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0화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밖에서는 어마어마한 화력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는데, 한국 쪽 본진 플레이어들은 너무 평화로웠다.
‘수다를 떨고 있어? 그것도 앉아서?’
그는 청각을 끌어올리는 스킬을 사용하여 한국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도청했다.
“우리 그냥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
“치열좌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잖냐?”
“쟤네 개 열심히 공격하네.”
“와, 근데 이거 불꽃놀이 보는 거 같다.”
“이 안정감 무엇?”
엠페러는 입술을 깨물었다.
엄청난 실력의 결계술사라도 등장한 건가.
한국에 또 이런 실력자가 있었나.
‘2번 늪지대라면 뭔가 알고 있나?’
군주 전용 스킬인 귓속말을 사용해 보려 했지만 2번 늪지대와 연락도 원활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돼!’
전쟁에 변수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변수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떠오르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설마 또 김철수?’
엠페러는 엘튜브창을 켜서 확인해 봤다.
설마설마했는데 김철수는 정말로 방송 중이었다.
-“이번 해운대 던전에서 강화된 절대결계를 시청자 여러분께 이렇게 선보일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강화된 절대결계?
엠페러도 차진혁의 결계가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공격의 향연과 그걸 막아내는 김철수.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치열한 공방의 현장이었다.
-“혹시 지난 영상 못 보신 분들은 요기, 클릭하시면 이전 영상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마침 좀 여유로우니 말씀드립니다.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 부탁드려요.”
엠페러는 입술을 깨문 채 방송을 염탐했다.
────
- ‘방어 계열’ 능력을 대폭 강화합니다.
해운대 던전 이하급 공격에 완전 면역.
────
-“결계 범위를 태극기 주변으로 반경 20미터가량으로 설정했을 때, 저들의 공격을 무리 없이 받아낼 수 있습니다. 25미터부터는 조금 숨이 차더라고요.”
방어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면, 자잘한 공격들은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자잘한 공격 여러 개보다 강한 한 방 공격이 더 위협적.
그러나 이곳에 김철수의 절대결계에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공격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없었다.
김철수는 상당히 느긋했다.
‘이 정도면 24시간도 버틸 수 있겠다.’
엠페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방어 능력이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예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었다.
김철수는 늘 상식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줬고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으니까.
‘네놈의 결계는 기본적으로 중계결계에서 진화된 능력. 결국 중계를 해야만 강력해지는 능력이다!’
그는 스트리머의 결계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송을 끊어낸다면?
‘내가 이조차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그는 품 안에서 작은 폭탄 형상의 아티팩트를 꺼냈다.
일종의 EMP폭탄으로써, 이것을 사용하면 전파장애를 일으켜 주변의 방송을 5분가량 끊어지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다.’
그가 차진혁을 향해 아티팩트를 던졌다.
실제로 김철수의 방송이 끊겼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채, 밖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에건 폴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
김철수의 방송을 끊다니.
결국 엠페러가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선을 넘고 말았다.
‘봐줄 때 적당히 하지……!’
* * *
차진혁은 혼자 방송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꾼인 왕유미와 함께였고, 왕유미는 플레이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차진혁에게 전달해 줬다.
[엠페러가 방송 입장했어요.]
차진혁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와, 방장 사기맵에 맵핵에, 이제는 방플까지?’
방플.
경합을 벌이는 도중, 상대의 방송을 염탐해서 정보를 얻고 플레이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특히 한국 플레이어들은 이를 아주 저급하고 비겁한 플레이로 인식했다.
미리는 지금 당장에라도 머가리를 부수겠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지만 차진혁은 일단 조금 더 참기로 했다.
‘뭐,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있어 보이는 광경처럼 연출되고 있으니까.’
수백 명에 달하는 딜러 계열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쏟아내고, 혼자서 그것을 막아내는 이 광경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만족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고서 방송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방송 송출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뚝-
방송이 끊겼다.
정상적으로 송출되던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아.”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이 새끼가.”
미리를 들어 올렸다.
이 순간, 그는 연출과 서사를 신경 쓸 수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타락천사의 형상.
거대한 망치를 든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차례 모습을 드러낸 환상검희이기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와, 여기서 방어신비가 나오넼ㅋㅋㅋㅋㅋㅋㅋ
-망치 왜 이렇게 거대해짐ㅋㅋㅋㅋ
-방어신비에 일렁거리는 살기 보솤ㅋㅋㅋ 지릴 듯
몇몇은 환상검희의 대사를 예측하기도 했다.
-복수의 망치를 손에 쥐어라.
-알게 하라. 어리석은 자들의 뒤통수가 어찌 될지. 깨부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나의 주인이여!!!
……였으나 이번 환상검희는 그런 게 없었다.
꽤 피폐한 모양새였지만 어쨌든 용모는 아름다운 그녀가 중얼거렸다.
평소와는 약간 다른 말투였다.
“다 뒤졌어, 이 개새X들.”
김철수와 정신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맺고 있는 환상검희가 폭발했다.
평소의 기품을 잃은 채 폭주했다.
그녀의 몸이 하늘 위로 높이 떴고, 망치 끝에 황금빛 무리가 서렸다.
목재현은 그리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탱커들 모두 앞으로!”
목재현이 이끄는 탱커들이 순식간에 비상 방어체제를 갖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검희가 거대한 망치를 휘둘렀다.
늘 그렇듯, 이 방어신비는 바빌론 캐논과 결합되어 있었다.
대규모 전면전에서는 그 무엇보다 강대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바빌론 캐논.
흉포한 힘을 내포한 빛줄기가 쏘아졌다.
목재현은 잔뜩 긴장한 채 빛줄기를 쳐다보았다.
‘막아야 한다.’
저 빛줄기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
파괴력이 너무 강해서 아군마저도 집어삼킬 것이 틀림없었다.
‘응?’
그러나 목재현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본래는 거대한 한 줄기였던 황금 빛줄기가 수천 가닥으로 갈라졌다.
‘뭐지?’
수천 가닥으로 갈라진 바빌론 캐논은 마치 하나하나가 정교한 유도탄처럼 미국 플레이어들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성우와도 같았다.
한국 측 탱커들은 넋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광역 파괴 정밀 유도 타겟팅 방어신비’에 입을 쩍 벌렸는데, 바빌론 캐논의 원주인인 신유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 역시 스승님!’
차진혁을 의심했던 스스로를 책망했다.
‘보통 사람들은 화가 나면 그냥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던데…….’
‘진짜배기’ 플레이어는 화가 나면 정밀 타격기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신유리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기술은 마치 모래 지렁이의 머리를 날려 버렸던 그 기술과 꽤 흡사해.’
물론 지금 빛줄기 하나의 공격은 그보다 약하다.
그렇지만 이 빛줄기가 수천 가닥이었다.
‘스승님의 기술을 보며 나도 꽤 노력했다고 자부했는데…….’
어느새 스승님은 또 저 멀리, 또 다른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이렇게 또 가르침을 주시네.’
참고로 바빌론 캐논은 원래 이런 기술이 아니었다.
이렇게 운용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리는 꽤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차진혁의 공격이 거의 사그라들었을 무렵.
한국 본진 측에 살아남은 미국 플레이어들은 90프로 가까이 몰살당했다.
한국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치솟아 오르기는 했으나 차진혁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실수했다.’
방금은 방송이 끊겼다는 것에 이성을 잃고 너무 마구 날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출력을 감당하느라 체력적인 부담이 꽤 컸다.
‘이러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지.’
이번에 체력안배에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만약 여기 우주 랭커급 상대가 있었더라면, 아마 죽는 쪽은 이쪽이 되었겠지.
‘나는 아직도 부족하구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 * *
-모순 개쩌는데 이게 되네.
-‘스트리머’ 김철수의 압도적인 ‘방어신비’의 ‘대단위 광역’ ‘정밀 공격’의 효과는 굉장했다.
-모순이 너무 많아서 뭘 짚어야 할지 모르겠다.
스트리머가 이런 공격을 한 것도 모순.
근데 이런 공격한 것이 사실 방어신비라는 것도 모순.
그 방어신비가 대단위 광역 공격을 했다는 것도 모순.
근데 사실은 그 대단위 광역 공격이 정밀 유도 공격이라는 것도 모순.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였는데 이상하게 다 이루어졌다.
-와, 그사이에 김평범이 포탑 두 개나 부숨.
-김철수 김평범 조합 미쳤넼ㅋㅋㅋㅋ
보통 포탑 하나를 깨려면 여러 명의 플레이어들이 합심해서 싸워야 한다.
마치 던전 보스를 레이드하듯 천천히 공략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김평범에게 그런 법칙은 통용되지 않는 듯했다.
-근데 사실 전투력은 김철수보다 김평범이 더 우위이지 않음?
-아마 그럴 듯? 그러니까 김철수가 방어 들어가고, 김평범이 공격 갔겠지?
-그럼 김평범이 지금도 많이 봐주고 있다는 거네?
-에이, 설마…… 미국이 9점 먼저 먹을 때까지 봐줬다…… 아! 진짜 봐준 건가? 친구인 김철수가 스트리머니까?
스트리머들은 극적인 연출을 좋아하는 편이다.
-해운대 던전을 잘 기억해 봐. 어벤저스 사단이 위기 연출하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음?
-김철수의 극적인 등장을 위해 판 깔아줬던 거 같기는 한데.
하나의 결론이 완성되었다.
-맞네, 김평범이 봐주고 있었네.
-일부러 9점 내준 거넼ㅋㅋㅋㅋㅋㅋ
한편, 미국 측 본진에서 부활한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군주인 엠페러조차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몸이 안 움직이고, 말이 안 나온다.’
방금 죽음의 부작용인 것 같았다.
그토록 강맹한 살기는 처음 느껴보았다.
그 또한 여러 번 죽어보았으나 이렇게 무력하고 두려운 죽음은 처음이었다.
‘다시는 죽고 싶지 않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에건 폴의 조언들이 떠올랐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르다고.
‘김철수와 김평범은…… 우리를 봐주고 있었던 거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물론 김철수는 진짜 화가 났던 것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엠페러는 전략을 바꿨다.
‘그냥 서렌 치자.(항복 하자.)’
패배가 아닌 항복은 페널티가 좀 적다.
게다가 전면전을 먼저 선포한 쪽이 이쪽이고, 맵과 이벤트의 설정을 매만질 수 있으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그게 제일 나아.’
[항복하시겠습니까?]
그는 항복을 선택했다.
‘왜 항복이 안 돼!’
한편, 차진혁은 방송을 재개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방송이 끊겼습니다. 이런 공격이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한 제 불찰이네요. 다음부터는 이런 공격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차진혁의 눈에는 광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방장 사기맵도 참고 맵핵도 참았는데 이건 진짜 못 참겠다.
원래 방송 제목이 [전쟁]이었는데 이제 바꿨다.
[참교육]
“일단 항복 설정부터 부숴놓겠습니다.”
혹시라도 항복을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룰 브레이커를 가지고 있으면 아주 쉬운 일이죠.”
[맵의 ‘항복 설정’이 파괴되었습니다.]
[맵 내에서 ‘항복 선언’이 불가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부활 설정도 부숴볼까요? 자꾸 다시 살아나니까 애들이 정신을 못 차립니다.”
[맵의 ‘부활 설정’이 파괴되었습니다.]
[맵 내에서 ‘부활’이 불가합니다.]
“좀 더 치열하게 가보겠습니다.”
부활이 사라지면 훨씬 치열한 전쟁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싱거웠다.
미국 본진에 도착해 보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제발 살려달라며 싹싹 비는 플레이어들이 태반이어서 차진혁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대군주 엠페러마저 그러고 있었다.
“내가 어지간한 애들은 안 죽일 건데.”
엠페러는 선을 너무 심하게 넘었다.
감히 스트리머의 방송을 일부러 끊어?
“너는 안 봐준.”
“잠깐!”
엠페러가 다급하게 외쳤다.
“우리한테 핵을 유포한 유포자가 있다! 방장 사기맵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맵핵을 사용하도록 시켰다.”
엠페러가 2번 늪지대를 배신했다.
차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방송 끊는 아티팩트도 그놈이 준 거냐?”
사실 그 폭탄은 엠페러가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일단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야 해명이든 변명이든 할 수 있는 거니까.
“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