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1화
이현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것을 진행하려는 것이겠지.
‘네가 보여줄 게 무엇이냐!’
상대(차진혁)는 최정상급 엘튜버.
아마도 자신이 모르는 엘튜버로서의 어떤 신성한 의식을 치르려는 것 같았다.
차진혁이 손가락을 들어 이현성의 등에 살짝 가져다 댔다.
“아주 조금은 인정받을 자격을 갖추었다, 항문검 이현성.”
“…….”
이현성 또한 차진혁의 구독자.
중완김(중2병의 완성은 김철수)의 시간이 도래하고 말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팔뚝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중완김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비장해진 그는 구독자답게 반응했다.
“겸허히 받아들이지, 엘튜버 김철수.”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이현성의 등에 댄 손가락을 슥- 옆으로 움직여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왕나약한 항문검]
왕나약한 항문검에서 특별히 ‘왕’을 없애준 것이었다.
“자. 일어나라. 나의 각인이 새겨졌으니 너는 비상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 뜻에 충실히 부응하도록 하지, 김철수.”
드디어 인정받았나?
이현성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 * *
그리고 또다시 며칠이 흘렀다.
당초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허가된 시간은 4주.
이제 겨우 3일가량 남았다.
그간 차진혁 또한 검령을 불러내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썼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건 차진혁의 자질이 뒤떨어진다기보다는 미리가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흥, 내가 허락 못하지!
어마어마한 질투심의 영향 때문에 차진혁은 검령을 불러내는 것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와중, 차진혁은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잠깐만.’
혹시 이게 되나?
몽마 렐핌에게 배우고 미리에게 연습해 봤던 미인계가 이곳의 검들에게도 혹시 통할까?
내 부름에 응답하여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해봐야겠다.’
렐핌은 미리를 흥분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었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굉장히 잘 먹혔었다.
‘혹시 미인계가 먹히려나?’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 검령을 불러내고 수련하는 과정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1. 검이 먼저 검객을 부른다.
2. 검객은 검의 목소리를 듣고 심검의 경지에 들어선다.
3. 검객의 의지와 공명한 검의 의지가 형상을 이루어 모습을 드러낸다.
4. 검령과 검을 나누며 수련한다.
이것이 일반적이었다.
‘애초에 검이 나를 안 부르니까…….’
정신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미리가 눈에 불을 켜고 방해를 해대니, 검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차진혁은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검을 향해 다가갔다.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요.
미리가 격렬한 거부반응을 드러내는 바람에, 차진혁은 하는 수 없이 미리를 협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꾸 방해하면 저기 버려둔다.’
-치.
미리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차진혁의 손맛(?)을 본 미리는 차진혁과 단 한 시도 떨어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차진혁에게서 단 1초도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마디로 미리의 방해를 끊어낸 차진혁이 절벽에 꽂힌 검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렐핌이 어떻게 했더라.’
이놈의 미인계는 연습할 때마다 낯선 기분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나마 사람이 아닌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습이라 편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굉장히 민망할 뻔했다.
한편, 이현성은 혀를 차며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그게 되겠냐?’
이미 검의 목소리를 듣고 수차례 검령을 직접 불러낸 이현성은 차진혁의 시도에 어이가 없었다.
‘저런 걸로 됐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검령을 불러냈게?’
아무리 검객이 아닌 엘튜버라지만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건지.
차진혁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미 성공한 검객답게 그는 그의 방식에 강한 확신이 있었다.
‘검이 먼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그 검에 대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건만 저런 방식…… 응?’
이현성의 귀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줘요.”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이현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이름을 지어줘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현성은 화들짝 놀라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어!’
목소리는 검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아니라 실제 육성으로.
‘저 검이 내는 목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다고?’
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당사자 입장에서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검과의 교류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것.
일대일로 깊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타인에게까지 명료한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설마……!’
저 검이 그만큼 강렬하게 김철수와 대화하고 싶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류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검철수랜드 1호.”
“검철수랜드 1호. 좋은 이름이에요.”
이현성은 또 귀를 의심했다.
‘검철수랜드 1호?’
그는 자신과 공명 중인 검에게 ‘항문검랜드 1호’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그와 동시에 끔찍한 살기가 느껴졌다.
깊이 마음을 나누고 있는 만큼, 진득한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그래. 저따위 이름을 검들이 좋아할 리 없지.’
저 검의 취향이 영 이상한 것이리라.
“너는 검철수랜드 2호.”
“꺄아!”
1호에 이어 2호.
“넌 검철수랜드 3호.”
“사랑해!”
2호, 3호, 4호…… 722호까지.
절벽에 꽂혀 있던 수백 자루의 검들에 모두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현성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엘튜버 특유의 어떤 기술이 있나 보다.’
검객으로서 저런 게 가능할 리 없지.
아무래도 소통능력이 뛰어난 클래스다 보니 저런 요상한 것도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다.
“얘들아. 그럼 너희들의 의지를 좀 구체화해서 나한테 보여줄래?”
그러자 절벽에 꽂혀 있던 검들로부터 스르릉- 하고 맑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수백 자루의 검들이 동시에 절벽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있던 이현성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뭐냐, 이건?’
수백 명의 여인들이 떼거리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그리들은 카일에게 서신을 보냈다.
[김철수가 검령을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722명의 검령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피사트 가문 역사상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기현상이다.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철수. 그 자는 신이다. 신의 계획에 동참을.]
* * *
차진혁으로서도 조금 의외였다.
‘죄다 여성체야?’
미묘하게 몽마인 렐핌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렐핌에게 영감을 받은 방법으로 검철수랜드들을 소환해서 그런가?’
검령은 검이 의지를 가지고 형상화되는 것.
그리고 그것은 교감을 나눈 상대에게 많은 영향을 받곤 했다.
이현성이 일깨운 검령이 이현성의 항문을 찌르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차진혁은 저들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딘지 다들 맛이 좀 가 있는 것 같은데.’
“몸이 부서져도 좋아.”
“거칠게 대해줘.”
“뜨겁게 사랑을 나눠보아요.”
“아프게 해줘요.”
“멀리 보내줘. 당신이라면 나를 저곳까지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차진혁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검들도 너무 오래 박혀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지나?’
자기처럼 정상적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좀 이상했다.
‘나한테 영향을 받은 건 아닌거 같고...’
미리는 어마어마한 투지를 내뿜고 있었다.
-다 부숴버린다!
‘미리의 영향 때문인가 보군.’
그게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굳게 믿었다.
검철수랜드 1호와 미리가 맞부딪쳤다.
“흐응. 너무 좋아.”
둘의 결투를 바라보며 다른 검령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빨리 내 차례가 오면 좋겠어.”
“나도 당하고 싶어.”
“저렇게 거칠게 당하면 얼마나 황홀할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치열한 결투 끝에 1번 검령의 몸이 조각 나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
검령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시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 절벽으로 돌아가질 않네.’
쩌적- 쩌적- 소리와 함께 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현성이 검령과 상대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부서졌다?’
검철수랜드 1호는 두 동강 난 상태.
신령한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고철 검이 되어버렸다.
휘잉- 하고 바람이 불어오자 순식간에 삭아 없어져 버렸다.
‘어라, 이건 예상 못했는데.’
이거 괜히 피사트 가문에서 변상하라고 하면 피곤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증거영상을 남기기로 작정했다.
차진혁은 다음 검령을 불렀다.
“자. 다음 지원자.”
모두 제가 나서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차진혁은 결국 2호를 불렀다.
“2호부터. 순서대로 가보자.”
2호는 주황머리를 가진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차진혁이 다시금 물었다.
“거칠게 대해 달라는 거지?”
“네. 가장 거칠게 대해줘요.”
“그러면 네가 망가질지도 모르는데?”
그러자 2호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망가뜨려줘.”
결국 2호는 1호와 같은 수순을 밟았다.
3호도, 4호도, 5호도. 그리고 결국 722호까지.
여기까지 약 일주일이 소요되었다.
차진혁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검령과 교감하며 검을 나누었다.
“당신은 지치지도 않는군요. 당신은 정말 최고야.”
절벽에 꽂혀 있던 722자루의 검이 모조리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더 이상 검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을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의 조각 일부를 완성하였습니다.]
[퀘스트, ‘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 위대한 영령을 만나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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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여왕의 유산]
(1) 여왕이 사랑했던 제자
버려진 여왕이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가 있었다. 제자의 이름은 카르빙턴. 여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지혜를 카르빙턴에게 전수하였다. 카르빙턴에게 배신당하는 그 순간에도, 베셀리티는 그를 사랑하였다.
(2) 황금나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얻으리라.
카르빙턴과 골디믐은 황금나무를 정성스레 보살폈다. 그들의 정성에 감동한 여왕은 그들에게 보물을 하사였다. 여왕의 보물을 머금은 황금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세상을 뒤덮었으니, 그 권세와 영광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닿았다.
(4) 혹한의 불꽃 속에 진실이 있으리.
버려진 여왕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했던 벗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헤이나였다. 버려지던 마지막 순간에 여왕은 헤이나에게 마음을 담은 보석을 건넸다. 마음을 담은 보석은 혹한의 불꽃 속에서 동면에 빠져들었다.
(7)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 위대한 영령을 만나리
‘???’ 하여 검의 노랫소리를 잠재운 자여. 그대의 노고와 위업이 영원토록 남아 영원히 빛나리라. 검의 노랫소리가 기어이 한 곳으로 흘러들어 장송곡을 부르니 그곳은 위대한 영령이 잠든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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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혁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또 스킵했어?’
아마도 ‘???’라 표시된 부분들이 아마 (5), (6)의 내용이었겠지.
원래대로라면 (5)와 (6)을 거쳐 (7)을 완성하는 형태였을 것이었다.
‘이게 왜 다 생략된 거람.’
혹시 이게 미인계의 힘인가.
나 사실 미인계에 능숙한 것일지도?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 자체는 훌륭했다.
‘그럼 위대한 영령이 잠든 곳을 찾아가야 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5)와 (6)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보니 단서가 부족할 듯했다.
‘저기가 어딘지 찾는 게 급선무겠어.’
우주급 시나리오 재개라니.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