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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23화 (32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23화

차진혁은 비장한 모양새로 찾아온 필리악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라, 대귀족 필리악.”

은근슬쩍 눈치를 살폈다.

필리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읽어낼 수는 없었다.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하면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건 삼류 스트리머나 하는 짓이지.’

지금은 콘텐츠상 아주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었다.

필리악이 현재의 변화에 순응하고 자신의 편에 설 것이냐.

아니면 일주일 동안 더 치열하게 습격할 방법을 연구해 올 것이냐.

‘둘 다 좋지만 이왕이면 후자면 좋겠다.’

제3지옥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자가 좋고.

방송 조회수를 위해서는 후자가 좋았다.

스트리머인 차진혁에게는 당연히 방송 조회수가 더 중요했고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찌 됐든 습격을 당한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몸이 잔뜩 굳어 있는 걸 보면……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설령 아니라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전자여도 콘텐츠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괜찮았으니까.

“자. 여기 앉아라. 아니, 서 있는 게 더 편한가?”

아무래도 습격하려면 앉아 있는 것보다는 서 있는 게 낫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필리악은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은 앉아 있는 게 편한 거 아닌가?’

아무래도 차진혁의 화법이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런 자잘한 것을 따질 때는 아니었다.

“의자에 앉지.”

“의자에…… 앉게?”

“……앉으면 안 되나?”

“아니. 되지. 당연히 되고 말고.”

필리악은 의자에 앉았다.

‘눈빛이 어찌 저렇게 초롱초롱한 거지?’

필리악은 차진혁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내 속마음도 다 읽어냈을 터.’

그는 지난 1주일간 직접 3지옥의 주민들을 만나고 경험했다.

마시멜로의 방송은 조작방송이 아니었다.

정말로, 수많은 주민들이 온수 샤워를 즐기며 행복해했고 아이들이 치열좌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원했던 지옥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김철수에게 협조하기로 다짐했다.

‘내가 자기를 돕겠다고 생각한 것이, 저토록 큰 기쁨인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관절 지옥이 무엇이건대.’

어찌 저토록 진심일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지옥이 번성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에 저토록 진심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던 모양이다.”

“잘못 보다니?”

“지옥을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은 몰랐다.”

“…….”

“물론 아니라고 하겠지. 너는 겸손의 치열좌이기도 하니까.”

그가 보아왔던 방송에서 차진혁은 늘 그랬다.

‘김철수. 너는 자신이 불리한 것을 취하고 상대에게 유리한 것을 던져주면서도, 이건 그저 방송을 위해서라고 얘기하지.’

상식적으로 그럴 리 없었다.

김철수가 어째서 ‘겸손의 치열좌’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대귀족 필리악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마지막까지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던 차진혁은 더욱 눈을 말똥말똥 빛냈다.

드디어 습격인가!

……싶었으나 필리악은 습격 대신 무릎 꿇는 것을 택했다.

“김철수 경. 어쩌면 제 신념이 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철수 경과 지옥좌께서 만들어가는 지옥이 어쩌면 더 아름다운 세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필리악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았는가.

내 신념은 옳았던 신념인가. 지금 내 길은 옳은 길인가.

“김철수 경의 행보에 작은 보탬에 되고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대귀족이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으니 지옥주민들의 호의를 끌어내기에 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참 잘된 일이군.”

그쯤 되니, 필리악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쉬워하는 거 같지?’

그리고 좋을 대로 생각했다.

‘김철수는 김철수의 방식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겠지.’

여기서 너무 ‘그래, 위대한 내가 너를 용서하고 받아주마’ 정도의 스탠스는 대귀족인 자신을 우습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저토록 절제된 행동으로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필리악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쩌면 나는 진정 위대한 자를 만난 것일지도.’

차진혁이 아쉬움을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일주일 만에 그 단단했던 신념을 꺾은 이유가 뭐지?”

“그것은…….”

필리악이 품 안에 손을 넣었다.

필리악이 꺼내 든 것을 보고, 정말 마지막 기대를 했던 차진혁은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휘낭시에라는 것입니다, 김철수 경. 까사 드 서즈라는 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신문물이지요. 이것을 보고, 나는 김철수 경에게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차진혁은 아쉬운 대로 (미리 찍어놓았던) ‘까사 드 서즈’에 대한 영상을 내일 풀기로 했다.

* * *

‘전환격’을 사용하여 차진혁을 급습했던 전대 원로 치아민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헉…… 헉……!”

“포기를 추천해.”

“이제 그만 포기하십시오, 전대 원로 경.”

그림자로 변하여 끈질기게 쫓아오는 암살자들에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헉…… 헉……! 정말 징그러운…… 헉! ……헉! 년들이군.”

상대는 철저한 포식자였다.

사냥감이 도망치고자 하는 의지까지 완전히 부숴버린 다음 천천히 잡아먹는 포식자.

‘중간에 나를 공격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이쪽의 약점이 체력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하여 압박하며 쫓아오기만 한 것이다.

“김철수가 나를 살려둔다고 약속했다.”

“철수 오빠가 너를 살려둔다고 했지, 우리가 널 살려둔다고 안 했는데, 전대 원로 경.”

“동의.”

서둥이들었다.

그녀들은 최근 생쥐계 수인족 최강의 암살자인 브릭에게 특훈을 받았고, 브릭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다소 이상해진 말투 또한 브릭에게 배운 것이었다.

치열하게 배움에 임하는 만큼, 브릭의 사소한 말버릇까지도 모방하는 중.

‘브릭 경에게 칭찬받겠어.’

중간에 암살 기회가 많았으나 일부러 공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이렇게 완벽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김철수. 절대 지켜.”

“철수 오빠한테 그런 공격을 하고도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요, 전대 원로 경?”

서둥이들의 단도가 전대 원로의 척추를 꿰뚫었다.

근처 계곡으로 가서 피를 깨끗하게 씻어낸 그녀들은 지옥좌의 성이 있는 도시로 복귀했다.

도시의 이름은 마일렌.

깨끗하고 깔끔한 하얀색 복장으로 환복한 그녀들은 업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환영해요.”

“어서오세요, 까사 드 서즈입니다.”

지옥의 주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까사 드 서즈’.

최근 지옥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가게였다.

* * *

까사 드 서즈가 내려다보이는 3층 집.

마시멜로는 그 3층 집을 통째로 임대한 상태로, ‘까사 드 서즈’의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오늘은 반드시 인터뷰를 딴다!’

서둥이들의 움직임이 워낙 은밀하게 날쌘 탓에 도무지 인터뷰를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나는 척추. 하나는 목인가.’

두 개의 날카로운 검날이 척추와 목에 닿아 있었다.

그는 랭커의 직감으로, 이 두 단도가 서둥이들의 것임을 직감했다.

“나야, 나.”

그는 가면을 벗어냈다.

“내가 얼굴을 노출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서 말이야.”

“철수랜드?”

“철수랜드 1000호 경?”

마시멜로임을 확인한 서둥이들은 단도를 거두었다.

“칼은 거둔 이유가…… 내가 마시멜로라서냐, 아니면 철수랜드라서냐?”

“물론 후자.”

“당연히 철수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철수랜드 1000호 경. 이름이 마시멜로였나요?”

마시멜로는 약간 황당했지만 그래도 K사단 인물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르세핌이나 뮈엔느를 보더라도 김철수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미쳐 있었으니, 최측근인 서둥이들은 더욱 미쳐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 일류 반열에 든 너희가 왜 여기서 디저트를 팔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인터뷰 따려고 왔지.”

서둥이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공식 철수랜드의 요청이라면 무보수로 의뢰도 받아줄 판이니, 인터뷰 해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얘기를 듣고 난 마시멜로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자기네가 일류급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기준이 영 이상했다.

‘얘네 정도면 우주 전체로 봐도 꽤 일류급인데?’

물론 아르비스의 최상위 랭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서버는 이제 신규서버를 갓 벗어난 서버였으니까.

출발 자체가 느렸으니, 아직 (비교적)약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약하니까 다른 거라도 해야 한다고? 그게 치열한 거라고? 마침 제과제빵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제과제빵을 시작한 이유는 ‘독살’에 보다 효과적일 것 같아서라고 했다.

한눈에 봐도 맛있는 디저트에 독을 첨가하면 독살이 쉬울 것 같다나 뭐라나.

‘이 계기는 공개하면 안 되겠다.’

이건 까사 드 서즈를 망하게 하는 인터뷰였고, 그는 까사 드 서즈에 악영향을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제과제빵 실력도 많이 부족해서 지옥에 문을 열었다는 거죠?”

지옥은 ‘지옥과’라는 과일이 지천에 널린 서버였다.

지옥서버 출신의 사람들만 소화할 수 있는 과일이었는데, 생존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서 퍼펙트 푸드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옥과가 있으니 지옥인들은 음식문명을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지옥에서 나는 식재료들은 하나같이 다 맛이 없었다.

다른 서버의 사람들이 표현하기로는 대부분의 식재료들에서 고무 타이어 맛이 난다고 할 정도였다.

“지옥인들은 맛있게 먹어주니까?”

“동의.”

“네, 그렇죠, 마시멜로 경.”

“제가 하나 먹어봐도 됩니까?”

마시멜로는 이들이 구운 휘낭시에를 하나 맛보았다.

‘맛있는데?’

가히 천상의 맛!

……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못 되어도, 어딜 가도 줄 서서 먹는 맛집 정도의 맛은 되었다.

“빵의 촉촉하고 폭신한 식감. 향긋하고 감미로운 버터향의 조화가 너무 좋은데?”

마시멜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왜 다른 서버의 장사꾼들은 이 생각을 안 했을까요?”

그렇게 싸구려 입맛을 가지고 있다면, 대충 만들어서 대충 팔아도 대박 날 거 같은데?

서지아는 계속된 인터뷰에 지쳤는지 어딘가로 사라졌고 서지수만 남아 대답했다.

“글쎄요. 팔면 팔수록 손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마시멜로 경?”

“손해라고요?”

“휘낭시에 하나 팔 때마다 100만 다이아 정도는 손해일걸요?”

“…….”

하나 팔 때마다 100만 다이아 손해라니.

우주랭커인 마시멜로 입장에서도 뼈 아픈 계산이었다.

‘하긴. 지옥으로 물자를 옮기는 건 엄청 까다롭지.’

지옥이 괜히 다른 문명과 별로 교류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

문명간 물자를 이동하기가 무척 어렵고, 이동시키려면 천문학적인 손해를 봐야했다.

때문에 지옥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었고.

“장사 며칠만 해도 천문학적인 손해가 나겠는데요? 그 돈은 어디서 충당하죠?”

서지수는 물끄러미 마시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마시멜로는 약간 당황했다.

“내, 내가 뭘 잘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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