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6화
아르비스 서버는 입장 자체가 매우 까다로워서 동료를 데려갈 수 없었던 탓에 강은우는 무척이나 슬퍼했다.
“새로운 풍광에서 철수 님을 담으면 얼마나 훌륭한 사진이 나올지 가늠조차 안 되는데…….”
“…….”
“어떻게 몰래 잠입은 어려울까요?”
“아르비스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해봐. 참수당해서 죽고 싶으면.”
“철수 님 사진 몇 장 건네면 밀입국 될 거 같은데.”
“…….”
차진혁은 요즘 왕유미보다 강은우가 조금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저 눈빛은 미친놈의 눈빛이다.
이제 정상인이 된 그는 저런 눈빛을 가진 자가 가끔 두려웠다.
‘조심하자.’
정확히 말하자면 강은우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강은우가 가진 저 열정이 두려웠다.
저런 열정에는 힘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되니까.
‘오염될 수 없지.’
어쩐 이유인지는 몰라도 주변에 미친놈들이 자꾸 많아지는데 그럴수록 중심을 단단히 잡고서,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정상인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차진혁은 아르비스로 떠나기 전, 한세린과 미팅을 가졌다.
연희동 내 한 커피숍.
‘아…….’
한세린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서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상태.
얼굴에는 은은한 화장기가 돌았다.
커피숍 내의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한세린을 힐끗힐끗 쳐다보았고, 차진혁은 몸에서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았다.
‘왜 저러는 거냐 도대체?’
평소와 걸음걸이부터 달랐다.
전장을 함께 헤쳐나왔던 전우는 어느새 조신한 여인처럼 보이기 위해 미쳐있는 것 같았다.
왜 예쁜 척하면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내 주변인들은 다 미쳐가는가.
한세린이 약간 붉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데이트 맞지?”
“……미팅이라니까.”
“그러니까, 미팅을 빙자한 데이트. 헤헤.”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래도 조언은 들어야지.’
“아르비스 내에서 내가 조심해야 할 건?”
“음, 여자?”
그제야 차진혁은 한세린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렇게 꾸민 거군.’
역시 한세린은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보는 동료였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본 것이겠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놈이 있다면 조심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중에서도 예쁜 여자들을 조심해.”
“알고 있어.”
미인계는 예나 지금이나 아주 강력한 수단이니까, 언제 어디서나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한세린은 늘 기본부터 짚어주는 철두철미함을 보이고 있었다.
“아, 1번 늪지대 말인데. 내가 만약 1번 늪지대였다면 도망갔을 거 같거든? 2번, 3번의 도움 없이 혼자서 너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
“근데 어제도 아르비스에서 활동하는 거 포착됐더라. 놈이 속한 각성자 사냥꾼 협회에도 딱히 지원요청을 한 기록이 없고.”
“각성자 사냥꾼 협회? 그거 빌런 조직 아니냐?”
“약간 애매하기는 한데 정식 협회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야. 아르비스의 20대 연합 모임에도 초대되곤 하던데?”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무리 현장에서만 활동했었다지만…….’
그래도 아르비스 20대 연합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완전히 처음 들었다.
“그거 언제 생긴 거냐?”
“6개월 전쯤?”
“완전히 신생협회네?”
“그런 셈이지.”
회귀 전과는 또 약간 달라졌다.
아르비스 20대 연합 모임에 ‘각성자 사냥꾼 협회’ 같은 건 없었다.
“아무튼 지금 놈은 덫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여.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한세린은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서 입술을 앙다문 표정.
차진혁은 저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표정을 하기 직전.’
저 표정이 나온 이후에는 작전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었지.
아마 이번에도 한세린은 아주 훌륭한 조언을 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한세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 예쁘지 않아?”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 * *
스칸노르비아의 위대한 지도자 칸은 김철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배려 있게 미친 성자시여!”
스칸노르비아에서 김철수를 부르는 말은 ‘배려 있게 미친 성자’였다.
MK재단 소속의 농부계열 플레이어들은 스칸노르비아의 땅을 하사받는 대신 각종 농업기술을 알려주었었다.
이후로 스칸노르비아는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서버로 탈바꿈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칸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고 말이다.
칸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아르비스를 정벌하러 가시는 겁니까?”
“…….”
차진혁의 표정이 조금 나빠진 것을 본 칸은 긴장했다.
‘기분이 나쁘시다?’
그는 김철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전사들을 지원하지 않아서……?’
그렇다면 오해였다.
김철수가 정복전쟁을 한다면, 언제든 김철수를 도와 전쟁을 수행할 결심이 서 있었다.
“오해입니다.”
“오해는 무슨 오해.”
칸이 본 김철수는 여전히 기분이 나빠 보이는 상태.
“저희는 성자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의지를 받들어 싸울 준비가 되어 있…….”
이게 아닌가?
칸은 적극적으로 차진혁의 눈치를 살폈으나 차진혁이 왜 언짢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 구독 안 했지?”
“……예?”
스칸노르비아 서버는 다른 서버에 비해서 문명화율이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SSP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문명이었고, 방송을 즐기는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
“내 방송 봤으면 아르비스 정벌하러 간다는 소리 같은 건 못했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내 랭킹이 몇 위인지는 알아?”
“당연히 1위입니다.”
“…….”
공식적으로 차진혁에게 랭킹은 없었다
“서, 설마 2위란 말입니까?”
지구에 그런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됐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차진혁은 칸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스칸노르비아 전사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 자신의 역량에 화가 났다.
“혹시 마시멜로는 아냐?”
“마시멜로라면…….”
그 먹는 거? 아니, 그거라면 성자께서 굳이 질문했을 리가 없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칸은 황급히 머리를 회전시켰다.
‘……아!’
마침 구독과 랭킹 얘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다.
분명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스트리머가 있었지!
“아르비스의 랭커 말입니까?”
“걔 방송은 보지?”
“무, 물론입니다!”
물론 본 적 없었다.
그냥 성심성의껏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내 방송은 안 봐도 마시멜로 방송은 본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언젠가 반드시 넘어서 주마, 마시멜로.’
* * *
차진혁은 아르비스로 향하는 워프포탈 쪽으로 향했다.
과거 중앙숲이었고, 현재는 광활한 농작지가 된 곳을 보며 차진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농부계열 플레이어들 레벨이 다들 높네.’
처음 파견할 때만 해도 100 이하였는데, 이제 100 이하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성장도 빨랐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기, 김철수 님 아니십니까!”
“김철수 님이 오셨다!”
플레이어들은 농기구마저 던지고서 차진혁에게 몰려들었다.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 또한 ‘배려 있게 미친 성자께서 오셨다!’라며 밀려들었다.
“김철수 님! 팬입니다!”
“저도 팬입니다!”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구독을 증명하기도 했다.
“전 최근까지 올라온 영상 다 봤습니다!”
“저도요!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은 사랑이죠.”
“저도! 전 댓글도 달았습니다.”
차진혁은 빙그레 웃었다.
“고맙습니다.”
길을 걷던 와중, 차진혁은 저만치 멀리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을 발견했다.
낫을 들고 무언가를 베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아, 저희도 잘 모릅니다. 우크라이나인가 어딘가 출신이라는데 실력은 좋은데 사회성은 영 떨어집니다.”
차진혁은 처음 봤다.
‘레벨 200대 농부가 있었어?’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저 양반 손을 타면 수확이 엄청 잘 됩니다.”
“엄청 희귀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LV209/키마에프/수목영양사/수목의 은인]
붉은색.
9성급 농부는 처음 봤다.
‘키마에프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 * *
아르비스에 도착했다.
마시멜로가 준 초대장이 꽤 높은 등급이었는지 대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남색 제복을 입은 호랑이계 수인족이 차진혁을 안내했다.
‘워프포탈 하나가 무슨 공항처럼 관리되네.’
과연 우주에서 최고로 발전한 서버다웠다.
지구의 워프포탈과는 사뭇 달랐다.
‘입장관리도 철저히 하고.’
서버 입장 데스크 앞에 섰다.
마찬가지로 남색 제복을 입은 코뿔소계 수인족이 앉아 있었다.
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가증.”
차진혁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말없이 초대장을 살펴본 코뿔소계 수인족은 초대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1분. 2분. 3분.
시간이 흘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코뿔소 수인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5시가 되어서야 코뿔소계 수인족이 입을 열었다.
“사인.”
사인?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초대장에 서명을 하라는 건가?
‘응?’
코뿔소계 수인족의 뿔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인족은 분명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저…… 근무시간 끝났거든요.”
목소리도 좀 변해 있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저 철수 님 팬이에요.”
“……아.”
차진혁은 수인족에게 종이를 건네받아 사인을 해주었다.
“이름이 뭐죠?”
수인족은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수줍게 대답했다.
코뿔소계 수인족답게 덩치가 굉장했다.
“릴링이에요. 릴링 에델바이스랍니다.”
* * *
차진혁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아르비스에서도 나를 알아봐?’
이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외국 배우면 아무리 유명해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심지어 외국 수준이 아니라 외서버에서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다니.
‘한국만큼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차진혁은 아르비스는 대체적으로 공상과학 속 미래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거리에는 로봇과 수인족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도 꽤 많았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한편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계형 탈것들이 질서 있게 움직였다.
차진혁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녹화를 시작했다.
[지구 최초, 아르비스 서버 공개]
그런데 시스템이 버벅거리는가 싶더니,
[지구 최초, 아르비스 서버 공개]
녹화가 중지되어 버렸다.
다시 시작해 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이거 설마.’
이 비슷한 느낌을 예전에도 받아본 적 있다.
미국의 대군주 엠페러가 방송을 방해했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꼭 더 패서 방법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패는 걸로 안 되면 길들이기(물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도 될 거 같고.
‘근데 지금은 어떡하지?’
지금 당장 방송을 하지는 않더라도 녹화영상은 찍어야 했다.
지구 최초 타이틀을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파훼해야 하는데.’
알아보니 허가를 받은 자들만이 아르비스에서 영상을 녹화할 수 있단다.
그런데 그 허가를 어떻게 받는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녹화영상을 안 딸 수는 없었다.
그건 스트리머로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어?’
저만치 앞.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코뿔소 수인족 한 명이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사뿐사뿐 걷고 있는데 쿵쿵하고 지면이 울렸다.
“릴링!”
딱딱한 남색 제복 대신 프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차진혁의 목소리에 릴링이 몸을 휙! 돌렸다.
과장 조금 보태서 주변에 바람이 일었다.
그녀는 아까 차진혁이 해줬던 사인이 깔끔하게 코팅하여 가슴팍에 소중히 안고 있는 상태였다.
릴링이 포효했다.
뿌우우우-!
코뿔소가 아니라 코끼리 같았다.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어!”
쿵! 쾅! 쿵! 쾅!
릴링이 차진혁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