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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00화 (40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00화

광란의 마도사 퓌렐은 암살자들을 무척 혐오했다.

사실 마법사들이 대부분 그런 편이었다.

마법사들의 특성상, 전투 중에 즉각적인 반응이 조금 어려웠다.

복잡한 마법 수식을 계산하고 마법진을 그리고 적절한 방식으로 마력을 배합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행위는 사실 전투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을 주지 않고 빈틈을 정확하게 찌르는 암살자들과는 상성이 무척 나쁜 편이었다.

이참에 그런 놈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퓌렐에게도 이득이었다.

“아주버님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렷다.”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과 사무엘 마이에르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젠장.’

‘상대에게 너무 집중했다.’

서로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광란의 마도사가 접근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만 것이었다.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이 모든 것이 차진혁의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김철수. 이 교활한 놈!’

‘이 얼마나 끔찍한 계략인가!’

암살자를 이용하여 암살자를 공격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 마법사를 투입하다니.

퓌렐의 화염이 암살자들을 뒤덮었다.

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만큼, 암살자들은 본인의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시릴 연합의 암살자가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김철수를 죽였어야 했는데…….”

그 말에 사무엘 마이에르가 눈을 번쩍 떴다.

“……너도?”

“…….”

그들은 서로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너무나 완벽하게 속아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김철수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들을 처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우리를 능욕하고 조롱하고 싶었던 거였다!’

‘김철수 이 교활하고 악마 같은 놈!!!’

그런데 그때, 갑자기 퓌렐의 불꽃이 사그라들어버렸다.

암살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황급히 피신하여 사라졌다.

암살자들이 모두 도망간 후, 퓌렐은 본인의 등 뒤에 서 있던(숨어 있던) 강은우에게 물었다.

“쟈기. 근데 정말 저렇게 다 보내도 돼?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아?”

강은우가 고개를 저었다.

“철수 님은 저 녀석들이 자기를 습격해 주길 바라고 있을걸?”

한눈에 봐도 실력이 뛰어난 암살자들.

잘은 모르겠지만 약이 바짝 오른 것 같았다.

저 상태의 암살자들이 독기를 품고 김철수에게 기습을 단행한다면?

‘칭찬받을 수 있겠다.’

강은우는 흐뭇하게 웃었고, 그 웃음을 본 퓌렐도 활짝 웃었다.

“그래, 뭐. 나는 그냥 쟈기가 웃으면 다 좋아.”

* * *

암살자들은 도망쳤고 강은우 일행은 던전 보스룸을 향해 빠르게 전진했다.

그 와중에 강은우는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두더지우먼은 이것보다 훨씬 빠르던데…….”

추적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고의 길잡이 르세핌과 함께 왔는데 그 실력이 생각보다 영 별로였다.

“시끄러워!!!”

르세핌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한 말이었다.

두더지우먼의 플레이는 플레이라기보다는 버그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차진혁의 동료인 두더지우먼을 버그쟁이라고 깎아내릴 수도 없었다.

길잡이들끼리도 암묵적인 선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나는 정통파란 말이야.”

“정통파든 통통파든 빠른 게 좋은 거 아닌가…….”

“잘 들어. 빠르다고 좋은 게 아냐. 빠르다는 것은 그저 던전 플레이의 한 요소일 뿐이지. 아니? 오히려 빠르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 적당한 속도로 효율적인 연계와 플레이가 중요해.”

“그건 그렇지만 생각보다 너무 느려서…….”

“야!”

그건 내가 느린 게 아니라 두더지우먼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거였다고!

그리고 세상 모든 길잡이한테 물어봐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두더지우먼이 잘하고 있는 건지!

르세핌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거센 손가락질로 그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퓌렐이 눈을 부라렸다.

“내 쟈기한테 삿대질하지 마. 손목째로 불태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르세핌은 슬그머니 손가락을 내리며 목 부근을 살살 긁었다.

“간지러워서 긁은 고야.”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강은우 일행은 무사히 던전 보스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스룸에 도착한 퓌렐은 숨을 들이마셨다.

‘강한 놈의 냄새.’

짙은 마력향이 났다.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강한 마물에게서 느껴지는 마력향이었다.

“어마어마한 놈이 있었나 보네. 도대체 어떤 놈을 잡은 거야?”

퓌렐의 질문에 차진혁의 표정이 미세하게 시무룩해졌다.

“방송 안 봤나?”

“네가 이 던전에 입장하는 것까지밖에 못 봤는데?”

“…….”

검황대장 카일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왜 실망하고 난리지?’

시간상, 퓌렐은 가능한 가장 빠르게 이곳에 온 것이 틀림없었다.

추적 전문가 르세핌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아무리 시간을 계산해 봐도 퓌렐이 차진혁의 실시간 방송을 모두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던전 플레이를 하면서도 훔쳐봐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방송에 미친놈이어도 그런 생각은 지나치게 양심이 없는 것이었다.

차진혁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던전 플레이 중에도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방송을 만들지 못했나보군.’

퓌렐이 물었다.

“이 정도 흔적이라면 어마어마한 녀석이었을 텐데, 왜 전투 흔적이 없는 거지?”

카일이 대신 대답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처치하더군.”

“그으래?”

퓌렐의 손에 화염이 깃들었다.

“쟈기야. 나 아주버님이랑 진심으로 싸워보면 안 돼? 으응, 역시 안 되겠지? 아냐, 나같이 조신한 여자가 무슨 싸움을 좋아하겠어? 호호호!”

* * *

르세핌을 발견한 두더지우먼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르세핌!’

과거의 경쟁자는 패스파인더 한세린이었다.

그때는 한국맵의 랭킹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었다.

그렇지만 한세린은 군주쪽으로 진로를 틀었고, 이제 그녀의 경쟁자는 르세핌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늦었는데, 두지?”

안 그래도 퓌렐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르세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빠른 게 다가 아니거든?”

“하지만 김철수가 빠른 걸 원했다, 두지.”

“흥! 네 방법은 지나치게 무식하고 위험했어. 그 버…….”

버그 플레이라고 말하려다가 순간 말을 바꿨다.

“버러지 같은 플레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단 말이야?”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두지?”

“땅 밑을 이상한 방법으로 탐험했잖아.”

정통파 길잡이 르세핌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다.

저들이 이동한 땅밑 공간은 실존하지 않는 타 차원의 공간.

운이 조금만 나빴어도 차원의 틈새에 갇혀 영영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쯤은 누구나 떠안고 있는 거 아닌가, 두지?”

“사소하다고?”

르세핌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차진혁 쪽을 바라보았다.

‘당장 내 편을 들어!’라고 명령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는 사소하지.”

강화하면 원래 깨진다.

던전 플레이는 원래 위험하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리고 방송을 하다보면 그 정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정도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고 우주 랭커가 되겠다는 건 솔직히 양심없지…… 라는 것이 차진혁의 생각이었다.

다만, 얘기를 듣고 있던 카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경험을 하면 할수록 저들이 모두 미쳐있다는 사실을 점점 알아가는 중이었다.

‘미친놈과 싸워 이겨봤자 나한테 좋은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닌가?’

그의 마음속에 외면했던 진심이 꿈틀꿈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싸우기 싫다.’

김철수와 결판을 내려했던 건 자신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내게는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데.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 앞에서 무너지는 법.

그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 * *

차진혁 일행은 판게아 신전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퓌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불태워볼까?”

그 말에 카일은 반색했다.

광란의 마도사라 불리는 퓌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 모인 녀석들보다는 비교적 정상인다운 얘기였다.

“그래, 안 그래도 김철수가 없앴던 관의 파편을 내가 가지고 있다.”

던전 보스.

마법학교 교장이 잠들어 있던 그 관이 이곳의 중요한 아티팩트라 생각하여 챙겨놓았던 것이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카일에게 쏠렸다.

‘오, 길잡이도 아니면서 그렇게 중요한 아티팩트를 미리 챙겨놓다니 대단하걸? 역시 검황대장이야!’ 같은 존경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은 몰랐다.

“무슨 소리지?”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두지.”

‘……?’

그때,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두더지우먼은 내가 보호해야겠네?”

‘관의 파편을 불태우는데 두더지우먼을 왜 보호해? 맥락이 이게 맞나?’

화악-!

퓌렐의 몸 전체에서 붉은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잠깐!’

관의 파편을 태우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마력 아닌가.

그제서야 카일은 퓌렐의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던전을 통째로 태우겠다는 뜻이었구나!’

이건 미친 짓이었다.

던전 안은 그야말로 수많은 변수들의 집합체.

이렇게 강대한 마력이 갑자기 뿜어져 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랐다.

아르비스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카일의 입장에서 이들은 심각한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었다.

그는 다급히 르세핌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내가 믿을 사람은 르세핌밖에 없다!’

하지만 르세핌은 카일쪽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두더지우먼은 입고 있던 옷들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더지우먼 이 비겁하고 치졸한 녀석아! 길잡이면 길잡이답게 길잡이 능력으로 승부해라!”

이곳은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버린 불꽃의 세계.

“아, 정말 너무 덥네, 두지.”

수위가 아슬아슬한 옷차림.

차진혁의 절대결계 탓에 그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상태였다.

두더지우먼이 히죽 웃었다.

‘내가 이겼다, 추적전문가 르세핌!’

* * *

다들 미쳐 있다.

모두가 미쳐 버렸다.

이곳에서 정상인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카일은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검황대장인 그에게도 이 화마는 무척 위협적이었다.

과연 광란의 마도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뿜어내는 화력다웠다.

‘하지만 이런 무식한 방법이 통할 리가 없지.’

자고로 던전이란 길잡이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며 길을 뚫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광란의 마도사가 일으킨 화염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이 던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마력 때문에 위험천만한 상황들이나 발생하고 말겠지.’

미친놈들 사이에 낀 정상인.

그는 무너지려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로 했다.

‘엇?’

하늘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차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됐다!’

퓌렐의 방법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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