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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82화 (8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82화

나는 나도 모르게 저 검에 시선을 빼앗겼다.

'영롱하다."

츄릅.

어, 방금 침 흘린 거 같은데.

1인칭 시점이라 다행이다.

3인칭이었으면 추한 모습을 보일 뻔했다.

'검은 저래야지.'

얼른 라칸이 들고 있는 검을 빼앗아서 내 걸로 하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충동이 들끓어 올랐다.

차진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빠. 쟤 가까이 오는데?"

"오라고 해."

다가오는 모습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 위압감과 '안전지대 설정'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놈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대검을 휘둘렀다.

쾅!

안전지대를 구성하는 결계와 놈의 대검이 부딪쳤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고, 다른 애들 또한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쟤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공포영화만 봐도 꺅꺅대는 게 사람 아닌가.

내가 봐도 위협적인 거대 마물이 우리 앞에서 저런 대검을 휘둘러대고 있으면 긴장할 수도 있지.

후웅!

거대한 대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콰과광!

폭발음이 일고, 대검과 안전지대 결계와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그래도 안전지대는 멀쩡했다.

안전지대가 깨지려면 최소 레벨 150 이상 던전에는 들어가야 한다.

그마저도 흔하지는 않으므로, 여기는 안전하다.

"목재현. 어때? 공격 좀 받아낼 수 있겠어?"

"정면으로는 못 받을 거 같아요. 흘려서 받으면 두 번 정도까지는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나는 목재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긴장하고 겁을 먹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거기서 끝났다면 실망했을 거다.

왜 여기 이렇게 대놓고 안전지대가 있겠어?

놈의 공격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해 보라는 시스템의 의도 아니겠는가.

"놈의 공격 패턴을 조금 더 읽어보고, 그 다음에 네 위치 지정해 줄게."

"알았어요."

목재현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놈이 대검을 휘둘러대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또다, 또.'

요즘 삶에 활력소가 너무 많은 거 같다.

행복한 주말도 주말이고, 스트리밍도 재미있다.

군주 역할도 무지하게 즐겁다.

군주로서의 플레이는 직접 플레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쾌감을 준다.

"저렇게 거대한 검을 저토록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마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혹시 서둥이들, 알겠어?"

처음에는 겁먹었던 서둥이들도 이제는 꽤 가까이 다가가 라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내 서지아가 말했다.

"마검사."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방송을 이어갔다.

"아마도 중력계열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마법을 검에만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필드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는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세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패스파인더라면 방금 제가 말한 걸 확인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어때, 한세린?"

"……알 수 있을 것 같아."

군주의 역할은 팀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는 것.

그걸 성공시켰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어떻게?"

"중간중간, 작은 구멍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잖아. 저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지형임과 동시에 라칸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줘. 중력마법의 구심점은 라칸. 라칸으로부터 가까운 곳의 구멍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의 높이. 그리고 먼 곳의 구멍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한세린이 정답을 도출해 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청자들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놈을 중심으로 하여 중력장이 펼쳐진 모양입니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힘이 약화되고요."

이번에는 김정현 쪽을 바라보았다.

"김정현. 놈은 중력을 다뤄. 아마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 속도가 굉장히 느려질 거야. 목재현이 막아줄 수 있는 건 끽해야 두 번이 한계고. 우린 어떻게 저놈을 잡을 수 있지?"

"부딪쳐봐야…… 알겠…… 지만."

김정현의 눈에 호승심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결국…… 두 가지…… 중 하나…… 입니다."

서지수는 김정현의 말이 답답한 듯 중간에 끼어들었다.

"더더더 빠른 속도로 찌르거나, 느리더라도 강력한 한 방을 먹이거나! 어휴, 진짜 말 좀 빨리 할 수 없어?"

저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근데 저놈의 무장상태를 보아 하니까 더 빠른 속도로 가볍게 찌르는 건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보호막도 엄청 단단해 보이고. 나랑 지아 언니가 같이 시선 끌고, 정현 오빠가 강한 공격 먹이는 게 나을 거 같아. 유인하고 밀어내서 용암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한 방법일 거 같고."

모두 맞는 말이었다.

서둥이들의 공격은 찌르거나 베는 공격, 김정현의 공격은 큰 충격을 주는 공격이다.

저런 타입의 마물에게는 김정현의 공격이 더 효과적이다.

"그럼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 * *

목재현이 일부러 크게 외쳤다.

"수목산성!"

팀원들에게 자신의 스킬 타이밍을 정확히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와 동시에 서지아와 서지수가 양갈래로 거리를 벌리며 뛰쳐나갔다.

후웅-!

대검이 날아들었다.

"큭!"

단 한 번의 일반 공격에 수목산성이 박살 났다.

수목산성을 반 토막 낸 대검이 목재현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목재현이 몸을 옆으로 굴리며 겨우 피해냈다.

그사이, 서지아와 서지수가 접근했다.

'느려졌어.'

'동작이 느려졌어!'

만약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뛰어들었다면 크게 당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차진혁과의 대화를 통해 이미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당황하지 않고서 공격을 전개했다.

차진혁이 레이저 포인트로 한 곳을 짚었다.

"김정현. 너는 여기 포인트."

탱커와 보조 딜러들이 시선을 끌고 있을 무렵, 김정현이 대검 라칸의 뒤를 점했다.

"중력장 안이야. 어차피 빨리 못 움직여. 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천천히 다가가.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은 동료들을 믿어야 할 때였다.

김정현은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하는 타입은 아니다.

만약 어그로가 김정현에게 튄다면, 김정현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임 당할 수도 있었다.

'믿는다.'

김정현은 혼자서 플레이할 때보다, 차진혁과 함께 플레이할 때 자신의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래서 차진혁의 명령을 믿었다.

라칸의 등이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 노릴 곳은 오금.'

덩치가 너무 커서 처음부터 급소를 공략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김정현은 차진혁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천천히 다가갔다.

[스킬, '파쇄하는 주먹'을 사용합니다.]

무릎의 옆면.

옆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쿵!

공격 자체는 정확히 먹혀 들어갔으나, 순간 어그로가 김정현에게 튀었다.

차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레이저 포인트를 따라 몸을 내던졌다.

순간, 구덩이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라 김정현의 몸을 집어삼켰다.

화악!

김정현의 몸이 불길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후웅!

김정현의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불기둥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라칸이 주먹이 그의 뒤통수에 닿을 뻔했다.

'위험했다.'

불기둥이 가려주지 않았다면 저 주먹에 두개골이 박살 났을 것이었다.

온몸에 큰 화상을 입었으나 저 주먹에 얻어맞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라칸은 화가 난 듯 포효를 내질렀다.

"그오오오오오!"

그사이 차진솔이 목재현과 김정현에게 필사적으로 힐을 넣었다.

자신의 피를 매개체로 하는 혈사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어지러워.'

그렇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대검 라칸은 여지껏 상대해 본 그 어떤 마물들보다 강력했다.

'여기서 힐러가 쓰러지면 모두 몰살이야.'

그때, 차진혁이 말했다.

"흡혈은 뒀다 뭐하냐?"

"……응?"

"수혈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 아직도 몰라?"

"아, 알기는 알지."

혈사제는 흡혈과 함께 할 때에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직업이다.

"하, 하지만……."

"뭐하냐 빨리 흡혈 안 하고."

"오빠를 흡혈하라고?"

"나 말고 누가 있어?"

결국 차진솔은 차진혁의 팔뚝의 옷을 걷어 올렸다.

"뭐하냐?"

"응? 흡혈 하려고 하잖아."

"목덜미 무는 게 제일 효과 좋은 거 몰라?"

"……."

차진솔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의 목덜미를 깨물어서 피를 빤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흡혈을 당한 상대는 상당량의 피를 잃는다.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을뿐더러, 운이 나쁜 경우에는 정신적인 타격도 입는다.

"빨리 좀 해. 애들 힘들어 하는 거 안 보여?"

차진솔은 순간 차진혁의 눈을 보았다.

큰 실망이 담긴 눈동자였다.

차진솔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알았어."

차진혁이 슬쩍 무릎을 굽혀 흡혈하기 좋도록 자세를 낮춰주었다.

차진솔의 송곳니가 뾰족해졌다.

[스킬, '흡혈'을 사용합니다.]

콰득!

[피시전자에게 상당량의 출혈과 고통이 전달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분명 그렇게 알려줬지만 차진혁에게서 고통의 낌새를 느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담담하고 편안하게 방송을 이어갔다.

"저번에 확인했듯, 제 피와 얘 직업은 상당히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제 피를 빨아들인 혈사제가 어떤 위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꿀꺽, 꿀꺽.

차진혁의 피를 마시고 있는 차진솔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생각했다.

'맛있어…….'

혈사제는 흡혈한 피의 등급이 혈사제의 능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직접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빨아들이는 차진혁의 피는, 차진솔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이건…….'

황홀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감각이 그녀의 척추를 타고 전신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몸속으로 밀고 들어와 온몸을 헤집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목재현이 결국 한 번의 공격을 허용했다.

"크아아악!"

대검은 가까스로 피해냈으나 왼 주먹에 당했다.

목재현의 오른 팔 전체가 압축기에 눌린 것처럼 찌그러졌다.

더 이상 사람의 팔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상태.

황홀경에 빠져 있던 차진솔은 거기서 흡혈을 멈추고 크게 외쳤다.

"회복!"

그와 동시에 기적이 벌어졌다.

단 한 번의 '회복'으로 인하여 박살 나버린 목재현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원상복구 되었다.

차진혁이 담담하게 방송을 이었다.

"엄청난 회복력인데요. 혈사제의 힐을 중첩해서 받다 보니, 목재현의 몸이 혈사제의 회복이 잘 받도록 진화한 것만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차진솔은 알고 있었다.

'아냐. 그게 아냐. 이건 오빠 피 때문이야!'

차진솔에게 있어 차진혁의 피는 보물 그 자체였다.

혈사제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영약.

솔직히 회복을 구사한 차진솔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차진솔은 이후 몇 차례나 차진혁의 피를 빨아들여 힐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잘 싸우고는 있지만 레벨 차이가 너무 극심한 걸까요? 사냥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둥이들, 아껴왔던 거 써보자."

나름대로의 필살기.

서지아와 서지수는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스킬, '그림자 이동'을 사용합니다.]

[스킬, '그림자 이동'을 사용합니다.]

그림자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기술.

이후, 둘이 협력하여 구사하는 협력 스킬인 '그림자 합격(合擊)'을 사용했다.

라칸의 그림자에서 튀어오른 서지아와 서지수는 차진혁이 지정해 준 포인트인 양쪽 햄스트링을 공격했다.

"그오오오오!"

꽤 데미지가 있었는지 라칸이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목재현이 수목산성을 펼쳐 라칸의 검을 막아내 주었다.

"서지수의 손목이 잘린 정도로 마무리되었네요."

서지아가, 서지수의 잘린 오른손을 들고서 안전지대로 복귀했다.

차진솔에게 회복을 받아 깔끔하게 회복했다.

이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김정현과 목재현도 안전지대로 복귀했다.

차진혁이 말했다.

"다들 실력이 일취월장하기는 했습니다만 아직은 어림없군요.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2트.

3트.

4트.

5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진혁의 팀원은 대검 라칸을 상대하는 법을 익혀갔다.

6트.

6트 때에, 차진혁은 방송을 끄고서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보다 나은 공략을 찾기 위해서야. 다른 의도는 없어."

누가 봐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팀원들은 달리 반대하지 않았다.

비록 랭킹은 3위까지 떨어졌으나, 6트까지 함께한 한세린은 기겁했다.

'저, 저, 미, 미친놈이!'

차진혁은 직접 플레이어로서 뛰면서 대검 라칸의 왼 주먹을 받아냈다.

탱커의 팔을 한 번에 아작냈던 그 주먹을 말이다.

'응?'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뭐야? 어떻게 멀쩡해?'

차진혁이 평화롭게 말을 이었다.

지금은 방송 중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방송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게임에 미친 사람이 현실과 게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한 번으로는 감이 안 옵니다."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한 번 더 받아보겠습니다. 주먹 대 주먹으로 부딪쳐봐야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한세린은 볼 수 있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고 있는 모습을.

저건 분명 광기에 젖은 모습이었다.

라칸이 거대한 주먹을 뻗었다.

차진혁이 그 주먹을 향해, 라칸에 비해 너무 작은 주먹을 함께 뻗었다.

쾅!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쳤다.

순간적으로, 라칸의 중력마법이 해제되며 모든 구덩이에서 불길이 높이 치솟았다.

여지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높이의 불기둥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이내 불기둥이 잦아들었다.

한세린이 눈을 비비며 앞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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