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1화
왕유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중계자, '킹갓제네럴유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추수꾼 없이 수확 가능한가요? 얼른 추수꾼 섭외해 볼까용?"]
메시지를 접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이 맛에 방송하지.'
왕유미가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살면서 왕유미처럼 유능한 지원자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내가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조차 나와는 다른 시선에서 알아내고 해석해서 알려주는 사람이다.
이 메시지는 '지금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고 있어요!'라는 뜻이다.
'다들 예상을 못하고 있어!'
콘텐츠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스트리머로서 엄청난 희열이었다.
"추수꾼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몹시 성장했기 때문이죠."
나는 곧바로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며 시청자들에게 효과를 공유했다.
──────────
[룰 브레이커 (성장) (귀속)]
법칙을 파괴하는 무구.
──────────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룰 브레이커를 사용해서 법칙을 부순다고 해더라도, 추수꾼이 아닌 제가 추수를 하려 하더라도 저 과실들을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순순히 추수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치밀하고 완벽한 연출을 위해 또 다른 자료화면을 준비했다.
──────────
[올 클리어(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희망없이 무너진 곳에서 하얀 꽃을 피웠다.
이제는 꿈을 꿀 수 있으리.
업적 효과 : '서울시 제4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는 모든 아이템들의 굴복.
──────────
"저는 서울시 제4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물론 제4 시나리오는 끝났다.
타 서버의 침략자 대신 개미여왕이 나타났었으니까.
"예전의 올 클리어에서 실망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의 업적 효과는 오로지 '서울시 제4 시나리오'와 관련된 아이템들에 관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당시 범용성이 떨어진다고 실망했었다.
"업적효과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제가 약했던 거죠."
이 효과를 제대로 살릴 수 없었던 과거의 내가 나레기였을 뿐이다.
나는 마지막 자료화면을 띄웠다.
"대망의 대업적 '홀로 걷는 자'입니다!"
상세내용은 과감하게 뺐고 업적효과만 공유했다.
──────────
2. 시나리오 최초 진행 시, 획득한 업적효과 강화.
──────────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은 제가 최초로 진행했던 시나리오입니다."
'올 클리어'를 했다는 얘기는 '첫 판정'은 기본적으로 받아냈다는 의미다.
"이 대업적 효과를 적용해 보겠습니다."
나는 이 과정을 샅샅이 공개했다.
허공에 두 개의 업적 효과란을 띄워놓은 채, 실시간으로 어떻게 되는지 공유했다.
왼쪽 편이 올 클리어란이고 오른쪽 편이 대업적 란이었다.
[대업적(홀로 걷는 자) 업적 효과를 올 클리어(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업적 효과에 적용합니다.]
대업적 란에서 황금빛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반투명화되어 저절로 왼쪽을 향해 움직였다.
이내 올 클리어 란에 겹쳐지는가 싶더니 반짝이는 황금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합성작업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올 클리어(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업적 효과가 강화되었습니다.]
──────────
[올 클리어(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업적 효과 : '서울맵'과 관련이 있는 모든 아이템들의 굴복.
──────────
"룰 브레이커와 올 클리어 효과, 그리고 대업적 효과만 있으면 추수꾼 없이도 추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운이 좋았네요."
* * *
서울 연희동 근처의 한 커피숍.
김잘알TV를 통해 김철수의 방송을 보고 있던 키하엘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이, 이, 미, 미친놈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그는 황급히 입을 틀어 막았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서 다시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김철수가 미친놈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나사가 풀려 있을 줄은 몰랐다.
김철수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에 그는 암담함을 느끼고 말았다.
'내가 분명 저 커다란 걸 없애야 한다고 가르쳐줬잖아!'
김철수는 자신이 가르쳐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커다란 과실 대신, 그 주변의 다른 과실들을 수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놈은…… 다 망해버려도 상관없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김철수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저 그냥 엘튜브 각만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모든 것이 망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회사와 세르찬에게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 * *
키하엘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세르찬이 단순한 근육 멍청 열정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르찬은 사회성도 대단히 뛰어난 녀석이지.'
괜히 훗날 강남구 관리자가 되었다가 임원으로 승진하는 거 아니다.
내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아마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하게 될 거다.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는 그렇게 못한다.
눈치도 빨라야 하고 줄도 잘 타야 한다.
다시 말해서 똑똑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르찬이 멍청이도 아니고 여자친구 잃은 키하엘 앞에서 차라리 잘됐다는 소리를 해댄다고?'
그건 내가 아는 세르찬이 아니다.
세르찬이 열정에 미쳐있는 GM은 맞지만, 사회성이 말살된 녀석은 아니니까.
진심이야 어찌됐든 형식적으로라도 위로라도 건넸어야 했다.
적어도 신나 하면서 일에 빠져 죽어보자! 외칠 놈은 절대로 아니었다.
'키하엘을 움직여서 내게 거짓 정보를 흘리려고 한 거야.'
왜?
답은 키하엘이 말해줬다.
나는 모든 GM의 경계대상이라고.
나를 제거하면 큰 포상을 받게 될 것이니, 세르찬이 머리를 굴려 키하엘을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억울해 마라 키하엘. 이건 너무 당연한 결과야.'
세르찬은 늘 치열하게 살아간다.
키하엘은 적당한 워라밸을 꿈꾸면서 살아간다.
세르찬이 키하엘보다 유능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명확한 사실이었다.
'뭐, 물론 내가 틀린 걸 수도 있지만.'
세상에 100프로는 없다.
어쩌면 키하엘이 정확한 정보를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너무 오래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틀리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인드로 진행해야 뭐라도 진척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방송을 이어갔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이제 나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내 개인의 강함과 성장에만 집중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콘텐츠로서 활용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수호수의 성장을 도운 콘텐츠는 거의 없었겠지?'
이제는 체질 자체가 스트리머에 어울리는 체질로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텐션이 높아졌다.
"저 커다란 과실은 뭔가 좋아 보이니까 안 따겠습니다."
그 외에 작은 과실들을 하나하나 따냈다.
과실을 손에 쥐고 꼭지 부근을 단도로 떼어내니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파스슷-!
수호수로부터 분리된 '덜 익은 황금 수호수의 과실'은 사라져 버렸다.
"보니까 이 과실들은 씨없는 과실인 거 같습니다. 딱히 번식 능력은 없고요, 그냥 수호수의 성장을 방해하는 거 같네요. 다 떼어버리죠."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지를 오가며 수십 개의 과실을 따내자 수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 이제야 살 거 같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이제 남은 것은 가장 커다란 과실 하나.
나는 턱을 매만지며 그 과실을 쳐다보았다.
"으음. 이건 떼야 할까 말아야 할까요? 음. 이건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다. 왜냐구요?"
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질문을 던졌어?
나 지금, 소통에 성공해 버리고 만 것인가?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나는 또 훌륭히 성장한 것 같다.
* * *
황금 수호수는 쑥쑥- 자라났다.
시간이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약간 이상했다.
"타이머가 엄청나게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실들을 제거하자 수호수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배율 촬영을 적용한 것 처…… 응?
아, 잠깐만.
이 생각을 못했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타이머의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우욱, 어지러워."
"그 정도 어지러움은 이겨내야 어른이 돼."
-"토, 토할 거 같아요."
"걱정 마. 나무는 토 안 해."
-"그, 그런가."
수호수는 내 논리정연한 말에 꽤 쉽게 납득하고서는 다른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 몸이 박살 날 거 같아!"
"응, 성장통."
성장통 없이 어떻게 성장한단 말인가.
수호수가 으아아악! 비명을 질러대고는 있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 나 죽어!!!"
-"응, 안 죽어."
몸통이 반쪽으로 쪼개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줄기가 시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엄살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사람으로 치자면 뼈 몇 개가 분질러지는 정도밖에 안 될 거 같은데.
'잘 크고 있네.'
파종꾼이라서 그런가, 수호수가 잘 자라나자 흐뭇해졌다.
타이머의 시간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이제 겨우 1시간 남았다.
표기상으로는 1시간이지만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를 보니 아마 10분 안쪽이면 성장이 끝날 거 같다.
-"우아아악! 나 몸이 터질 거 같아!"
"튼튼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호수의 몸통은 굵어지고 있었고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몸통이 어찌나 굵어졌는지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워버렸다.
"제가 저 특별한 과실 하나를 남겨놓았던 것은 아마도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저 '특별한 과실'은 수호수의 생명력을 적절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만약 저 과실이 없었더라면, 수호수의 말대로 몸통이 박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게 수호수 성장의 안전장치가 되는 거였네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호수를 키울 때는 이런 식으로 키우면 됩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런 공략 없었지?'
애초에 황금 수호수에 관하여 알려진 사실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내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스트리머로서 이보다 더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이내 황금빛 상서로운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황금 수호수'가 '황금 수호수'로 성장하였습니다.]
['황금 수호수'의 권역이 확장됩니다.]
순간, 황금 수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눈부신 황금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잠깐 동안 일대의 통신과 전기가 모조리 끊어졌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어라?"
나는 꽤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