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44화
차진혁이 내린 곳은 대평원 너머, 야트막한 산의 입구였다.
이 산 너머에 작은 워프포탈이 존재했다.
지구 직행은 아니지만 지구로 이동할 수 있는 루트.
겉보기로는 얼른 지구로 도망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딱 좋았다.
‘자, 엄폐물이 많은 산이다.’
이 정도면 습격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라는 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살기가 느껴져!’
한 번 상대해 봤다고, 처음보다는 비교적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근데 대단하기는 하네?’
비록 함정이기는 했지만 도망을 치열하게 친 것은 사실이었다.
무려 뇌룡을 타고 이동했으니까.
‘벌써 나를 따라잡았고, 습격에 최적화된 장소를 미리 파악해 뒀다는 것이니까. 어쩌면 내 도주 경로를 정확히 예측했을 수도 있고.’
과연 우주랭커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제대로 한번 싸워보자고.”
차진혁이 히죽 웃고서 중얼거렸다.
“앞으로 2시간이다. 2시간 안에 나를 죽이지 못하면, 네 얼굴이 온 세상에 뿌려지게 될 거다, 마르코.”
이 또한 마르코를 조급하게 만들기 위한 셋업.
차진혁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후웅-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게 쟤 주특기지.’
하도 오랫동안 전투를 지속했다 보니 이제는 대충 느껴졌다.
‘아주아주 작게 응축된 구슬을 쏘아내는 형태의 공격.’
말하자면 미립자 독구슬에 가까웠다.
‘하나씩 날릴 수도 있고, 물안개처럼 퍼뜨릴 수도 있다. 여러모로 굉장히 까다로워.’
구슬의 관통력도 어마어마했고 독의 위력 자체도 극악무도한 수준이었다.
‘흘리는 바람. 절대결계. 독면역. 이 세 가지 능력이 없었더라면…… 내가 졌겠어.’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럼 이 세 가지 능력이 있으면 비벼볼 만하다는 거잖아?’
순간,
마르코의 공격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뿌옇게 안개가 깔리는 느낌이었다.
‘안개 타입으로의 전환이라.’
관통력을 포기한 채 엄청난 독성을 지닌 안개를 피워 올린 것이다.
숲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말라비틀어지고 흙이 시꺼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사정권에서 벗어나야겠다.’
밀려드는 안개는 공기보다는 무거운 성질을 지닌 듯했다.
차진혁은 나무 위로 뛰어올라 나뭇가지들을 밟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게 놈의 셋업이겠지.’
안개 자체로 이쪽을 사냥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터.
‘내가 나뭇가지를 타고 이동하면서 점프하는 그 순간을 노려 관통 형태의 독구슬을 쏘아낼 거다.’
절대결계로 충분히 방어해 낼 수는 있겠지만 그 공격의 물리력을 감안하고서 움직여야 했다.
아마도 관통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전진하는 방향의 역방향.’
정면으로 뚫고 가기로 했다.
‘훨씬 더 강한 힘으로 뛰어야 합력이 맞겠다.’
정면으로 튕겨내기도 했고, 흘리는 바람을 사용하여 피해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공격을 허용했다.
차진혁의 왼팔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이건 조금 아픈데요.”
이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는 건 오랜만이었다.
집요하게 차진혁의 뒤를 쫓던 마르코는 차진혁에게 반쯤 질려 버린 상태였다.
‘조금 아픈 정도가 아닐 텐데?’
본래 저 정도로 중독이 되면 독 때문이 아니라 통증 때문이라도 정신을 잃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다못해 움직임이 둔화되어야 정상이었다.
온몸 구석구석 강력하게 작용하는 독이라 혀도 마비되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김철수는 이상하리만치 말(방송)을 잘 해내고 있었다.
‘몸의 감각이 망가졌거나 뇌가 고장 났거나.’
그런데 저 정교한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몸의 감각이 망가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보는 김철수는 최적의 루트를 찾아 효과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자신의 공격 경로를 예상하여 움직이는 침착함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빠르기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 있는 그조차도 까딱 잘못하면 김철수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뇌가 고장 나서 통증을 견딜 수 있다고는 해도, 몸 자체가 망가지고 있을 테니까.
‘지금 놈을 죽여야 한다.’
몇 년, 아니 몇 달 후의 김철수가 두려웠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놈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어.’
분명히 지쳐가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약 2시간이 흘렀다.
‘지쳤는데! 분명히 지쳤는데 왜!’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지쳤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김철수는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며 도주하고 있었다.
잡을 수 있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순간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자 마르코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제기랄!
그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시야에 차진혁만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건 그때부터였다.
* * *
열심히 도주하던 차진혁이 멈췄다.
그리고서 마르코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르코. 나를 공격하려고 했던 건 네 순수한 의지였나?”
마르코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송에 미친 것도 정도가 있지, 제 목숨을 이렇게 내놓을 줄이야.
이 짧은 순간 빈틈이 적어도 수십 개는 보였다.
‘체크메이트다.’
도주할 모든 경로에 대한 계산도 끝났다.
지금이 바로 김철수 사냥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은 않다.”
마르코는 움찔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김철수의 질문에 대답해 버린 것이었다.
‘공격해야 하는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몸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럼?”
“골디믐 가주의 제안을 받았다.”
저도 모르게 자꾸 말이 술술 나왔다.
‘이게 뭐지? 왜 이러지?’
차진혁이 품속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자. 여기로 올라와라. 대화를 나눠보자.”
누가 그따위 명령에 반응할 줄 아느냐!
……라는 생각과는 별개로 그의 몸이 또 저절로 움직였다.
‘젠장! 저주라도 걸린 건가?’
차진혁이 실시간 방송을 켰다.
[각성자 사냥꾼 마르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이 사람이 마르코입니다. 애황이라 불린다더니 정말 개미처럼 작습니다. 얼굴 확대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애황 마르코의 등장에 시청자수가 급증했다.
‘오, 벌써 5억을 돌파했어?’
확실히 이름값이 지닌 무게가 상당한 것 같았다.
방송을 켜자마자 5억을 돌파하다니.
이대로면 또다시 10억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마르코가 저렇게 생겼구나.
-귀여운 몸집에 그렇지 못한 얼굴 ㅋㅋㅋ
-산적같이 생겼네.
일반적인 시청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낄낄대며 김철수의 방송을 즐겼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류의 시청자들도 있었다.
‘애황 마르코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마르코보다 강한 각성자 사냥꾼은 거의 없을 텐데.’
상성상 이런저런 차이가 있겠지만, 애황 마르코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주 최정상급의 각성자 사냥꾼이었다.
‘보통은 얼굴을 보기도 전에 사살당한다.’
‘나도 마르코를 상대로 저렇게 대화를 시도하기는 어려워.’
오늘 방송에는 수많은 랭커들이 입장했다.
그들은 본인의 신분을 숨긴 채 이 충격적인 내용에 집중했다.
‘도대체 어떻게?’
‘애황 마르코가 사냥감으로 점찍은 자들 중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주 랭커들은 그 수준이 수준이니만큼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진혁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마르코. 나를 사냥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래, 그랬을 거야.”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마르코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심리적으로 극한까지 몰아세웠으니까.
마르코의 시야를 완전히 좁혀놓고서 차진혁은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내가 최근 느낀 것이 있거든. 나한테는 훌륭한 동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말이야.”
수풀을 헤치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테르서박이었다.
테르서박이 흐흐흐 웃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제 유능한 동료 중 한 명인 테르서박입니다.”
* * *
차진혁의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우주 커뮤니티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마르코를 테이밍했다고?
-사람도 테이밍이 가능하잖아. 윤리적으로 안 할 뿐이지.
-곤충계 수인족으로 분류되니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님.
차진혁의 회귀 전, 사람을 테이밍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멀리했던 테르서박은 이제 없었다.
우주 랭커를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기뻐할 뿐이었다.
-근데 테르서박이 그 정도라고?
-레벨 200대 중반 아님? 어떻게 마르코를 테이밍함?
유저들은 이 사건이 조작이다 아니다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또 돈으로 찍어누른 거 아님? 시에르처럼.
-맞네, 그거네. 돈 주고 고용했네 ㅋㅋㅋ
-테르서박이 마르코를? 너네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ㅋㅋ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테르서박이 마르코를 테이밍할 수 있도록 김철수가 얼마나 치열하게 셋업 과정을 깔았는지 모르지?
-그저 결과밖에 못 보는 머저리 새끼들 ㅉㅉㅉㅉ
-나중에 방송 공개되면 이불킥하려고 ㅋㅋ
조작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차진혁은 테르서박을 통해 마르코를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다.
테르서박이 약간 민망한듯 말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완벽히 테이밍하기에는 너무 강한 개체다.”
테르서박은 오늘도 차진혁에게 감탄했다.
마르코의 모든 신경이 차진혁에게 완전히 쏠리게 만든 다음, 테이밍에 성공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으니까.
“곧 테이밍이 풀어질 거다. 네가 이렇게까지 해주었는데 미안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길어야 3분. 뇌룡을 소환할 체력이 남아 있다면 뇌룡을 소환해서 어서 도망치는 편이 낫겠어.”
테르서박은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이렇게 좋은 테이밍 환경을 조성해주었는데 완벽하게 테이밍에 성공해내지 못한 것이 못내 분했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제대로 된 테이밍을 해내고야 말겠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차진혁이 히죽 웃는 것이 보였다.
“김철수?”
차진혁은 뇌룡을 소환하는 대신 미리를 꺼내들었다.
“뭐 하려고?”
“네가 일부나마 테이밍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내 세팅이었다.”
3분이면 폭력의 위대함을 알려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테르서박. 너는 할 수 있다.”
“…….”
“2분 정도 지나면 저항할 정신 따위는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오히려 더 완벽한 테이밍 환경이 만들어질 거다.”
차진혁은 체력 안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미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3분 안에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듯 치열하게 미리를 휘둘렀다.
쾅! 쾅! 빠가각!
테르서박은 멍하니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죽기 직전까지 패서 정신력을 약화시킨 뒤 테이밍을 한다?’
무척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으나 테르서박이 굉장히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마르코를 테이밍할 수 있다?’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래도 되나?’
비록 완전히 성공한 건 아니라지만 어쨌든 지금은 테이밍으로 묶인 상태.
그는 테이밍된 개체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지금 같은 상황이면 마음이 몹시 아파야 정상이었다.
‘왜 안 슬프지?’
물론 슬픈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기쁜 마음이 더 컸다.
마르코라는 위대한 개체를 테이밍할 수도 있다는 그 기대감이 슬픔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는 속상한 듯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는 척했다.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감췄다.
‘흐흐, 흐흐흐흐.’
웃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지 마라, 네 주인의 명령이다 마르코. 김철수가 더 쉽게 때릴 수 있도록 급소를 내주어라.’
2분이 채 지나기 전에, 그는 완벽한 테이밍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테이밍에 성공하였습니다.]
완벽한 테이밍에 성공했다.
우주랭커. 테이밍 마스터 테르서박의 진정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