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8화
처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 그게 뭔지 알 거 같다.
‘얘 원래 싸울 때 웃통 안 입잖아?’
녀석은 자신의 덩치와 근육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전투를 치를 때에는 꼭 웃통을 벗고 싸우는 특성이 있었다.
진짜배기는 방어구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근데 지금은 갑옷을 입고 있네?’
예전에 인터뷰하기로는 자신은 예전부터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얘기했었다.
소심한 겁쟁이들이나 사용하는 거라고 말해서 극성빠들이 상남자라며 추켜세웠었다.
‘이 시절에는 방어구를 착용했단 말이지?’
처음부터 방어구를 사용하지 않던 놈이 아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방어구를 사용하면 오히려 방어능력을 떨어지는 특수한 힘을 획득했겠지.’
의외로 그런 부류의 신비나 능력들이 꽤 있다.
‘이 새끼, 그럼 그때 사기 친 거네?’
나는 물론 올리베른을 무척 싫어하기는 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정하는 부분은 있었다.
공격에 방해된다며 과감하게 방어구를 벗고 광견처럼 싸우던 그 모습은 나조차도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그게 가짜였다고?’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너, 가짜였냐?”
“자기소개를 하는 건가?”
[LV138/도왕/스킬/투견성의 가호]
‘직업은 평범한 9성이고.’
어쨌든 미국 서버 도술가 계열의 랭킹 1위니까 9성이 아니면 이상한 일이다.
“기분이 나쁘네. 난 레벨이라도 높은 줄 알았지.”
“레벨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나?”
“그래도 138은 너무 낮지 않냐?”
“네가 스트리머이기 때문에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군.”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스트리머고, 스트리머는 타 직업에 비해서 레벨업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니까.
올리베른은 여유로운 듯 껄껄대며 웃었다.
“겁쟁이답게 내 정보를 훔쳐보는구나. 마음껏 보아라. 시간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거기서 나는 또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아는 광전사라면 이런 대화고 나발이고 일단 도끼부터 뽑아 들고 덤벼들었겠지.’
그러나 올리베른은 내게 덤비지 않았다.
세상에 알려진 올리베른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보여주마 #짭의 한계를 #기다림_많이 접속하세요]
이놈은 계산이란 걸 꽤 할 줄 아는 놈이었다.
가면 갈수록 내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가짜 광기였잖아.’
그럼 과거에 나를 도발하고 싸우려고 했던 건?
‘그럼 그것도 철저히 계산했나 보네? 내가 결국 못 싸울 걸 알았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광전사 올리베른은 철저히 이기는 싸움만 해왔던 것 같다.
당장에 나보다 한참 약했던 -본인은 비슷했다고 주장하지만- 이현성에게는 도발하지 않았었다.
‘뒤통수가 얼얼한데.’
그때 나는 그래도 얘가 꽤 괜찮은 놈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지 명성을 위해서 자기보다 약한 놈만 두들겨 패고 다녔던 거구나.
‘그래서 그런 미친 짓을 하고 다녀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내가 봐도 얘는 또라이 같은 짓을 너무 많이 했다.
완벽히 승리를 했는데도 상대를 지나치게 망가뜨렸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싸움에 미쳐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머리로 계산해서 그렇게 한 거라고?
“이거 안 될 새끼네.”
* * *
차진혁은 올리베른과 마주 선 채 중계자의 시야로 올리베른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이 새끼. 페이론의 목걸이를 차고 있네?’
이 세상에 만능 아이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 특출난 부분이 있으면, 또 어떤 부분에는 취약하다.
어떤 아이템에 대해서는 상성 우위를 지니고 또 어떤 아이템에 대해서는 약한 면모를 보인다.
올리베른이 착용한 페이론의 목걸이는 차진혁이 착용한 베라클라프의 목걸이에 대한 카운터격 아이템이었다.
‘방송에 안 보여줘야지.’
해당 내용은 잘라내고는 조금 뿌듯해졌다.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실시간 편집을 해낸 거니까.
스트리머로서 조금 더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자료화면 쓸 수도 있으니까 캡처는 해놓자.’
──────────
[페이론의 목걸이]
저주술사 페이론의 마력이 깃든 목걸이.
데미지를 반사하는 모든 형태의 이능에 대하여 곱절의 저주를 가하는 특성을 지닌다.
단, 착용자의 방어력이 20%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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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저런 류의 아이템은 자체 저주가 걸려 있어서 본신의 능력치를 깎아 먹는다.
차진혁이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자 올리베른이 인상을 찡그렸다.
“검을 들지 않겠다?”
“너 같은 가짜 잡는 데에는 망치가 제격이지.”
“그렇다면 나도 무기를 들지 않도록 하지.”
차진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무리 봐도 지극히 정상인인데 자꾸 미친놈 코스프레를 한다.
미친놈들은 저렇게 평범한 눈동자를 가지지 않았다.
“넌 나랑 비슷한 놈이야.”
“뭐?”
“미치지 않았지. 근데 왜 미친 척을 하는 거지?”
진짜 미친놈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차진혁이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곧장 올리베른을 향해 룰 브레이커를 휘둘렀고 올리베른은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룰 브레이커를 피해냈다.
“쉽군.”
이어지는 차진혁의 공격에 올리베른은 점차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뭐야?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공격궤도가 단순하고 타이밍이 뻔했다.
스트리머치고 빠르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예상범위 내였다.
“가짜는 진짜를 넘어서지 못하는 법이다, 김철수.”
차진혁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스트리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맹한 공격이었으나, 올리베른은 조금씩 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올리베른 여유로이 차진혁의 공격을 피해내며 말했다.
“You are a bubble.”
수많은 이들이 둘의 전투를 관전했고 꽤 많은 이들이 ‘김철수 거품설’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진짜 열심히 공격하는데 아예 안 닿는데?
-나도 저런 비슷한 경험한 적 있어서 아는데 저러면 완전 벽 느껴짐 ㅇㅇ
-진짜 수호수빨이었나?
차진혁이 연거푸 룰브레이커를 휘둘렀다.
모든 공격이 올리베른의 옷깃에도 닿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피지컬이나 재능은 뛰어나긴 한데, 딱히 검술가로서 뛰어난 스킬을 보여준 적은 없지 않나?
-그게 직업의 한계라는 거지. 결국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저런 형태의 스트리머는 도태될 수밖에 없음.
-응, 도태되어도 너보다 훨씬 부자임.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왜 시비질?
-응? 올리베른이 공격 시작함.
공격을 피해내며 틈을 노리던 올리베른이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은 곧바로 차진혁의 이마에 닿았다.
쿵!
꽤 큰 소리의 격타음이 났다.
올리베른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릴 뻔했다.
‘뭔 놈의 방어력이!’
스트리머의 중계결계는 이미 여러 번 부숴봤다.
그런데 이렇게 단단한 중계결계는 처음 봤다.
‘손가락뼈가 골절됐군.’
체중을 많이 싣지도 않았는데 뼈가 부러졌다.
중계결계가 단단하다 못해 약간의 공격반사까지 해내는 느낌이었다.
올리베른이 움찔하자 차진혁 또한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쟤, 뼈 부러진 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틈이 크게 보이는 거겠지.
‘아 진짜 장난하나.’
차진혁은 곧장 거리를 좁혀 룰브레이커를 휘둘렀다.
분명 아까까지와 같은 모양새였으나 올리베른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깡!
룰브레이커가 올리베른의 가슴팍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올리베른이 황급히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거리를 벌리고 숨을 골랐다.
“야, 올리베른. 100점 맞는 거보다 어려운 게 뭔지 아냐?”
“……뭐?”
여기서 포션을 마셨으면 정말 크게 실망할 뻔했는데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닌 듯했다.
올리베른은 차진혁을 경계하며 언제든 도끼를 꺼내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0점 맞는 거야. 문제의 답을 다 알아야 피해갈 수 있거든.”
차진혁은 아까 올리베른에게 달려들던 모양새와 완전히 똑같은 속도와 궤도로 접근했다.
그리고 또다시 룰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유저들이 낄낄대며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짓을 또 하누?
-저거밖에 못하는 거 아니냐?ㅋㅋㅋ
-지면 핑계 대려고 라칸 안 꺼내네ㅋㅋㅋㅋ
-역대급 거품 꺼지는 날 ㅋㅎㅋㅎㅋㅎㅋ
차진혁의 인기가 높아지며 팬이 많아질수록 안티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오늘은 안티팬들의 날인 듯했다.
-학습 못하는 무뇌아 인증이쥬? 거품이쥬? 아무고토 못하쥬?
-거품 제거 시-원☆
-수호수 없으면 듣보쥬? 레벨 높아도 소용 없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레벨 물레벨 거리더니 지가 물레벨이눜ㅋㅋㅋ
올리베른에게 접근한 차진혁이 말했다.
“뒤로 두 걸음.”
그와 동시에 올리베른이 뒤로 두 걸음 움직였고, 룰 브레이커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여기서 왼쪽으로 숙여서 피하고.”
올리베른은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차진혁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여기가 비겠지만.”
어느새 룰브레이커를 왼손으로 옮겨 든 차진혁이 오른 손바닥으로 올리베른의 관자놀이를 톡 쳤다.
“이러면 찔끔 놀라서 반시계방향으로 백스텝.”
말과 동시에 차진혁이 먼저 움직였고, 올리베른이 그에 뒤따라 움직이는 모양새가 됐다.
차진혁이 다시 오른손으로 올리베른의 이마를 톡! 쳤다.
“이렇게 움직임이 단순하니 다 읽히지.”
그리고 올리베른을 발로 차 냈다.
당연히 발에는 중계결계를 씌워서 단단하게 만들었고, 한 점에 그 힘을 강하게 응축시켰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 강한 발차기가 아니었으나 올리베른은 몇 발자국이나 뒤로 밀려 나간 뒤 콜록! 콜록! 하고 여러 번 기침했다.
“왜 100점 맞는 것보다 0점 맞는 게 더 어려운지 알겠지?”
차진혁은 올리베른의 허점이 너무 잘 보였다.
“분량 좀 제대로 뽑으려고 했는데.”
차진혁은 곧바로 아까의 영상을 다시 자료화면으로 띄웠다.
올리베른이 공격하다가 중계결계에 부딪쳐 뼈가 골절되는 그 화면.
“여기서 이렇게까지 틈을 크게 보여주면, 내가 연출을 할 수 있겠냐, 없겠냐?”
너무 틈이 크게 보였다.
-무슨 틈? 뭐 보임?
-뭐가 보이누?
-김철수한테는 뭐가 보이나 보다.
물론 이런 틈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수도 없이 오갔던 베테랑 검술가에게만 보이는 것이어서 일반적인 유저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봐주는 게 너무 티 나면 재미없는데, 진짜 이렇게 협조 안 할래?”
“…….”
“이런 실력으로 날 도발해?”
단순한 피지컬을 떠나서 아직 올리베른은 투사로서의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수싸움을 잘하는 상대와의 싸움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항문검보다 약한 게 왜 까불까?”
올리베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마와 목덜미에 두꺼운 힘줄이 돋아났는데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올리베른 열 받았다.
-광전사 등장이네 ㅋㅋ
-이제부터가 찐 ㅋㅋㅋ
-입 잘못 놀리다가 털리겠눜ㅋㅋㅋㅋ
올리베른이 침을 퉤 뱉고서 쌍도끼를 꺼내 들었다.
올리베른이 자랑하는 금도끼, 은도끼였다.
오른손에는 금도끼를 들었고 왼손에는 은도끼를 들었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오? 장난이었어?”
“너는 정말로 죽여주지.”
광전사 올리베른의 몸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광기’라 불리는 스킬이었고 올리베른의 모든 신체적 능력치를 크게 증폭시켜주었다.
‘이건 그나마 좀 봐줄 만하네.’
속도가 빨랐다.
‘그래봤자 검은팬티나 우리 서둥이들에 비하면 느리지만.’
그들의 속도에 워낙 익숙하다 보니 올리베른의 속도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 잘난 머리통을 분리해 주지.”
금도끼가 금빛 궤적을 그리며 차진혁을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차진혁이 중계결계를 사용하려는 그 찰나,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올리베른의 은도끼가 차진혁의 정수리를 쪼개려 들었다.
이 상황을 중계하고 있는 에건 폴이 슬로우 효과를 걸어 상황을 중계했다.
-나왔다, 시간차 공격!
-이건 못 피하짘ㅋㅋㅋ
-그렇게 치열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닠ㅋㅋㅋ 막상 본인은 안 치열하눜ㅋㅋㅋ
-잘 가라 재밌었다 치열맨.
실제로 올리베른의 은도끼가 차진혁의 정수리에 닿았다.
에건 폴의 화면에 잡힌 차진혁은 웃고 있었다.
-어? 웃고 있는데?
-아!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추측해 냈다.
-베라클라프의 목걸이!
-데미지 반사되는 거 아님?
-와 ㅁㅊ? 그런 아이템을 갖고 있었음?
에건 폴은 센스 있게 화면을 전환하여 자료화면을 띄웠다.
미리 올리베른과 인터뷰를 했던 영상이었다.
-“결국 놈은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사용하여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하겠지만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가짜의 거품을 걷어주지.”
그리고 화면에 다시 잡힌 올리베른은 씨익 웃고 있었다.
차진혁이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사용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올리베른이 크게 외쳤다.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