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2화 >
* * *
마이너캠프의 환경은 별로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설이 노후된 호텔, 그럼에도 방 하나에 두 세 명이 지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나마 그라운드는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수가 있다는 게 단점이었다.
“후우-! 오늘도 코치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어.”
캠프가 시작되고 보름이 지나면서 신우는 몇몇 선수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브리토는 그중에 한 명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에 외야수 포지션을 가진 브리토는 파이브툴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건 아마추어 수준에서의 이야기였다.
미국에 건너온 뒤에는 아직 포텐셜이 터지지 않은 상태였다.
“왜? 오늘은 꼭 이야기하겠다고 했잖아?”
“다른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바쁘더라고.”
“그건 어쩔 수 없지. 코치의 숫자는 적은데 선수는 많으니까. 그렇다고 매일 포기하면 캠프가 끝날 때까지 코치의 지도는 받지 못할 텐데?”
“그건 알지...”
브리토는 19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했지만 문제는 성장이 더뎠다.
23살인 현재 싱글A에서 뛰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유망주들은 빠르게 더블A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브리토는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소심한 성격이었다.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 탓에 팀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친해진 것도 룸메이트였기에 가능했다.
‘으흠, 코치의 도움을 받는 게 어려울 줄은 몰랐네요.’
[마이너캠프에 참가하는 선수는 매우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지. 메이저캠프에서 탈락한 선수들도 합류하게 되니까.]
‘저도 코치의 얼굴은 불펜피칭을 할 때만 잠깐씩 보는 게 전부네요. 한국처럼 뭔가 맨투맨으로 붙어서 교육을 해주는 건 없는 거 같아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코치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선수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도와주지. 도와준다고 해도 선수의 개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선수가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돼.]
‘으흠...복잡하네요.’
[넌 크게 걱정할 일이 없지.]
[ㅇㅈ]
[복에 겨운 놈이란 걸 알아야 돼.]
사실 신우에게는 코치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훌륭한 코치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브리토!”
“예? 지금 갑니다! 나, 잠깐 다녀올게.”
“응.”
달려가는 브리토를 보며 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체훈련은 끝이 났지만 신우의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PVC부터 하면 되죠?’
[그래.]
신우가 벽에 세워둔 PVC파이프를 들었다.
3m짜리 파이프를 반으로 자른 녀석이다.
잡화점에 가면 2천원이면 살 수 있는 평범한 녀석이다.
신우는 파이프의 양끝을 잡았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넘겼다.
파이프가 등에 닿으면 다시 머리 위로 넘겨 배에 닿게 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투수에게 있어 어깨의 유동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유동성이 뭐라고 했었지?]
‘어깨의 가동범위와 조절능력 등이요.’
[그래. 이 운동은 그 유동성을 향상시켜주는 운동이다. 어깨와 그 근처의 근육들을 단련시켜주고 유연하게 해주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구속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지.]
[이제 돌려라.]
‘예.’
이번에는 PVC파이프를 머리 위로 들고 좌우로 돌렸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어깨의 가동범위가 좁고 유연하지 않으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꽤 익숙해졌다.
겨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훈련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야야, 쟤 또 이상한 거 한다.”
“저런 훈련이 효과가 있나?”
“글쎄. 내가 보기에는 시간낭비 같은데?”
캠프에서도 독특한 신우의 훈련이었다.
지나가는 선수들이 그를 보면서 한 마디씩 뱉었다.
하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았다.
이 훈련법의 효과를 직접 경험했기에 남들이 뭐라하든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간혹 흔들릴 때도 있었다.
신우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확신이 있어도 주위에서 한 마디씩 하면 흔들릴 때가 생기는 법이다.
[남이 뭐라하든 신경을 꺼라. 선수들에게는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훈련법 역시 선수마다 다르다. 너는 알고 있다. 이 훈련이 너의 몸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것을 잊지마라.]
‘예!’
마음이 흔들릴 때면 매튜슨이 그를 잡아주었다.
다른 이들 역시 한 마디씩 거들었다.
[훈련에는 정답이 없음.]
[어깨훈련을 이상한 거라고 하다니. 쯧쯧, 쟤는 오래 못가겠다.]
[남의 훈련을 보고 비웃는 놈들이 이상한 거지.]
[네가 무슨 갈대냐? 남들이 뭐라할 때마다 흔들리게?]
[줏대를 좀 가지셈. 기준이 없으면 남들이 말할 때마다 흔들릴 수밖에 없음.]
연달아 올라오는 채팅에 신우는 정신을 차렸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성장하는 단계의 선수.
그에게 붙어 있는 훌륭한 코치들.
그들의 훈수는 더 이상 훈수가 아니었다.
이미 신우가 걸었던 길을 걸어본 이들이기에 해줄 수 있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신우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을 믿지 않았다면 미국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오호.”
그런 신우를 한 남자가 유심히 보고 있었다.
팜디렉터인 피터 게일이었다.
‘어깨를 강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훈련이군.’
피터는 단숨에 신우가 하는 훈련이 무엇인지 간파했다.
팜디렉터가 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선수들을 체크한다.
체크한다는 건 그들이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하는지, 또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전반적으로 확인했다.
팜이란 단어가 붙게 된 것 역시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를 키워 메이저리그로 보낸다는 의미에서 붙은 단어였다.
‘재미있는 친구야.’
피터는 신우를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의 수첩에는 신우의 이름에 별표가 체크되어 있었다.
그는 하루종일 마이너리그 캠프를 돌아다니며 신우처럼 특별한 선수의 이름에 체크를 해두었다.
‘이제 곧 연습경기로군.’
어느덧 캠프가 시작되고 보름이 지났다.
본격적인 실전을 준비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 * *
실전경기는 모든 선수들에게 중요하다.
특히 마이너리그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은 더더욱 중요했다.
마이너리그캠프는 120명에서 많게는 140명 가량의 선수들이 참가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숫자는 더 많아진다.
메이저리그 캠프에 머물던 선수들이 하나 둘 마이너리그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첫 연습경기에서 뛰는 게 중요했다.
[훈련은 말 그대로 훈련이야. 선수가 워낙 많다보니 코치나 스태프들은 선수 모두를 체크하는 건 어려워.]
[ㅇㅈ.]
[마이너 캠프를 모두 체크할 수 있는 건 신밖에 없어.]
[염라대왕이라 해도 힘들걸?]
[그러니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지.]
[맞아.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가장 중요해.]
‘그런데 꼭 첫 경기가 중요해요?’
[당연하지.]
[날이 갈수록 선수가 늘어나. 즉, 기회가 줄어든다는 거지.]
[무엇보다 뒤에 합류하는 애들은 메이저급이거든.]
[그러니까 초반에 눈도장을 찍어야지.]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남자가 단상에 섰다.
그는 피터 게일이었다.
“집합!”
그의 외침에 휴식을 취하던 선수들이 모였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오후에는 연습경기가 있다. 총 6개의 팀으로 나눠서 진행한다. 각 팀에 속한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테니, 각자의 기량을 모두 뽐내주길 바란다.”
“예!”
곧 팀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신우는 2-1팀에 배정되었다.
브리토도 2팀이었지만 2-2팀이었기에 신우와는 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후우-! 떨리네. 너도 그렇지?”
“응? 응.”
브리토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크게 떨리지는 않았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듯 했다.
그라운드를 이동해 각 팀별로 모였다.
“오늘 이 팀의 감독을 맡게 된 피를로다. 다들 알겠지만 캠프에서는 투수코치를 맡고 있지. 앞서 들었겠지만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는 돌아갈 거다. 또한 어디까지나 연습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예!”
“그럼 포지션을 배정하겠다.”
피를로가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고 포지션을 배정해주었다.
야수부터 시작이 되었고 뒤이어 투수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시누...정?”
“예.”
“오늘 선발이다. 2회까지 던질 거야.”
“예!”
선발이란 말에 가슴이 벅찼다.
육성선수가 된 이후로 선발로 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선수들의 배정이 모두 끝나고 가볍게 몸을 풀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삼십분이 지나 경기가 시작됐다.
신우는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휘유-!”
[긴장되냐?]
매튜슨의 질문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전혀요.”
탁-! 탁-!
로진을 손에 묻히며 대답한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사인의 교환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공을 던지기만 하면 됐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신우가 상체를 낮춰 포수의 사인을 확인했다.
‘포심.’
구종을 정하고.
‘아웃코스,’
코스가 정해졌다.
타자는 좌타, 날렵한 체형이었다.
캠프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야수와 투수의 연습은 따로 진행된다.
그가 어떤 선수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발이 빠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트를 짧게 쥐네.’
미국에 와서 배트를 짧게 쥐는 선수는 오랜만이었다.
[미국에 건너온지 얼마 안 된 듯?]
[ㅇㅇ 뭔가 얼굴이 얼어있네.]
[얼굴도 앳되고.]
[긴장가득.]
[저러다가 울겠누.]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을 흘리며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상대를 얕잡아보다간 큰 코 다친다.]
‘예.’
[어차피 2회까지만 던지면 된다. 초구부터 전력투구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신우가 킥킹을 했다.
무게중심을 뒤로 하면서 골반을 틀었다.
무릎이 굽혀지며 힘을 충전했다.
그 힘을 일순간에 방출하며 스트라이드.
촤앗-!
뒤이어 골반을 회전시키며 회전에너지를 상체로 끌어올렸다.
그 힘을 이용해 상체를 회전시켰다.
여전히 오른팔이 뒤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의 몸이 활의 시위가 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자 팔이 앞으로 당겨지며 장전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미트가 조금 위로 움직여 공을 잡았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그 모습을 펜스 너머에서 바라보던 피터가 옆의 직원에게 물었다.
“구속은?”
“90마일(144km)이 찍혔습니다.”
트라이아웃에서 87마일이었다.
25일이 지났는데 3마일이나 상승한 수치였다.
‘역시 그때의 구속이 베스트가 아니었어.’
공의 회전이나 무브먼트를 봤을 때 구속이 더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트라이아웃 유일한 합격자인 이유였다.
“모든 투구의 구속을 체크해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피터는 이내 몸을 돌렸다.
관심이 가는 선수였지만 모든 선수들을 체크해야 되는 게 그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캠프가 끝나는 날, 저 친구가 몇마일을 찍을지 기대되는군.’
기대를 뒤로 하고 그의 발걸음이 다음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첫 연습경기가 모두 끝났다.
피터 게일은 자신의 책상에 쌓인 수첩을 바라봤다.
“휘유...보는 것만 해도 피곤하군.”
하루종일 걸어 다니면서 선수들을 체크했다.
하지만 퇴근 후에도 쉴 시간은 없었다.
그에게는 연습경기의 성적을 모두 확인해야 될 업무가 남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는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편한 자세를 취하고 수첩 하나를 들었다.
‘정시누, 과연 그는 오늘 어떤 성적을 올렸을까?’
정신우.
최근 가장 관심이 가는 선수였다.
리베라의 것과 흡사한 커터를 던지는 그가 올린 성적을 먼저 확인했다.
“오호.”
성적을 본 피터의 눈이 빛났다.
“2이닝동안 7명의 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무실점 3K 거기에 볼넷은 하나도 없군.”
빼어난 피칭이었다.
탈삼진도 준수했고 안타를 하나밖에 맞지 않은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볼넷이 없다는 것이다.
“제구력이 나름 잡혀 있다는 거군.”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구속도 중요하다.
크게 변화하는 변화구 역시 투수에게는 좋은 무기가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제구력이다.
아무리 빠른 공을 던지더라도 존에 꽂아넣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제구력이 없다면 크게 변하는 변화구 역시 타자를 속일 수 없다.
실제 100마일을 뿌리는 투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만 공을 던지다가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냐?
제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좋아.”
신우의 성적에 만족하며 피터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신우가 던진 모든 공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투구와 코스 그리고 구속과 타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기재되어 있었다.
‘역시 커터에 속는 타자가 많았군.’
범타로 물러난 타자들 대부분이 커터로 인해 아웃이 됐다.
탈삼진 2개는 하이 패스트볼로 잡았고 1개는 커터로 잡아냈다.
‘투 피치로 2회까지...응?’
그때 피터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그는 곧장 전화를 들어 기록을 남긴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미스, 지금 자네가 남긴 기록을 보고 있는데. 이거 잘못 기록된 거 아닌가?”
[예? 어떤 부분이요?]
“구속 부분 말이야. 총 30구를 던졌는데 모든 공들이 90마일에서 91마일이야.”
[그게 맞습니다.]
“뭐?”
[초구부터 마지막 공까지 구속이 일정했어요.]
“...정말이야?”
[아, 예. 영상도 찍어뒀는데 확인해보시겠어요?]
“음, 그건 내일 확인하도록 하지. 늦은 시간에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피터의 시선이 다시 수첩으로 향했다.
‘이게 뭘 의미하지?’
그의 시선은 신우의 구속으로 향했다.
‘30구를 던지면서 모든 구속이 일정했다고?’
이게 의미하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하나는 구속을 조절했거나.
다른 하나는 초구부터 전력투구를 했다는 거다.
딸칵-!
딸칵-!
적막이 흐르는 사무실에 볼펜의 버튼소리만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