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2화 >
* * *
집에 돌아왔다.
갈 곳은 집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집은 썩 편한 장소가 아니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신우는 중학교부터 합숙생활을 했다.
고교 졸업 이후 바로 군대에 갔다.
제대 이후에는 육성선수로서 2군 숙소에서 지냈다.
즉, 집에서 먹고 자는 게 오랜만이란 것이다.
무엇보다 백수가 됐다는 점이 더욱 가시방석인 이유였다.
집안의 사정은 썩 좋지 못했다.
아버지가 고등학생 시절 돌아가셨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이었기에 뭔가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당시 부상까지 겹쳤었기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포기했을 것이다.
“아들! 밥 먹어!”
그때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좋아하던 제육볶음이 김을 모락모락내고 있었다.
“어서 앉아. 식겠다.”
“예.”
어머니의 말에 자리에 앉았다.
고봉밥이 그의 앞에 놓였다.
“많이 먹어.”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는 실망하셨을 거다.
아들이 프로가 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온 날.
오히려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머니가 위로를 해준 것은 말이다.
그 뒤로는 평소대로 자신을 대해주셨다.
그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시면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을 텐데.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럴 수 없지.]
오랜만에 채팅이 올라왔다.
방출 이후 채팅이 점차 줄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채팅방을 나갔다.
[현재 시청자 1명]
[채팅방 참여자]
[크리스티 매튜슨]
단 한 명의 시청자.
궁금했다.
‘매튜슨 선배는 왜 제 방송을 보시는 거예요?’
[그냥. 현실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거든.]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저승이란 곳이 어떤지 모르지만 현실과 다를 게 분명했다.
단순히 이 삶을 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닌 듯 했다.
야구를 그만두자 하나 둘, 방을 나갔다.
처음에는 조금씩 찾아오던 사람들도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청자는 단 한 명.
서운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서 야구 접을 거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없으니까요.’
[가르쳐주는 거야 내가 할 수 있음.]
‘그래도 시설이...’
[그런 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는 말 못함. 환경도 중요한 법이지. 하지만 선수 본인의 의욕이 더 중요함.]
선수 본인의 의욕.
계속 야구를 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였다.
“엄마 일 다녀올게.”
“이 시간에요?”
“오늘부터 야간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공장을 다니셨다.
집안을 이끌어가고 자신의 야구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계셨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밥 먹고 그릇은 싱크대에 놔두고. 그럼 다녀올게.”
어머니가 웃으며 집을 나섰다.
많이 힘드실 텐데.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전업주부를 하셨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공장 일을 하시는 건 어려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겨내셨다.
나를 위해서.
그런 어머니를 두고 고작 방출이 되었다고 포기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이것도 핑계겠지.”
결국 야구를 포기하기 싫은 것이다.
야구로 성공하고 싶다.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더 이상 남의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선배님.”
[응?]
“야구 가르쳐주십시오.”
[ㅇㅋ]
담백한 대답.
그것이면 충분했다.
왠지 모르게 저 짧은 대답에 믿음이 갔다.
그 믿음을 가지고 숟가락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려면 제대로 먹어야 될 테니까.
“꿀맛이네!”
어머니의 제육볶음은 여전했다.
젓가락을 들어 반찬도 먹어갔다.
그때였다.
[야!]
“예?”
[너 왜 오른손으로 밥 먹냐?]
저건 또 무슨 소린가?
“저 오른손잡인데요?”
[너 좌투잖아?]
“예.”
그게 이상한가?
[어케했누?!]
이상한가보다.
* * *
[그러니까, 정리해보자. 원래는 우완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중학코치가 좌완으로 바꾸라고 했다고?]
“예.”
[이유는 좌완이 투수로써 더 유리하니까였고?]
“맞습니다.”
[그리고 너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해냈다고?]
“예.”
[이쉑...재능충이었누.]
“그렇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신우가 어린 시절에는 좌투우타가 의외로 많았다.
류진현이 오른손잡이이면서 왼손으로 투구를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많은 학부모가 그런 식으로 아이를 교육시켰다.
간혹 코치들도 그런 제안을 했다.
신우의 케이스가 그러했다.
“그런데 나쁜 겁니까?”
[뭐, 나쁜 건 아니지. 그런데 너 오른손을 안 썼으면 오른쪽 어깨는 멀쩡하겠네?]
“예.”
[그럼 오른손으로 공 던지면 되겠네.]
“예?”
[왜 놀라?]
“아니,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왼손으로만 던졌는데. 갑자기 오른손으로 던지라고 하시면...”
[물론 왼손잡이가 왼손으로 공을 던졌으면 어렵겠지. 하지만 넌 오른손잡이잖아? 평소 쓰던 손의 감각이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임.]
“으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익숙함이란 게 있다.
왼손으로 던지던 것을 오른손으로 던지라고 하면 처음에는 거부감부터 든다.
[넌 원래 손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임.]
하지만 설득을 하는 이가 다름 아닌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
“고!”
오른손으로의 회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해보자.
실패하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 * *
다음 날.
신우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평소대로 러닝을 하고 인근 헬스장에 등록해서 단련을 시작했다.
원래 하던 운동이 있었기에 홀로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간혹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매튜슨이 잡아주었다.
[오른쪽 어깨의 강화가 우선이야. 그동안 왼손으로만 던졌기 때문에 오른어깨의 근육은 약화됐을 가능성이 커. 다행인 건 오른손으로 일상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본근육은 붙어 있다는 거지.]
프로투수가 공을 던질 때 어깨에 가해지는 힘은 상상외로 크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단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곧 부상으로 이어진다.
[일단 세 달 동안은 전력으로 공을 던질 생각은 버려야 돼. 천천히 몸을 만든다고 생각해라.]
‘예.’
매튜슨의 조언에 따라 어깨강화를 이어갔다.
[하체단련에도 신경을 써야 돼.]
‘하체단련이요? 근력운동이라면 평소에도 하고 있습니다만.’
[단순히 하체의 근력만 키우는 게 아니야.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돼. 너 평소에 러닝을 어떻게 함?]
‘러닝이라면 처음에 웜업을 위해서 30분 정도 걷고 30분을 뛰는 걸로 마무리 합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첫 20분을 빠르게 걷고 10분을 전력질주하도록 바꿔.]
‘전력질주요?’
[그래. 심폐지구력이란 말을 알지?]
‘예, 들어봤습니다.’
[심폐지구력이란 심장과 폐를 강화시켜 신체활동을 전반적으로 상승시켜주는 거야. 심장이 하는 일이 뭐냐?]
‘어...그러니까, 피를 공급해준다?’
[정답. 피를 순환시켜서 전신에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심박수가 빨라지는 건 심장이 피를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하는 거야.]
‘음...’
[심장의 지구력이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 한 번 심장이 뛰는 동안 더 많은 혈액을 전신에 보낼 수 있게 돼. 혈액이 전신에 퍼지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어...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전신에 산소의 공급이 높아지면서 지구력이 올라감. 그리고 근육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부상에서도 회복력이 빨라지고. 그 외에도 많은 효과가 있지.]
신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야구를 하면서 트레이닝을 게을리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효능을 알고 하는 일은 적었다.
훈련을 하는 이유는 코치와 감독이 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번에 십수명의 선수를 가르쳐야 되기 때문에 세세한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건 프로구단 역시 마찬가지다.
파트는 더욱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모든 선수들을 세밀하게 알려줄 순 없었다.
그런데 매튜슨은 정확히 신우에게 필요한 훈련을 제시하면서 거기에 따라오는 효과를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즉, 매우 유능한 개인트레이너가 붙은 셈이었다.
이 효과는 무척이나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을 할 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하는 건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알고 한다면 너는 동작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하게 되지.
반면 그 동작의 의미를 모른다면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거야.]
‘예!’
점점 매튜슨의 말에 신뢰가 갔다.
동시에 궁금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이 야구를 하실 때는 이렇게 스포츠의학이 발전하지 않을 때 아닙니까?’
[그렇지. 죽은 뒤에 배운 거야. 저승도서관에 가면 이승에 있는 책이나 논문을 모두 볼 수 있거든.]
‘오...그거 좋네요.’
[좋으면 한 번 와보쉴?]
‘...거절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고개를 가볍게 저은 신우가 다시 운동에 전념했다.
모든 훈련을 끝낸 뒤,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을 때.
부재중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이진철 코치였다.
* * *
집 근처 고깃집에서 이진철 코치와 만났다.
1년 가까운 시간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진철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문하자 곧 고기가 나왔고 이진철 코치가 직접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임마! 너보다 내가 더 잘 구워.”
그러면서 집게를 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전과 정말 달라진 게 없었다.
가끔 2군 경기가 끝난 뒤에 코치님은 그와 몇몇 투수들을 데리고 가서 고기를 사주었다.
그때도 언제나 직접 고기를 굽는 코치님이었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냐?”
“그냥,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실없는놈.”
치이이익-!
“방출됐다며?”
“예, 그렇게 됐습니다.”
“하-! 개새끼들. 어차피 줄 월급이면 시즌 끝날 때까지 좀 잡고 있지는. 이번에 드래프트에서 왼손 애들 많이 잡아서 일찍 정리하는 거 같더라.”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 구단이 잡은 선수는 모두 10명.
9명이 투수였는데 그중에 7명이 좌완이었다.
기존에 있던 왼손투수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뭐 할거냐?”
“다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그래. 너라면 성공할 거다. 혹시 연락하고 있는 구단은 있냐?”
“아뇨, 없습니다. 맨땅부터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으흠.”
이진철이 고기를 뒤집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너 우리 학교 와서 잠깐 코치나 해라.”
“코치요?”
“그래. 뭐, 코치라고 해도 그냥 잡일 정도인데. 그래도 최저임금은 주니까, 소일거리로는 나쁘지 않을 거다. 학교측에 내가 말해서 시설도 쓸 수 있게 해놓을게.”
이진철은 현재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다.
과거보다 인기도나 화제성에서 많이 떨어지는 대학야구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코치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진철 본인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제안을 해주었다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자신을 생각해서였다.
[좋은 사람이네.]
‘예...’
좋은 사람.
그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이었다.
“왜 말이 없어? 안 할 거야?”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번 기회에 너 사이드암폼 제대로 잡아보자. 내가 그렇게 그만두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네 녀석 폼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던 거야. 날 믿고 사이드암으로 전향한 건데 말이지.”
“아...”
“응?”
“저 오버핸드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뭐? 어깨는?”
“우완으로 바꿨습니다.”
“뭐?!”
이진철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