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20화 (20/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20화 >

* * *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기했다.

에이든의 안내를 받아 경기장을 잠깐 둘러볼 수 있었다.

여러 시설들이 정말 잘 되어 있었다.

피트니스 센터는 물론 식당이나 카페 역시 시설로만 따지면 웬만한 호텔 부럽지 않았다.

특히 라커룸도 환상적이었다.

‘마이너리그와는 확실히 다르구나.’

[여길 경험한 선수는 두 번 다시 마이너리그에 가고 싶어하지 않지.]

[대우 자체가 다름.]

[스프링캠프도 그렇지만 이것 역시 동기부여지.]

[얘가 여길 보여주는 이유도 간단함. 여기에 오고 싶으면 더 노력하라는 거지.]

확실히 이해했다.

이 시설을 보고 경험하면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는 하늘과 땅의 차이나 다를바 없었다.

“다음에는 경기장을...”

“에이든!”

누군가의 부름에 에이든의 고개가 돌아갔다.

신우도 에이든을 부른 이를 바라봤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고급정장을 차려 입은 모습이 꽤 높은 위치의 사람 같았다.

“단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응. 단장들끼리 모여서 밥 좀 먹으려고.”

단장이란 말에 신우의 얼굴이 굳었다.

에이든이 단장이라 부를만한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 이쪽은 시러큐스 메츠에서 뛰고 있는...”

“미스터 정이죠? 뉴욕 메츠의 존 베켓 단장입니다.”

역시 뉴욕 메츠의 단장이었다.

“정신우입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올스타 퓨처스게임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라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존 베켓이 그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에이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장님은 분 단위로 움직여야 될 만큼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언제나 저렇게 바쁘십니다.”

나름 배려를 한 말이었다.

“그렇겠죠. 경기장을 보러 갈까요?”

“예,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에이든이 앞장섰고 신우가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신우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들.’

[응?]

‘단장이 바쁘더라도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면 따로 약속을 잡을 수 있겠죠?’

[?]

[뭔솔?]

갈고리가 연달아 올라왔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신우의 말뜻을 이해한 매튜슨이 채팅을 쳤다.

[그냥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도 무리다.]

‘그럼요?’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서도 특급 정도가 되면 단장이 아니라 구단주까지 와서 따로 미팅을 잡지.]

[ㅇㅇ 나도 그랬었음.]

[나도 신인때는 그냥 스카우트 팀장이랑 계약했는데, 사이영상 받고 나니까 단장이 직접 오더라.]

[ㅇㅈ]

그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리그를 뒤흔들었던 특급투수들이다.

당연하게도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결론은 하나다.]

매튜슨의 채팅이 올라왔다.

[단장의 발을 붙잡고 싶으면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예.’

원하는 대답을 들은 신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올스타 퓨처스게임에 참가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선예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휴...왜 이렇게 떨리지?”

결국 우황청심환을 꺼내 먹었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때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계가 시작된 것이다.

갑작스런 중계방송이었지만 캐스터와 해설위원도 섭외하고 제대로 된 방송이 진행됐다.

[올스타 퓨처스게임이 어떤 행사인지 알려주시죠.]

[올스타 퓨처스게임은 각 팀의 유망한 선수들을 뽑아 펼치는 경기입니다.]

[그럼 마이너리그에서의 성적은 고려되지 않는가요?]

[물론 고려도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수의 나이가 우선이 됩니다. 30대가 넘어간 선수는 더 이상 유망주라고 부를 수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아, 양팀 선수단을 소개하는군요.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될 선수는 누구일까요?]

여러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탬파베이의 쉐인 바즈, 신시내티 레즈의 마이크 시아니 등등.

각 팀을 대표하는 유망주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뉴욕메츠의 이 선수는 어떻습니까?]

[아, 정말 좋은 선수에요.]

“어?”

카메라 앵글이 옮겨가면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정말 혜성 같이 등장한 선수에요. 정신우 선수, 현재 뉴욕메츠 산하 트리플A팀인 시러큐스 메츠에서 뛰고 있는 선수죠. 오늘 중계를 맡게 되면서 그의 영상을 찾아봤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왜 놀라셨죠?]

[공이 정말 좋아서 놀랐습니다. 패스트볼의 구속이 최고 95마일이 찍히는데, 구위가 정말 좋았어요. 무엇보다 제구가 잡혀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가 전문가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바로 컷패스트볼 때문이죠. 리베라의 재림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의 컷패스트볼은 리베라의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해설위원이 열변을 토하며 신우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하지만 한선예의 귀에는 더 이상 해설위원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시야는 흐릿해져 있었다.

“나도 참 무슨 주책이야.”

오랜만에 아들의 얼굴을 봐서인지 감정이 복받혔다.

그녀는 애써 눈물을 닦아내며 경기에 집중했다.

[오늘 경기에서 등판하게 될 정신우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며, 저희는 잠시 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곧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 * *

신우는 불펜에 앉아 있었다.

‘사람 많네.’

퓨처스게임이라고 해서 관객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경기장은 만원관중으로 가득찼다.

그들의 응원열기 역시 매우 뜨거웠다.

[입장권이 쌈.]

‘그래요?’

[ㅇㅇ 1/10정도 하나?]

[그 정도 할 듯.]

[마이너리거들이 뛰는데 입장권까지 비싸면 관중이 찾아올 리가 없잖아.]

[그러니 입장권을 저렴하게 팔고 일종의 축제형태로 진행하는 거지.]

‘아하...’

이제야 관중이 많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신우!”

그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불펜에 바로 붙어 있는 관중석에는 익숙한 가족이 모여 있었다.

“어?”

그는 다름아닌 박현성이었다.

처음 플로리다에 와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가족.

그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자네가 올스타에 나온다고 해서 보러 왔지.”

“저 때문에요? 멀지 않아요?”

“같은 플로리다 주였으니까, 겸사겸사 찾아왔어.”

“형! 사인 좀 해줄 수 있어요?”

그때 박현성의 아들인 박연우가 야구공을 내밀었다.

“물론이지.”

신우는 그것을 받아들어 사인을 했다.

시러큐스에서 인기가 높은 신우였기에 사인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오늘 등판하나?”

“아마 막판에 가볍게 던질 거 같아요.”

“그렇군!”

“자, 여기.”

“고마워요! 형!”

“저...저희도 사인 좀 해주세요!”

“저도요!”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관중들이 사인을 요청해왔다.

그들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

“플로리다에 관광하러 왔다가 올스타전이 한다고 해서 구경왔어요.”

“그렇군요.”

물론 신우를 보기 위해 온 이들은 아니었다.

그저 관광차 왔던 것이다.

그러다 신우가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 역시 사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물론이거니와 미국관중들도 사인을 요청해왔다.

신우를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신우가 사인을 해주는 걸 보고 자신도 받기 위해 요청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선수라면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볼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이거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군.”

“아니에요. 사인이야 그냥 하는 건데요, 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오늘 경기 끝나고 시간 있나? 내가 식사나 대접을 할까 하는데.”

“시간은 되는데, 식사는 제가 살게요. 여기까지 먼 길을 와주셨는데.”

“아니야. 마이너리거가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나. 자네한테 얻어먹는 건 나중에 빅리그에 올라간 뒤에 거하게 얻어먹겠네.”

배려를 해주는 그의 제안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경기가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그럼 이따 보자고.”

“예.”

박현성과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우는 한참동안이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 * *

7회.

신우가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마무리투수 성격이 강한 그를 위해 내셔널리그 감독이 그를 8회나 9회에 올린다는 언질을 주었다.

덕분에 그는 여유롭게 몸을 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패스트볼부터 갈게.”

“오케이.”

불펜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트를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메이저리그 불펜에서 던지는 건 처음이네.’

[올~]

[감격의 순간!]

[하지만 신분은 마이너리거쥬?]

[아나...]

[감격을 깨네.]

[사탄도 울고갈 인성보소.]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을 무시하며 가볍게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1구를 던졌다.

쐐애애액-!

뻐어억!

“와우.”

“굿!”

주위에 있던 선수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초구부터 너무 세게 던지는 거 아니야?”

“하하.”

공을 던져주는 포수의 말에 신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살살 던졌는데.’

그런데 소리는 경기장에서 던졌을 때보다 더 강하게 났다.

‘돔이라서 그런가?’

돔구장에서 던지는 건 처음이다보니 아무래도 소리가 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신우는 소리에서 신경을 끈 채, 본격적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몸을 풀었을까?

“미스터 정.”

“예?”

“이번 이닝이 끝나면 올라갈 거야.”

드디어 출격신호가 떨어졌다.

“예.”

* * *

[8회말, 드디어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시러큐스 메츠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군요. 이 선수가 놀라운 점은 과거에 왼손으로 공을 던졌었습니다.]

[왼손으로요?]

[예. 세종 데블스 2군에서 뛸 때, 몇 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좌완 사이드암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우완 쓰리쿼터로 변신을 했더군요.]

[그게 가능합니까? 좌완으로 던지던 선수가 우완으로 변신을 하는게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때도 강속구 유형의 투수였습니까?]

[아닙니다. 최고구속은 130 중반정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기교파 투수에 가까웠습니다.]

[그럼 오른손으로 던지면서 강속구 투수가 됐다는 거군요? 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정신우 선수, 연습투구를 시작합니다.]

한선예는 손을 꼭 잡은 채, 신우의 선전을 기원했다.

연습투구가 끝나고 타석에 타자가 들어섰다.

[첫 타자를 상대합니다. 오늘 경기 홈런을 기록했던 텍사스 레인저스 트리플A팀에서 뛰고 있는 레오디 타베라스 선수로군요.]

[예전에는 타격이 나빴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 보니까 타격이 정말 좋더군요.]

[맞습니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1구 던집니다.]

[딱-!]

[타베라스 선수 쳤습니다! 하지만 타구는 평범한 내야땅볼이 됩니다. 유격수 잡아 가볍게 1루로 송구, 아웃입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공 1개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스타트가 좋습니다.]

[90마일이 찍힌 컷패스트볼이었습니다.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정말 타석 바로 앞에서 변화가 일어나는군요.]

[컷패스트볼은 커터라고도 불리죠?]

[맞습니다. 커터칼처럼 날카롭게 휜다고 해서 커터라고 불리죠. 또 다른 별명이 배트 브레이커라고도 합니다.]

[배트 브레이커요?]

[예. 포심이라 생각하고 친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면서 방망이의 얇은 부분으로 타격이 되면서 배트가 자주 부러지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정신우 선수의 또 다른 별명 중 하나가 배트 브레이커라고 하더군요.]

[역시 커터가 특기인 선수답군요.]

[그렇습니다. 두 번째 타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두 개의 2루타를 기록한 모이시스 고메스 선수입니다.]

[올 시즌 후반이나 늦어도 내년 시즌에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게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매우 뛰어난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죠.]

[맞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강속구를 던지지만 모이시스 고메스는 오늘 두 개의 장타를 만들 때 모두 90마일 후반의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특히 조심해야 됩니다.]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합니다.]

[빠각-!]

[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1루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1루수 직접 잡아서 베이스를 밟습니다. 투아웃입니다!]

[정신우 선수가 저희가 한 말을 들었나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부러트려주네요.]

[하하! 그렇습니다. 이걸로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공 단 두 개로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이번 공도 커터였죠?]

[예. 본인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커터로 두 명의 타자를 가볍게 요리했습니다.]

[세 번째 타자는 어떻게 잡아낼지 기대되네요. 타석에 오늘 경기 두 개의 홈런을 때려낸 트리스턴 카사스가 들어섭니다.]

[이 선수 정말 괴물이더군요. 보스턴이 어째서 이 선수를 22시즌에 끝까지 지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화려한 스윙을 보여주더군요.]

[이 타자는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조금만 실투로 들어오면 바로 담장을 넘겨버릴 겁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우 선수, 3구 던집니다!]

[딱-!]

[아-! 빗맞은 타구! 투수에게 돌아갑니다! 정신우 선수 가볍게 잡아 1루로 토스! 아웃입니다. 쓰리아웃 체인지! 세 명의 강타자를 상대로 정신우 선수 공 단 세 개로 이닝을 마감합니다!]

[이건 정말 엄청나군요. 유망주순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세 명의 타자를 너무나 가볍게 요리했어요! 이건 정말 엄청납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우 선수!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더그아웃으로 들어갑니다!]

[정신우 선수는 조만간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를 보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맞습니다! 그를 곧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데블스가즈아 : ㅅㅂ...]

[추천 : 362 비추천 : 1]

그리고 방송창의 댓글에 올라온 하나의 댓글에 말없이 추천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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