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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19화 (41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19화

거실 테이블에 누워 있던 백과사전이 벌떡 일어섰다.

“김철수! 드디어 왔나!”

방송을 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한 백과사전이 결국 차진혁의 집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주급 시나리오가 더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차진혁이 그걸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최소 한 단계 이상은 스킵했을 터!’

백과사전은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우주급 시나리오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더 진행되었다면 어떤 보상과 방향이 주어졌는지.

“내가 무례를 저질렀다는 건 사과하지.”

“…….”

백과사전은 슬쩍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가르비누를 물리치고 돌아왔는데 표정이 영 밝지 못했다.

“주, 주거침입에 많이 예민한 편인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좀 의아한 게 있어서.”

“뭐, 뭐지?”

“가르비누를 처치…… 아니, 놓쳐버린 것까지는 봤지?”

“그래. 정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더군. 하지만 나는 그가 도망가지 못했을 거라 보는 편이다.”

“……뭐?”

“내 주관적 관점에 따르면 도망에 실패했어. 도망치려다가 사망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차원의 균열도 감지되지 않았고, 그 어디에도 도망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어. 대부분 도망에 실패한 경우다.”

백과사전이 흐흐 웃었다.

“그러니까 후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 이제 표정 좀 푸는 게 어때?”

“……젠장. 티 났냐?”

“그래. 누가 봐도 기분이 나빠 보이는군.”

“아니. 가르비누가 죽은 게 티 났냐고?”

“?”

백과사전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진혁의 말을 이해했다.

“설마 네가 죽인 거냐?”

“그렇게 된 것 같다.”

차진혁은 불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렇게 죽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지.”

“……그러니까 너무 쉽게 죽어버려서 열 받은 건가?”

‘김철수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멀었군.’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정말 최후의 방법을 써서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랬으면 좋겠군.”

차진혁이 약간 침울해진 탓에 백과사전은 얼른 본론을 꺼냈다.

“우주급 시나리오가 더 진행됐겠지?”

“그래.”

차진혁이 또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래도 기분 나쁜 것들 투성이였다.

“왜? 설마 이번에는 스킵이 안 됐나?”

한국맵의 플레이어들은 스킵에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주급 시나리오마저 스킵해가며 진행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제 사람들도 김철수의 스킵에는 꽤 익숙해진 상태.

이제는 스킵을 안 하면 전개가 느리다는 불만까지 터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킵은…… 했지.”

이게 백과사전이 궁금하던 것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기껏해야 한 단계 정도 했겠군.’

직전이 12였으니,

“그럼 이제 (14)가 펼쳐졌나?”

“아니.”

“음, 그럼 (15) 정도?”

사실 백과사전이 스킵의 한계치로 생각했던 게 대략 두 칸 정도 되었다.

14 혹은 15.

그가 예상했던 수치였다.

“아니.”

“설마…… (16)?”

“아니다.”

차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X팔.”

“……뭐?”

“아니, (18)이라고.”

“…….”

(12)에서 무려 (18)까지.

6단계나 스킵해 버렸으나 차진혁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로 기뻐보이지 않는군……?”

평범한 엘튜버였다면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를 쳤을 텐데?”

“근데 아무런 보상이 없었어.”

그래서 방송에 공개하지도 못했다.

뭔가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얻은 게 없으니까.

무슨 무료 봉사도 아니고 말이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고구마라고 욕 먹기 딱 좋았다.

“아무래도 시스템 오류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저번부터 말로 때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이건 오류가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전직 관리자인 키하엘에게도 연락을 넣어놓은 상태.

키하엘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백과사전이 약간 다른 의견을 냈다.

“내 생각은 다르…… 딸꾹.”

백과사전은 황급히 책을 덮고 책장으로 숨었다.

차진혁의 눈빛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차진혁은 책장에 숨은 백과사전을 꺼내 펼친 뒤 얼굴에 신경질적으로 낙서했다.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시오.]

[아무래도 네가 너무 강해져서인 것 같다. 보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는 인터넷 논객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다.]

[…….]

* * *

검황대장 카일은 약간 울고 싶었다.

‘사표를 진작에 던졌어야 했는데…….’

지구로 가서 김철수를 잡아오라니.

김철수의 광기와 강함에 이미 질려버릴 대로 질려버린 카일인만큼, 이 명령은 정말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정이 있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그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불복종하고 도망쳤다간 이 업계에 발도 못 붙여.’

검황대장으로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퇴직을 할 수는 없는 법.

돈도 돈이거니와 아이와 아내 앞에서 자랑스런 아버지여야만 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놈이 순순히 끌려올까?’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지구에 도착했다.

검황대원들도 약간 긴장한 상태였다.

“지구는 수호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입니다, 대장님.”

“안다.”

“수호수의 권능을 파괴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입니다.”

“흥, 그까짓 수호수 따위.”

카일은 검황대장다운 모습으로 허세를 부렸다.

과연 대장님이시다 하고 검황대원들은 카일을 향해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곧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래.”

카일은 검을 뽑아 들었다.

두 발자국 앞.

수호수의 권능이 느껴졌다.

김철수에 적의를 갖는 모든 것들을 배척하고, 김철수가 설정한 모든 적들을 막아내는 권능을 가진 결계.

그 순간, 수호수가 차진혁에게 물었다.

-검황대가 당도하였도다!

“카일도?”

-김철수를 사로잡아주겠다고 외치고 있도다! 근데 적의는 안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도다!

그간 기분이 조금 나빴던 차진혁은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가르비누 사태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복은 꽤 있는 느낌이었다.

‘가르시아도 그렇고 카일도 그렇고…….’

가르시아는 훼일러의 가주.

카일은 검황대장.

그 쯤되는 인물들이 아무래도 방송을 많이 생각해 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부수도록 허락해 주면 좋겠도다! 헤헤.

“아니. 적당히 통과시켜.”

-적당히?

열 명 중 다섯 명의 머리를 깨뜨리면 적당히인 건가?

알겠다고 대답한 수호수는 검황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 * *

“큭…… 지구의 수호수가 강력하다더니…….”

검황대 전력의 절반이 줄었다.

전투불능이 된 검황대원들은 후방으로 빠져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이제 남은 검황대는 50여 명가량.

“그래도 생각보다 할 만한데?”

“이 정도면 아르비스의 수호수보다는 약한 것 같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 말을 한 검황대원의 이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치명상이었다.

“수호수도 지쳤다.”

“이 틈을 타서 진격한다.”

검황대원들은 지면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희동에 도착한 검황대는 차진혁의 집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과연 검황대다운 기동력이었다.

검황대장 카일은 속으로 다짐을 굳혔다.

‘가르비누도 패배한 마당에 싸워서 지는 건 괜찮다.’

불명예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싸우기도 전에 도망치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 패배하는 쪽이 훨씬 낫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의 명예는 챙길 수 있었으니까.

그게 그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허세를 부리며 차진혁을 도발했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네가 그토록 오염된 자인지 모르고 네게 심검의 경지를 가르쳤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군. 지금 당장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 목소리와 기세가 자못 살벌했으나 차진혁에게는 달콤하게 들렸다.

목소리 안에 진짜배기 살기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연기가 살짝 부족하네.’

차진혁 입장에서는 그랬지만 사실 괜찮았다.

일반인들은 이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테니까.

저 정도면 꽤 훌륭한 연기라고 할 수 있었다.

차진혁이 대문을 열고 걸어나왔다.

“카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는 아무런 죄가 없어.”

“그건 대 스웨딘의 황실이 판단할 것이다.”

카일은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차진혁과의 거리를 좁혔다.

“만월.”

그의 검에서 흩뿌려진 검기가 은빛 구체를 형성하는가 싶더니 거대한 달의 형상이 되어 차진혁을 덮쳤다.

그가 선보일 수 있는 대인 공격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비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느린 듯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눈에 보이나 피할 수 없는 중검(重劍)의 묘리.

묵직한 힘이 담긴 만월이 차진혁의 퇴로를 차단하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내어 만월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꽝-!

만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컥!”

만월은 카일이 본인의 마력을 사용하여 구현한 검기.

카일과 연결되어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지자 카일은 피를 토해냈다.

차진혁의 강함을 이미 알고 있었고 마음으로 이미 대비하고 있었건만, 방어신비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정도라고?’

온몸의 마력이 진탕했다.

여기서 적당히 쓰러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부하들이 보고 있고, 아마 영상을 통해 우주로 뻗어나갈 거다.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달이여, 갈라져라.”

만월이 수백 개의 날카로운 조각으로 변하여 차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마치 보석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어 보였다.

환상검희가 초월적인 속도로 망치를 휘두르며 주인을 보호하고자 애썼으나 갈라진 파편이 너무 빠르고 많았다.

환상검희의 옷 여기저기가 찢어지며 넝마 차림이 되었다.

그런데 그건 차진혁도 마찬가지였다.

“큭.”

차진혁의 잘 찢어지는 방어구 여기저기가 찢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았으나 카일은 알고 있었다.

‘옷만 찢어졌지 그 흔한 생채기 하나 없다.’

실로 괴물 같은 방어력이었다.

절대결계를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는데 저 정도라니.

그 또한 차진혁을 만나고서 배운 것들이 조금 있었다.

‘가장 화려한 검술을 선보여야 한다.’

그래야 대중들이 이 패배를 납득해 준다.

그 납득이, 은퇴 이후의 삶을 보장해줄 것이었다.

그는 하늘 높이 도약하여 검기를 응축시켰다.

검황대원들이 보기에는 영 이상한 행동이었다.

‘왜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이시지?’

‘공중보법을 주력으로 익히시지 않았을 텐데?’

‘대장님은 겉으로만 화려한 기술을 혐오하시는데?’

그리고 차진혁은 감탄했다.

‘나를 위해서 평소의 신념까지 버린 건가?’

콘텐츠 전쟁에 함께하는 전우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화려하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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