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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31화 (431/437)

431화

테르서 박은 식은땀을 흘렸다.

‘눈빛이 살벌해.’

교감하려는 생명체의 기분에 무척 예민한 테르서 박인 만큼, 황금웅이 자신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테르서 박은 기본적으로 교감을 중시하는 테이머.

상대가 싫다하면 그것 또한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황금웅이라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생명체가 그의 욕심을 자극했다.

‘한 번만 더 인사를 나눠보자!’

그래도 싫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겠지.

목소리에 친밀의 마력을 담아 얘기했다.

“내 이름은 테르서 박. 너와 친구가 되고 싶단다.”

황금웅이 듣기에는 너무 가소로운 소리였다.

앞발에 스치기만 해도 쇳물이 되어 녹아버릴 녀석이 친구라니.

감히 제 주제에!

계속 눈을 마주쳤다가는 실수로 머리통을 날려 버릴 것 같아서 황금웅은 고개를 휙 돌렸다.

“어쩔 수 없나…….”

테르서 박은 품 안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차진혁은 깜짝 놀랐다.

‘테르서 박이 몽둥이를?’

설마 저걸로 황금웅을 공격하려고 하는 건가?

생명체 애호가인 테르서 박이?

교감을 세상에서 제일 중시하는 그 테르서 박이?

테르서 박은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몸을 부르르 떨고서 몽둥이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크흑……!”

그는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가 미쳤지!’

예전, 김철수의 ‘길들이기(물리)’를 보면서 악영향을 받았던 게 컸다.

아주 잠깐이지만 패서라도 애를 길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니.

‘나는 쓰레기다.’

그가 자책하는 것을 본 차진혁은 테르서 박이 부러워졌다.

‘진짜 힘들어하네.’

저런 희노애락이 있어야 방송도 재미있는 법이다.

고구마 없이 사이다만 있으면 질리는 법.

테르서 박은 충분히 고뇌했고, 열심히 시도해 봤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시도까지 고려했을까.

‘여기서 완전히 실패하면 그냥 고구마로 끝나겠지만…….’

엘튜버로서 그렇게 두고볼 수는 없는 일.

차진혁이 황금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이좋게 지내라.”

굳이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능이 높은 녀석이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개체.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을 녀석이라 생각했다.

“자. 가서 악수하고.”

황금웅은 쭈뼛거리며 다가가 테르서 박 앞에 두 발로 섰다.

테르서 박을 집어삼킬듯 거대한 덩치였다.

그리고 테르서 박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나를…… 친구로 인정하겠다는 건가?”

테르서 박은 크게 감동받았다.

드디어 황금웅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으하하! 으하하핫!”

한세린은 약간 의아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 김철수가 테이밍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테르서 박이 기뻐하는 걸 보나, 차진혁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나, 저 둘의 세계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테르서 박은 신이 나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한세린. 김철수. 봤나? 내가 성공했다!”

“축하한다, 테르서 박.”

“그, 그래. 축하해. 대단…… 하다고 해야 할지.”

테르서 박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과일 꾸러미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과일 꾸러미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먹는 맛 좋은 버터빵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나 뭐라나.

“우리가 친구가 되었다는 증표지!”

한세린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친구가 아니라, 빵셔틀 같은데…….

* * *

지구 최초의 황금웅 테이밍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녹화한 차진혁이 말했다.

“황금웅이 이 숲의 제왕이냐고 물어봐 줄래?”

“그러지! 웅아. 네가 이 숲의 제왕이지?”

황금웅은 은근슬쩍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저런 괴물이 여기 있는데 자신을 제왕이라고 칭해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황금웅은 눈치가 제법 빨랐다.

“그렇다고 하는군. 자기야말로 이 숲의 진정한 제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릴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봐 줄 수 있나?”

그 말에 테르서 박이 인상을 찡그렸다.

교감을 나눈 친구의 등에 타겠다니.

“그건 웅이에게 너무 가혹하고 야만적인 처사 아닌가……?”

“너 뇌룡 등에는 잘만 탔잖아.”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종족 차별주의자였나?”

“아, 아니!”

이는 아주 민감한 이슈였다.

차진혁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종족 차별주의자’는 그 단어만으로도 확실한 어그로가 되어줄 테니까.

“황금웅에게 물어보겠다.”

황금웅은 답답했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저 진정한 제왕이 원한다면 물구나무 서서 춤도 출 수 있었다.

“웅아. 우리를 좀 태워줄 수 있겠니?”

자꾸 친구를 자처하는 저 얼간이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다.

그랬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참고 있지만.

“좋다고 한다. 원래 누군가를 태우는 걸 즐긴다고 하는군!”

차진혁 일행은 황금웅의 등 위에 올라탔다.

한세린은 무척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드랍다고?’

아까 분명 잘못 건드렸다가 피가 철철 났었는데?

지금은 보드랍고 푹신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최고급 호텔의 침대 같았다.

황금웅의 등에 탄 채 몇시간을 이동하자, 눈 앞에 잘 닦인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부터는 안개도 보이지 않는군요.”

도로를 기점으로 해서, 신기하리만치 안개가 차단되어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안개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차진혁 일행은 황금웅의 등에서 내렸다.

“웅아. 고마웠다. 응? 과일 꾸러미와 버터 바른 빵을 가져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하! 살벌한 농담도 잘하는구나!”

테르서 박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과일 꾸러미와 버터 바른 빵은 꼭 가져다 주마. 약속하지.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왔어. 이제 숲으로 돌아가 다시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렴!”

그렇게 말했지만 황금웅은 제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쭈뼛거리며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는데, 테르서 박은 조금 오해하고 말았다.

“나도 물론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단다!”

테르서 박이 황금웅의 앞발을 끌어안았다.

황금웅은 저도 모르게 앞발을 휘둘러 테르서 박을 떨쳐냈다.

테르서 박은 꽤 높이 날았다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황금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가슴팍을 쳤다가 저만치 멀리 기절한 테르서 박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아, 그래. 고의가 아니라고?”

황금웅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일 수는 있지. 하지만 쟤하고는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라. 알겠지?”

지구 최초의 테이밍이 결국 실패로 끝나게 둘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괜히 주작 논란이 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황금웅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봐라. 다음에 또 보자.”

차진혁의 허락을 받은 황금웅은 그제야 잽싸게 숲 안쪽으로 도망쳤다.

* * *

인위적으로 조성된 대로.

말 여덟 필이 이끄는 마차가 여러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쾌적한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한세린이 물었다.

“너도 황금웅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였어?”

“어,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완벽하게는 아니다?”

“테르서 박이 이해하는 거랑 내가 이해하는 게 조금 다르더라고.”

“어떻게 다른데?”

“음, 내가 들은 건 과일 꾸러미가 아니라 과일 동산이었고, 버터바른 빵이 아니라 꿀단지였는데……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한세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테르서 박이 틀렸고 차진혁이 옳다.

차진혁이 들은 게 훨씬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었다.

“……그냥 네가 테이밍했다고 발표하는 편이 낫지 않아?”

“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도 너무 강해져서 걱정인데, 테이밍까지 완벽하게 해버렸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테이밍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황금웅을 테이밍하는데 성공했다는 소문이 나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영상으로 보면 누가 봐도 네가 테이밍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오해야.”

“그래, 그런 걸로 하자. 하지만 편집은 잘해야 할 거야. 누가 봐도 네가 한 것 같거든.”

차진혁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 편집자 능력이 뛰어나긴 해.”

기절한 테르서 박의 입에 김철수 포션을 흘려 넣어주었다.

* * *

‘왔군.’

키옌 가문의 정문 앞에는 펭귄 수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의 오른 손에는 종려나무로 만든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었는데, 지팡이 끝에는 상서로운 녹색 빛을 내뿜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다칸.

거의 매일 부재중인 사라키옌을 대신하여 키옌 가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전대 가주 시절부터 키옌가문을 섬기던 집사장으로서 세뇌와 정신계 마법의 달인이었다.

‘가주께서는 그냥 들여보내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키옌 가문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6대 가문 가주들의 만장일치 사인을 받은 자뿐이었다.

전대 가주 때부터 이 가문을 섬겨온 다칸은 절대로 침입자들을 들여보내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

그간 키옌 가문을 찾아온 모험가들은 꽤 많았다.

제법 실력 있는 자들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펭귄 마법사 다칸의 정신계마법을 이겨내지 못했다.

‘[안개의 숲]을 지나오면 그 어떤 절대자라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마련.’

괜히 저곳이 자연이 만든 천혜의 미궁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키옌 가문의 식솔들만 알고 있는 특별한 ‘생로’를 아는 것이 아니라면, 정신적으로 무척 곤고해진다.

그 상황에서 다칸의 정신계 마법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그가 종려나무 지팡이를 휘둘렀다.

“어서 오시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대들은 어디로 가려는가!”

인사로 가장된 마법 영창이었다.

종려나무 지팡이로부터 뿜어져 나온 무형의 마력이 세 사람을 옭아맸다.

다칸이 자랑하는 ‘마인드 컨트롤’ 마법이었다.

“나는…….”

한세린도 크게 소리쳤다.

“두더지의 둥지로 갈 거다!!!”

마인드 컨트롤 마법에 당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 혹은 ‘고향’ 등을 목적지로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다시금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제정신이어도 ‘안개의 숲’을 통과하기 어려운데, 마인드 컨트롤에 당한 상태의 모험가들은 대부분 ‘안개의 숲’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래. 가라. 두더지의 둥지로!”

두더지의 둥지가 어딘지는 모르겠다만 상관은 없었다.

아무튼 목적지만 확실히 정해주면 되는 거였으니까.

“자!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나는…….”

테르서 박도 우렁차게 외쳤다.

“유니콘 동산으로 갈 거다!”

“그래. 가라. 유니콘 동산으로!”

이제 한 명 남았다.

다른 모험가들에 비해 꽤 평범한 느낌이었다.

방금 둘은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모험가들 같은 느낌이었으나, 가운데에 선 저 키 큰 녀석(김철수)은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저 녀석이 김철수 아닌가?’

소문이 많이 과장된 건가 싶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마력을 끌어올려 마인드 컨트롤을 사용했다.

이제 김철수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자!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차진혁이 다칸 앞에 섰다.

“이 검을 가져 왔거든. 이름은 고검. 얘가 자기를 열쇠라고 하더라고. 키옌 가문에 뭔가 숨겨져 있대.”

“?”

“내 방송 보면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그제야 다칸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세 사람 모두가 안개의 숲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고 저택을 향해 계속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다칸의 귓가에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펭귄 놈아. 진정한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 무슨 추태냐! 흰 곰에게 잡아먹혀도 싼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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