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8화
가르시아의 미소에 게르독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김철수에게 진짜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혹시나 싶어 재차 물어서 확인했다.
“우리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굳이 또 고행의 계단을 올라오게 했고요?”
“고행이 정신을 맑게 하니까.”
“…….”
“왜 은혜를 그딴식, 아니, 그런 방식으로 갚으시는 겁니까?”
“게르독.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사제의 명예일세.”
“……예, 그렇죠.”
게르독은 차라리 울고 싶었다.
가르시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제들이 보통 저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상인인 게르독 입장에서는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후원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을 하면, ‘그대의 신앙심에 감격받았습니다. 자! 선물입니다. 와서 개고생 좀 하고 가십시오’라고 하는 게 보통의 사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게르독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이미 서신을 보냈다고요?”
“좋은 걸 빨리 전해야 한다고…….”
“장로 새ㄲ…… 아니, 장로분들이 그러셨죠?”
김철수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중재해야겠다.
게르독의 마음속에 사명감이 피어올랐다.
* * *
가르시아 훼일러가 곧장 본론을 꺼내려고 했다.
“성마봉인전ㅇ…….”
게르독이 잽싸게 나섰다.
“고생하셨습니다. 기도원이 저 앞에 있습니다. 기도 먼저 해드리겠습니다. 가주님. 응접관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얼른 축복의 기도만 해드리고 돌아오겠습니다. 괜찮으시죠?”
게르독은 조금 슬퍼졌다.
‘보통은 휴식을 취해야 하니 안락한 장소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하는 게 상식적인데 여기는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면,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기도원 쪽으로 걸음을 옮긴 게르독이 아주 작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진혁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훼일러 가문은 방송을 아는 곳이다.
저렇게 급박하되 조심스러운 태도로 또 방송각을 잡아주고 있지 않은가.
“가주께서는 아마 성마봉인전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하실 겁니다. 사제복에 대한 선물로요.”
“……오, 성마봉인전 말입니까?”
차진혁의 반응에 게르독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모욕적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좋은 마음으로 헌금했더니 가서 목숨 걸고 싸우라니.
그것도 엘튜버에게.
이러면 정말 큰 후원자를 잃게 되는 셈이었고 게르독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오해는 마십시오. 가주께서는 그게 정말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김철수 경을 모욕하려거나 이용하려는 생각은 일절 없으실 겁니다.”
“성마봉인전 사망률이 꽤 높지 않나요?”
“……그.. 엄청 높지는 않고 20…… 아니, 30퍼센트 정도…….”
게르독은 더욱 부끄러워졌다.
사망률이 30퍼센트에 이르는 사지에 후원자를 밀어 넣겠다고 고백하는 꼴이니까.
“이것은 서로의 사고방식에 따라 오해가 조금 있을 수 있는 부분으로…….”
“역시.”
역시 사제새끼들은 생각하는 꼴이 보통이 아냐.
내 다시는 사제와 상종하지 않겠다! 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게르독은 실제로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고.
“훼일러 가문이라면 이럴 줄 알았습니다.”
“그, 그게 저희가 은혜를 모르는 게 아니라…….”
“고맙습니다.”
“……예?”
“엘튜버로서는 최초 맞죠?”
최초 공개는 못 참지.
* * *
-솔직히 김철수가 성마봉인전 참여하는 건 에바 아님?
-대대로 사제들과 성기사가 파견된 걸로 아는데?
-아님. 사제들하고 성기사만으로는 부족해서 각종 결계술사와 마법사들의 도움도 받았음.
사제들과 성기사들만 성마봉인전에 참여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했으나 대중들은 속사정까지는 잘 몰랐다.
주도하는 세력이 헬렌제국이다 보니, 사제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 몇몇은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신앙심을 증명하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저렇게 영광된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단 말이냐!
-참가 서원을 몇 해째 보내고 있는데 나는 안 받아주면서 저런 가짜 신자를 받아주다니! 통탄할 일이다.
놀랍게도(?) 성마봉인전에 참가하게 된 김철수를 질투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솔직히 조 단위 다이아면 신앙심 증명한 거 아님?
└어리석은 소리. 신성한 신앙은 돈 따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응 아니야 증명했어
차진혁은 여러모로 박학다식한 욜린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성마문에서 많은 악마들이 튀어나온다던데…… 좀 유용한 정보들이 있을까?”
“물론이죠.”
욜린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펼쳐서 악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악마는 보통 정의되지 않은 차원으로부터 소환되는 존재들이라고 해요.”
“정의되지 않은 차원?”
“지성체들의 불안, 우울, 분노, 좌절 등 어두운 감정들이 모여 가상의 차원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개념이에요. 이건 가상 차원을 처음 주장한 유리미다크 학자의 가설로써…….”
말을 이어가는 욜린은 굉장히 신나 보였다.
“형상은 다양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고 관자놀이 부근에는 뿔이 나 있어요. 뿔의 개수에 따라 강함이 결정되는 경향성을 보인답니다. 악마의 뿔에는 악마들의 힘이 담겨 있다고 전해져요.”
“그러면 뿔이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악마들은 뿔을 잃으면 힘을 잃는다.
그렇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보호받는 부위이기도 했다.
“유리미다크는 악마들의 뿔에 강력한 마법결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현시대의 마법으로는 깨기 어려운 결계죠. 성마봉인전에서 결계술사가 아니라 사제들이 주축이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신성력이 그들의 뿔을 약화시키거든요.”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들은 무척 강력하니까…… 적당히 위기감을 연출하고.’
“신성 속성을 담아 공격하면 꽤 효과가 있다는 거지?”
“네. 그래서 많은 연금사제들이 동원되기도 하죠.”
무기에 신성 속성을 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신성포션을 무기에 바르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미리 대량으로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무기와의 시너지가 좋다는 장점도 있었다.
궁수들의 경우에는 화살촉에 신성포션을 매달아 쏘기도 했다.
‘나도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네.’
“차진솔한테 신성력 포션을 미리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
“자유의 성녀. 그분은 연금술을 전문으로 익힌 사제가 아니지 않나요?”
“연금술을 익히진 않은 것 같던데…….”
“그러면 조금 어려워요. 단순히 신성력을 붓는다고 해서 포션이 완성되는 게 아니거든요. 신성력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가문 혹은 신전의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해요. 몇몇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야차의 머리카락, 100년 된 산골 거북이의 등껍질, 늪지대 괴물 메리나의 이빨…….”
“내가 듣기로 신성력을 왕창 쏟아부으면 된다던데?”
“……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확한 배합법을 사용하여 신성포션을 만들면 1의 신성력으로 신성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신성력을 아끼기 위해 지나온 역사가 창조해 낸 지혜였다.
‘그게 됐으면 연금사제들 다 굶어 죽었죠!’
그렇지만 그녀는 워라밸을 꿈꾸는 직장인.
사장의 오류를 지적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긴! 그런 방법도 있겠네요!”
해보고 안 되면 말겠지 뭐.
* * *
“오늘은 신성력 포션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차진혁은 이제 상황에 따른 의복 설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제들이 입을 법한 하얀색 사제복에 특수 제작한 라텍스 고무장갑을 꼈다.
차진솔도 마찬가지였다.
“혈사제의 능력을 빌려보려고 하는데요.”
차진혁의 얘기를 들은 시청자들은 ㅋㅋㅋㅋㅋ를 쏟아냈다.
-이번엔 코믹이 컨셉인가?
-신성력을 때려넣어서 포션을 만든다닠ㅋㅋㅋㅋㅋ
-아 오늘은 혈사제 기절 콘텐츠인가요?
-동생 엿 먹이려는 흔한 오빠.jpg
차진솔은 두근거렸다.
‘신성력 포션을 만들다니!’
몇 번 재미 삼아서 만들어보기는 했지만 사실 효과는 별로 없었다.
시간과 체력을 써서 포션을 만드는 것보다 그냥 연금사제들에게 돈 주고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차진솔이 차진혁과 눈을(카메라를) 마주쳤다.
“저는 혈사제고요. 피를 매개체로 신성력을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빠의 피를 사용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방송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빠 피랑 제 직업이랑 시너지가 엄청 좋아서요.”
차진솔은 흐흐 웃으며 대침을 꺼내 들었다.
혈사제 입장에서 상성이 좋고 깨끗한 피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찔러볼게요!”
차진혁의 손가락을 찔러서 나오는 피를 마셔서 포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 * *
[이건 연금술을 모욕하는 행위다]
[연금술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성사제들을 모욕하는 행위]
연금술사들과 사제들은 분노하는 한편 차진혁 남매를 비웃었다.
[저게 됐으면 누구나 저렇게 하지]
[사람의 신성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굳이 수많은 신성 가문들과 신전이 어렵고 복잡한 방법으로 신성포션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차진혁 남매의 기행을 비판하자, 대중들도 휩쓸렸다.
-엘튜브에 미쳤다고밖에는…….
-아무리 김철수라도 이건 좀 너무 간 듯 ㅋㅋ
차진솔이 신성력을 불어넣어 포션을 하나 완성했다.
“하나 완성했습니다.”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이제 퍼질 듯 ㅋㅋㅋㅋ
-사실 기절한 성녀가 콘텐츠였던 건에 대하여
“둘 완성했습니다.”
-??? : 성녀 기절할 듯
-멀쩡해 보이는데?
“셋 완성했습니다.”
-땀 한 방울 안 흘림.
차진솔은 지치지 않았다.
사실 포션을 만들고 있는 차진솔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뭐야, 이거?’
차진혁의 피와 상성이 좋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 방울을 삼킬 때마다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가만히 있어도 신성력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내 몸에서 하얀 빛이 나오는데?’
가끔 고위 사제들이 금식기도 하며 고행할 때에 새어 나온다는 신성한 백광(白光)이 차진솔의 전신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무 병. 솔직히 저도 좀 놀랍네요.”
-호흡 하나 안 거칠어짐
-저거 생명력 담보로 만드는 거 아님?
-괜찮은 건가?
슬슬 차진솔을 걱정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연금술사들과 사제들은 기겁했다.
사람이 한 번에, 한 자리에서 수십 병의 신성력 포션을 만드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타인의 피를 사용하는 혈사제라고 해도 저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마 효과가 거의 없을 듯
-저건 기만이다
……라고 주장했으나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