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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02화 (30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02화

연금술사협회의 연금술사들은 머리를 굴렸다.

“하르코엔에 부인에 대한 반발이 아르비스 전역에 퍼져나간 지금이 기회입니다. 일단은 사과를 합시다.”

“우리도 잘 몰랐다고 하면 됩니다.”

“그 또한 우리를 굉장히 신경 쓰고 있을 것입니다.”

무려 아르비스의 연금술사 협회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 아닌가.

이런 경우가 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철수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우리는 연금술의 어머니이자 우리들의 동료인 하르코엔 부인을 전적으로 믿었던 바, 김철수에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실례를 저질렀으며…….]

차진혁도 그 내용을 확인했다.

쓸데없는 사설이 너무 길어서 대충 읽었다.

“대략 미안하다는 얘기지?”

르세핌이 물었다.

“그렇게 대충 봐도 돼?”

“어, 그러면 안 되나?”

“음, 그래도 될 거 같긴 해. 내가 자세히 읽어보고 요약해 줄게.”

연금술사협회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차진혁에게 있어서 연금술사협회의 존재감은 미비했다.

안 그래도 처리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르세핌이 연금술사협회에 일부 관심이 있었고, 그녀가 연금술사들의 속내를 파악해 주었다.

“너한테 사과하는 건 그냥 겉치레고, 사실은 연금술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용인데?”

그녀는 연금술사들의 속내를 곧바로 캐치했다.

“네 명예욕을 자극하는 말들이네.”

르세핌은 쯔쯧, 하고 혀를 찼다.

‘김철수를 잘못 파악했구나.’

김철수를 공략하려면 ‘명예욕’ 쪽이 아니라 ‘방송욕’ 쪽을 노렸어야지.

르세핌이 말을 이었다.

“하르코엔의 유산을 공유하자, 뭐 그런 얘기인 것 같아. 그들로서도 하르코엔의 유산이 탐날 테니까 말이야.”

“그걸 공유하고 같이 연구?”

“응, 미친 개소…….”

“그러면 엘튜브 각 좀 잡힐까?”

“…….”

르세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선 명예욕을 건드렸는데, 여기선 방송욕이 자극되어버렸다.

‘아무튼 방송에 너무 미쳐버렸다니까. 뭐, 그래서 더 섹시하지만.’

르세핌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김철수가 저렇게 섹시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자.

방송만 신경 쓸 수 있도록, 방송에만 진심일 수로 있도록 내가 내조, 아니, 보필하자.

“연구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내 스승님도 아직 살아 있고. 정 필요하면 우리 엄마 이름 빌려서 놈들에게 용역 주면 돼.”

르세핌이 속으로 다짐했다.

‘김철수 거, 절대 지켜!’

연금술 및 하르코엔의 유산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을 르세핌에게 일임한 차진혁은 오랜만에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었다.

르세핌은 한참 동안이나 차진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

“혹시, 오늘이 우리 결혼식이야?”

차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르세핌의 이마를 콕 찍었다.

“정신 차려. 왕유미가 연애나 가상결혼 콘텐츠만큼은 절대 금지라고 한 거, 못 들었어?”

“…….”

“물론 내 방송을 돕겠다는 의욕은 고맙지만 말이야.”

차진혁은 휘적휘적 걸어나갔다.

퓌렐과의 데이트(?)를 위해서.

* * *

퓌렐은 대도시 머렌에서도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대관했다.

“나를 기다리게 해?”

퓌렐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약속시간은 7시.

현재 시각 6시 57분.

아직 지각은 아니었으나 퓌렐로서는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7대 명가의 가주 중 한 명, 광란의 마법사가 먼저 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건방지다니까.”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땐 내가 잠깐 미쳤었나?’

자신을 무시하고 스쳐 지나가던 김철수를 보며 큰 매력을 느꼈었는데.

그건 어쩌면 하르코엔의 대저택을 파괴하느라 마력을 너무 많이 뿜어댄 것의 부작용 같은 거 아니었을까.

‘다시 만나보면 알겠지.’

기다리는 내내 언짢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7시.’

자신과의 약속에 늦는다?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척 불쾌해졌다.

그녀는 누군가를 1초 이상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감히 나와의 약속에서 지각을 해?’

몹시 불쾌해진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히죽 웃었다.

‘너는 앞으로 아르비스에서 플레이하기 어려울 거야.’

7시 1분.

슈트를 빼입은 차진혁이 레스토랑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퓌렐. 도착해 있었네. 방금 온 건가?”

퓌렐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나도 방금 도착했어.”

방금까지 분명 화가 났었는데,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 * *

자리에 앉은 차진혁이 먼저 양해를 구했다.

“지금은 카메라 안 돌아가고 있어. 그러니까 방송을 의식하거나 그러지는 않아도 돼.”

“…….”

난 원래부터 그딴 건 의식해 본 적이 없는데.

평소라면 그렇게 말이 튀어 나갔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방송을 켜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그게 뭐지?”

“내 미인계가 어땠어?”

퓌렐은 몇몇 상황들을 떠올려본 뒤 대답했다.

“기술은 형편없었지.”

“……그래?”

“하르코엔, 그 썅X을 유혹할 때에도 무척이나 어설펐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그 X의 이름을 부르고, 뻣뻣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등을 쓰다듬던데.”

“……그 정도였어?”

“나를 상대로 할 때에는 유혹하겠다고 대놓고 말했지. 기술 측면에서 보자면 정말 최악이었다.”

“…….”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퓌렐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말했었다. 어떤 피지컬은 기술을 압도하기도 한다고 말이야.”

사실 퓌렐은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었다.

원래 그녀는 타고난 피지컬보다 후천적으로 갈고닦은 기술이 훨씬 더 빛을 발한다고 믿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졌다.”

비공식 결투를 치른 직후였다.

쓰라린 패배를 맛본 퓌렐이 물었다.

“네놈의 기술은 전혀 정교하지 않았다. 네 공격은 모두 내 예측 범위 내였다. 내 마법의 방출과정은 완벽했어. 내가 어째서 패배했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가끔은 피지컬이 기술을 압도하는 법이다, 퓌렐, 으하하핫! 아무튼 내가 이겼으니 얼른 엉덩이로 이름 써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퓌렐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살다 살다 내가 그 새끼의 말을 인용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패배한 직후에도 저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는데, 오늘 김철수를 만나고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어떤 피지컬은 기술을 압도한다.

퓌렐은 차진혁의 얼굴을 흘낏흘낏 계속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네 피지컬이 그런 종류인 것 같군.”

“흐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지금 교제하고 있는 여성이 있냐?”

“없어.”

“잘 됐네. 김철수. 나랑 연애하……!”

퓌렐이 오른손을 펼쳐 녹색 마법진을 펼쳤다.

방패 형상의 마법진이었다.

번쩍이는 빛이 날아와 방패 형상의 마법진과 부딪쳤다.

쾅!

굉음이 일고, 빛의 파편이 사방에 뿌려졌다.

‘와…… 방금 대단했다.’

단순히 파편을 막아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묵직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런 공격을 해낸 사람도, 그걸 준비영창도 없이 막아낸 퓌렐 또한 대단했다.

“퓌렐. 개수작 부리지 마라.”

“뮈엔느? 이 미친X이 다짜고짜 그따위 공격을 날려?”

둘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차진혁은 미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은색갑주로 풀무장을 한 뮈엔느입니다. 반면, 퓌렐은 홍염을 일으켜 전투태세를 갖췄고요.”

상황은 살벌했건만, 차진혁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났다.

헬렌제국 7대 성기사 중 한 명이자 빛나는 창이라 칭송받는 뮈엔느.

아르비스 7대 명문가의 가주이자 광란의 마법사라 불리는 퓌렐.

두 절대자의 결투는 결코 쉽사리 볼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대던 둘은 기세를 거두고 차진혁 양옆에 앉았다.

아쉬워진 차진혁이 물었다.

“……왜 안 싸워?”

* * *

뮈엔느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퓌렐과 전력으로 싸웠다가는 김철수가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건 퓌렐도 마찬가지여서 뮈엔느와 전력으로 부딪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서로를 향한 살벌한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퓌렐. 철수랜드들에게는 위대한 율법이 있다.”

“물어본 적 없어.”

“첫째. 김철수를 절대 독점하려 들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김철수를 독점하려는 중차대한 반역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

퓌렐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뮈엔느를 바라보았다.

밥 한번 같이 먹는 걸로 지나치게 비장한 단어들을 쓰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반역을 언급한다니? 그것도 신성제국 7대 성기사가?

신성제국 황제가 들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이봐, 나는 철수랜드가 아냐.”

그러나 맑은 눈의 뮈엔느는, 퓌렐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나는 좌시할 수 없다. 머렌의 치안 담당자인 나는 이 시간부로 이 자리에 합석할 것을 천명한다.”

“치안 담당자인 것과 합석에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

“아무튼 합석한다.”

“할 말 없지?”

“나는 머렌의 치안 담당자다.”

퓌렐은 속으로 고민했다.

‘예전 같았으면 대판 싸웠을 텐데.’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김철수 앞에서 너무 심한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늘만 봐준다.’

식사가 이어지는 와중, 뮈엔느가 말했다.

“철수 님. 유혹 기술을 연마한다고 들었는데.”

“맞아. 퓌렐을 상대로 연습하면서 조언을 좀 구하려고 했어.”

뮈엔느는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퓌렐은 이미 완전히 유혹되었으니까. 저 여자를 상대로는 전혀 연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기술을 뛰어넘는 피지컬이 있다고도 얘기해 줬고 말이다.

“미인계를 연마하기 위해서 그보다 훨씬 유용한 방법이 있다.”

그 말에 차진혁도 솔깃했다.

안 그래도 미인계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지 않았는가.

‘역시 제국 7대 성기사쯤 되면 꽤 훌륭한 방법을 알고 있는 건가.’

양질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심지어 퓌렐조차도 뮈엔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의 김철수가 만약 기술까지 갖추게 된다면?’

저 얼굴로 정말 그럴듯한 유혹을 한다면?

저 피지컬에 기술까지 갖추면?

‘씨X, 존나 섹시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뮈엔느를 응원했다.

“오, 뭔데?”

“내가 유혹당해주지.”

퓌렐이 탁자를 쾅! 내리쳤다.

“이 미친X아!”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냥 너한테 좋은 거잖아.”

“나는 어려서부터 성기사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단련을 해왔다. 김철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그렇기에 미인계를 연습할 상대로는 내가 제격이다, 퓌렐.”

퓌렐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데이트를 방해받은 것도 짜증 나는데 저런 헛소리를 더는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녀가 마력을 일으키려던 찰나,

“거절한다.”

차진혁의 단호한 거절에 뮈엔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반대로, 퓌렐은 기세를 거두고서 히죽 웃었다.

기분이 무척 좋아진 퓌렐은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어머어머, 이걸 어째, 너는 김철수 스타일이 영 아닌가 보다, 성기사양.”

뮈엔느는 굉장히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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