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89화
약하면 패는 맛이 없다고?
이현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어디까지가 진심인가?’
참고로 차진혁은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현성만큼은 정말로 패고 싶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2주간의 합숙(?) 이후, 차진혁은 자존심까지 다친 상태였다.
‘저 녀석도 2주 만에 해버리다니.’
그리들과 카일이 말했었다.
정말 재능이 넘치는 플레이어라면 2주 정도 걸린다고.
그리고 이현성은 정말로 2주 만에 심검의 경지에 이르렀고, 분명 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검에 대한 천부적인 자질은 이현성이 나보다 위겠구나.’
이게 기분이 나쁘면 안 될 일인데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현성한테 지다니.
물론 이것은 차진혁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분석이기는 했다.
둘이 수련하는 공간 자체가 너무 달랐으니까.
차진혁은 일반적인 공간에서 수련했고, 이현성은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 수련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차진혁에게 있어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현성은 2주 만에 저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검이 나를 부르는 듯하는군.”
“그 검을 잡아봐라. 굉장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
자존심이 상하는 건 상하는 거고, 이현성의 성취와 발전이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는 했다.
이현성은 고개를 들어 절벽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김철수…… 너는……!’
만약 이곳에 오기 전, 고소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결코 저곳에 오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김철수. 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이냐?’
계속된 이죽거림과 시비가, 결국에는 이현성 자신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였던 건가.
그는 입술을 깨물고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렵지 않다.’
오르면 오를수록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의 한계선을 정해주던 껍질을 깨버리고 비상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후후후후.”
세찬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을 뒤흔들었으나 그는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을 극복한 그는 이제 정말로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절벽을 오르고 또 올라, 결국 검을 손에 쥐었다.
전체적으로 은색의 빛이었다.
검을 손에 쥐자마자 강렬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으캬캬캬캬캬!
목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웅웅 울렸다.
웃음소리를 한 번 들었을 뿐인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편두통이 밀려왔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김철수가 보고 있다!’
여기서 검을 놓쳤다가는 평생 놀림을 당하겠지.
역시 너는 약해빠졌다고 놀려대겠지.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아니.’
그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곳은 나의 성장을 위한 김철수의 안배.’
모든 요소들을 통제하고 우주에서 제일가는 콘텐츠를 뽑아내는 엘튜버.
아마 이곳의 모든 것들 또한 김철수가 안배한 것이리라!
사실과는 조금 다른 믿음이 피어올랐다.
김철수의 은혜에 배반하지 않으리라.
여기서 이 검을 놓쳐버린다면, 나는 정말로 겁쟁이에 못난이리라.
‘놓치지 않는다.’
-으캬캬캬캬캬!
웃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현성의 시야가 뿌옇게 변하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기어이 검을 놓치지 않았다.
차진혁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절벽 쪽 상황을 지켜보았다.
‘쟤 뭐야?’
굳이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현성은 더없이 치열했다.
저 정도 치열함은 무엇이 되었든 아름다운 법.
‘잠식되지 않으려면 저 손을 떼야 할 텐데.’
차진혁에게도 ‘으캬캬캬!’ 소리가 들려왔다.
‘직접 소통하지 않고 있는 나한테까지 이렇게 들릴 정도면…… 이현성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감내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결국 이현성은 기절하고 말았다.
그의 몸이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낙하했다.
차진혁은 재빨리 뛰어가 이현성을 받아냈다.
그리고 변명했다.
“타격감 좋은 샌드백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차진혁은 짐짝 버리듯 이현성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때, 미리가 깜짝 놀랐다.
-어?
이현성이 쥐고 있던 검이 이현성보다 조금 늦게 낙하하고 있었다.
으캬캬캬캬!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는데, 그 낙하 방향이 영 좋지 못한 곳이 분명했다.
-잘 먹겠다!!!
검날이 향하는 곳은 이현성의 엉덩이 방향.
‘어떡하지?’
저게 저대로 꽂히면 이현성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잠시 고민한 차진혁은 손을 뻗었다.
푸욱!
검이 차진혁의 손을 뚫었다.
버럭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내가 원했던 건 이 맛이 아니라고!!!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이현성의 엉덩이에 닿지 않았다.
* * *
손에 구멍이 뚫린 차진혁은 흐흐 웃었다.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미리조차 차진혁이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건가요? 혹시 뚫리는 게 취향?
“저 녀석이 이렇게 빨리 검의 목소리를 듣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이유?
“이건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성의 문제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보았다.
검은 욕구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검의 욕구와 항문검의 상성이 지나치게 좋았던 것 같군.”
드디어 중요한 사실 하나도 떠올렸다.
“게다가 이곳은 검이 노래하는 절벽이었지. 수련에 더없이 훌륭한 곳.”
그래서 2주 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차진혁의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그에 반해 미리는 불만을 토로했다.
-칫, 난 싫어요.
“뭐가?”
-지가 뭔데 주인님 손을 찔러.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플레이하면서 이런 부상 정도는 어차피 당연한 거 아닌가.
게다가 이 부상은 차진혁이 일부러 입은 것이었다.
이현성과 2주 만에 교류에 성공한 검의 성질과 의지를 보다 정확히 읽어보기 위해서.
그래서 몸을 내어준 것이었다.
찔려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나도 못 찔러봤는데.
그런데 미리가 잔뜩 심통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리가 하고 있는 것은 걱정이 아니라 질투였다.
그 치열함에 차진혁은 빙그레 웃었다.
* * *
정신을 차린 이현성이 곧장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뭐가?”
“왜 나를 위해 이 모든 요소를 통제하고, 나를 자극하여 수련시키고…… 나를 또다시 구해준 것이지?”
이현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
“도대체 나는 너에게 무엇이지?”
“너는 약골이지.”
“그 또한 나를 자극하기 위한 자극제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합리화하는 거냐?”
옛날부터 그랬다.
이현성은 대련에서 패배해도 늘 합리화를 하며 패배의 이유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선 절대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주장해댔던 것이다.
“절대결계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서 왜 맨살로 저 검을 받아낸 거지?”
“그것도 모르냐?”
이현성은 크게 긴장했다.
‘김철수는 내가 모르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자다.’
아무 생각 없이 놀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신묘한 깨달음이 있었다.
김철수의 자극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테니까.
듣는 순간은 약 오르고 열이 받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철수가 보는 세상과 자신이 보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른다. 가르침을 다오.”
“누가 취미를 목숨 걸고 해?”
“취미?”
이현성은 잠깐이지만 좌절했다.
누군가에게는 본업이 누군가에게는 취미였고, 누군가의 취미가 누군가의 본업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괴로웠다.
차진혁의 기만에 몹시 괴로워하던 그는 또 이상한 지점을 발견했다.
‘근데 저 정도면 목숨 걸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운이 좋아서(?) 손바닥만 꿰뚫렸지, 만약 동맥이라도 잘렸다면 훨씬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취미 즐기는데 무슨 절대결계까지 써가면서 용을 쓰겠냐? 그 정도 되면 취미 아니지.”
그렇다고 손에 구멍이 뚫리는 걸 그냥 두고 본다고?
차진혁은 이현성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회귀 전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이거…… 꽤 재미있잖아?’
‘인성질’의 재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이현성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순수 기술로 겨룬다면 결코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또냐?”
“또냐니?”
“아니다.”
회귀 전 이현성의 모습이 나오는 바람에 차진혁은 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힘을 빼고 순수 기술로 겨뤄보자. 육체적인 능력은 서로 비슷하게 설정해서 말이야. 네게는 시간배율 촬영이라는 기술이 있으니 얼추 비슷하게 맞출 수 있겠지.”
“말하자면 체급을 맞춰서 싸워보자, 뭐 이런 얘기냐?”
“그래. 순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 또 핑곗거리를 찾아냈네.
차진혁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숨을 쉬었으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래. 검의 목소리도 들었겠다, 검과 하나가 되는 기분도 느끼고 있겠다, 자신감이 풀충전 될 때이기는 하지.”
차진혁이 미리를 들어 올린 뒤 목검의 형상으로 바꾸었다.
이현성도 절벽에서 뽑아낸 검을 들어 올린 뒤, 차진혁과 똑같이 하려고 했다.
“…….”
“…….”
휘잉-
을씨년스런 바람이 불어오고 이현성은 끙끙거렸다.
‘나, 나는 왜 안 되지?’
차진혁처럼 자연스레 무구의 형상을 바꾸는 것이 어려웠다.
심검의 경지에 들어서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정작 차진혁도 고개를 갸웃했다.
“너 뭐하냐?”
“심검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이 가능한 건 아닌 듯하군.”
“……이거 되게 기본적인 거라던데.”
“…….”
“뭐, 상관없겠지. 너랑 내 레벨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까 그 정도 핸디캡은 준다.”
이현성은 검을 들어 올린 채 집중하며 호흡에 신경 썼다.
‘모든 것은 호흡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다.
저 호흡을 읽어내면 상대의 움직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터.
‘김철수는 나를 농락하는 것을 즐긴다.’
먼저 공격하기보다는 카운터를 노리는 경향이 짙었다.
‘잔뜩 약을 올리며 끌어들인 다음 치명타를 노리겠지.’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는 이현성과 달리 차진혁은 목검형상의 미리를 대충 어깨에 둘러멨다.
“안 덤비면 내가 간다?”
순간, 미리의 검신이 주욱 늘어났다.
여의봉처럼 길게 늘어난 검이 이현성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미친!’
둘 다 심검의 경지에 들어섰다지만 그 수준 차이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막는다!’
막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
그런데 미리가 갑자기 짧아져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차진혁이 가깝게 접근한 상태.
‘거리가 너무 가까워!’
검을 휘두를 수 없을 만큼 밀착한 상태에서 차진혁이 이현성의 목에 짧은 단도를 댔다.
언제 바꿨는지 미리를 단검의 형태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이현성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저게…… 된다고?’
아무리 무구와의 호흡이 좋다고 해도 저게 저렇게 된단 말인가.
그 또한 심검의 경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보았지만 저런 게 된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검을 방패 형태로 바꿨으면 막을 수 있었잖아? 왜 안 하냐?”
이건 노림수가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 궁금증에 이현성은 또다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방어구로 바꾼다고?”
“그래.”
“그게 된다고?”
이현성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서 말을 이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아무리 뛰어난 심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어떻게 검을 방어구로 바꾼다는 거지? 나는 속지 않는…….”
이현성은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리가 어느새 검은 방패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진짜 안 된다고?”
“왜 네가 고개를 갸웃하는 거란 말이냐!”
이쯤 되니 차진혁도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카일도 그렇고 그리들도 그렇고, 이 정도는 다 하는 거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