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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03화 (30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3화

최근까지 뮈엔느는 깊은 고민에 휩싸여 있던 상태였다.

‘한세린이라는 자는 뛰어난 군주이면서 훌륭한 길잡이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아직까지 아르비스 랭커들과 비교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그 잠재력은 가히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두더지맨은 길잡이에 더해 광부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지.’

게다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르세핌이 명예 철수랜드 1호가 되었어?’

그 깐깐한 철수랜드들로부터 90퍼센트의 동의를 얻어냈다니.

거기서부터 뮈엔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공식 철수랜드가 되고 싶다.’

2호라도 괜찮았다.

저 임명장이 너무 탐이 났다.

훔칠 수 있다면 훔치고 싶을 정도였다.

‘쓸모있는 창술가가 되려면 뭘 더 잘해야 하지?’

그러나 그녀에게는 유별난 특기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성기사로서 교육받았고 오로지 창술만을 갈고닦아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취미로 뭐라도 익혀놨어야 했는데.’

혼자서 끙끙 앓아봤자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녀는 마시멜로를 통해 르세핌에게 연락했고, 르세핌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나도 인정받고 싶습니다.”

“음, 쉬운 일은 아닌데. 물론 뮈엔느 당신이 꽤 훌륭한 일들을 해냈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르세핌은 절대 갑.

뮈엔느는 절대 을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말이다.

“나야 어려서부터 억지로 연금술을 익혀왔다지만…… 당신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잖아? 창 말고는 손에 쥔 게 없지 않아?”

“…….”

르세핌은 뮈엔느의 마음을 무척이나 깊게 공감했다.

공식 철수랜드가 되고 싶은 저 절실함. 저 갈망. 철수랜드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테니까.

그녀는 뮈엔느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 진실되게 조언해 주었다.

“자기객관화를 한번 해보자. 뮈엔느, 당신이 가진 가장 커다란 장점이 뭐야?”

“내가 가진 장점을 내 입으로 말하기가…….”

“괜찮아, 괜찮아. 당신을 돕고 싶어서 그래. 지금 당신 마음 너무너무 잘 알 거든, 내가.”

둘은 꽤 말이 잘 통했다.

‘과연! 김철수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악인은 없군.’

‘김철수를 좋아하면 역시 착해.’

세상에 철수랜드들만 있으면 사랑이 넘쳐날 것이다…… 정도로 생각했다.

바로 직전에 하르코엔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쨌든 둘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단단한 정신력을 갖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존경받는 성기사가 되기 위하여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했으니까. 강철같은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 왔고 그것을 일부 이룩할 수 있었다.”

뮈엔느는 지난 생일, 부하들에게 받은 축하쪽지를 보여주었다.

[대장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를 위하여 묵묵히 걸어가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대장님처럼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신 분은 처음 뵙습니다. 저의 이상향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좋아. 이런 성향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김철수에게 도움이 되는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뮈엔느는 깨달았다.

“……알았다!”

“응?”

“김철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군.”

뮈엔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김철수에게 유혹당해야겠어. 그의 연습과 성장을 위하여. 고맙다, 르세핌. 보람찬 시간이었다.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르세핌은 멀어지는 뮈엔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존X 부러운데?”

* * *

차진혁에게 거절당한 뮈엔느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물었다.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뮈엔느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단단한 정신력을 갖기 위하여 정진해 왔다. 당신의 훌륭한 연습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어.”

“철수랜드는 유혹 안 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상도덕이 없는 짓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미인계 따위를 쓴단 말인가.

“…….”

뮈엔느는 무척 아쉬워하는 한편, 김철수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동을 받고 말았다.

‘철수랜드는 유혹하지 않는다는 저 말이 나의 심금을 울리는구나.’

“그리고 둘째로, 이건 좀 미안한 말인데.”

차진혁은 머리를 긁적거렸고 뮈엔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신력이 별로 강해 보이지가 않아.”

“…….”

그 말에 퓌렐이 깔깔대며 웃었다.

“하긴. 척 봐도 이미 반해 있는데?”

“…….”

뮈엔느는 꽤 큰 자괴감을 느꼈다.

단단한 정신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그마저도 김철수에게 도움이 안 된다니.

‘내가…… 도움이 안 된다니.’

이러면 명예 철수랜드가 될 수 없어……!

세상이 비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대를 도울 수 있지?”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제발, 그대를 돕게 해다오.”

* * *

퓌렐은 의외로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있는 건 천천히 두고두고 먹어야 맛있지.”

혀로 붉은 입술을 핥았다.

상당히 뇌쇄적인 눈빛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지만 차진혁은 딱히 유혹당하지 않았다.

단순히 유혹당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약간 경계하는 쪽에 가까웠다.

세상에 예쁜 것과 귀여운 것들은 모두 조심해야 할 대상이니까.

“다음에 또 보자, 김철수. 아무래도 우리는 자주 보게 될 것 같군.”

팟! 하고 불꽃이 이는가 싶더니 퓌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뮈엔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자가 이토록 오래 머물렀는데 파괴된 것이 없다니.”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맨 처음 뮈엔느와 퓌렐이 맞부딪쳤을 때 빛의 파편 일부가 퍼져나가 주변을 망가뜨렸기 때문이었다.

김철수도 평온한 어조로 녹화를 이어갔다.

“하긴, 이 정도면 꽤 멀쩡한 편이죠?”

테이블 몇 개가 완전히 못 쓸 만큼 박살 나고, 몇 개는 수리해서 쓰면 될 정도로 반파되었고, 의자 몇 개가 가루가 되었다. 벽면에 작은 구멍 몇 개가 숭숭 나 있기는 했지만 건물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천장의 샹들리에가 흔들리…….”

건물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건물이 무너져 버렸다.

차진혁의 머리 위로 두꺼운 보가 떨어져 내렸다.

콰과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희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는가 싶더니 건물이 좀 주저앉았네요. 아무튼 뭐 별일은 없었고 오늘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 *

며칠 만에 지구로 돌아온 차진혁은 침대에 누웠다.

‘역시 집이 좋긴 좋다.’

집이 주는 안락함이 있었다.

‘검왕 시절에는 이런 걸 하나도 모르고 살았었지.’

그때는 검에 너무 미쳐 있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살았어도 되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여유시간을 만끽하다가 씨익 웃었다.

천장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암살자인가!’

잠은 이미 깼지만 일단 더 자는 척 했다.

‘어느 타이밍에 찌르려는 거지?’

집까지 숨어들어왔을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일 텐데.

수호수의 기감마저 속였다는 뜻이니까.

‘긴장하고 있어야겠다.’

암살자가 공격하는 그 순간이 반격하기 가장 좋은 그 순간이니까.

차진혁은 떨리는 마음으로 공격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왜 공격을 안 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대는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꽤 익숙한 느낌이 들어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천장에 생쥐계 수인족 한 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브릭이었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던 브릭이 입을 열었다.

“오, 드디어 눈을 떴는가, 김철수 경. 꽤 새근새근 자더군.”

“……나를 찌르려던 거 아니었나?”

브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원했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김철수 경에게 신세를 많이 졌으니 말이야.”

“아냐. 난 그런 걸 원하지 않아.”

“저번부터 정말 이상하군. 누가 봐도 원하는 눈초리인데. 어째서 몸과 입이 따로 놀지?”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암살을 기대하는 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니까. 나는 달라.”

“하긴 김철수 경은 다르지.”

적당히 미친놈들과는 궤를 달리 할 만큼 특별히 미친놈이니까!

평소라면 얘기했겠지만 오늘은 입을 다물었다.

‘닐슨의 은인에게 무례를 범할 수는 없는 법이니.’

브릭은 폴짝 뛰어내려 차진혁의 침대에 착지했다.

“김철수 경의 방송이 요즘 굉장히 뜨겁다고 해서 몇개 슬쩍 넘겨봤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지.”

“뭔데?”

“김철수 경에게는 훌륭한 동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의 수준이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째서 암살 계열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이렇게 소홀한 거지?”

“…….”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농부계열 플레이어들은 아예 재단 차원에서 팍팍 밀어주더군! 광부들도 마찬가지고. 목왕? 권왕? 자유의 성녀? 천사소녀? 그런 애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신유리라는 여자의 화포 능력도 굉장히 화끈하고 말이야.”

“몇 개 슬쩍 넘겨본 거 치고 되게 잘 아네?”

브릭의 콧수염이 찌르르하고 떨렸다.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사람처럼.

“하, 하지만 검은가시 연합, 그 녀석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있다! 적절한 지원이 있을 때에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클 수 있는 것이다, 김철수 경.”

브릭은 자신이 그들을 훈련시키고 키워주는 게 어떻느냐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서를 내밀었다.

차진혁은 제안서를 넘겨보면서 중요한 지점을 소리내어 읽었다.

“훈련 강도 매우 강함. 실전 지향. 강해질 수 있는 기회 제공. 복지 열악함. 훈련받다 불구 될 가능성 상당함. 죽을 가능성도 꽤 높음. 훈련비 없음. 죽으면 소정의 위로금 정도는 줌.단, 이건 MK재단과 협의해야 함?”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경악할 만한 조건들이었다.

차진혁은 약간 감탄했다.

“좋은데?”

“그렇지?”

“내가 암살자를 지망했다면 무조건 지원했을 것 같다.”

* * *

브릭의 계획은 꽤 구체적이었다.

“지금 당장 훈련소를 세울 수는 없으나 훈련생들을 훈련시키기에 최적의 장소가 있다. 바로 하르코엔 부인의 대저택이지! 그곳에는 각종 결계와 미로가 가득하더군. 훈련장소를 쓰기 최적이다. 마침 그대의 소유가 되었으니 제격 아닌가!”

“오, 그쪽으로 활용하면 좋기는 하겠네.”

“물론 아르비스 출신이 아닌 자들을 하르코엔 대저택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머렌의 치안 담당자가 그대를 발 벗고 나서서 도울 테니 말이야.”

그러고 보니 뮈엔느가 제발 돕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는 했다.

뮈엔느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워낙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인물이라 이걸 부탁하는 게 좀 파렴치한 짓인 거 같기도 하고.’

약간 생각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릭은 신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하르코엔 대저택을 비롯하여 개인 소유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특수한 교육을 위한 목적이면 임시 비자가 발급 가능하다. 공무원들이 행정적 편의만 조금 봐준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 김철수 경.”

“……제법인데.”

브릭이 한 뼘짜리 어깨를 쭉 폈다.

“훗, 암살자라면 이정도 정보수집 능력은 응당 갖춰야 하는 법.”

차진혁이 물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브릭의 어깨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그 새 내 속셈을 간파했나, 김철수 경? 역시…… 대단하군.”

“말해봐. 뭘 원하고 있는 건지.”

“그게…….”

이어지는 브릭의 말에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히죽 웃고 말았다.

‘그렇단 말이지?’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건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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