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9화
상황에 맞지 않는 소통방송에 즐거워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차진혁을 걱정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던전 안에서 소통방송은 너무 위험하지 않나?
-철수 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여 ㅠㅠㅠㅠㅠ
왕유미로부터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달받고 있는 차진혁은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나는 치열하게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엘튜버가 소통방송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회사원들이 회사를 나가고,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을 튀기는 것과 별반 다를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자신을 걱정해 준다니.
무척 낯설면서도 싫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일은 열심히 해야 했다.
[두더지우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길잡이로서 말고 여자로서요.]
여자로서?
그걸 굳이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나?
차진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의 질문이니만큼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생각보다 미인계 능력이 괜찮은 것 같긴 합니다. 저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왜 갈고닦지 않는지는 의문이지만요.”
두더지우먼은 미인계에 그렇게 큰 거부감도 없는 것 같고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은데 말이다.
[결혼 생각 있으세요?]
“결혼 콘텐츠 조회수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시대마다 유행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
결혼과 관련된 콘텐츠가 유행인 시기가 온다면 그는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혼을 한다면 언제쯤 하실 계획인가요?]
“결혼 콘텐츠가 유행하는 날?”
말을 하던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결혼에 대해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나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해진 건가?’
하지만 크게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변 엘튜버들과 소통이 별로 없는 차진혁은 그저 ‘엘튜버라면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차진혁에게 직접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판게아 신전의 비밀을 알아냈어요!]
‘김민지?’
왕유미를 제외하고 이렇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천재 해커, 김민지밖에 없었다.
보통 때라면 편법 쓰지 말고 왕유미 통해서 얘기하라고 나무랐겠지만 오늘은 얘기가 좀 달랐다.
[제가 알아낸 건 아니고 역사 천재 욜린이 알아낸 거랍니다!]
“메시지가 왔는데요, 역사 천재 욜린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욜린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고대 매지크 제국의 마법학교였다.
[마왕 가르비누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 매지크, 헬렌, 스웨딘, 세 제국은 서로 피 터지게 싸웠어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죠.]
그러던 중, 신성제국 헬렌이 마법제국 매지크를 공격.
매지크의 마법학교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신전을 세웠다고 했다.
헬렌 입장에서는 찬란한 승리의 역사.
매지크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패배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마법학교를 무너뜨리고 신전을 세웠던 장본인이 진짜 던전 보스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진행은 ‘마법학교 던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일리가 있다!’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더지우먼이 여성으로서 어떠한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 있다면 언제쯤이 좋은가와 같은 것들보다는 훨씬 더 차진혁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차진혁은 흥분을 감춘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태까지 우리가 클리어한 건 그저 겉껍데기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진짜’ 판게아 신전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 *
우주급 시나리오는 결국 위대한 마왕 가르비누와 그를 따르던 7명의 영웅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그중에서도 마법학교/신전과 관련이 되어 있으니,
‘신전 쪽이면 훼일러 가문, 마법 쪽이면 헤이나 가문과 연관되어 있으려나.’
훼일러 가문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상태.
그렇지만 헤이나 가문과는 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만. 나랑 친밀하다고 할 수 있나?’
헤이나 가문의 가주인 광란의 마도사 퓌렐은 강은우와 연인관계였다.
그 강은우를 소개시켜 준 사람이 자신이니 차진혁은 퓌렐과 꽤 돈독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강은우한테 얘기하면 이쪽으로 와줄지도.’
물론 강은우가 부탁한다고 해서 광란의 마도사쯤 되는 인물이 이 척박한 서버(아르비스의 랭커 기준으로 보면 다 척박한 서버이긴 했지만)에 행차해 줄지는 의문이기는 했다.
‘그래도 해봐야지.’
왕유미를 통해 부탁을 전달받은 강은우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퓌렐.”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퓌렐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눈으로 강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구랭, 쟈기?”
“퓌렐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데…….”
강은우는 퓌렐의 연인이었고, 퓌렐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다.
아르비스의 최상위 랭커에게 척박한 서버의 던전을 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정도 되는 랭커의 시간은 그야말로 금이나 다름없었다.
연인이기에 그 귀중한 시간을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무례한 부탁일지도 모르겠지만…… 판게아 던전으로 좀 가줄 수 있을까?”
퓌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은우는 퓌렐이 모진 말을 쏟아낸다고 해도 감내할 작정을 하고 있었다.
광란의 마도사 퓌렐.
사람들은 그녀를 일컬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치광이 마법사’라고 표현했다.
강은우는 그러한 퓌렐의 성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주버님의 부탁이라면 당장 가야지.”
* * *
한 번 호되게 당했던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이 마물들을 남겨둔 것이 틀림없다.’
김철수는 생각보다 훨씬 철두철미한 자.
암습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타락 사제와 오염된 성녀 등 마물들을 그대로 내버려 놓고(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보스룸까지 도망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제는 던전 파괴자까지 합류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던전을 붕괴시킬 거다.”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철수 일행이 탈출할 거고. 우리는 그 기회를 틈타 기습하라는 뜻이겠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붕괴되는 던전에서 살아나올 수는 없어. 제아무리 검황전의 우승자가 함께 있다고 해도 말이야.”
삐죽삐죽 솟은 잿빛 머리카락의 남자.
던전 파괴자 디스트는 무척 자신만만했다.
“너희들은 방해하지 말고 내 실력을 보면서 감탄이나 해라. 그게 너희들의 일이다.”
“…….”
“박수도 좀 치고.”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 던전파괴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으나 대의를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잘난 척이 무척 심하군. 우리는 김철수를 직접 경험했다. 놈은 생각보다 약았다. 분명 많은 대비를 하고 있을 거다.”
“그래봤자 붕괴에는 대비할 수 없을걸. 이것은 사고가 아니라 재앙이니까.”
디스트는 여태껏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많은 성공은 방심을 낳는 법.
그는 김철수를 약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고, 암살자들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봐, 던전 파괴자. 이 수많은 마물들을 일부러 살려놓은 걸 보고도 깨닫는 바가 없나? 김철수는 분명……!”
그때, 암살자가 디스트의 입을 막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깜짝 놀란 디스트가 황급히 팔꿈치로 암살자의 명치를 치려고 했으나 디스트의 신체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 비겁한 놈들이!’
내가 활약할 것이 두려워 나를 먼저 치려는 것인가.
과연 비겁한 암살자다운 생각이다.
‘하지만 내게도 다 방법이 있…….’
그러나 암살자들이 디스트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
암살자 하나가 ‘쉿!’ 하고서 더욱 깊은 그림자 속에 몸을 맡기며 숨어들었다.
‘가만히 있어라. 김철수의 비겁한 계책이 발동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암살자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암살자였다.
암살자를 대비하기 위하여, 또 다른 암살자를 고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
그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김철수가 암살자를 고용했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 * *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
사무엘 마이에르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암살자들을 대기시켜 놨다?’
암살자를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암살자.
여기에 암살자를 대비시켜 놓다니.
김철수는 생각보다 훨씬 철두철미한 자가 틀림없었다.
‘숫자는 대략 셋인가.’
사무엘은 뛰어난 암살자이니만큼 상대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봤다.
상급의 암살자들이 틀림없었다.
‘하나하나가 랭커급.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었군.’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
상대가 뛰어난 암살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더 뛰어난 암살 실력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었다.
‘셰비안 대신 내가 들어오길 잘했구나.’
셰비안은 잠재력이 무척 훌륭한 아들이었지만 혈기가 지나치게 왕성하고 경험이 적은 편.
숙련된 암살자들을 상대로 싸우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암살의 극의를 보여주마.’
그가 마력을 불어넣자 다리가 가벼워지며 그의 몸이 주변 사물들에 동화되어가기 시작했다.
* * *
암살자들의 전투는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따금 쉭- 쉭- 하고 바람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암살자들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았다.
‘한 번의 실수가 승패를 가른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생사가 갈린다.
찰나의 순간이 생명을 결정지을 것이었다.
‘최대한 신중하게.’
오히려 그들은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안전을 확보하며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전투 시간이 길지는 않았으나 심력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는 행위였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어.’
상대가 상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극한의 긴장 상태 속에서 호흡이 거칠어졌다.
긴장이 지속될수록 체력이 고갈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릴 연합의 암살자들이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개인의 실력은 저쪽이 더 뛰어난 것 같군.’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다.’
모두가 체력이 떨어지면 결국 쪽수 많은 쪽이 이기기 마련.
체력이 고갈되면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쪽수가 많으면 그 틈을 노릴 기회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것이다.
그때, 마법 수식언이 들려왔다.
“불타 뒤져라.”
다소 상스러운 마법 수식언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던전 전체에 거대한 산불이 일어난 것 같았다.
광란의 마도사 퓌렐이 일으킨 불꽃은 마치 태양처럼 암살자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퓌렐은 히죽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횡재지?’
저 정도 실력자들이 서로의 기세를 숨기지 못하고 은신 장소를 노출하고 있다니.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지쳐 있는 듯했고 퓌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아주버님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렷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인연을 맺어준 아주버님을 노리다니.
죽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