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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11화 (1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화 >

* * *

트라이아웃이 끝난 뒤.

신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오오-!]

[느낌 좋은데?]

[첫 번째로 쫑인가?]

채팅창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덩달아 신우도 기대했다.

딸칵-!

사무실의 문이 열리자 안에서 한 남자가 서류를 보고 있었다.

“미스터 정.”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메츠의 팜디렉터인 피터 게일입니다. 일단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메츠의 트라이아웃에 합격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구속은 포심이 87마일, 컷패스트볼은 83마일이 나왔습니다. 스프링캠프 이전이란 걸 생각하면 평범한 수준이죠.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공의 회전 그리고 무브먼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정한 딜리버리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실전등판이었다.

그럼에도 게일은 신우의 장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리베라와 매우 흡사한 커터였습니다.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변화를 시작하더군요. 이런 커터를 어떻게 얻게 되신 거죠?”

“처음에는 우연히 던지게 됐는데, 그 뒤로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긴, 그 공은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이 아니죠. 우리는 당신의 컷패스트볼과 포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서입니다. 검토하시고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서류 위에 있는 명함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신우는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첫 번째 트라이아웃에 구단이 계약을 제시하다니?

[야야! 계약서 받아야지!]

[당당하게!!]

[처음부터 꿀리고 들어가면 안 돼!]

[당연하다는 듯 받아야 돼!]

[덤덤하게!]

연신 올라오는 채팅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약서를 집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크으-!]

[그거지!!]

[잘했다!]

[점마 얼굴 봐라! 설마 이렇게 나올지 몰랐다는 듯이 벙쪘다!]

[한 방 먹였다!]

“예,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신우가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캠프를 빠져나왔을 때.

“흐아아아아...”

온 몸이 녹아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뒤이어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너...너무 건방져 보이지 않았을까요?’

[뭐가?]

[아놔! 잘해놓고 이제와서 찌질모드냐?!]

[잘했어! 잘했어!]

‘으으...’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위로를 받으며 신우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 * *

“계약서를 받았다고?!”

박현성이 놀라 물었다.

“예. 그래서 계약서 검토를 부탁드릴 변호사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변호사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나한테? 난 베이스볼 전문 변호사가 아닌데?”

“그리 어려운 계약내용은 아닐 거 같아서요. 마이너리그 계약이기도 하고 세세한 조항을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으음...”

박현성이 고민에 들어갔다.

신우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닌 마이너리그 계약은 복잡할 게 없었다.

사실상 선수가 을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신우는 트라이아웃을 통과한 케이스다.

구단이 하자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다른 구단과 더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떤가?”

“다른 구단이요?”

“그래. 첫 번째 트라이아웃에서 메츠가 오케이 사인을 냈다면 다른 구단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내가 자네의 트라이아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답은 할 수 없지만 말이지.”

박현성의 제안은 신우 역시 생각을 했었다.

정확히는 레전드 플레이어들이 이와 관련해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메츠와 계약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일단 메츠와 계약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굳이?”

“예. 메츠는 21시즌이 끝나고 신더가드가 팀을 떠난 뒤 22시즌에는 디그롬마저 트레이드가 됐습니다. 이후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트레이드 그리고 FA로서 팀을 떠났죠.”

“음, 분명 그랬지.”

2021시즌.

뉴욕메츠는 엄청난 페이스로 승수를 쌓았다.

모든 언론이 메츠가 가을야구를 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았다.

구단 역시 3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위해 시즌 이후 FA가 되는 토르, 신더가드를 붙잡았다.

거기에 몇 없는 유망주들을 내주며 대대적인 전력강화를 꾀했다.

팀내 최고연봉자인 디그롬 역시 잡으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수단을 총동원했다.

결과만 놓고보면 실패였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메츠는 다저스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투자란 투자는 모두 하고 결과를 얻지 못한 셈이다.

결국 과도한 투자는 부메랑이 되어 메츠를 직격했다.

신더가드를 시작으로 주축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메츠의 전력을 단숨에 악화됐다.

22시즌에는 에이스 디그롬을 트레이드하면서 메츠는 리빌딩을 선언했다.

하지만 리빌딩도 쉽지만은 않았다.

“원래부터 팜이 좋지 않았던 메츠입니다. 거기에 21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몇 없던 유망주들을 떠나보내며 팜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하긴 메츠의 팜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들 중 최악이긴 하지. 거기에 유망주들을 즉시전력감과 트레이드를 했으니...”

“예, 덕분에 22시즌은 동부지구 꼴찌로 시즌을 마감해야 됐죠. 문제는 23시즌에도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란 점입니다.”

“이렇다할 유망주들이 보이지 않긴 하지.”

“그 말은 로스터에 빈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거길 노리겠다는 건가?”

“예.”

매우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야구를 위해 미국에 왔다는 것에서 범상찮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계산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니.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하하...”

신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유는.

[보는 눈이 없네.]

[메츠가 어떤 팀인지도 몰랐던 놈인데.]

[아메리칸리그가 아니었냐고 물어볼 때는 정말...]

[답이 안보였지.]

연달아 올라오는 채팅이 억울한 신우였다.

‘아니, 같은 뉴욕에 있는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인데, 왜 메츠는 내셔널리그인데요?’

[하아...]

[하아...x2]

연달아 오는 한숨을 보며 신우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때 생각을 정리한 박현성이 대답했다.

“알겠네.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계약을 돕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저...그런데 비용은...?”

“비용은 필요없네.”

“예? 하지만...”

“내가 대리인 역할을 해줄 순 없어.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에이전트 자격증을 받아야 돼. 즉,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법리적검토 수준이라네.”

“아...알겠습니다.”

“자, 그럼 계약서를 보도록 할까?”

신우는 늦은 시간까지 박현성과 함께 계약서를 검토했다.

* * *

다음 날.

신우가 다시 메츠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다.

“어서오십시오.”

오늘도 피터 게일이 신우를 맞이해주었다.

“계약서는 검토해보셨습니까?”

“예. 정석적인 계약서더군요.”

“물론입니다. 우리 메츠는 모든 선수들에게 동등한 계약을 제시합니다.”

“계약서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메츠와 계약을 맺게 되면 저는 어느 단계에서 뛰게 되는 겁니까?”

“싱글A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마이너리그 캠프가 끝난 뒤, 결정을 할 생각입니다.”

확답을 피했다.

즉,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이라면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날.

신우는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모두 5만 달러의 금액을 받게 되었다.

한화 5500만원가량의 금액.

그것이 미국에서의 첫 계약을 통해 받은 돈이었다.

* * *

[한국에서 육성선수로 뛰었던 정신우 선수가 메이저리그 뉴욕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에 뜬 짧은 기사 한 줄.

단편적인 기사는 직접 검색을 하지 않는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은 그 기사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이가 있었다.

“신우야...”

사진조차 없었지만 신우의 어머니, 한선예는 기사를 읽으며 아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꿈을 위해 머나먼 땅으로 간 아들.

그 아들이 꿈을 이루었다는 연락에 직접 검색을 했다.

그리고 찾아낸 단 하나의 기사.

그녀에게 있어 매우 뜻깊은 기사였다.

“힘내렴.”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가슴에 품으며 머나먼 땅에서 고생하는 아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 * *

메이저리그캠프와 마이너리그캠프는 걸어서 1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두 캠프를 비교하자면.

[천국과 지옥이지.]

[그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음.]

[메이저 캠프에 가면 레알 마이너 캠프에는 오고 싶지가 않음.]

[쌉인정.]

‘그렇게 심해요?’

[ㅇㅇ 레알 심함.]

[메이저에서 뛰던 애들은 마이너 가면 적응을 못함.]

[특히 확대로스터가 되면서 합류한 애들은 새 시즌에는 다시 마이너로 보내지는데, 그때 정말 우는 애들도 있음.]

아직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일까?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신우는 캠프에 들어서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이너리그캠프는 간단히 말해서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넓은 그라운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선수들이 운동을 하고 있어 복잡했다.

[메이저 캠프는 기껏해야 60명이지. 그것도 점점 줄어들고 말이야.]

[그거 암? 처음에는 유망주 애들도 메이저 캠프에 포함되는데, 그중에는 마이너캠프로 다시 돌려보낼 애들이 정해져 있음. 그런 애들은 대부분 로스터에 확정될 슈퍼스타들 사이에 라커가 배정됨.]

‘왜요?’

[어차피 내려보낼 애들이니까, 슈퍼스타들이 라커룸을 좀 여유롭게 쓰라는 배려임.]

[ㅋㅋㅋㅋ ㅇㅈ. 그래서 처음에 슈퍼스타들 옆에 배정됐다고 해서 좋아할 게 아님.]

[오히려 불안해해야지.]

‘헐...’

메이저리그하면 화려한 무대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런 일도 있는 건가?

[메이저리그는 보여주는 거다.]

‘뭘 보여줘요?’

[이 부와 명예를 잡고 싶나? 이 모든 특혜를 손에 얻고 싶나? 그러면 올라와라. 올라오기만 하면 다 너의 것이 된다는 걸 말이지.]

매튜슨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신우야.]

‘예.’

[올라갈 각오가 됐냐?]

그의 질문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면.

미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선수들 앞에 섰다.

“주목!!”

남자의 우렁찬 소리에 시끄럽던 선수단이 조용해졌다.

“지금부터 캠프를 시작한다!”

마이너리그 캠프가 시작됐다.

* * *

아침 7시.

호텔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 시간에 지각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그렸던 신우에게는 나름 충격이었다.

[그런 건 메이저 캠프나 그렇지.]

[마이너 애들은 여기서 뭐라도 보여줘야 됨.]

[그래야 한단계라도 높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들의 말이 맞았다.

마이너리그 캠프에 있는 이들은 여유로우면서도 무언가 쫓기는 분위기였다.

특히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더욱 그러했다.

반면 젊은 선수들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아직 유망주이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하면 떨어진다.

그것이 마이너 캠프라는 곳이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마라.]

‘예.’

[네가 해야 될 것에만 집중해. 캠프를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구속을 올리기 시작한다. 네가 최고구속을 던질 수 있게 되면 팜디렉터도 널 낮은 리그로 보내지는 않을 거다.]

마이너캠프에서 팜디렉터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메이저리그를 단장이 운영한다면 마이너리그는 팜디렉터가 단장의 역할을 했다.

그는 마이너리그의 선수들을 체크하고 단장에게 보고를 한다.

캠프에서는 각 선수들을 평가해 알맞은 리그로 보낸다.

[트라이아웃에서 보여주었던 구속이 88마일, 캠프에서는 최소한 93마일 이상의 공을 던져야 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는 목표를 정했다.

93마일.

이번 캠프에서 거기까지 구속을 끌어올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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