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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06화 (20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06화

룰 브레이커를 보니 어딘지 이상했다.

‘원래 멋있는 장검 형태일 텐데?’

내가 기억하는 룰 브레이커는 겉멋으로는 세계제일이었다.

괜히 우트검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근데 왜 망치 형태야?’

물론 이 망치도 꽤 정성스러운 디테일이 들어간 명품임에는 틀림없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묵철로 만들어진 이 망치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으나 막상 손에 쥐면 깃털처럼 가벼워서 휘두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음각으로 상당히 정교한 무늬가 세공되어 있었는데 척 봐도 고급스러움이 뚝뚝 묻어났다.

조로의 룰 브레이커가 우트검이었다면 이 룰 브레이커는 우고망(우주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망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룰 브레이커는 주인을 선택하는 무구이며, 주인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의 형태로 현현한다.”

“나한테 가장 적합한 무기?”

나는 룰 브레이커를 받아들고서 이모저모를 계속 뜯어보았다.

확실히 비싸 보이기는 했다.

근데 이상하네, 나한테 가장 적합한 무기는 검일…… 텐데?

‘아니…… 검인가……?’

나는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의 나는 검술가로 시작해서 결국 검왕의 자리까지 올랐다.

검왕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유일무이한 호칭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맵의 검왕이었고, 사실 각 맵마다 검왕이라 불리는 애들은 더러 있었으니까.

아예 우주 단위로 넘어가면 검왕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사실 흔한 이명이라 볼 수 있었다.

한 서버에 못해도 10명씩은 있는 게 검왕이니까.

‘근데 보면 좀 이상하긴 하단 말이야.’

이 이상한 감정을 처음 느꼈던 건 골룸을 만났을 때였다.

아르비스의 위대한 길잡이 골럼베룸의 부캐.

그 정도 되는 탑 랭커의 마인드가 생각보다는 덜 치열했었다.

‘그렇게 덜 치열했는데도 위대한 길잡이라 불렸지?’

반대로, 회귀 전의 나는 그렇게 치열했는데도 위대한 검왕이라 불리지 못했다.

우주 전체로 치면 나보다 강한 애들이 상당히 많았다.

반에서는 1등인데 전국에서는 30등 정도 느낌이랄까.

‘그럼 혹시 내 검에 대한 재능이 부족했던 거 아닐까?’

나는 당연히 내게 주어진 최고의 재능이 검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검이 아니라 망치를 쥐었더라면?

‘룰 브레이커의 손맛이 꽤 좋기는 했어.’

이상하리만치 손에 익었고 이걸로 패는 게 꽤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최근에는 방송 핑계를 대고 검 대신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을 때도 있다.

‘게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와 정신적 연동이 훨씬 강해진 수호수가 자꾸 ‘머가리를 깨부쉈도다!’ 하고 외치는 게, 어쩌면 사실 내 적성과도 연관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사실 내 재능은 망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내 재능을 깨달은 느낌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해도 반에서 1등밖에 못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보다 ‘올바른 방법으로’ 치열했어야 했다.

검이 아니라 망치를 쥐고 시작했더라면 반에서 1등이 아니라 전국에서 1등을 할 수 있었을지도?

‘다행인 건……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검술가 시절의 내가 이걸 깨달았더라면 기쁘기보다는 우울했을 거 같다.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노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스트리머니까.

스트리머가 망치 휘두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거다, 아마도.

“조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지?”

“한 판 뜨자.”

“언제? 지금?”

조로의 눈에는 호승심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방금 히죽 웃은 것 같기도 했다.

“네가 선물해 준 이 룰 브레이커의 실력을 확인해 봐야겠다.”

“반가운 소리군.”

“여긴 수호수의 권역인데. 괜찮겠지?”

“무사가 어찌 그런 시시한 걸 따지고 든단 말이냐?”

나는 마당에 나가서 조로와 대련을 시작했고 결국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내 적성이었다!’

망치를 휘두르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그래, 답은 망치였어! 검을 들었으니까 검왕밖에 못 했지!’

조로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졌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룰 브레이커를 바라보았다.

묵철이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새 더 강해졌군.”

“더 손에 익은 무기를 찾았기 때문이겠지. 수호수빨도 있고 말이야.”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히죽히죽 웃었다.

조로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혹시……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나?”

“느끼지 못했냐고?”

나는 조로와의 대련을 복기해 봤다.

예전에는 대련이 끝나면 무조건 명상하면서 복기부터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나태해진 거 같다.

이래서 우주 1등 어떻게 하려고.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서 아주 짧게명상했다.

‘알겠……다.’

뭔가가 부족했다.

짜릿한 손맛 사이로 2프로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허전한 거 같기도 하고, 룰 브레이커가 너무 가벼운 거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군.”

응?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요즘 해가 엄청 짧아진 모양이다.

“내가 얼마나 명상했어?”

“4시간 정도.”

4시간밖에 안 했는데 해가 벌써 져버렸네.

“이 룰 브레이커를 제련해 준 자는 아르비스의 명장 중 한 명, 데일리아만 교수다. 그가 말하길, 이걸 손에 쥐고서 무언가를 깨닫는 자는 극의에 이를 것이라고 얘기하였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조로가 손을 내밀었다.

“진정한 무사를 만나서 즐거웠다. 다음에 또 만나지.”

겉으로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는데 나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내게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말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해? 말아?]

“해라, 그냥.”

“……뭐?”

“말하고 싶은 게 있잖아. 이걸 가져다줬으니 어지간한 건 다 대답해 줄게.”

“…….”

조로는 말하기 무척 곤란한 듯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엘리 영상은 언제 올라오냐?”

“뭐?”

얘, 혹시 내가 힐링 브이로그 찍은 거 알고 있나?

아직 업로드 안 했는데?

“찜콩하는 영상…… 300번 봤다.”

선구안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엘리 팬인가 보다.

“조만간 엄청난 거 하나 올라간다.”

“엄청난…… 거?”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얘한테만 영상을 스포해 줬다.

“모닥불에 다이빙한다.”

“모, 모닥불에 다이빙을 한다고?!”

조로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머릿속에 엘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모양이었다.

“그, 그리고? 다이빙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데?”

“불꽃이랑 춤춘다.”

“부, 불꽃이랑 춤을 춘다고?”

이쯤 할까 하다가 그래도 룰 브레이커에 대한 보답은 제대로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피곤해서 내 어깨에 기대고 꾸벅꾸벅 졸아. 장르는 잔잔 일상 힐링 브이로그.”

“…….”

“특별히 업로드 전에 연락해 주마.”

조로의 쌍검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표정에 간절함이 잔뜩 묻어나 있는 것이 몹시 감동한 모양이었다.

“고맙다, 친구.”

역시 일상 힐링물도 수요가 꽤 탄탄하단 말이야.

시장조사를 제대로 한 것 같아서 뿌듯해졌다.

* * *

요즘 내 주변 애들이 자꾸 ‘1호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하길래, 왕유미에게 물어봤다.

“아…… 그거요?”

왕유미는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쓰고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아, 저 모습, PTSD 몰려오는 느낌이다.

아주 단단한 결심을 하고서 내게 뭔가를 밀어붙일 때 딱 저런 모습인데.

요즘에는 그놈의 월왕이니 뭐니 하는 걸 안 밀어붙여서 다행이기는 한데, 나는 가끔 왕유미가 두렵다.

결과적으로 항상 옳은 선택을 해버리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언젠가는 당연히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게 나아요. 진혁 님, 아니, 철수 님은 일단 모르는 걸로 할게요.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용.”

굳이 내 각성명을 언급했다는 건 일상보다는 플레이에 더 가까운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유는?”

“그래야 철수랜드가 더 미칠 거 같아서?”

철수랜드라는 내 팬클럽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왕유미가 알아서 관리하고 있어서 크게 신경은 못 쓰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왕유미는 내가 철수랜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신비주의 컨셉으로 갈 거예요. 철수 님은 엄청 치열하긴 한데 의외의 곳에서 맹한 구석들이 있거든요? 그게 또 차밍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어요. 후킹이 미쳤어용!”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을 확신했는지 몇몇 예시를 보여줬다.

-근데 철수는 자기가 이 정도로 인기 많은 거 모르는 거 같아서 넘 귀여워…… 어떠카지 ㅠㅠ

-철수랜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듯 ㅠㅠ 사슴 눈망울 우리 철수 절대 지켜!

-맑은 눈의 광인 김철수 더럽(the love)♡

-철수랜드 관리는 킹갓유미가 알아서 한다고 함. 플레이 외적인 일에 신경 쓰다 보면 플레이에 소홀해질 수도 있어서 극도로 조심한다는 소문이 있음.

-우리의 짝사랑은 가슴 아프지만 치열좌의 치열함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니 ㅠㅠ 우리 철수 하고픈 거 다 해ㅠㅠ 흥하자 우리 철수

-님들 우리 철수 귀여운 거 좀 보시라고요. 열 번 보시라고요.

왕유미가 요약해 줬다.

“쉽게 말해서 팬들이 철수 님을 짝사랑하고 있어요. 팬서비스도 전무한 주제에 이렇게까지 이해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 어려운 걸 우리 철수 님이 해내네요. 이건 뭐 단순히 외모의 문제는 아니고 철수 님이 그간 해왔던 업적들과 치열한 이미지들이 합쳐져서 가능했던 거긴 하지만요.”

“음…….”

나는 왕유미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거 약간…… 플레테이너 같은데.”

“어?”

왕유미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며칠 전에 내가 생각한 단어인뎅! 역시 진혁 님! 센스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어!”

플레테이너는 플레이어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말이다.

내가 아무리 현장 플레이에 미쳐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안다.

훗날 플레이어들은 연예인들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 가는 스타성을 지니게 되는데 그들은 명성과 스타성을 발판으로 연예인처럼 활동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강은우.’

미왕 강은우.

내가 한국맵 수준에서 제일가는 검술가였다면, 얘는 거의 우주 규모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플레테이너였다.

우주 만인의 이상형으로 손꼽혔고 지구에 플레테이너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정착시킨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아니, 근데 강은우는 어디서 뭐해?’

나약한 항문검 이현성도, 쌍검의 미친, 아니, 구독자 조로도 모습을 드러낸 마당에, 강은우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회귀 전에는 강은우 도움도 많이 받았었는데 말이다.

‘일단은 왕유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지금 당장은 룰 브레이커를 다루는 훈련에 더 집중하면서 이 무기를 내 걸로 체화해야 하는 데 온 정성을 쏟을 참이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마음이 청량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계속 느껴진다.

이게 무엇인지 찾아내면 진정한 의미의 반려무기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다.

‘강은우가 뭐하는지 좀 궁금하긴 하네.’

그래서 송하영에게 강은우에 대해서 알아봐달라고 했다.

며칠 뒤, 송하영은 어이없는 소식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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