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18화
사러가 던전 안.
[업적 효과, ‘주인이 없는 곳의 주인’을 활성화합니다.]
차진혁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쏴아아-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광활한 소우주가 펼쳐졌다.
인간의 시야로는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거대한 의지가 소우주 안에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없이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차진혁은 가부좌를 튼 채 한참 동안 명상했고, 지옥여제 가희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할 말이 있어서 일단 따라오기는 했는데…….’
지금은 차진혁이 너무 바빠 보였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명상에 빠져들었다.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험난한 지옥의 생활을 견뎌 제4지옥을 다스리는 위치에 오른 그녀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다.
그녀, 아니, 그는 그가 가장 아끼는 부하들 앞에서도 저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를 그만큼 믿는 건가.’
이것이 무척 낯설고 새로웠다.
누군가로부터 근거없는 믿음을 받는다는 이 기분.
‘……나쁘지 않군.’
그녀는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로 했다.
어쩌면 급진파 관리자들이 이번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암살자들을 고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사러가 던전의 천장에서 돌조각이 조금 떨어져 내렸다.
‘가벼운 지진인가?’
던전 내에서 이런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김철수의 집중에 방해되겠어.’
가희는 자신의 기운을 방출하여 천장쪽을 명빙(明氷)으로 덮어버렸다.
곳곳에 얼음 기둥을 세워 던전 자체를 보강했다.
차진혁과 가희의 등장에 주먹 원숭이들은 이미 던전 곳곳에 숨은 지 오래였고.
‘이제 고요해졌군.’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공간이 되었다.
* * *
“던전을 붕괴시킨다.”
“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지금 그거 말고 방법 있나?”
일단 김철수를 없애고 보는 것이 여러모로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이것도 좋은 선택이라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붕괴가 안 됩니다.”
“왜!”
“던전을 이루는 구조체가 강화된 것 같습니다.”
차진혁이 명상에 빠져들면서 방송도 잠시 끊어진 상태.
차진혁의 방송으로도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고, 사러가 던전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저기 목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재현이 있다면 어찌어찌 나무기둥을 세워 가능하겠지만 저기에는 목왕도 없지 않은가.
“암살자 섭외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암살자들도 이번 일에는 끼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서울은 수호수의 권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옥여제가 함께 있으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비겁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부국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믿을 사람은 국장밖에 없었다.
비록 여지껏 다 틀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는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러가 던전에는 언제 도착하는 겁니까, 국장님.’
김철수와 담판을 짓기 위해 떠난 국장이 바로 마지막 동앗줄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는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국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 * *
차진혁은 빨려들어갈 듯한 어둠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방송이 끊어진 것 같다.’
그것은 엄청난 자책이 되었고, 그 자책은 강력한 채찍질이 되었다.
덕분에, 심연으로 향하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도 그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방송을 되살려야 해.’
그 의지가 가히 일품이었다.
우주 속에서 오랫동안 빛을 찾아 헤맨 결과, 그는 저만치 멀리 작은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그 빛 앞에 서 있었다.
너무 밝아서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빛이었다.
차진혁은 손을 뻗어 그 빛을 움켜쥐었다.
[업적 효과, ‘주인이 없는 곳의 주인’이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본능적으로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러가 던전’에 주인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러가 던전’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소우주 속 차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겨우 던전 하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가르비누의 발자취를 쫓는다.’
여태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가르비누는 아르비스 서버의 주인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내가 노리는 건 지구의 주인 자리.’
그걸 해내야 가르비누를 조금이라도 좇아갈 수 있겠지.
차진혁은 손에 움켜쥔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힘을 꽉 주었다.
순간 순간 호흡이 가빠오며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방송도 꺼뜨린 주제에 정신까지 잃으면 병신이지!’
그리고 옆에서 지옥여제의 서포트도 있었다.
지옥여제는 정신계 능력에 뛰어난 지옥의 군주이니만큼, 차진혁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었다.
[‘서울’에 주인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울’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이것은 마치 미인계와도 같았다.
너무나 달콤하고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미인계 따위에 당하지 않아.’
평소에도 미인계를 가장 경계해 왔던 그였다.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 맵’에 주인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 맵’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아까보다 더한 유혹이었다.
그의 본능은 지금 당장에라도 고개를 끄덕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버텨내야지. 이 정도 미인계에 넘어가면 일류 랭커가 될 수 없다.’
방송까지 끊어진 주제에 미인계에 넘어가기까지 하면 도무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알림이 들려왔다.
[‘지구 서버’에 주인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구 서버’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그제야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구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알림이 들려왔다.
[‘지구 서버’의 주인 후보가 등록되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눈 앞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투표지가 생성되었다.
“이게 뭐냐?”
“스팸 같은 건가?”
“없어지지도 않는데?”
투표용지는 투표를 하기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
“잠깐만. 이거 후보자…… 김철수 아니야?”
“김철수가 주인 후보라고? 이게 뭐냐?”
“야, 여기 밑줄 있어. 살펴봐봐.”
[주인이 등록되면 발발하는 변화들에 관한 상세내용]
이 생소한 내용에 지구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구에 주인이 생기는 게 말이 되냐? 난 반대다.”
“무슨 독재시대도 아니고. 그건 안 될 말이지. 나도 반대.”
[상세내용을 모두 확인하기 전까지 투표가 불가합니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상세내용을 확인해야만 했다.
현재, 지구에서 김철수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에건 폴이 이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인 혹은 독재자 개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용을 모두 확인한 그는 실시간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것을 공개했다.
“제가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지구에 주인이 설정되면, 지구 전체에서 경험치가 3배만큼 상향 조정됩니다. 플레이어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경험치 3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치 +30%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무려 3배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특혜였다.
“뿐만 아니라 다이아 획득량도 3배만큼 상향조정됩니다. 각종 아이템의 드랍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다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어급의 경우도 드랍률 3배 증가네요. 그리고 부모의 능력과 레벨을 신생아들이 일부 물려받습니다.”
에건 폴은 잔뜩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마치…… 아르비스 서버를 보는 것 같습니다.”
* * *
차진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제야 지옥여제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여러모로 고마운 녀석이네.’
회귀 전, 미쳐 있던 자신의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이제는 미치지 않도록 또 도와주고 있었다.
가희가 물었다.
“주인이 되었나?”
“아니. 투표로 결정되는 것 같아.”
“투표?”
“48시간 동안 진행되는 주민 투표로 결정되는 것 같군.”
“그렇군.”
그녀 또한 한 서버를 다스리는 절대자답게, ‘주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꽤 많았다.
“주인이 되면 어떤 것들이 변하지?”
차진혁은 변화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주민들에게 이로운 내용들뿐이군. 머저리가 아니라면 찬성하겠지. 그런데 주인에게 주어지는 특전은 따로 없나?”
“있지.”
플레이어들은 평소보다 3배의 경험치를 가져간다.
대신 그중 0.1%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주인’에게 상납하게 된다.
차진혁은 방송을 재개하면서 이에 관한 내용도 정확히 공유했다.
“원래 경험치 1,000을 얻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저를 지구 서버의 주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면, 플레이어들은 3,0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중 3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전송하게 되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차진혁에게 3을 내주는 대신, 2997의 이득을 얻게 된다는 의미였다.
“지구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몇이나 되지?”
“대략 20억 명쯤?”
가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새로운 우주 랭커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대신 레벨업은 하루에 1로 제한되어 있어.”
“……그렇군.”
그렇다고 해도 하루 1레벨업이 보장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가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주 랭커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절대자의 탄생을 보고 있는 건가.’
만약 제거해야 한다면 지금 제거해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지.’
차진혁에게 받은 은혜도 은혜거니와, 차진혁이 보여주었던 믿음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김철수. 네게 동맹을 제안한다.”
“동맹?”
“나는 오래전부터 지옥을 통합하고 싶었다. 힘을 합쳐주면 좋겠군.”
가희는 이미 머릿속으로 많은 구상을 해놓았다.
차진혁에게 어떤 대가를 제시할 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놓은 상태.
‘지옥의 주인 자리를 제안하면 되겠지.’
‘주인’이라는 어감이 별로 좋지는 않았으나, 지옥여제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다.
김철수에게나 지옥에게나 모두 윈윈이 될 거라 확신했다.
“물론 무척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래서 가희는 차진혁을 납득시킬 이유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좋군.”
“물론 그렇겠지. 나 또한 아무렇게나 제안하는 것은…… 뭐?”
“함께하겠다.”
차진혁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 흐흐 웃고 있었다.
‘지옥 정벌기?’
제목부터가 이미 완벽한 엘튜브각이었다.
아직 아무도 도전해 보지 않은 콘텐츠.
도합 5개의 서버를 통일하는 콘텐츠라니.
엄청난 스케일의 대형 콘텐츠 아닌가!
이쯤 되니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가희였다.
“……다시 말하지. 위험한 일이다. 지옥의 군주들은 매우 강력한 힘과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차진혁의 눈이 더욱 맑아졌다.
그리고 48시간 중 절반, 24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