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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게임의 공략캐가 되었다-35화 (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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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말 볼리가 사냥개 대신으로 활약할 만큼이나 냄새를 잘 맡거든요. 카미앙 님의 체취가 남아있는 물건을 준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양이 다리스는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시…. 이번에도 왕세자님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신 겁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 그럼 안된다. 다리스가 있으면 카미앙을 제치고 카카론드 새를 잡기가 더 곤란해진다.

    “그런 게 아니라!”

    일단 급하게 다리스를 막은 다음에 둘러댈 말을 생각해냈다.

    “그게…. 여긴 넓은 숲속이고 사람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오랜만에 카미앙 님과 단둘이 있을 기회라고 생각해서….”

    나는 차마 말하기 부끄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부디 다리스의 ‘왕세자를 어마무시하게 사랑하는 약혼녀 녹시아’ 필터가 팽팽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그런 사연이….”

    됐다. 다리스의 눈망울이 물기라도 머금은 듯 괜스레 아련해지는 걸 보니 내 작전이 통한 게 분명했다.

    “그 마음 백번 이해합니다.”

    다리스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고이 접혀 있던 카미앙의 손수건이 나왔다.

    “왕세자님을 꼭 만나실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제가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은혜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부디 왕세자님을 꼭 찾으셔서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난 손수건을 받아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독수공방하는 카미앙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찾아야지.’

    다리스와 나는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듯한 비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

    볼리는 내 기대대로 카미앙의 냄새를 추적했다.

    ‘난 지금 카미앙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바달이를 쫓는 거다.’

    난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이 말을 되뇌었다.

    “응? 볼리, 이제 다 왔어?’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더니만 도착한 곳은 산등성이였다. 상수리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볼리의 시선을 따라 숲 너머를 바라보니 카미앙이 보였다.

    ‘잘했어, 볼리. 네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

    카미앙이 서 있는 풀밭은 마땅히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카미앙이 더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 폼이 그러했다.

    ‘그럼 나도 굳이 저쪽으로 갈 필요 없이 여기서 지켜봐야겠군.’

    한가롭게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카카론드 새의 기운을 감지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오늘은 주인공인 카미앙이 새의 깃털을 손에 넣는 것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게 카미앙을 지켜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아주 타당한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카카론드 새를 내가 잡았다고 해도 만일 카미앙이 그걸 달라고 말한다면?’

    ‘녹시아, 그 깃털을 내게 줘.’라든지 ‘카카론드 새는 내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이 망할 몸뚱이는 깃털을 건네줄 게 뻔했다. 내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말이다.

    ‘한 귀로 흘려듣기’ 스킬은 소용없었다. 물고기인 이상 카미앙에게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걸 예전에 이미 확인했다.

    ‘이런 건 어떨까? 깃털을 얻자마자 카미앙의 명령이 들리지 않게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지르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거지. 아니면 노래라도 부르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몹시, 대단히 우스꽝스러웠다.

    ‘어쩔 수 없지. 며칠 밤 동안은 자기 전에 이불킥 좀 하는 수밖에.’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보다 더 나은 생각은 떠오르질 않았다.

    “끼이익끼이익. 끽!”

    그때였다. 사람이 일부러 내는 듯한 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검은 가시덤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카미앙이 서 있는 곳에서 오백 미터 정도 떨어졌음 직한 거리였다.

    ‘카카론드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카카론드를 잡았던 카미앙이 새임에도 생쥐 같은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를 했었으니 말이다.

    각도를 재 봤지만 역시 나무가 시야를 가려 제대로 활을 쏘기 어려웠다.

    나는 활을 들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어차피 카카론드 새도 등장한 마당이었다. 더는 카미앙 앞에 나서는 걸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하아, 내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쫓아왔군.”

    카미앙은 마치 내가 나타날 것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 이제 또 뭘 하려고 그러지?”

    지금 저 괴상한 소리보다도 내게 더 관심이 있는 거 맞지? 내겐 매우 잘된 일이었다.

    “전 그냥 사냥감을 쫓아 왔을 뿐이에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카론드 새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공작새를 모티브로 한 이 새는 나는 것 보다 뛰는 것이 더 익숙한 녀석이었다.

    “저 녀석이 당신의 사냥감이라고? 저건….”

    카미앙이 뭐라고 떠들거나 말거나 난 활시위를 당겼다. 일단은 새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내 화살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 지금….”

    물고기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황당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번에도 내 사냥감을 가로채게 놔둘 순 없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살을 메기는 카미앙의 뻔뻔스러움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카미앙은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빈말이라도 세게 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준을 빗나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와, 진짜. 유치하다 유치해.’

    이런 식으로 나와놓고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물론 난 카미앙보단 훨씬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 순 없었다.

    툭. 기세 좋게 날아가던 카미앙의 화살이 힘을 잃고 땅에 뚝 떨어졌다.

    “명중!”

    내가 카미앙의 화살을 맞췄다. 날아가는 화살을 화살로 떨어뜨리다니. 혼자 보기 아까운 묘기였다.

    “녹시아?”

    카미앙이 눈을 부릅뜨며 날 쳐다봤다. 난 다급하게 시스템을 불렀다.

    <1. 당신이 한 것과 똑같이 해준 것뿐이에요.>

    <2. 이런, 화살이 빗나갔네요.>

    “이런, 화살이 빗나갔네요?”

    난 카미앙을 향해 빙긋 웃어준 다음 바로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카미앙과 너무 시간을 지체한 바람에 새가 반대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이래서는 사거리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급히 새를 따라갔다. 물론 달리기 시작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대가 카카론드 새를 잡아서 뭐하게?”

    “그러는 카미앙 님은 저 새를 왜 잡으려고 하는 건데요?”

    “대답부터 하시오. 내가 노리고 있으니 덩달아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니오?”

    “오늘 제 목표는 바로 저 새였다니까요?”

    계속해서 시비를 거는 카미앙에게 난 연속으로 스킬을 시전하며 대응했다.

    “그대가 자꾸 말대꾸하니 제대로 달릴 수가 없잖소!”

    ‘바보 같은 놈. 네가 녹시아 멈추라고 한마디만 한다면 난 꼼짝도 할 수 없게 될 텐데.’

    카미앙이 그런 비밀을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그걸 모르고 저렇게 떠들어 대는 게 우스웠다. 그렇게 치열한 말싸움을 하며 달려가던 중이었다.

    “엇.”

    카미앙이 일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하여튼 변변치 못하기는.’

    잠깐 비웃어 주기라도 한 후에 여유 있게 카카론드를 쫓으려고 했다. 그런데 카미앙이 넘어진 곳이 하필이면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저기로 굴러가단 죽을지도? 잠깐만, 카미앙이 죽으면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자동으로 목표 달성? 아니면….’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저대로 카미앙을 둬도 되는 건가? 나로선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

    하지만 이건 하등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카미앙이 내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외쳤으니까.

    “녹시아! 도와줘!”

    좀 전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서 난리던 내게 도움을 청하다니,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더 어이없는 건 바로 내 자신이었다.

    카미앙의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에 녹시아의 몸이 반응했다. 어장을 벗어났지만 아직 물고기에 불과한 이 몸이 말이다.

    ‘야야, 이렇게 빨리 달리다간 고꾸라진다고.’

    외마디 외침과 함께 굴러가는 카미앙보다 내 다리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경사가 심한 비탈길이었다. 그곳을 날아가듯 뛰어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시야는 먼 곳까지 살피면서 위험 요소를 판단했다.

    ‘저대로 가다간 아래에 있는 바위에….’

    아직 한참 밑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대로 두면 카미앙이 곧 부딪칠 것 같았다. 크고 울퉁불퉁한 바위에 저 속도로 부딪치면 말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지 않을까.

    ‘저기까지 굴러가기 전에 내가 먼저 카미앙을 잡아야 한다.’

    물론 절대 내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이렇게 결정한 듯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굴러가는 카미앙을 앞질렀다. 바위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난 왼쪽 다리를 브레이크 삼아 속도를 줄였다.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구부리며 몸을 반대로 틀었다. 굴러오는 카미앙과 마주 볼 수 있도록.

    ‘잘못하면 나도 같이 뒹구는 수가 있어!’

    욕이 절로 튀어나올 때 카미앙의 몸뚱이가 내게 부딪쳤다. 내 몸이 벽이 되어 카미앙이 더 굴러가는 것을 막았다.

    물론 굴러오던 속도와 무게가 있으니 내게 가해지는 충격도 상당했다.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균형을 잘 잡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버텨, 버티자!’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드디어 카미앙이 멈췄다.

    그는 잠깐 기절한 것 같았다.

    “하, 그래. 네 말대로 내가 널 구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살아 있지?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대체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목숨을 거는 거냐고!”

    내 목소리가 골짜기를 두드리며 메아리쳤다.

    “거냐고. 거냐고. 거냐고….”

    ‘잠깐만. 메아리가 친다는 건?’

    좀 전에 한 말이 내 생각이 아니라 입 밖으로 나온 소리였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카미앙이 기절한 상태라고 해도 내가 카미앙한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나?

    이 생각이 들자 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쏟아졌다.

    <경★ 명성이 250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칭호는 ‘바렌시드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축>

    <경★ 특별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카미앙의 연애사에 제약이 발생합니다.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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