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24화 >
* * *
[메츠의 신인, 뉴욕 시티를 흔들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
하지만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내용에 동의했다.
“시누의 이야기네.”
“정말 대단한 투수야.”
“벌써 5경기 연속 무실점이야!”
“거기에 안타는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잖아?”
뉴욕 시티의 수많은 팬이 신우의 등판에 열광했다.
그 증거는 곧 관중수로 이어졌다.
“이번 홈경기도 매진입니다.”
“평일 경기인데도 열광적이군.”
“아무래도 선두싸움 중이니까요.”
“거기다 최근에는 돋보이는 선수도 등장했지 않습니까?”
“신우 정을 말하는군.”
“예, 정말 예상밖의 성적을 올려주고 있습니다.”
“콜업 이후 5경기 연속 무실점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요. 5경기에서 모두 13명의 타자를 상대로 단 한 개의 사사구나 안타도 맞지 않았고요.”
“선발로 따지면 5이닝 퍼펙트입니다.”
프런트 직원들도 흥분했다.
“선발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시누에게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어요.”
“마이크의 타이밍 역시 기가막힙니다.”
“위기 상황에만 등판을 시키고 있죠?”
“맞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위기를 단숨에 지워버린다는 거죠. 마치 히어로처럼 말입니다. 팬들 사이에서 그를 딜리트라고 부르더군요.”
구단직원 중 한 명이 신문을 내밀었다.
뉴욕 지역에 배포되는 스포츠신문이었다.
첫 페이지에 신우가 역투하는 장면이 개재되어 있었다.
콜업 이후 고작 일주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신우는 확실하게 자신에 대한 임팩트를 뉴욕시민에게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좋기만한 건 아니었다.
“마냥 좋아하기만 할 문제도 아닙니다.”
“최근 언론에서 꾸준히 팀의 클로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선수의 등장은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에게는 경쟁자의 등장과 같았다.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신우의 등장으로 잡음이 나오는 곳은 바로 팀의 클로저부분이었다.
“레이먼드가 최근 경기에서 2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논쟁이 더욱 과열되고 있습니다.”
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신우.
반면에 레이먼드는 같은 기간 2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단순히 2개의 블론세이브가 문제가 아니었다.
“레이먼드는 후반기 접어들어 체력적인 문제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스텟이 하락한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압박감이 강한 클로저를 맡게 되면서 스스로 부담을 느끼는 듯 합니다.”
팀 역시 점점 레이먼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팀의 클로저를 바로 교체할 순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공헌도, 그동안 보여준 모습에 대한 신뢰도.
거기에 신우가 신인이란 점 역시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지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마무리 상황에서도 잘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막연한 부분이었다.
그동안 축적해온 신뢰도에 큰 차이가 있었다.
문제는 메츠의 현 상황이었다.
“결단을 내리려면 하루라도 빨리 내려야 됩니다.”
“맞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필리스와의 승차를 뒤집어야 됩니다.”
뉴욕 메츠는 최근 5경기 3승 2패를 거두었다.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마무리가 날려버렸으니 최악인 상황이었다.
거기다 필리스는 최근 5경기 4승 1패를 거두면서 1경기 더 달아나버렸다.
즉, 신우의 활약으로 따라붙었던 경기차가 오히려 벌어졌다.
뉴욕 메츠는 사실상 리그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건너간다.
승률이 다른 지구에 비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경기차가 벌어지기 전에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시기가 늦어지면 2021시즌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15경기.
그 경기 안에 필리스와의 순위를 바꿔야 했다.
직원들의 시선이 존 베켓에게 향했다.
“당분간 더블클로저 체재로 전환합니다.”
“더블클로저라면 어떻게 가는 겁니까?”
감독인 마이크가 물었다.
선수를 구성하고 포지션을 정하는 건 단장이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결정은 감독에게 있다.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이 문제로 다툼이 있는 구단들도 꽤 존재한다.
그러나 메츠에서는 프런트와 현장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레이먼드에게는 당분간 휴식을 주도록 합니다. 단, 감각을 잃지 않을 정도로 등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우가 세이브 상황에서 어떻게 공을 던지는지 지켜봅시다.”
“알겠습니다.”
말은 더블클로저였지만 실상은 신우에게 마무리 역할을 맡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신우 역시 낙점을 받은 건 아니었다.
만약 마무리 상황에서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든지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가 마무리로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대로 메츠의 마무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일종의 시험인 셈이었다.
그렇게 선수들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 * *
신우는 평소보다 들떠 있었다.
‘원정이다, 원정.’
콜업 이후 처음으로 메츠가 원정경기를 떠났다.
고작 원정경기에 신우가 이렇게까지 신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바로 전용기!
메이저리그 구단이 전용기를 이용해 미주대륙을 오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나서 비행기라고는 이코노미밖에 타본 적이 없는 신우에게는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초오오오온놈~]
[전용기 타는 것으로 설레는 메이저리거가 있다? 뿌슝빠슝?]
[애 운다, 그만 놀려라.]
‘아놔...그럼 선배님들은 전용기 처음 탈 때 설레지 않으셨어요?’
[어허-! 내가 누군지 알고? 왕년에 레드삭스의 카리스마로 불리던 사람이야!]
[너 세계대전 때 비행기 타고 울지 않았냐?]
[엌ㅋㅋㅋ 나도 기억남.]
[쟤 울었음.]
연달아 증언들이 쏟아졌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뭐해?”
토마스가 다가오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슬슬 가자.”
“예!”
이제 탑승의 시간이 되었다.
이번 원정상대는 LA다저스였다.
뉴욕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에 비행시간도 제법 길었다.
하지만 전용기를 타고 간다니 뭐가 걱정이랴?
신우는 들뜬 걸음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걸었다.
그때 토마스가 말했다.
“참, 시누.”
“예?”
“조만간에 루키 헤이징 데이인 거 알지?”
“에?”
“몰랐어? 그날 복장 기대하고 있으라고.”
루키 헤이징 데이.
그게 뭐냐?
신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자 토마스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선배님들. 루키 헤이징데이가 뭐에요?’
[ㅋㅋㅋㅋㅋㅋ]
[기대된다.]
[루키헤이징데이 : 신인들 괴롭히는 날.]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
[ㅇㅇ 그냥 재밌는 옷만 좀 입을걸?]
[그래도 허니잼.]
그들의 말에 신우가 다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곧 검색결과에 나타나는 사진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걸 입는다고요?’
[ㅇㅇ]
[의상결정은 선배들이 함.]
[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할로윈이냐?!
* * *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 메이저리그 구단은 모두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세를 낸 팀도 있었고 아예 구매를 한 곳도 있었다.
비싼 돈을 들여 전용기를 구매한 이유는 당연히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1년의 절반을 미대륙을 오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비행기를 빌린다는 것 역시 비효율적이다.
옮기는 짐들도 많고 사람들 역시 대규모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전용기를 구매하거나 전세를 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선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콜!”
전용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선수들끼리 모여 포커를 치는 장면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원정경기에서 선수들에게 밀머니를 지급한다.
밀머니란 말 그대로 밥값을 의미한다.
구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메츠에서는 100달러를 지불했다.
한화로는 11만원의 돈을 단순히 밥을 먹으라고 준 것이다.
전용기 안에서는 밀머니를 가지고 포커판이 벌어졌다.
“스트레이트야, 내가 먹어도 되겠지?”
“어허, 왜 이러시나. 난 플러시라고.”
“젠장!”
승자는 토마스로 결정됐다.
그는 판돈으로 걸린 천달러를 가볍게 쓸어갔다.
‘휘유...돈 백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네.’.
“시누, 관심있어?”
그때 리올이 다가와 물었다.
“전혀요. 카드는 하나도 모르거든요.”
“그래? 알고 싶으면 내가 알려줄게.”
“됐어요. 이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먹을래요.”
이번 원정길은 총 6일의 일정이었다.
LA다저스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이후 신시내티와의 마지막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밀머니로만 무려 600달러의 비용을 받았다.
한화로는 7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거에게는 푼돈이었다.
최저연봉만 6억이 넘으니 말이다.
하지만 콜업이 얼마 되지 않은 신우에게는 큰돈이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말하는 빅머니를 받아본 적이 없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나도 그 마음 잘 알지.”
리올 역시 마이너리그 생활이 길었다.
그렇기에 신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쳇! 빅리거라면 빅리거답게 행동하라고!”
물론 모든 이들이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항상 신우와 트러블이 일어나는 레이먼드가 술을 따르며 시비를 걸어왔다.
“몇십만, 몇백만달러를 받는 빅리거가 몇백달러를 아낀다고?! 그건 알뜰한 게 아니라 궁상 맞은 거야!”
“레이먼드, 술이 좀 취한 거 같군. 괜히 소란 피우지 말도록 해.”
“리올, 당신도 저 애송이 편을 드는 거야?”
“애들도 아니고 편을 들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 누가 모를 거 같아? 언론도! 팬들도! 죄다 저 애송이 녀석을 클로저에 올리라고 하더군! 고작 몇 경기 부진했다고 시즌 내내 뒷문을 지켜온 날 버리라고 말이야!”
“언론은 언제나 자기들 마음대로 지껄이잖아. 신경쓰지 말도록 해.”
“당신이라면 신경 안쓰겠어? 당신을 1선발에서 내리고 불펜으로 쓰라고 말하면? 그래도 신경쓰지 않겠어?!”
“레이먼드 그만해.”
“맞아, 너무 취했어.”
동료선수들이 레이먼드를 제지했다.
그나마 친한 선수들의 만류에 레이먼드도 이내 자리에 앉았다.
리올이 고개를 저으며 신우를 챙겼다.
“너무 신경쓰지 말도록 해. 최근 들어 성적이 좋지 않으니 주위에서 너무 말들이 많아서 저러는 거니까.”
“예.”
자리에 대한 불안함.
신우 역시 그 기분을 잘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아니지만 육성선수로서 바닥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쩝, 그래도 계속 저렇게 시비 걸어오면 불편한데.’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다. 선수들끼리 트러블이 일어나면 라커룸의 분위기가 무너지게 된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거도 선후배관계가 꽤 철저한 곳임. 후배가 선배한테 대들면 다른 선수들도 널 좋게 볼 수 없음.]
‘예.’
메이저리그는 미국이기에 선후배문화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만약 그런 문화가 없었다면 루키 헤이징 같은 문화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메이저리그 역시 선후배문화가 엄연히 존재했다.
신우는 이제 막 데뷔시즌을 치르고 있는 루키였다.
그런 신우가 레이먼드와 대적한다면 그것을 좋게 볼 선수는 없었다.
야구는 팀스포츠다.
굳이 불화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모든 건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매튜슨의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으로.
그것이 현재 신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였다.
* * *
오전 근무인 한선예는 일찌감치 공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대기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이거 타고 LA로 가는 거예요. 전용기라서 선수들만 타고 일반인들은 타지 못해요. 어때요? 잘 꾸며져 있죠?]
신우가 보낸 동영상에는 전용기의 실내가 찍혀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구단 전용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직접 촬영한 것들이었다.
[응? 시누 뭐해?]
[아, 어머니한테 보내드릴 동영상 찍고 있어.]
[그래? 반가워요! 시누 어머니!]
[엄마, 이쪽은 저와 호흡을 맞추는 포수인 토마스에요. 엄마한테 반갑다고 인사하는 거예요.]
동료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신우엄마!”
그때 한 여인이 들어오며 한선예를 찾았다.
“응? 왜요?”
그 여인은 다름아닌 반장이었다.
“신우엄마 아들이 뉴욕메츠란 팀에서 뛰는 정신우 선수야?”
“네. 그런데요?”
“어머머! 진짜였어?! 어머머! 이게 웬일이야! 우리 아들이 야구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런데 일요일에 TV를 보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나오는 거야! 거기다가 이름도 정신우고 말이야. 그 선수가 신우엄마 아들인 거지?”
“네.”
“어쩜 좋아! 우리 아들이 정말 팬이라던데! 혹시 나중에 사인 한 장 받아줄 수 있어?”
“한국에 들어오면 부탁 해볼게요.”
“고마워! 꼭 좀 부탁할게!”
“응? 뭔 사인이에요?”
“아니, 이 사람들이. 그 왜 메이저리그 몰라? 메이저리그?”
“그게 뭐래요?”
“예전에 류진현이 야구하던 곳 말이야!”
“아, 그 미국?”
최초로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투수인 류진현.
그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모르더라도 류진현 이름 석자는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 아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거야?”
“네. 이번에 올라가게 됐어요.”
“어머머! 이게 무슨 일이래?”
“거기 돈 엄청 많이 받는다던데?”
“전 그런 거 잘 몰라요. 아들 말로는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못 번대요.”
“아니, 그래도 억대는 번다더만!”
“신우 엄마 이제 곧 공장 그만두는 거 아니야?”
“당연히 그만두겠지!”
“시...신우엄마, 그래도 사인을 받아줄 거지?”
“물론이죠.”
“어? 반장님만 받는 게 어딨어요? 신우엄마! 나도 좀 부탁할게!”
“나도! 나도!”
순식간에 공장의 인기스타가 된 한선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