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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23화 (22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23화

[저를 본 건 비밀로 해주세요. 항상 응원해요. -철수랜드 1호 김민지 올림]

여기에 급하게 쓴 듯한 마지막 메모도 추가되어 있었다.

[해킹룸은 5분 동안 유효해요!]

자세히 써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저 엄마한테 혼나요’ 같은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다.

김민지라니. 도대체 얘는 정체가 뭘까.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 ‘해킹룸’이라는 것은 거의 작은 차원을 새로 창조해낸 개념에 가까운 것 같았다.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데 무슨 엄마의 눈치를 저렇게 많이 보는 건지.

그러면 김민지의 엄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게 히죽 웃고 말았다.

‘다 콘텐츠 각이네.’

이후 피카소의 붓을 살펴봄과 동시에 녹화 영상에 체크 포인트를 남겨두었다.

[*이게 원래 피카소의 붓 설정]

──────────

*단, 덧칠 가능한 횟수는 1회이며, 본인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이 설정이 내가 원하던 대로 바뀌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단, 덧칠 가능한 횟수는 1인에 한하여 무제한입니다.(해킹룸 특전 적용 중)

──────────

아. 이래서 민지가 해킹룸의 유효시간은 5분이라고 알려준 모양이었다.

‘이건…… 기연이다.’

매켄드라는 피카소의 붓을 얻어 전 세계적인 랭커가 되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피카소의 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내 스스로에게 피카소의 붓을 적용했다.

형형색색의 물감이 내 온몸을 덮는 것 같았다.

물감으로 만들어진 수조에 빠진 느낌.

그러나 숨이 막히거나 불편한 감각은 없었다.

다양한 색깔의 물감들이 내 피부 속에 스며들어, 피처럼 내 몸 안에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꽤 화한 느낌이 나네.’

[‘피카소의 붓’이 적용되었습니다.]

적용되었다는데 딱히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예전에 내 대사 추가하면 좋을 거 같음.]

[“지나치게 완성형 플레이어들한테 이걸 써봐야 효과가 미비해.”]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아까까지는 나를 거부하던 ‘행운의 신’이 내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지금 당장 나를 사용하라고.

‘사용하긴 할 건데.’

행운의 신은 한 번밖에 못 쓴다.

이건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한 신비이고, 이거 쓰면 무조건 기절이다.

‘덧칠을 할 수 있을 만큼 한 다음에 행운의 신을…….’

근데 생각해 보니까.

‘덧칠을 하면 할수록 작품은 망가지는 거 아닌가?’

* * *

편애광신, 한국명 김민지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 때문에 철수 님 헷갈리면 어떡해?”

최갑수는 김민지에게 아이스 초코를 건네며 김민지를 다독였다.

“진정하시지요. 이러다 청담동 건물들 다 무너지겠습니다.”

실제로 청담동 일대는 때아닌 지진이 일어나서 대피소동이 벌어진 상태.

“덧칠은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단 말이야.”

“……그래도 김철수는 즐거워할 겁니다. 엘튜브각이라면서요.”

“그래도! 어떡하지? 내가 다시 얼른 가서 말해줄까? 덧칠 너무 많이 하지 마시라고.”

“이미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활동하시고 계신 것 아닙니까?”

“으으, 맞아.”

김민지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소란을 피웠다가는 엄마가 삭발시켜서 무간지옥에 처넣겠지. 기집애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고, 한 3000년은 재울 게 틀림없어.”

최갑수 공방 천장에서도 가루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공방이 무너지게 생겼다.

“설마 민지 님은 김철수를 안 믿는 것입니까?”

“안 믿다니! 누가! 나만큼 철수 님을 믿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데 왜 그리 불안해하십니까? 김철수는 최고의 콘텐츠를 뽑아내는, 김민지의 선택을 받은 콘텐츠 생산자입니다. 그의 콘텐츠를 한 번 믿어보시지요.”

그 말에 김민지는 조금 안심한 듯 초코우유를 쪽쪽 빨아 마셨다.

“하긴. 내가 철수 님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얼굴이 잘생겨서가 절대 아니니깐.”

최갑수는 말하고 싶었다.

거짓말.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 거면서.

“혹시…… 민지 님의 능력이라면 지금 김철수를 훔쳐볼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돼!”

“네?”

“그건 철수 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철수 님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파렴치한 짓은 사생들이나 하는 짓이야.”

“아쉽군요. 김철수의 위기관리 능력과 상황 진행 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는데요.”

“……너는 지금 철수 님 플레이가 꼭 보고 싶은 거지?”

“…….”

최갑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예,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저만 볼 수 있는 개인 플레이 영상이라니. 진짜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네가 보고 싶은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영감은 내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이건 은혜를 갚는 거야. 아 진짜 어쩔 수가 없네.”

허공에 자판이 생성되었다.

김민지가 자판을 여러 차례 두드리며 명령어를 입력하자, 허공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 *

‘김민지. 하는 짓이 제법 귀여운 녀석. 위험해.’

귀엽다는 건 아주 위험하다는 뜻이다.

예쁘고 귀여운 모든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아, 이거 어쩌면 시스템의 수작일 수도 있겠다.’

시스템은 늘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회귀’를 인정하지도 않는 거고.

‘내 편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내 뒤통수를 치려는…… 엄청 상급 관리자일 수도 있겠어.’

그러니까 이 해킹룸이니 뭐니 하면서 기이한 권능을 펼쳐 보이는 거겠지.

차진혁은 점점 생각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철수랜드 1호라는 것도 사실은 나를 기만하기 위한 연막작전일 수도 있어.’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다.

‘특혜를 베풀어주는 척하면서 여러 번 덧칠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였겠지.’

행운의 신이 그걸 잘 간파하고 나를 말려준 것이 틀림없었다.

차진혁은 김민지의 쪽지를 들어 올렸다.

실시간으로 영상을 살펴보고 있는 김민지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설레했다.

“어, 어떡해? 철수 님이 내 쪽지 또 읽고 싶은 건가 봐.”

[스킬, ‘치화술’을 사용합니다.]

화르륵!

차진혁은 약간의 분노를 담아 김민지의 쪽지를 불태워버렸다.

그걸 본 김민지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왜…… 왜?”

최갑수는 순간 당황했다.

어떻게 달래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것이…….”

그런데 김민지는 스스로 훌륭한 답을 찾아내었다.

“역시 엘튜브각이겠지?”

“그, 그렇죠.”

“저 불꽃 영롱한 거 봐봐. 예전에 불사조의 심장을 먹고서 잠재스킬이었던 치화술을 각성했었잖아. 무아의 영역에서 명상하다가 얻어낸 스킬이지.”

“그걸 다 기억하십니까?”

“팬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다 기억해야 하는 거 아냐?”

“…….”

“그때보다 불꽃이 더 예뻐졌어. 나중에 영상 올릴 때 더 예쁘라고 불꽃 피운 게 틀림없어. 진짜 방송만을 생각하는 저 프로다운 모습이 너무 멋있지 않아?”

그냥 뭐가 됐든 멋있게 보고 싶은 거 아닙니까?

최갑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차진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부탁한다, 행운의 신.’

[신비, ‘행운의 신’을 사용합니다.]

[‘피카소의 붓’을 사용합니다.]

다시 한번 덧칠을 진행했다.

* * *

‘행운의 신을 썼는데도 기절을 안 했네.’

생각보다 굉장히 안정되어 있는 상태.

해킹룸이라는 공간은 내게 무척이나 우호적인 공간이어서 그랬다.

이 공간 자체가 나를 돕는 느낌.

‘과연, 이 정도 특혜는 줘야 내가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지.’

역시 예쁘거나 귀여우면 조심해야 한다.

원래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오늘 또 배웠다.

‘이게 되네.’

솔직히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내 소우주 속에 다양한 색깔의 빛이 터져 나왔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떤 빛을 잡을 것인가.

덧칠의 효과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서둥이들을 전직시켜준 경험이 큰 양분이 되었습니다.”

서둥이들을 리드해서 그림자 군주로 각성시켜줬던 경험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는 홈페이지 마스터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 영상을 공개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말을 이었다.

“홈페이지 마스터 강은우, 그는 특성이 곧 직업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었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제 특성 중 하나인 먼치킨.”

아마 당장은 공개하기 어렵겠지.

내 특성이 먼치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당장은 밝히고 싶지도 않고.

그러나 먼 훗날, 우주 최고의 스트리머로 우뚝 선 이후, 지금의 이 영상을 공개한다면 꽤 감동적인 스토리가 될 것 같았다.

“이것이 곧 제 직업이 되었습니다.”

──────────

[먼치킨 스트리머]

──────────

기본적으로 덧칠을 하는 개념이다 보니, ‘스트리머’라는 큰 틀은 깨지지 않았다.

스트리머 앞에 ‘먼치킨’이 더해졌다.

“제 직업은 먼치킨 스트리머입니다.”

만약 내가 검술가였더라면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다.

먼치킨 스트리머보다는 먼치킨이 훨씬 더 범용성이 좋은 직업일 테니까.

‘오히려 좋아.’

스트리머라는 직업에 엄청난 만족도를 느끼고 있다.

매일매일이 설레고 재밌다.

“언젠가 위대한 스트리머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이 영상을 헌정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은 숨겼다.

‘여벌 목숨 파괴된다더니?’

오히려 더 강화된 것 같았다.

‘나중에 이걸로도 방송각 잡을 수 있겠다!’

여러모로 많이 설렜다.

* * *

김민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윽, 내 심장.”

“왜 그러십니까?”

“철수 님이랑 눈 마주쳤어.”

“……예? 김철수는 지금 혼잣말을 하는 중인데요.”

“그럴 리가! 진짜 영감은 철수 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구나?”

“……제가요?”

“그래. 철수 님은 내가 해커라는 사실을 알아. 그러니까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

아니, 그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너무 떨린 나머지 실수를 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친절히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가면서 내게 말해주고 있어. 괜찮아 민지야라고.”

“…….”

꿈보다 해몽이 지나치게 좋았다.

“팬한테 진짜 잘한다. 이러니 더 사랑할 수밖에.”

“…….”

“영감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 사랑하고 싶은 거 아닙니까?”

그러나 김민지는 최갑수의 말을 듣지 않는 상태였다.

“진짜 잘해줘야지.”

영상 속 차진혁이 말했다.

-“언젠가 위대한 스트리머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이 영상을 헌정합니다.”

김민지는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저 말이 ‘민지에게 이 영상을 헌정할게’처럼 들려서 설렜다.

“와…… 진짜 팬 서비스 무엇?”

최갑수는 도대체 뭐가 팬 서비스인지, 어디서 저렇게 감동할 만한 포인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또 말을 꾹 눌러 참았다.

한편, 차진혁은 계속해서 방송을 진행했다.

“중계결계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이름이 절대결계라고 바뀌었는데…… 이름이 상당히 거창하네요. 과연 이름값을 하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계자의 시야가…… 중계자의 통찰로 바뀌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차진혁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한 감각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찌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전신에 퍼지는 것만 같은 느낌.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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