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63화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에건 폴을 진정한 라이벌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망스럽다, 에건 폴.’
봉킹, 강미나의 성장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에건 폴만의 특색과 개성은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수동적으로 시야만 담아 중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 잃었냐?”
“…….”
“이러고도 네가 미국맵 1등이냐?”
자세히 보니 에건 폴은 뭔가에 당한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정신계열 공격이나 세뇌 같은데, 무슨 스트리머가 저런 걸 당하는지 모르겠다.
응당 스트리머라면 ‘제왕의 격’ 같은 건 가지고 있어야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딴 게 내 라이벌?’
감히 내 1등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나는 에건 폴의 뺨을 한 대 더 때렸다.
신기한 건 뺨을 맞을 때마다 에건 폴의 눈동자가 조금씩 또렷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줘.”
“뭐?”
“더 때려…… 줘.”
“원한다면.”
나는 오른팔에 불꽃을 휘감은 채 에건 폴의 뺨을 수차례 때렸다.
맷집이 얼마나 약한 건지, 겨우 이 정도로 입술에서 피가 터지고 볼이 부어올랐다.
“너 육체수련은 안 하냐?”
“…….”
와, 진짜 실망이네.
스트리머가 육체수련을 안 한다고?
그러면 극한 환경에서 스트리밍을 어떻게 하려는 거지?
설마 스킬에만 의존하려는 건 아니었겠지?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에건 폴을 뺨을 여러 대 때렸다.
“이건 참 신비로운 현상인데요.”
찰싹! 찰싹!
“제 흑염우수정화신권, 아니, 흑염우수정화신장이 에건 폴의 정신을 정화시켜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에건 폴의 정신을 오염시켰던 것은 독의 한 종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험프리 밀런의 짓이겠지.
험프리 밀런은 존프릭과 함께 다닐 때는 유명한 마취술사 혹은 약제술사로 불렸다.
독을 다루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놈.
정신계열 공격을 사용하는 것처럼 연출한 뒤, 실제로는 독초나 독향 등을 사용했겠지.
‘그런 공격에 당한다고? 랭킹 1위 스트리머가?’
계속 빡치네.
찰싹! 찰싹!
“내 흑염의 우수는 맹독을 포식한다.”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다루는 이 불꽃이 독을 정화할 수 있다니.
단순히 사왕급 이하의 독에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정화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에건 폴은 정신을 번뜩 차린 거 같았다.
‘중계결계!’
중계결계 타이밍 보소?
‘겨우?’
나는 시간 차를 두고 에건 폴의 뺨을 때렸다.
순간적으로 중계결계를 없앴다가 다시금 사용했는데, 그 연결이 꽤 자연스럽고 빨라서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건 좀 잘했네.’
물론 이 타이밍도 속여서 때리려면 때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조금은 기특하기도 했고 계속 같은 걸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지루할 것 같았으니까.
정신을 완전히 차린 듯, 에건 폴이 말했다.
“여기서 내게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김철수.”
“뭐?”
“험프리 밀런이 진짜 노린 건 수호수가 아니야.”
* * *
차진혁에게 뺨을 맞았던 그 시점부터 에건 폴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문득 의아해졌다.
‘수호수를 베려 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전혀 묻고 있지 않아.’
김철수가 이미 파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저 흑염 어쩌고로 나를 치유해 주고 있는 것이겠지.’
물론 아니었다.
정화 효과는, 멋있게 때리려고 오른팔에 화염을 두르고 때리다가 얻어걸린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에건 폴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타이밍, 내 중계결계를 완전히 읽어냈어.’
맞고 있는 자는 알 수 있었다.
만약 김철수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더 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건 김철수의 진짜 의도가 ‘폭행’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철수는 정화의 손길을 사용하여 자신을 깨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안개가 가득한 망망대해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부분에서 나를 배려해 주고 있구나.’
동종업계의 플레이어여서?
아니면 라이벌이어서?
김철수가 어째서까지 자신을 이토록 배려해 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배려해 주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는 너무나 명확했다.
‘나는 네 수호수를 베어내려 했다.’
아무리 정신계 공격에 당했다지만 그건 핑계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넌…….’
방송의 퀄리티를 지적하며 선의의 경쟁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건 폴은 깊이 감격했다.
‘죠셉, 네 말이 맞군.’
죠셉이 어째서 자신을 떠나 김철수를 돕고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고, 김철수는 누구보다 위대한 승리자였다.
‘결국 나는 말할 수밖에 없어.’
그것이 인간 된 도리였다.
“여기서 내게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김철수.”
“뭐?”
“험프리 밀런이 진짜 노린 건 수호수가 아니야.”
그 말에 차진혁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에건 폴은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연기? 김철수는 연기에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군.’
차진혁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 노리는 건 뭐냐?”
“그건 말할 수 없다. 계약이 얽혀 있어서.”
“말해.”
차진혁이 대검 라칸을 들어 에건 폴의 목에 대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해. 시스템 계약으로 얽혀 있어.”
“말하지 않으면 네가 아끼는 수하를 베겠다.”
에건 폴은 묘하게 이상하다는 것을 계속 느꼈다.
방송으로 보면 잘 모르겠지만, 직접 마주하니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수하를 베겠다고?”
“검은 팬티. 나는 그녀를 6번 용서했고, 7번 용서할 참이었다. 그러나 네 대답에 따라,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에건 폴은 드디어 이상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건 대사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머리를 짜내어 제 나름대로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진짜 노리는 게 뭔지 궁금해하는 게 아니야.’
그저 지금 이 타이밍에 어떤 연출을 해야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건 폴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김철수는 이미 알고 있는 거다. 험프리 밀런의 진짜 목적은 스칸노르비아에 있다는 것을.’
* * *
스칸노르비아의 위대한 전사들 중 한 명, ‘푸팡컬리’는 도끼를 손에 쥐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 칸의 결정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자였다.
어떻게 타 서버의 플레이어들에게, 그것도 전사가 아닌 자들에게 땅을 내어준단 말인가.
이건 전사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형제들이여, 무기를 손에 쥐어라.”
우오!
그를 따르는 전사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지구의 겁쟁이들에게 보여주어라, 진정한 전사가 무엇인지를!”
“우오!”
푸팡컬리는 100여 명에 달하는 전사들을 이끌고 중앙 평야로 향했다.
이전에는 중앙 숲이었던 곳.
그곳에는 최근 지구에서 넘어왔다는, 샌님 같은 놈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감히 우리의 터전을 탐한 지구의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
그런데 그때, 허공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었는데, 푸팡컬리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르만 노인?”
“멈추게.”
“관리자가 왜 개입하는 것이오?”
“그건 이 친구가 설명할 거야.”
전 중앙 숲 관리자, 현 중앙 평야 관리자인 바르만 옆으로 마법진이 하나 생성되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관리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지구 서버, 한국맵, 강남구 1번 관리자인 오무르라고 합니다만.”
“타 서버의 관리자가 여긴 뭣 하러 왔소?”
“스칸노르비아의 관리자들과 협의하여 일시적 비무장지대를 선포하려 합니다.”
“비무장지대?”
푸팡컬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전사들의 땅에 비무장지대가 웬 말이란 말인가.
“비무장지대가 뭐요?”
“쉽게 말해 평화지대. PVP는 물론이고 플레이어를 향한 그 어떤 적대행위도 금지됩니다.”
“내 살면서 비무장지대니 평화지대니 하는 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소! 비키시오. 나는 저 지구 놈들을 절단 내야겠으니.”
바르만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다.
지팡이로부터 녹색 실선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 실선으로부터 빛이 새어 나왔다.
[평화의 빛이 중앙 숲에 감돌기 시작합니다.]
[시스템 권한으로 ‘비무장지대’가 선포됩니다.]
그것은 트리니티 클럽의 VIP인 돈벼락(최갑수)이 스칸노르비아의 중앙 숲에 감사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MK재단의 플레이어 육성 정책이 잘 굴러가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지.”
최갑수는 뒷짐을 지고 지평선에 맞닿은 평야를 천천히 거닐었다.
가는 곳마다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곤 했는데, 상당히 신이 나 보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릴리아가 물었다.
“말로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시는데 왜 이렇게 기뻐 보이시는 거죠?”
“그걸 모르겠나?”
“공부하기 위해 여쭤보았습니다. 그래야 대표님을 좀 더 잘 보필할 수 있을 테니까요.”
“MK의 M이 미셸의 M 아닌가.”
“……아!”
그러니까 감사를 핑계로 미셸의 꼬투리를 잡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최갑수가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깨달음을 얻었나?”
“예. 알 것 같습니…… 당신은.”
릴리아가 최갑수 앞을 막아섰다.
최갑수가 허허- 웃으며 괜찮다는 듯 릴리아에게 손짓했고, 릴리아가 옆으로 비켜섰다.
“릴리아. 아는 사람인가?”
“예. 저자의 이름은…….”
“제가 직접 소개 올리겠습니다, 어르신.”
릴리아의 말을 끊은 험프리 밀런이 허리를 숙였다.
“제 이름은 험프리 밀런. 이번 연희 함락전과 중앙 평야 대학살을 기획한 사람입니다.”
“오호, 그렇구만. 연희 함락전은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 시나리오일 테고. 중앙 평야 대학살은 무엇인고?”
“불만이 가득한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을 동원하여 중앙 평야를 침범한 지구 플레이어들을 도륙하려는 계획입니다.”
최갑수는 턱을 매만졌다.
“MK재단 소속 플레이어들을 말인가? MK재단의 사외이사인 내 앞에서 할 소린가?”
“김철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험프리 밀런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김철수는 여러모로 지금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서울은 상당한 혼란에 휩싸여 있을 것이고, 김철수는 많은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흐음.”
험프리 밀런도, 최갑수도 아직 김철수의 방송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MK재단 소속 플레이어들이 학살당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철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겠지요.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즐거운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큰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그건 그럴 것 같군. 근데 말이야, 자네.”
“예?”
“이것 좀 보겠나?”
최갑수는 품 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험프리 밀런이 찾아와서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 유혹할 겁니다. 근데 거기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자는 간절하지 않은 자거든요.]
험프리 밀런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보가 샜나?’
스칸노르비아 쪽에서 샜나?
아니면 지구 쪽에서?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있을 무렵,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감님. 저 왔습니다.”
“어? 예고했던 시간보다 너무 빠른데?”
차진혁은 순간 ‘생각보다 애들이 너무 약하던데요. 화포 한 방에 절반이 날아가더라고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러면 위기감이 너무 적게 느껴지겠지?’
VIP시청자인 최갑수에게 자극도 덜 할 거고.
“반전이 있어야 재밌잖아요.”
“그건 그렇지.”
차진혁의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든 최갑수가 후후- 웃었다.
그리고 차진혁이 말했다.
“험프리 밀런. 저자가 왜 간절하지 않은지 증명해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