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98화
레벨 200을 돌파하면서 ‘중계자의 시야’에 새로운 능력이 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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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숙련된 중계자라면 중계 대상의 행동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여 중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계 대상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중계 대상의 행동을 모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중계 대상이 되어서 행동해 보는 것이야말로 중계 대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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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건 내 신화급 카드인 ‘그 길의 정상에 올라선다는 것’의 효과와 꽤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중복되는 느낌인가?’
만약 그렇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데.
같은 내용의 연출을 시청자들이 별로 좋아할 거 같지도 않고.
‘그래도 일단 써보기는 해야겠다.’
과연 신화급 카드보다 효율이 좋을 것이냐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효율만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검술가가 아니라 스트리머니까.
스트리머로서 더 좋은 모습, 더 괜찮은 연출을 하는 것이 내게는 일순위다.
‘따라 하기는 쉽겠어.’
쟤 검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었으니까 말이다.
쟤 입장에서야 내가 저 검을 처음 마주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검은 범의 노래’를 수차례 경험했다.
내게 뼈아픈 패배를 주었던 검술이어서 꽤 오랜 시간 저걸 파훼하는 법에 매달리며 공부했었다.
‘되네?’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모방’ 스킬과 내 궁합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내 등 뒤에도 흑호 형상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 세 마리인데?’
도합 다섯 마리의 흑호가 한데 엉겨 붙어 물어뜯고 할퀴었다.
흑호 한 마리, 한 마리의 위력은 조로의 것들이 더 강했다.
그러나 숫자에서 내쪽이 더 우위였다.
‘왜 이렇게 잘 되는 거 같지?’
걸리적거리는 흑호는 내가 만들어낸 흑호가 맡아주었다.
그러니 나는 조로의 검만 신경 쓰면 되었다.
‘어우, 빠르긴 빨라.’
패턴의 장점이 이런 것이었다.
순간순간의 임기응변능력은 떨어지지만 매순간 안정적으로 본실력이 뽑아낼 수 있도록 만든다.
나도 검을 들어 조로의 검을 가볍게 쳐내려 했다.
‘검로만 슬쩍 바꾸고.’
그래도 뚫고 들어오는 검은 중계결계로 막을 심산이었다.
순간, 검의 궤도가 바뀌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버렸다.
내 검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고 있었다.”
조로는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오른 손으로 옮겨 쥐었다.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우에서 좌로 검을 휘둘렀다.
회전력이 더해져 더욱 강맹해진 검날이 보였다.
‘내가 못 보던 패턴이네.’
내 대검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푸악!
조로의 검이 내 목을 쳤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와, 이 무력감 오랜만인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범의 노래는 즉살의 검이다.”
간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 * *
검은 범의 노래는 ‘즉살’ 확률을 극대화 시켜주는 능력이었다.
급소를 제대로 공략하여 치명타를 먹이기만하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률로 즉살을 발동시킨다.
다만 동작이 워낙 큰 데다가 그만큼 반격의 위험성도 높아 함부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조로는 쓰러진 김철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철저한 셋업 과정을 가져갔듯, 나 또한 그렇다.’
스트리머이자 이제 겨우 200초반 레벨대인 김철수를 상대로 이렇게 셋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너는 내 패턴을 지나치게 빨리 읽어냈지. 마치 나와 이미 여러 번 겨뤄본 놈처럼.’
그것은 김철수에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조로는 뒤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에건 폴을 향해 말했다.
“놈이 나의 모든 것을 읽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김철수는 자신의 검로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 그것은 일종의 방심이었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나의 검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스트리머인 에건 폴을 위하여 약간의 설명을 곁들인 것이었다.
이제 미션 보상인, 룰 브레이커의 진화 레시피를 가르쳐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에건 폴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저기.”
조로가 황급히 몸을 움직여 라칸을 피해냈다.
어느새 차진혁이 일어나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너!”
“확실히 몸놀림이 빠르긴 하네. 적어도 등은 벨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순간 조로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여벌 목숨?”
“그래. 초창기 구독자라면서 그걸 까먹으면 어떡하냐?”
조로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룰 브레이커에 눈이 멀어 기본적인 것을 놓쳤구나.’
차진혁도 씨익 웃었다.
“아프더라. 네 검.”
“이번에는 아프지 않게 보내주지.”
“근데 이제는 힘들걸?”
“뭐?”
“나도 엘튜브각 이제 다 뽑았거든.”
차진혁이 팔을 빙빙 돌렸다.
죽는 것까지 연출했고, 새로 얻게 된 ‘모방’도 확실히 보여주었다.
“스트리머의 눈으로 보면 말이야, 검은 범의 노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보여.”
“…….”
“너는 직감으로 하고 있겠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보인다는 뜻이야. 어떤 방식으로 즉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지도.”
흑호는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인다.
마치 블랙홀처럼.
흑호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이해하려나.”
조로는 달려들지 못했다.
그는 이것이 하나의 기연임을 직감했으니까.
“사람 주변에 실이 있다고 생각해 봐. 아주 많은 실가닥이 연결되어 있어. 아, 그 줄 달린 인형 생각하면 편하겠네. 마리오네트라고 하던가?”
조로는 이것이 일종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게 모르게 심장이 간질거렸다.
“흑호의 기운이 팔, 다리, 머리에 매달린 줄을 끊어내.”
“…….”
“그렇게 되면 즉살의 확률이 극대화된다.”
“…….”
“모든 줄이 끊어졌을 타이밍을 노려 즉살을 사용하면 상대는 무조건 죽어. 그러나 그 줄은 순식간에 다시 연결되기 때문에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원리 알려줬으니까 버스 태워준 건 이제 퉁치는 거다.”
차진혁이 조로와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까앙-!
순간, 조로는 뭔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검이 훨씬 묵직하다?’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새끼. 힘을 숨겼다!’
차진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스트리머가 힘을 숨김이다.”
타 서버로 넘어갈 때에만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성, ‘먼치킨’을 활성화 시켰다.
* * *
김잘알 TV의 채팅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뭐야? 지금 뭐임?
김철수가 사망하던 시점.
수많은 시청자들이 통곡했고, 비웃었고, 즐거워했고, 슬퍼했다.
‘여벌 목숨’으로 인해 다시 살아났을 때 역시 치열좌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며 안도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것도 몰랐냐며 나는 다 알고 있었다라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상황을 함께 보더라도 늘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응이 거의 같았다.
-뭐임?
-왜 김철수가 압도하지?
-김철수가 훨씬 강한 거 같은데?
김철수의 라칸이 쉴 새 없이 조로를 압박했다.
조로는 김철수의 검을 받아내기에 급급해 보였다.
-엘튜브각 때문에 여태까지 봐준 거?
-엘튜브각 때문에 죽어주는 미친놈도 있냐?
-있네, 저기.
그래도 시청자들은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에 대해 수많은 의견을 쏟아냈다.
김철수가 해답을 내려주었다.
“이게 바로 스트리머가 힘을 숨김이다.”
-왘ㅋㅋㅋㅋ 저게 진짜 가능했다고? 진짜루?
-스트리머가 검술가 상대로 힘을 숨기는 게 가능한 거였음?
-가슴이 웅장해지는 연출이다 ㄹㅇ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조로의 온몸이 땀에 젖었다.
-와 미친 검술 섬세한 거 보소.
-저게 어떻게 스트리머냐, 검술가지.
-부드럽고 느린 거 같은데 개빠른듯.
왕유미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차진혁의 검술을 넋놓고 바라봤다.
“아름다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조로와는 달리 차진혁은 여유로웠다.
가볍고 빠르게, 그러나 날카롭게 조로의 빈틈을 노렸다.
-중계결계로 포기할 건 포기하고 걍 찌르는 듯?
-탱딜이 다 되는 건 사기 아니누?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하여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모름지기 스트리머라면 탱과 딜이 다 되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딜러계열 혹은 탱커계열 플레이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했다.
-이게 나라냐?
-존나 억울하네 ㅋㅋㅋ 어이없어서 말도 안 나옴ㅋㅋㅋ 난 탱킹에 영혼까지 갈아넣었는데 왜 스트리머가 탱킹이 더 잘함? 딜은 왜 높음?
-이번에 지구 서버 관리자들이 난이도 조절 씹실패했다는 증거지 ㅋㅋ
-박탈감 개오지누
-플레이하기 싫어지네. 솔직히 저런 건 형평성에 너무 어긋나는 거 아니냐?
-니가 그렇게 억울하면 조로는 어떻겠냐?
-니가 조로보다 억울하겠누 ㅋㅋㅋㅋㅋ
차진혁은 말 그대로 조로를 압도했다.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굉장히 신이 난 상태.
‘즉살이 언제 터질지 대충 느껴지니까 너무 좋네.’
조로는 사실 본신의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 된 경향이 있는 플레이어였다.
‘즉살’이라는 필살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다.
즉살을 가진 상대는 상대하기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렇다보니 조로와 싸우는 상대는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전투들이 좀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싸울걸. 어차피 확률도 낮은 거 같은데.’
당시 조로의 즉살을 너무 염두에 두었던 것이 패인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뭐, 이런 저런 걸 다 감안한다고 해도.’
차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나를 넘어섰다.’
회귀 전 기준으로, 즉살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조로를 이렇게 압도할 수는 없었다.
물론 ‘시간배율 촬영’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는 있다지만 이것 또한 자신의 능력 아니겠는가.
‘레벨급만 맞으면 검술가를 상대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네.’
조로가 패턴형 검술가여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과는 고무적이었다.
몇 분 안에 승리가 결정될 것 같았다.
‘그럼 확실히,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강해질 수 있어.’
이 정도 속도로 강해지면 은퇴는 진짜 안 해도 되는 것 아닐까.
솔직히 이쯤 되면 은퇴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은퇴를 안 하려면?’
그만 강해지고 싶었는데.
‘그’만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미쳤네. 지구의 스트리머가 타 서버 랭커 검술가를 압도하고 있네. 그것도 저레벨 스트리머가.
-사실 이거 우리 전부 속고 있는 거 아니냐?
-김철수랑 조로랑 짜고 조작방송하는 듯?
-주작 개오지누 ㅉㅉㅉ
-뭐만하면 주작이래 ㅋㅋㅋ 니가 사는 세상에 진짜는 있나요?
왕유미는 왕유미 나름대로 주먹을 불끈 쥐고서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치열좌는 새로운 경지의 지평선을 열어주었어요 >_<]
미개척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개척된 곳.
그러니까 이정표가 있는 곳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김철수가 지구 플레이어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김철수가 기준이고 김철수가 지표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김철수처럼 하면 돼요!”
손가락은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의 목표는 김철수처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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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미는 확신했다.
‘오늘 이후로 지구 서버의 전체적인 수준이 확 올라가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