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8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데.’
차진혁은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묵검 아르테달은 스웨딘 제국 차원에서 찾고 있는 보구.
스웨딘 제국의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인 게르므신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검이었다.
‘여태껏 마주쳤던 검들 중에서는 가장 상급의 아티팩트인가.’
물론 피사트 가문의 성유물을 받기는 했었으나 그것은 상징성이 큰 보물이었지, 실질적으로 강력한 아티팩트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아르테달의 묵직함을 느낀 미리는 이미 잔뜩 흥분한 상태.
-흐흐흐흐.
미리의 흥분이 전달되어서인지 차진혁의 심장도 쿵쿵대며 뛰기 시작했다.
마치 연인과의 강렬하고 뜨거운 시간 직전.
몸속 깊은 곳이 간질간질할 정도의 전희가 느껴졌다.
‘그만 흥분해. 나도 덩달아 흥분되니까.’
-하지만 저걸 보고 어떻게 흥분을 하지 않겠어요?
미리의 시선이 묵검 아르테달에게 꽂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이었다.
미리가 상대의 뒤통수가 관자놀이가 아니라, 상대의 무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말이다.
무명은 반월을 그리며 아르테달을 가볍게 휘저었다.
여유 있는 움직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테달이 움직인 자리에는 묵빛 잔상이 남았다.
“가지.”
순간, 무명의 몸이 사라졌다.
차진혁은 무명의 움직임을 놓친 채 본능적으로 미리를 휘둘렀다.
번쩍!
아르테달과 미리가 맞부딪치자 빛이 번쩍였고 이내 강한 풍압이 검투장을 휩쓸었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으나 차진혁은 직감할 수 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다!’
여지껏 무명은 전력을 한 번도 내지 않은 듯했다.
‘이게 서약빨이라는 건가.’
두근두근.
무구와 서약을 맺으면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는 건가.
‘혹시 나도?’
아니, 아니지.
차진혁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야만 했다.
‘미치지 말자. 나는 정상인이다.’
진짜 미친놈이라면 여기서 곧장 서약을 맺었을 것이다.
추후의 일이 어찌 됐든 일단 지금 쾌락을 즐겨야 하니까.
상대의 실력에 맞추어 나의 실력도 끌어올려 신명나게 싸워야 하니까!
차진혁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했다.
‘서약을 맺으면 제약이 너무 많이 생기고, 제약이 많이 생기면, 방송에도 지장이 있다. 나는 엘튜버니까 방송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하면 안 돼. 절대 안 돼.’
번쩍!
무구와 무구가 부딪치고 재차 빛이 번쩍거렸다.
무명의 신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목소리는 똑똑히 전달되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는군.”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당장이라도 서약을 맺고 싶다는 이 충동을 억누르느라 차진혁은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는 상태였다.
-흐으읏!
미리가 환희에 가득 찬 교성을 냈다.
-크고 검고 단단한 것이 자꾸 나를……!
번쩍!
다시금 빛이 터져 나왔다.
‘미리. 괜찮아?’
-안 괜찮은 것 같기도. 흐으읏!
미리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돌입하여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르테달에 완전히 꽂혀버린 것 같았다.
-더! 더! 더! 세게!
미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나와 몸을 섞자, 히히히히히!
* * *
차진혁은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
‘무명은 힘을 숨겼고, 미리는 제정신이 아냐.’
미리 때문에 제정신인 자신조차 오염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검의 흥분에 취해서 이성을 잃게 된다면 그건 검철수로서 자격이 없었다.
그는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무명과의 전투를 이어갔다.
‘확실한 건 나보다 빠르다는 것.’
레벨 차이에 따른 피지컬 자체는 이쪽이 더 우위였으나, 저쪽은 검술에 더 특화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움직임을 하나도 읽어낼 수 없다.’
나보다 실력이 낮은 자와 싸울 때는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보인다.
마치 쉘비와 싸웠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였다.
‘오히려 무명은 내 움직임을 모두 읽고 있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동등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전투의 주도권은 확실히 무명에게 있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은 그저 막아내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나보다 검술 실력이 뛰어난 자가 나에 대해 많은 연구까지 해온 것 같군.’
말하자면 ‘김철수 파훼법’을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이렇게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검술만으로 무명을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 섰다.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 차진혁은 방어신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내자 검투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우와, 저게 그 돌아버린 방어신비라는 그 환상검희?”
“어라? 망치가 아니라 검을 들고 있는데?”
“환상검희니까 검을 드는 게 맞지.”
“아 맞네.”
환상검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주인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방어의 수단을 강구하리니.”
환상검희가 하늘로 날아올라 핏빛 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곧 그를 지키는 힘이라.”
수많은 적색 검기가 마치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공에 고고히 뜬 채 적이 말살되기를 기다렸다.
수많은 이들이 넋 놓고 환상검희를 바라보았다.
“나 타락천사 좋아했네.”
“근데 방어신비가 저렇게 예쁠 이유가 있냐?”
“분위기 미쳤다.”
“타락 눈나……!”
* * *
마시멜로의 영상에 담긴 환상검희의 모습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한편, 이성적인 시청자들도 다수 존재했다.
-근데 저거 방어신비라고 하지 않았음?
그들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저 환상검희는 저게 방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저런 종류의 신비는 주인과 정신이 연동되지 않나?
-그러니까 김철수가 돌+I라는 뜻이겠지.
환상검희의 활약은 꽤 화려했으나 무명에게 딱히 유효하지는 않았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무명은 아르테달을 휘둘러 반구체 형상의 묵빛 결계를 만들어냈다.
환상검희의 검기는 아르테달의 기운을 뚫지 못했다.
차진혁은 무명이 방어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접근하여 미리를 휘둘렀다.
‘어?’
그러나 이것은 차진혁은 유인하기 위한 무명의 함정이었다.
무명은 애초에 환상검희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생각 따윈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아르테달을 휘둘러 차진혁의 목에 상처를 냈다.
황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차진혁은 목을 매만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이 날아갔겠어.’
이처럼 살을 에는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언제란 말인가.
차진혁은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스윽 닦아낸 뒤 히죽 웃었다.
피 칠갑이 된 손바닥을 보니 심장이 콩닥거렸다.
‘아니. 정신 차려, 차진혁! 너는 엘튜버다!’
이건 아무래도 미리 때문인 것 같았다.
미리에게 책임을 돌렸다.
‘네가 너무 흥분해서 나까지 충동 조절이 어렵잖아.’
-하지만 저 크고 검고 단단한 것은 처음인걸요.
차진혁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검술로는 못 이긴다.’
이제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엘튜버로서의 능력을 사용하여 실격패를 당하든지.
아니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든지.
‘뭐가 더 좋은 그림이 나오려나?’
엘튜버 김철수는 승패 같은 건 상관없었다.
* * *
무명과의 전투는 단 한 순간도 정신을 팔 수 없었다.
무명은 아주 잠깐의 틈도 놓치지 않는 수준의 검술가였으니까.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머릿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차진혁의 움직임도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차진혁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시간 거품 꺼지는 중 ㅋㅋ
-엘튜버는 검술가한테 안 되쥬ㅋㅋ
-솔직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임
-4강에서 카일이 기권해 줘서 여기 온 거지 ㅋㅋ 카일 아니었으면 4강에서 개같이 멸망했음 ㅎ
-본인 원래 김철수 팬인데 김철수 실망 ㅠㅠ
겉으로 보기에 차진혁은 더욱 밀리는 모양새였지만 오히려 마음이 급해진 쪽은 무명이었다.
‘놈은 승리를 포기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상검희와 함께 완전한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공격하는 것보다는 방어가 더 쉬운 법.
공격을 완전히 배제하고서 방어에 치중한 자를 공략하는 것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김철수의 목을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기권하겠지.’
그는 검황전의 우승이 목표가 아니었다.
산디에므와 헬람을 죽인 차진혁에게 복수하는 것이 목표일 뿐.
‘기권할 틈도 주면 안 된다.’
계속해서 몰아붙이다가 적절한 순간, 적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으리라 다짐했다.
심판은 어차피 매수했으니 임의로 이 전투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었다.
무명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미리는 좀 더 즐거워했다.
-으읏! 조, 좀 더! 조, 좀 더!
무명의 공격 일변도. 차진혁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버텼다.
‘음. 이 정도면 됐나?’
차진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졌…….”
푸욱!
무명의 검이 차진혁의 오른쪽 가슴에 깊이 박혔다.
“이건…… 좀 아프…… 군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자극적인 그림 나왔겠다.
차진혁은 힐끗 심판 쪽을 바라보았다.
숙련된 검술가인 그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렸다.
아무래도 매수된 것 같았다.
무명이 재차 차진혁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목인가?’
육성으로 오디오를 채웠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까지는 어려웠다.
검술가로서는 어차피 패배했고, 이제는 본업의 힘을 끌어낼 때였다.
‘절대결계.’
절대결계의 힘을 느낀 무명이 씨익 웃었다.
아르테달을 빌려준 황자 델리악크가 이 검의 고유한 능력을 가르쳐주었으니까.
-“묵검 아르테달은 결계를 무력화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결계능력이 뛰어난 차진혁을 상대로 특출난 힘을 발휘하는 아티팩트.
‘끝이다, 김철수.’
차진혁의 절대결계와 결계를 파괴하는 검 아르테달이 맞부딪치는 순간.
차진혁과 무명은 동시에 놀랐다.
‘내 절대결계가 깨져?’
‘놈의 결계가 버텨?’
아르테달이 절대결계를 부수는 것에 성공은 했으나, 차진혁에게 꽤 많은 시간을 벌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 사이 차진혁은 신비, ‘흘리는 바람’을 사용하여 아르테달의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차진혁은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검이 아닌 망치가 들려 있었다.
‘역시 내 재능은 검이 아니라 망치이기는 한가 보다.’
그럴 수밖에.
남들은 2주면 하는 걸, 나는 4주나 걸리지 않았는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는 법.
-나도 이 모습이 제일 좋기는 해요. 헤헤.
별미는 가끔 먹어야 맛있는 거지, 주식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미리를 쥔 차진혁은 이제야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야 보금자리의 소중함을 알듯.
꽤 오래 검을 쥐었다가 다시금 망치를 손에 쥐니 이제야 안락한 보금자리에 돌아온 것 같았다.
“아쉽지만 검철수의 시간은 끝이 났고.”
“김철수!”
무명이 다시금 접근했다.
다른 검술가들을 상대할 때와 같은 방식.
직선으로 이루어진 최단 거리를 빠르게 좁혀왔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
‘검철수’가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인 것은 맞았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배율 : x0.1]
“이제는 김철수의 시간이다, 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