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82화
슈퍼닥터 로날도는 이 광속 레벨업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 땅의 힐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걸려 있다 보니 그럴듯한 핑계를 대었다.
“인류는 인류 스스로 자신에게 다가올 위험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힘이 있으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로날도는 기자회견을 열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각국의 최상위 랭커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김철수와 K군단은 오만했다. 그들 스스로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오만한 생각으로 진실을 은폐했다. 우리에게도 진실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라는 로날도의 말의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어째서 우리 위대한 미국의, 위대한 미국의 플레이어들이, 김철수의 작전에 모두 따라야만 하는가? 우리는 K군단의 하수인이 아니다.”
특히 미국 출신 플레이어들이 로날드에게 많은 지지를 보냈다.
“위대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로날도는 ‘위대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고, 수많은 대중들이 그에 호응했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 좋았던 건 아니었다.
* * *
무서운 질병이 다가올 거란 소식에 당연히 전 세계적인 패닉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생필품이 동났다.
각종 의약품도 품절되었고, 병실 예약은 꽉 차버렸다.
-부자들은 막대한 예약금을 내고 미리 VIP병실을 선점하는 등의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힐러들과의 전속 계약을 강화하는 한편…….
기득권은 병원과 힐러들을 독점했다.
그렇다 보니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이 오히려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들도 발생했다.
거기에 더해 정말로 서버급 시나리오가 전개되었다.
[서버급 시나리오, ‘레비온의 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레비온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이내 그것은 바이러스의 이름으로 분류되었다.
[레비온에 감염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라서 어떻게 감염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키하엘은 키하엘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레비온 바이러스를 사용했어.”
MK재단에 취업하게 된 관리자들은 머리를 맞대어 대응책을 미리 준비했었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치료제의 원료를 확보하거나 시스템 백신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미리 찾아놓는다거나.
“이건 예상에 없었는데 말이야.”
“왜 예상 못 했지?”
“이건 이렇게 대놓고 쓰기 어려운 거니까. 그래도 중견급 서버 시나리오에서나 등장할 법한 바이러스인데…….”
사실 이건 슈퍼닥터 로날도 때문이었다.
로날도가 미리 질병의 정보를 퍼뜨리게 되면서 커다란 혼란이 일었고, 그 혼란을 틈타 시스템도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바이러스를 투입한 것이었다.
“안정 상태였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키하엘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히죽 웃고 있었다.
‘우리들 모가지 날아간 걸로 좋아하던 놈들이 많았지!’
드디어 관리자 TO가 났다며 신난다고, 그러길래 진작에 밸런스 조절 잘했어야지, 라며 조롱하던 익명의 놈들이 아주 많았다.
-아싸 개꿀, 덕분에 추가 합격함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
-그러길래 잘했어야지 ㅉㅉ
-이건 솔직히 쉴드 불가임. 밸런스 조절을 이렇게까지 실패한 서버는 처음 봄 ㅎㅎ
인력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고 그 자리를 신입 관리자들 혹은 지구에 대해 잘 모르는 관리자들이 차지했다.
-나 승진함 ㅎㅎ
-내 윗대가리 꼰대새끼들 언제 나가나 기다렸는뎈ㅋㅋㅋ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ㅋㅎㅋㅎㅋㅎ
속이 시원해진 키하엘이 기쁜 듯 소리쳤다.
“다들 피똥 싸고 있을 거다!”
“…….”
“흐흐, 다들 야근의 늪에 빠져보라고!”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인마, 사람들이 픽픽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런 한가한 말이나 할 때냐?”
“…….”
키하엘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차진혁을 보았다.
“너 왜 그러냐? 어디 아파?”
“뭐가?”
“너야말로 지금 가장 기쁜 사람 아니냐?”
“왜?”
“엘튜브 각이잖아?”
차진혁의 표정이 약간 진지해졌다.
* * *
힐러들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특출난 부자가 아니라면, 부자 중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면, 힐러들에게 치료받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료제가 드랍되는 던전 발견.]
[치료제가 드랍되는 마물 등장.]
문제는 던전과 치료제의 숫자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결국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점점 커져서 거의 나라끼리의 전쟁에 준하는 규모로 커졌다.
차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시스템은 관리자들의 예상대로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전쟁을 유도하고 있는 건가 보다.’
질병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었다.
시스템은 지금, 전쟁을 일으켜서 인구를 감소시키려는 계획을 짠 것 같았다.
그런데 키하엘의 질문이 그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너야말로 지금 가장 기쁜 사람 아니냐?”
-엘튜브 각이잖아?
그의 말은 분명 사실이기는 했다.
‘엘튜브 각인데……? 나…… 기쁜가?’
굳이 따진다면 기뻐야 했다.
그게 맞는 거는데 왠지 모르게 별로 기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차진혁은 스스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편,
MK재단 소속에 새로이 취업하게 된 전직 관리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밥값 해야 한다!’
‘여기서도 쫓겨나면 받아줄 곳이 없어!’
그들은 치열했다.
‘레비온 바이러스라니! 이건 너무 양아치 아니냐!’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야. 치료제가 확실히 있는 놈이니!’
현재 지구 플레이어들은 지구 안에서 드랍되는 치료제에만 목매달고 있었으나, 관점을 우주 전체로 넓혀보자면 레비온 바이러스의 치료제가 그렇게 희귀한 건 아니었다.
‘선진서버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풍토병이다……!’
꽤 오래전에 없어진 바이러스.
따라서 잔여 치료제는 없을 테지만, 치료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을 터.
관리자들은 사력을 다해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사실 밥값을 하고자 노력하는 건 키하엘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이 전해준 정보들을 바탕으로, 그는 차진혁에게 보고를 올렸다.
“선진서버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겪었던 바이러스야. 기록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테니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내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
키하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꽤 들어차 있었다.
워라밸을 추구한다고는 해도, 그가 관리자로서 자부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전직 관리자들이 이렇게 합심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그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진행하게 되면서 키하엘은 약간의 성취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 집단 지성에 대한 자긍심도 느끼는 중이었고.
‘어떠냐, 김철수? 우리도 할 땐 한다.’
차진혁은 키하엘의 말을 조용히 듣다가 이내 되물었다.
“근데 더 쉬운 방법 있지 않나?”
“……더 쉬운 방법?”
“수호수를 전 세계에 심어볼까 해. 안 그래도 수호수가 몸 간지럽다고, 가지 잘라 달라고 아우성이거든.”
“그러니까 가지를 잘라서 그걸 다른 땅에 심어보겠다고? 수호수를 지구 전체에서 키우겠다고?”
키하엘은 콧방귀를 뀌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아주 세상일이 다 쉬워 보이나 봐.”
수호수를 전 세계에 심겠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아르비스에는 수호수가 수천 그루는 심어져 있을 것이었다.
“그게 되겠냐?”
가끔 보면 미친 소리를 한다니까.
물론 미친놈이니까 미친 소리를 하는 게 당연하기는 하지만.
“혹여 된다고 치자. 그런 작업을 하려면 진짜 엄청나게 숙련된 농부들, 최소 아르비스에서 수십 년 굴러먹은 농부들, 그중에서도 수호수를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 랭커들이나 가능할 텐데.”
키하엘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걔들이 지구에 오겠냐? 3등 시민들이 살고 있는 이 낙후되고 모자란 서버에?”
“너는 네 나름대로 관리자들이랑 같이 치료제 대량 양산에 신경 써봐.”
사실 차진혁도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키하엘의 방식과 자신의 방식, 두 방식을 혼용하여 투트랙 전략으로 가기로 했다.
* * *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비통한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웠다.
레비온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무려 500만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뿐만 아니라 레비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은 자들 중 일부가 언데드가 되어 주변인들을 물어뜯기도 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장면이라 세계는 패닉에 휩싸였다.
-레벨 150 이상 힐러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약 80%의 확률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치사율 약 80%.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수치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치사율이 약 8%. 서울의 경우 치사율이 약 0.8%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기현상에 대해 분석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백과사전은 이렇게 분석했다.
[그들은 기본적인 평균 레벨이 높다.]
남들은 +20 판정을 받을 때, 한국 플레이어들은 +30 판정을 받았다.
거기에 서울은 무려 +40 판정을 받았다.
[레비온 바이러스는 레벨급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바이러스이므로 서울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8%라는 수치는 경이로운 수치임에 틀림없다. 단순히 레벨이 높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저 거대한 수호수 덕분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후 차진혁은 방송을 통해 그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수호수는 단순히 마물만 막는 것이 아니라서요.”
수호수는 질병까지도 막아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수호수의 가지를 잘라내서 세계 전역에 심어볼까 합니다. 큰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요.”
안 그래도 수호수가 온몸이 간지럽다며 가지를 좀 쳐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작업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겠죠.”
놀랍게도, 아르비스의 농부들.
그것도 수호수를 관리해 본 적이 있는 농부들이 떼거리로 지구 서버로 몰려왔다.
“암, 당연히 도와야지.”
“생명을 구하는 일 아닌가.”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당연히 나서야지.”
숭고한 척 말했으나 그들의 눈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제2의_트리투리가 되리라]
[#나 또한 #위대하리]
[#지구로_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