 각각 1점씩을 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좀처럼 추가점이 나지 않고 있었다.
[이런 흐름이라면 투수가 바뀔 때를 조심해야겠네.]
[ㅇㅇ]
[불펜싸움으로 갈 확률이 높음.]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여기 불펜 옮기니까, 엄청 조용하네.]
[ㅇㅈ]
‘그러고보니 선배님들이 뛸 때는 내야에 있을 때였겠네요.’
리글리필드는 최근 리모델링 작업에 열중이었다.
워낙 오래된 구장이다보니 이래저래 시설이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불펜도 그중에 하나다.
원래 리글리필드의 불펜은 내야 파울라인 밖에 있었다.
관중석과 딱 붙어 있었기에 관중석의 말이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외야석 아래에 새롭게 불펜을 만들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ㅇㅇ 여기 내야에 있을 때 장난 아니었음.]
[컵스 팬들 야유 들으면 아휴...멘탈 나갔지.]
[ㅇㅈ. 얘네들 응원 거의 또라이 수준임.]
[우리 팬들한테 또라이라니!]
[우리한테는 개꿀이었음.]
[맞음. 우리 팬들이 좀 열광적이었던 거임.]
컵스 팬들은 홈팀 선수들에게는 열정적인 팬들이었다.
반대로 타팀 선수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채팅을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현재도 컵스 팬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했다.
실제 불펜이 옮겨질 때도 홈팀 선수와 원정팀 선수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한테는 다행인 셈이지.’
만약 내야에 여전히 불펜이 있었다면?
불펜에서 대기하며 팬들의 야유를 그대로 받아야 했을 거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다.
“조셉, 티모시. 몸 풀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경기상황에 맞춰 불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의 양상이라면 신우 역시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신우는 손에 쥔 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8회초, 메츠의 공격이 끝났습니다. 무사 1, 2루 상황에서 1점밖에 내지 못한 게 아쉽네요.]
[그렇습니다. 분명 대량득점의 찬스를 잡았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요.]
메츠는 8회초에 2 대 1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무사 1, 2루는 점수를 내기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고작 1점밖에 추가하지 못한 것은 분위기가 컵스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메츠의 마운드에는 레이먼드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셋업맨인 대니얼 선수가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이 되면서 레이먼드 선수가 셋업맨으로 낙점된 거 같군요.]
[그렇습니다. 대니얼 선수는 메츠에서 중요한 불펜자원인데, 빠진 것이 메츠 입장에선 매우 뼈아프네요.]
[과연 레이먼드 선수가 8회를 잘 마무리하고 9회 정신우 선수에게 바통을 넘길 수 있을지, 그의 피칭을 지켜보도록 하죠.]
레이먼드는 마운드 위에서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대니얼이었다.
원정을 떠나기 전.
레이먼드는 대니얼을 찾아갔었다.
병문안을 끝내고 병실을 나서는 레이먼드에게 대니얼이 이런 말을 했다.
[레이먼드, 동료를 믿어라.]
간단한 한 마디.
하지만 그 말은 레이먼드가 한 가지를 결심하게 만들어주었다.
‘내 뒤에는 시누가 있다.’
그것을 떠올리며 레이먼드가 와인드업을 했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98마일의 싱커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오늘 공도 위력이 있네요. 예전의 강력한 구위를 보여주던 레이먼드 선수로 돌아온 모습이에요.]
레이먼드의 8회가 시작되었다.
* * *
불펜에서 신우는 준비를 끝냈다.
웜업이 끝나고 연습피칭 역시 마무리했다.
8회말을 레이먼드가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하며 9회초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후우-!”
곧 나가야 되는 순간.
묘하게 긴장이 됐다.
심박수는 평소보다 높았고 호흡은 거칠었다.
“후우!!”
계속 숨을 가쁘게 몰아쉬게 되었다.
연습을 할 때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졌다.
‘왜 이러지?’
마치 새하얀 페인트를 부은 것처럼 머리는 새하얬다.
[당연한 거다.]
그때 채팅이 올라왔다.
매튜슨이었다.
[너는 디비전시리즈가 첫 경험이다.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하죠?’
당황스러웠다.
분명 연습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신우야.]
‘예?’
[어머니가 챔피언십 시리즈때 미국에 오신다고 하셨지?]
‘예...’
메츠에서는 디비전시리즈를 앞두고 주요 외국인선수들에게 가족을 초청할 수 있게 티켓을 준비해주었다.
신우 역시 티켓을 받았다.
하지만 한선예는 지금 한국에 있었다.
여권 문제로 인해 바로 출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재 공장을 다니고 있기에 그곳과도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래저래 어머니는 디비전 시리즈 후반 혹은 챔피언십시리즈가 열릴 때가 되어서야 오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에 탈락하고 싶은 거냐?]
매튜슨의 말은 해머가 되어 신우의 머리를 흔들었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니요.’
그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심박수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거칠었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맨탈은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아주 작은 일로도 흔들리는 게 사람의 정신이다.
육체적인 부상은 치유가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부상은 평생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을 정도로 사람의 정신은 나약하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사람의 정신은 그 어떤 것보다 강인하고 단단해질 수 있었다.
신우에게는 그 역할을 해줄 사람들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
“시누!”
글렌의 부름에 신우가 그를 바라봤다.
“나갈 시간이야.”
“예.”
* * *
[9회초, 메츠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은 점수를 내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9회말 스코어 2 대 1의 상황. 메츠의 마운드는 당연히 이 선수가 올라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시즌에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한 정신우 선수입니다.]
[정신우 선수, 디비전 시리즈 데뷔전이지만 평소와 같은 모습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놀라는 부분이 그거 아니겠습니까? 정신우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의 공을 던지는 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국내의 야구전문가들도 그렇고 메이저리그의 기사와 전문가들 역시 정신우 선수의 맨탈적인 부분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디비전시리즈 같은 큰 무대에서도 정규시즌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마운드 위의 신우는 평소와 같이 연습투구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비전시리즈라고 해서 떨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군.’
이런 모습이 있었기에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럼 뒤는 부탁하지.”
“예.”
마이크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홀로 마운드에 남은 신우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주위를 둘러봤다.
“우우우우우-!!”
“홈런이나 맞아라!!”
“우리한테 승리를 달라고!!”
“컵스는 승리한다!!”
리글리필드는 4만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오늘 경기 역시 매진을 이루었다.
경기장에 들어온 4만명의 관중들 중 90퍼센트가 컵스를 응원하는 팬들일 것이다.
그들이 일제히 신우에게 야유를 쏟아내고 있었다.
“휘유~”
[왜?]
‘선배님들 말대로 불펜이 내야에 있었으면 골아팠겠네요.’
[이제 너도 알겠지?]
[쟤들 장난 아니라니까.]
[예전에는 더 심했음.]
[에이~저 정도는 어느 팬들이나 마찬가지지.]
[우리 팬들이 그냥 좀 열정적인 것 뿐이라니까?]
여전히 둘로 나뉘는 채팅에 웃음이 나왔다.
[아-정신우 선수. 야유를 한몸에 받으면서도 웃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맨탈이군요. 컵스 팬들은 한국의 마산팬들만큼이나 열정적인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웃고 있습니다.]
중계진의 오해 섞인 멘트가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우가 왜 웃는지 모르기에 다들 신우의 맨탈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와...이쉑 뭐냐?]
[디비전시리즈에서도 정신우 맨탈은 튼튼하네.]
[데뷔시즌 맞음?]
[오늘 리글리필드 매진이라던데, 야유 듣고도 웃네.]
팬들 역시 신우의 맨탈에 경악하며 댓글을 남겼다.
‘선배님들.’
[ㅇㅇ]
‘디비전시리즈 재미지게 시청해주십시오.’
[ㅇㅋ]
[이왕이면 월드시리즈까지 보여주셈.]
[가즈아~~]
“옙!”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를 밟았다.
“플레이볼!!”
디비전시리즈 1차전.
컵스의 마지막 공격, 그리고 메츠의 승리를 지키기 위한 신우의 피칭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