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87화
차진혁은 한세린과 함께 이름 모를 숲에서 야영을 하는 중.
모닥불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네가 김철수군.”
“너는 누구냐?”
“내 이름은 하이드. 하르코엔 부인의 시종장이다.”
하르코엔의 심복이라는 말에 한세린은 약간 긴장했고, 차진혁은 신기해했다.
“이 넓은 아르비스 서버에서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네 출입과 동시에 너를 추적했다.”
“나를 미행했다고? 전혀 못 느꼈는데.”
“직접 미행을 붙이지 않더라도 너를 추적하는 방식은 많아.”
“오, 그런 방법이 있어?”
차진혁은 물론이고 한세린 또한 크게 자극받았다.
‘그런 방법들이 있다고? 과연 우주 최강의 서버답네.’
직접 미행을 안 붙이더라도 상대를 추적하는 방식.
이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나도 노력하면 그런 게 가능해지겠지?’
보통의 군주들이라면 이런 자극을 받지 않았겠지만 한세린은 크게 자극 받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치열하게 노력해야겠어 라면서.
하이드가 말을 이었다.
“하르코엔. 그 아이는 미쳐 버렸다. 어린 시절의 맑고 순수했던 그 아이는 이제 없어.”
“…….”
“나는 그 아이의 깨끗했던 모습이 그립다. 나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했거든.”
얘기를 듣다 보니 차진혁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미친놈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광기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정보를 다 전해줄 테니 하르코엔만 너한테 넘기라고?”
하이드가 하르코엔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주상남자(주식회사 상남자)를 도피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하르코엔이며, 하르코엔은 그를 이용하여 차진혁 자신을 사냥하려고 한다고 했다.
“직업이 뭐 인간 사냥꾼, 그런 건가?”
“아니. 그 아이는 연금술사다.”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금술사가 사람을 왜 사냥해?
근데 생각해 보면 군주가 추적을 하고, 길잡이가 광부를 하는 세상이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연금술을 사랑했던,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였다.”
“아무튼 그래서? 나한테 협조해 주겠다? 주상남자도 잡을 수 있게 해주고 하르코엔의 재산과 연구자료들도 독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인형으로 만들어 영원히 보관할 것이다. 착하고 순수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
“자고 있을 때의 그 아이는 무척 사랑스럽거든.”
역시 미친놈이구나.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미쳐버렸어?”
“미친 건 내가 아니라 그 아이지.”
아무리 봐도 네가 미친놈 같은데.
차진혁은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인터뷰어니까.’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고 인터뷰이의 말을 잘 끌어내는 것도 역량 아니겠는가.
“하르코엔이 미쳤다?”
“그 아이가 내 뺨을 때렸다. 어렸을 적부터 애정을 다해 키워준 나를 말이야. 그 아이의 광기를 멈춰야 한다.”
차진혁은 쯧, 하고 혀를 찬 뒤 물었다.
“근데 이거 방송 내보내도 되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하긴. 당연히 써도 되겠지. 괜한 질문해서 미안하다.”
소재가 아주 자극적이어서 좋은 엘튜브 각이었다.
하이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당연히 안 되는 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게 공개되면 하르코엔이 이 방송을 보고 대비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냐! 상황을 곤란하게 만드는 미련한 짓이다.”
“그건 곤란한 게 아니다.”
안 그래도 아까 한세린에게 영감을 받았던 상태였다.
“녹화는 시작한 거지?”
“어.”
“실시간으로는 안 하고?”
“실시간이면 위치 노출되잖아. 주상남자한테 너무 정보를 많이 주게 돼.”
“아. 방플(*방송을 보면서 플레이하는 비겁한 행위) 할 수도 있다고?”
“그치.”
“그러면 더 치열해져서 좋은 거 아닌가?”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이걸 어쩌지?”
말은 어쩌지? 하고 있지만 신나 보였다.
“사실 네가 처음 왔을 때부터 실시간 방송 켜놨거든. 시청자 반응 엄청 좋아.”
방송의 흥행(?)에 차진혁은 히죽 웃고 있었고 하이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방송에 미친 놈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미친놈일 줄이야.
* * *
“배신자로 낙인찍혔겠군.”
하이드는 딱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최대한 냉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일단 나는 몸을 피하겠다. 또 접선해서 정보를 전해주도록 하지.”
하이드가 사라지고 나서야 한세린이 입을 열었다.
“저 새끼, 사기꾼이네.”
“……어?”
“이중첩자질을 하려는 것 같아.”
차진혁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아까 ‘중계자의 통찰’로 하이드의 속마음을 읽어냈었다.
[#내 뺨을 때려? #그아이가 내게 어떻게 #그 아이의_광기를_막아야 한다]
[#그 아이는 #잘 때_제일 사랑스럽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중계자의 통찰을 속일 수도 있겠네?’
분명히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내 능력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가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상대의 입장에서는 맞춤으로 자신을 공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고맙다. 완전 낚일 뻔했네.”
“고맙긴.”
한세린이 호호 웃었다.
차진혁이 멋쩍어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더 기뻐했다.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
“뭐가?”
“원래 사람이 뭔가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것들은 놓치기 마련이잖아? 네가 하이드에게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던 건, 그만큼 네가 그만큼 방송에 진심이라서 그런 거겠지.”
“…….”
“오히려 네가 나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하고 하이드를 의심했다면 나는 실망했을 거야. 네 방송에 그만큼 몰입하지 못했다는 증거니까.”
“그런가?”
차진혁은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그런 걸 알아차려야만 치열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군.’
좋은 걸 배웠다.
역시 한세린은 위대한 동료였다.
* * *
그날 새벽.
차진혁이 눈을 번쩍 떴다.
“이야.”
차진혁의 머리맡에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즉시 녹화를 시작했다.
“사람이 왔다 갔습니다. 아마 도둑 계열의 플레이어 같네요. 아주 미세한 기척밖에 못 느꼈습니다. 만약 암살자였더라면 대응하지 못했겠는데요.”
물론 암살자는 보통 도둑보다는 기척이 크기 마련.
또한 공격하려는 순간은 기척이 커져서 보다 쉽게 느낄 수는 있었겠지만 굳이 그런 사실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주상남자가 보낸 쪽지입니다.”
[신성제국 헬렌, 대도시 렌마에서 만나자. 저번 전투에서는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나 또한 서사가 필요했으니. 그곳에서 마지막 자웅을 겨루자.]
“주상남자가 저번에는 절 봐줬다고 도발하네요.”
차진혁은 방송을 통해 쪽지를 공개한 뒤 말을 이었다.
“굳이 추적할 필요가 없게 되었네요. 해가 뜨면 곧장 렌마로 출발하겠습니다.”
* * *
르세핌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니 근데 내가 무슨 보조직업을 키워야 하지?”
이게 참 애매했다.
“아예 처음부터 뭔가를 시작하면…… 김철수의 선택을 못 받잖아?”
적어도 군주인 한세린의 길잡이 능력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르세핌에게도 그런 능력이 하나쯤 있기는 있었다.
“아…… 이건 싫은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강요받았던 꿈이 하나 있다.
바로 ‘연금술사’.
연금술은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직업으로서 고상한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래 걱정이 없는 아르비스의 고위귀족들이 선택하는 직업이 보통 연금술사였다.
자식에게 권하는 직업이기도 했고.
-안 해! 재미없어! 싫단 말이야!
-어허, 귀족가의 영애에게 이렇게 어울리는 직업은 없단 말이다, 아빠 말 들어.
-그래 르세핌. 나중에는 엄마 아빠한테 고맙다고 할걸?
어린 시절의 르세핌은 강제로 연금술을 배워야만 했다.
르세핌은 격렬한 사춘기를 겪은 뒤, 결국 길잡이의 길을 선택했다.
별로 고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직업을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지금도 연금술의 연 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다.
‘근데…… 연금술사 말고 내가 당장 보조직업으로 키울 만한 게 없잖아?’
물론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투자하면 연금술 말고도 다른 능력들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 여자(한세린)도 했는데 내가 못한다고? 그럴 리 없지, 정도의 마인드였다.
그렇지만 르세핌에게는 심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당장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결국 그녀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에 흥미가 생겼어. 공부, 시작해 볼게.”
“드디어 우리 딸이 철들었구나! 역시 귀족에게는 연금술만 한 것이 없지.”
“드디어 품격의 필요성을 느낀 모양이지? 생각 정말 잘 했단다. 사랑한단다, 딸.”
그녀의 부모님은 크게 기뻐했다.
* * *
한세린은 뛰어난 길잡이가 맞았다.
초행길인데도 불구하고 최적의 루트를 짜서 차진혁을 안내했다.
“그냥 길잡이로 커도 됐겠는데?”
“그게 무슨 모욕적인 말이지?”
“아니, 워낙 잘하니까 하는 말인데.”
“너보고 망치 말고 검 들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아하.”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누가 자신더러 ‘검도 잘 쓰는데 그냥 검이나 들지 왜 멋없게 망치를 드냐?’라고 물으면 화가 날 것 같았다.
내 재능은 검이 아니라 망치인데 말이다.
“미안하다.”
“아냐,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알아.”
둘은 신성제국 헬렌의 외곽도시에 진입했다.
명예시민권을 가진 덕택에 워프포탈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한세린은 연신 감탄했다.
“와…… 진짜 촘촘하게 잘 연결되어 있네. 멀미도 하나도 안 나고. 가격도 싸고.”
새로운 곳에 여행을 와서 많은 영감을 받는 중이었다.
“지구에도 이렇게 잘 짜여진 워프포탈 망이 있으면 좋겠다. 각종 탐험에 훨씬 유리할 텐데.”
아니 근데, 이런 걸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얘들이 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한세린이 마음속으로 어렴풋한 미래를 그리고 있을 무렵, 차진혁과 한세린은 헬렌제국령 대도시 렌마에 도착했다.
이미 주상남자와 차진혁이 격돌할 거라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대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격투장 표 팝니다, 팔아요!”
“VIP 좌석 팝니다!”
눈치 빠른 몇몇이 대광장 근처에 위치한 격투장의 자리를 선점해놓은 상태.
꽤 많은 스트리머들도 이곳에 몰려와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평소랑 조금 다릅니다. 아무래도 여성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네요.”
“보통 이런 경우는 젊은 여성층이 많기 마련인데, 나이대가 상당히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김철수를 사랑한다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보입니다.”
참고로 렌마의 경비대장은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아니, 그깟 스트리머 한 명이 뭐라고!’
심지어 아르비스 출신도 아닌, 삼류 서버 출신의 스트리머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이 몰려든단 말인가.
도시의 경비력을 총동원하여 질서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으나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주변 다른 도시들로부터 급히 지원을 요청한 상태.
“누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일할 때 누님이라 하지 말랬잖아.”
“지금 소소하게 호칭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남문이 뚫렸습니다. 김철수를 보겠다는 광인들이 눈에서 불을 뿜으며 성벽을 타고 있어요.”
“…….”
경비대장 뮈엔느는 투구를 집어 들었다.
“내가 직접 간다.”
김철수 사랑해를 외치는 광인들로부터, 이 도시를 지켜야만 했다.
그녀는 투구를 쓴 채 밖으로 나가 재빨리 와이번의 등 위에 올라탔다.
“가자.”
“누, 누님! 몸 좀 사려요! 이 도시의 질서도 중요하긴 하고! 누님의 사명감도 잘 알고 있지만…….”
와이번이 꿰에엑-! 괴성을 지르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부관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남문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광장을 지나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발 디딜 틈 하나 없어 보였다.
그녀가 이곳의 경비를 맡은 지 올해로 6년 차.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린 적은 처음이었다.
‘응?’
그녀는 이상한 것을 경험했다.
이렇게 수많은 인파 가운데 유독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렇게 눈에 확 띌 수 있는지 그녀로서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와이번을 타고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중.
와이번을 타고 날아가면서 봐도 잘생긴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철수랜드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