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마도왕 세이도과의 결투.
그 말에 차진혁은 꽤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다만,
‘그 다음 콘텐츠는?’
마도왕 세이도는 아르비스에서도 거의 끝판왕에 가까운 존재였다.
마도제국 매지크의 상징이자 랭커들의 랭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마법사.
필연적으로 일대일 전투에서 불리한 마법을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대종사.
모두 세이도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이런 세이도와 싸운다면 그 다음 콘텐츠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누구와 싸워도 밋밋해질 테니까.
“현실적으로 잘 생각해 봐, 김철수. 솔직히 마도왕 빼고 그나마 너랑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있을 것 같아?”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은 법이니까.
자신은 전투 특화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저 방송하는 엘튜버일 뿐이니까.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분명 강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쫄깃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장소나 시련들도 많이 존재할 것이었다.
“아니? 없어.”
“……너무 성급한 판단 같은데.”
“김철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 네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은 굴러가지 않아. 보통 세상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누굴 뽑을 것 같아?”
“음.”
후보군이 너무 많았다.
무투계열, 검술계열, 마법계열, 암살자계열, 기타 등등.
수많은 계열의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많았으니까.
아르비스 랭커들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별처럼 많은 강자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최강의 검객을 꼽아.”
“하지만…….”
“알아. 익히고 있는 검술의 상성에 따라 다르긴 해도 검술가들은 창술가들에게 좀 약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 하지만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야. 중요한 건 최강의 검객이 곧 최강의 플레이어라는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있다는 거야. 그럼 현존하는 최강의 검객은 누가 있지?”
최강의 검객이라.
그렇다면 후보군이 훨씬 더 좁혀졌다.
이를테면 검의 현인 그리들이라든가, 스웨딘 제국의 황제 카일이라든가.
“보통은 검황전의 우승자를 꼽지. 이번 해 검황전의 우승자가 누구더라?”
“…….”
“사람들이 보기에 너는 이미 최강자의 반열에 올랐어. 어차피 마도왕 말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결 상대가 몇이나 있을 것 같아?”
어차피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콘텐츠를 소모해도 별로 상관없다는 조언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엘튜버로서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에 차진혁은 마음이 조금 아파 왔다.
그 모습을 보니 한세린도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걱정 마. 어차피 방법은 다 있어.”
“소통방송으로 전향하라고?”
“아니. 너는 소통방송에 별로 재능이 없는 편이라서.”
그 신랄한 말에 차진혁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해 주는 군주 플레이어의 조언은 달콤한 것이었으니.
“그럼?”
“나이를 먹으면 돼. 다행히 넌 비전투 계열 플레이어잖아? 시간이 흐르면 약해질 거야. 통계를 살펴보니 비전투 플레이어의 경우, 서른 살을 넘어가면서부터는 급격히 약화되더라.”
* * *
차진혁은 마도왕과 결투 콘텐츠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싸우면 별로 재미가 없는 법.
‘어그로가 필요한 법.’
방송에도 셋업 과정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쏠리게 하고 관심을 끌어 올려야 했다.
차진혁은 검황전의 우승자로서, ‘전투에 있어서 마법은 열등한 학문이다’라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했다.
이 방송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검황전 우승자 패기보소 ㅋㅋㅋㅋㅋㅋ
-근데 김철수가 말하니까 왠지 맞말 같기도 하고
-마도왕 나타나기 전에는 정설 아니었음?
-마도왕 빼고 전투마법사들이 검객들한테 안 된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긴 함 ㅋㅋ
일부 전투마법사 집단에서 반발하며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얼추 ‘김철수가 말하니 그럴듯 한데?’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생각보다는 어그로가 약했던 것이다.
‘이게 아닌데?’
떡밥이 활활 불타올라야 하는데 화력이 좀 부족했다.
‘이 정도쯤 하면 전투 마법사 몇이 열 받아서 나를 찾아와야 하는데.’
그렇게 전투 전문 마법사들과 결투를 치르고 꺾는 셋업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이슈를 끌다가 결국은 마도왕과 싸우는 것.
그것이 목표였는데 찾아오는 전투 마법사가 한 명도 없었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전투 마법사들은 다른 계열 마법사들에 비해 자존심이 무척 강한 집단이었다.
‘전투’는 마법의 비주류였다.
사람을 죽이는 파이어볼을 10년 동안 연구하는 것보다, 1년 동안 칼을 휘두르는 것이 전투에는 훨씬 더 유리했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기어이 전투마법을 갈고닦은 전투 마법사들의 자존심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수십 명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왕유미는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썼다.
그녀 또한 수십 명이 달려들 걸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다 짜놨는데 아무래도 폐기해야할 것 같았다.
“철수 님이 너무 센가 봐여.”
“왕유미. 네가 보기에도 내가 너무 센가?”
“그렇죠?”
왕유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전투 콘텐츠로는 슬슬 한계점에 도달할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저도 채널이 부흥할 수 있도록 다른 돌파구를 찾을 테니깐!”
왕유미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지만 차진혁은 조금 더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왕유미는 이미 돌파구와 대책을 다 생각해놓고 ‘자 어떤 선택지가 마음에 들어요?’ 하는 사람이지, ‘다른 돌파구를 찾을 테니 나만 믿어요’ 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나름 진지한 회의를 이어가는 그 때, 차진솔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오빠! 오빠! 오빠!!!”
“엘튜브 각?”
“마도왕이 쓰러졌대!”
“……뭐?”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도왕이 쓰러지면 이제 콘텐츠 진행은 어떡한단 말인가.
“오빠 피 좀 뽑자.”
“왜?”
“불로초 머금은 김철수 포션이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차진혁 본인에게 있어서 불로초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옆에 있던 테르서 박과 한세린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다.
둘 다 무려 레벨이 30이나 올라버린 것이다.
이미 레벨업이 힘들다고 정평이 난 300대 중반에 접어든 이들에게 있어서 30레벨업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직접 섭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잔향을 좀 들이마셨을 뿐인데 말이다.
“좀 많이 뽑아도 되지?”
“그래.”
차진솔이 손가락을 튕기자 대포처럼 커다란 주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찌른다.”
푹!
주사기가 꽂혔다.
* * *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엄청난 경지에 오른 랭커들은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
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경지에 오른 랭커일수록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레벨 1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과 레벨 400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그 질과 양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레벨 1이 레벨 2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토끼 몇 마리를 사냥하면 되지만, 레벨 400이 401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최상위 랭커들의 사망률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었다.
마도왕 세이도도 마찬가지였다.
‘극의에 다다를 것이다.’
마도왕 세이도는 김철수를 보며 크게 자극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르비스의 최강자라 불리게 된 이래로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시험 아닌 시험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전투마법의 한계인가.’
태생의 한계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술은 베는 데에 적합하고 궁술은 쏘는 데 적합했다.
마법은 인류 문명을 이롭게하고 전쟁에서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일대일 규모 수준의 작은 전투에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젊었을 적에는 그 모든 한계를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레벨 400이 넘으면서, 실력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철수를 알게 되었다.
‘비전투 계열 엘튜버!’
과거 스트리머라고 불렸던 직업.
현재는 엘튜버라 불리는 그 직업은 누가봐도 전투에 유리한 직업은 아니었다.
괜히 전 우주가 나서서 ‘엘튜버(스트리머) 보호조약’ 같은 걸 만들어서 보호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태생적으로 불리한 엘튜버가 검황전에 나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가르비누와의 전투조차 싱겁게 이겨버렸다.
그를 보며 깨달았다.
‘태생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발전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기한 명상에 돌입했다.
그 안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약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심장에 쌓았던 모든 마력을 버려야 한다.’
마법사들은 심장에 고리를 만들어 마력을 쌓는다.
마법을 사용할 때, 그 고리에서 마력을 꺼내 동력원으로 이용한다.
그것이 마법사들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고리를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고리에서 벗어나야, 나의 한계를 넘을 수 있어.’
고리라는 특정한 방법에 제약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연에 퍼진 무한한 마력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계가. 이 우주가.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고리가 될 수 있었다.
명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그의 고리들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뒤따랐지만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결국 8개의 고리를 모두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풍만했던 마력이 모두 사라졌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받아들인다.’
자연을 몸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한낱 인간의 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결국 마력폭주 현상을 겪고 쓰러져버렸다.
그의 몸은 더이상 복구될 수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신성제국 헬렌의 고위사제들과 매지크의 치료 전문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목숨만 겨우 붙여놓은 상태가 되었다.
그때, 자유의 성녀 차진솔이 나타났다.
“김철수 포션을 가져왔어요!”
고위 사제들과 전문 마법사들이 일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김철수 포션의 효과는 익히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김철수 포션에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몇몇은 은은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대는 마법을 무시한 김철수의 친혈육 아닌가?”
“그런 자가 감히 이곳을 찾다니.”
차진솔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중요하죠. 우리 오빠는 어떻게든 마도왕과 싸워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건 평범한 김철수 포션이 아니거든요.”
“김철수 포션이 아니라 김철수 할아버지 포션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니까!!!”
“불로초를 넣은 포션이면요?”
“하아. 여기까지 와서 그런 장난을 하는 건가? 무례하군!”
그때, 소리를 버럭 지른 사람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철수의 방송 알람이었다.
[불로초]
그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들의 핸드폰도 울렸다.
김철수가 마법을 무시했다며 화를 냈던 사람들도 포함이었다.
“따, 딱히 구독자는 아니네만.”
“팬이라서 누른 건 아냐.”
지금 울린 알람은 구독자 전용 알림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방송의 내용은 엄청났다.
김철수가 불로초를 얻게 된 경위가 그것을 흡수하게 된 내용.
그리고 차진솔이 거대한 주사기로 그 피를 뽑고 김철수 포션을 만든 내용까지.
“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