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3화
무아의 영역에 들어서서 명상하는 가운데.
차진혁은 그의 의식 세계 속에서 밝은 빛을 보았다.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잠재스킬, '치화술(治火術)'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차진혁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혼에 각인된, 검술가로서의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 한 번도 지녀본 적 없었던 치화술이 체내에 잠재되어 있었다니.
그러나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여서 이상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한편, 김철수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최갑수가 턱을 매만졌다.
"지금 이성을 잃은 것 같은데, 방송은 안 끊어졌군. 이게 되는 거였나?"
"그러게요. 이게 되네요? 그만큼 방송에 대한 집념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겠죠."
"김철수의 신체에 정말 수많은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모양이야. 치화술이라니. 저건 화염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이나 가질 수 있는 능력 아닌가?"
"글쎄요. 저는 다르게 봐요."
돈쭐(미셸장)은 돈벼락(최갑수)에 비해 비교적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화술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거든요. 모든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사람의 한계를 너무 낮게 보지 말아요. 사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 그 자체니까.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내재 된 재능을 끌어내지 못할 뿐이죠."
미셸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저는 김철수가 가진 수많은 재능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은 바로 생존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생존역량?"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내서 각성하는 능력이요. 그 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느 정도냐면……."
미셸장은 아까의 상황을 언급했다.
"제가 아는 김철수라면 이걸 먹기 전에 최소한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해 봤을 거예요. 하지만 사용하지 않았죠. 정확히는 사용하지 못했어요. 왜? 그만큼 너무 급박했으니까. 불사조의 심장에서 뿜어지는 화력이 너무 강했으니까."
"하긴. 그건 그렇군."
"그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생존역량이 빛을 발한 거예요. 극대화된 감각이 결국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를 개화시킨 거죠."
"그래서 치화술까지 각성시킬 수 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미셸장은 약간 신이 난 상태로 말을 이었다.
"마치, 수많은 죽음의 위협을 극복해 온 것만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단련된 생존역량이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는 거죠. 재능에 경험이 더해진 느낌이랄까요? 반박 시 영감님 말이 맞아요."
미셸장은 차진혁의 회귀를 알지 못했으나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었다.
회귀 전, 차진혁은 무수히 많은 죽음의 위협을 극복해 왔다.
차진혁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토록 위험한 플레이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존역량 때문이기도 했다.
차진혁처럼 행동하면 보통은 검왕이 되기 전에 죽는다.
최갑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그렇게 안 보네."
"그럼요?"
"나는 김철수가 자기 능력을 굉장히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 올라운더 같은 거 말이지."
미셸장이 릴리아 쪽을 힐끗 쳐다봤다.
"릴리아는 걱정 말어. 몽마의 비밀서약을 맺었으니 나를 통해 알고 들은 모든 것을 외부로 발설할 수 없네."
"네, 그래요. 근데 올라운더라니요? 그건 이미 숨기고 있잖아요."
"그것조차도 뭔가를 더 숨긴 거라면? 올라운더보다 더 뛰어난 특성을 가진 거라면? 그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않겠어?"
물론 더 숨긴 건 없었으나 최갑수는 상당히 진지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가능해요? 아니, 그런 게 있기는 해요?"
"이론상으로는 존재하지. 아니, 이론이 아니라 전설이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전설이 있다고요? 전 못 들어 봤는데?"
"뭐, 자네처럼 어린애들은 모를 거야. 일단은 한 번 지켜보자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최갑수의 말과 미셸장의 말은 모두 맞았다.
차진혁이 치화술을 획득한 건 올라운더 특성 덕분이기도 했고, 생존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차진혁이 치화술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스킬, 치화술을 사용합니다.]
스킬의 도움을 받아 차진혁도 조금씩 정신을 되찾기 시작했다.
'조금씩…… 적응이 된다!'
결국 차진혁은 몸 안에서부터 피어오르던 불꽃을 다스리는 데 성공했다.
불사조의 심장을 성공적으로 섭취했다.
불로 이루어진 피가 온몸에 흐르는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으나 그것이 괴롭지는 않았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어.'
차진혁은 얼른 방송부터 확인했다.
'안 끊어졌다!'
이건 정말 행운이었다.
의식을 잃었는데 방송이 안 끊어지다니.
위기를 극복해 내고야 말았다는 성취감이 무럭무럭 차올랐다.
[불사조급 이하, 불에 대한 완전면역을 획득하였습니다.]
[사왕(蛇王)급 이하, 독에 대한 완전면역을 획득하였습니다.]
의식을 완전히 되찾은 차진혁이 눈을 떴다.
'근데…….'
방송이 안 끊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도 되나?
자기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진 차진혁은 자신에게 약간 실망했다.
'겨우 이런 걸로 기뻐하면 안 되지. 방송이 안 끊어지게 하는 건 그냥 기본이잖아. 겨우 기본을 해놓고선 좋아했다고? 차진혁, 진짜 갈 길이 멀구나.'
이현성을 그토록 질타해놓고서는 스스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빠르게 자기반성을 마친 그는 조금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평가했다.
'오디오를 못 채웠어. 연출도 제대로 못 했고. 그저 불사조의 심장을 먹어치우는 데에만 급급했다.'
차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열심히 반성하고, 더 열심히 하자.'
* * *
차진혁이 불사조의 간을 먼저 먹은 순간.
몽마 릴리아는 저도 모르게 '안 돼!' 하고 소리칠 뻔했다.
'아니야. 당신, 그거 아니라고!'
릴리아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눈썰미 좋은 최갑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릴리아. 자네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철수를 유혹하라고 고용해놨더니, 김철수한테 유혹이라도 당한 모양이군."
"……."
최갑수는 껄껄대며 웃었다.
"청춘이야, 청춘."
"……부끄럽습니다."
"뭐가?"
"결국 유혹에 실패했으니까요."
진심을 다해 유혹하려 해보았으나 실패했다.
차진혁에게는 몽마로서의 그 어떤 스킬이나 능력도 통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법뿐이었다.
최갑수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어쩌다가 김철수를 그리 좋아하게 됐나?"
"그것은……."
릴리아는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한국 서버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를 이렇게 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뭐 그런 것인가?"
"……그것도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돌이켜보면 자신이 언제부터, 왜, 김철수에게 이렇게 진심이 되었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미셸장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영감님, 진짜 몰라서 물어요?"
"자네는 알아?"
"당연히 알죠. 나도 알고, 몽마 씨도 알고."
최갑수와 릴리아의 시선이 미셸장에게 향했다.
미셸장은 왜 이 당연한 걸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잘생겼잖아."
"……."
최갑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고,
"……."
릴리아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왠지 기분이 조금 나빠진 최갑수가 재차 물었다.
"고작 그게 이유라고?"
"저렇게 생겼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요? 몽마 씨, 안 그래?"
릴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차진혁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 릴리아는 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진리였다.
미셸장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200년만 젊었어도 어떻게든 꼬셨을 텐데. 몽마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
"그냥 떠오르는 말 솔직하게 해봐."
"얼굴이 개연성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최갑수는 조금 더 불쾌해졌다.
"제일 짜증 나는 게 뭔지 아나?"
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는 미셸장이나 릴리아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묘하게 납득이 되는 것이 제일 불쾌하네!"
오늘은 후원을 멈추기로 했다.
* * *
신세계에 진입하여,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진행을 하였고 결국 존프릭까지 사살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커다란 업적을 획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근데…….'
차진혁은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쳤다.
'어떡하면 좋지?'
최강벽의 등에 업혀 있던 정령왕의 딸은 어느새 정신을 차린 상태.
아마도 정령력을 대부분 잃어버린 상태인지, 겉모습은 사람과 매우 흡사했다.
이따금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과 똑같았다.
'사람으로 치면…… 한 다섯 살쯤 되나?'
사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저렇게 작은 애가 세 살인지, 다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
아무튼 차진혁의 눈으로 본 정령왕의 딸은 거의 아가 수준이었다.
"저……."
[LV80(-69)/엘리네스/-/-]
이름은 엘리네스.
본래 레벨 80이었으나 정령력을 모두 소모해 버린 바람에 현재 레벨은 11 수준이었다.
"인터뷰 좀……."
엘리네스는 기겁하며 뒤로 도망쳤다.
[……#살려줘 #아빠_언제와 #엘리네스 여기있어 #구해줘요 제발]
"그러니까 해치려는 게 아니고……."
"꺄아아악!"
엘리네스는 더더욱 멀리 도망쳤다.
엘리네스의 등이 벽에 닿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라도 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쪼그려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엘리눈 잘모탄 게 한 개도 엄는데!"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못댄 사람들! 아빠가 다 혼내주꺼야."
차진혁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서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존프릭의 배 속에서 험한 꼴을 당했으니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차라리 마물과 싸우라면 싸웠지.
이건 너무 어려운 난제였다.
"게다가 지금 정령문에서 느껴지는 화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거든요?"
정령문이 열렸다.
존프릭이 배 속에 가둬두었던 정령력이 통로를 뚫어내면서 정령계와 이곳을 이었다.
"이러다 불의 정령왕이 나타나면 큰일이겠는데요."
불의 정령왕 알키나스.
미래를 기준으로 해도, 그 누구도 알키나스와 전면에서 싸우지 못했다.
'혹시 상황을 오해한 알키나스가 숨 한 번만 잘못 쉬어도 전멸인데.'
그쯤 되면 이곳에 걸려 있는 부활설정조차 의미 없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던전, 신세계에 설정되어 있는 부활은 말하자면 '신세계급' 죽음을 되살리는 설정이다.
'정령왕이 내리는 죽음'은 '신세계급 부활'의 설정값을 아득히 초월한 죽음이었다.
정령왕에 의해 사망하면, 다시 살아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을 잃은 정령왕은 끔찍하지.'
그건 재앙이었다.
강한 자와 싸우는 것이 취미였던 차진혁조차도 아직은 엄두조차 나지 않는 상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 안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불사조급 불에 대한 면역이 있다고는 해도 알키나스의 공격은 못 막아.'
불사조의 불은 최상위급에 해당하는 불이었으나, 정령왕의 불보다는 한 단계 아랫급으로 평가되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제 정령왕의 불 외에는 그 어떤 불도 차진혁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놀라운 성장이기는 했으나 문제는 앞으로 뛰쳐나올 정령왕이 반쯤 이성을 잃은 정령왕이라는 것.
그리고 저만치 벽에 붙어서 초라한 모양새로, 누가 봐도 험한 꼴을 당해 울고 있는 여자애가 정령왕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방법을 모르겠네.'
쫄깃한 긴장의 순간, 그토록 빛을 발하던 '생존역량'도 이번만큼은 반짝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그에게 너무 어려웠다.
이내 부활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이곳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엘리네스는 더욱 공포에 떨었다.
"저디가! 저디가라고! 이 나뿐 놈드라!"
도저히 접근 자체가 안 되는 상태였다.
차진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럴 때 왕유미가 큰 도움이 되곤 했었는데.'
어떻게 해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 결국 답을 찾아내 준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바로 왕유미였다.
왕유미의 조언들은 보통 차진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희한하게도 늘 옳았다.
'왕유미의 도움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그때, 중계자의 비밀 메시지가 도착했다.
[중계자, '킹갓제네럴유미'로부터 비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얼굴 까세요. 그럼 모든 게 해결돼요. 봉킹 쪽은 제가 잘 컨트롤할게요. 방송에는 노출 안 되게 할 테니까, 엘리네스한테만 얼굴 보여줘요."]
이번에도 영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