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80화
"젠장."
키하엘은 결국 끝까지 무시하지는 못했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씨X!"
왜 하필이면 오늘이란 말인가.
세르찬의 연락이 아니라 시스템 직통 메시지였다.
'왜 시스템 알림으로 안 보내고!'
키하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록이 남으면 안 돼서?'
시스템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
그런데 기록이 남으면 안 되므로 개인 연락처를 통해서만 연락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시스템 가디언을 투입하시겠습니까? Y/N]
'아직 무슨 사건인지 잘 몰라.'
근데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다.
잘은 몰라도 시스템은 이 '시스템 가디언'을 투입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최소한의 확인을 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 사무실에 복귀했다.
열정맨 세르찬은 무언가 다른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서 키하엘의 복귀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실로 무서운 집중력이었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가디언을 투입합니다.]
키하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스템 가디언이 투입되었다.
모니터를 살펴본 키하엘은 대략적인 상황을 깨달았다.
'서울시 제4 시나리오!'
오픈베타 서버에서 시스템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시나리오다.
관리자의 개입이 한정적이며, 시스템 자체적으로 생성되고 굴러가는 시스템 시나리오.
그렇다 보니 수많은 락이 걸려 있어서 던전 안의 상황을 완전히 읽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지구 출신의 플레이어가 여기에 들어갔다…… 정도인가.'
키하엘은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는 타 서버 플레이어를 위한 시나리오인데.'
이 시나리오는 타 서버의 플레이어.
지구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에게 주어지는 시나리오였다.
침략자에게 강대한 힘을 주어서 지구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한데 뭉치게 한다.
지구 서버 입장에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제4 시나리오'의 역할이었다.
'근데 클리어에 근접했거나 이미 클리어를 해버린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시스템은 시스템 안정화 차원에서 지구 플레이어를 삭제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스트리머만 아니면 되겠네.'
혹은 스트리머여도 상관없다.
지금 생방송 중만 아니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증거 안 남기고 죽여 버리면 되니까.
그런데 한 줄기 불안감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엘튜브를 통해 SSF 영상을 검색했다.
[검색어: 김ㅊ]
이미 추천 영상에 떠 있었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구의 스트리머.
김철수가 방송 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제목은 무척 간결했다.
[서울시 제4 시나리오, 플레이 중]
'미친!'
실시간 중계 중이었다.
화면 속 김철수가 차분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정체 모를 신기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플레이어도 아닌 거 같고 NPC도 아닌 것 같은데, 정체를 모르겠네요. 인터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키하엘의 마음이 급해졌다.
'막아야 한다.'
시스템은 인위적인 개입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도 시스템 메시지 대신 핸드폰을 통한 연락만 해왔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시스템 가디언에게 공격이라도 당했다가는…….'
인위적인 개입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의 유저들에게 큰 질타를 받게 될 거다.
여론이 무척 나빠질 거고, 그러면 키하엘 자신에게 수많은 업무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황급히 관리자 권한을 사용하여 워프했다.
* * *
밀실의 그림자.
사슬 달린 낫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타입이며 굳이 따지자면 암살가 계열이다.
'중계결계.'
내 뒤쪽을 점하고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쇠사슬 끝에는 날카로운 낫이 달려 있었다.
'큭.'
단 한 번의 격돌로 알 수 있었다.
'존나 세네.'
중계결계를 한 곳에 집중해서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중계결계가 무력하게 깨져 버렸다.
낫이 내 등에 박혔다.
"진짜 아프네요. 공격력이 살벌합니다."
내 오른쪽 위.
또 다른 사슬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나는 단도를 던져서 사슬의 궤적을 살짝 비튼 뒤 몸을 던졌다.
낫이 땅에 박혔다.
쾅!
무슨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나냐.
맞았으면 즉사했겠네.
"엄청난 공격이네요. 아무래도 오늘 방송이 마지막이 되겠는데요."
물론 마지막이 아니라는 걸 안다.
몇 초만 더 버티면 된다.
나는 시스템 가디언이 언제, 왜 모습을 드러내는지 알고 있다.
무언가 시스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최후에 투입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다행인 건 내가 스트리머라는 거지.'
지금 나는 실시간으로 증거를 전 우주에 뿌리고 있는 중이다.
시스템이 제멋대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나를 핍박하고 있다.
이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 관리자들이 출동할 것이 분명했다.
'그 전에만 안 죽으면 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사슬의 궤도를 읽어내는 눈과 직감은 이미 갖췄다.
'그래도 공격루트가 보이기는 하네.'
그 사실이 날 기쁘게 만들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도 피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이렇게 연속된 사슬 공격을 통해 저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검으로 무기를 바꾼 나는, 날아드는 사슬을 연신 쳐냈다.
물론 '진짜 위력'이 담기지 않은 허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력이 약한 견제성 공격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결국 필살기를 사용할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사슬 공격을 막아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놈은 나를 점점 사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퇴로가 없는 거 같습니다. 세 번의 공격 뒤, 진짜 공격이 날아올 거 같네요."
챙! 챙! 챙!
세 번의 사슬을 튕겨냈다.
이내, 불규칙한 리듬으로 두꺼운 쇠사슬이 나를 향해 밀려들었다.
"방송,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순간.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욱!
나 대신 공격을 받아낸 미친놈이 있었다.
낫은 미친놈의 몸을 뚫어내고서 내 배에까지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미친놈이 아니라 키하엘이네요? GM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해보겠습니다."
일단 나는 키하엘의 상처 부위에 포션을 뿌렸다.
정신을 잃을락 말락 하고 있어서 입 안에도 포션을 콸콸 쏟아부었다.
관리자 특전 덕분인지 포션빨이 무척 잘 받았다.
"키하엘 GM. 인터뷰 좀 하자."
"……내 꼴 안 보이냐?"
"보여."
배에 구멍이 나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다.
뭘 새삼스레 이런 걸로 저러는지 모르겠다.
인터뷰가 얼마나 중요한데 말이다.
"그래서 저 괴한의 정체는 뭔가요? 왜 절 공격한 겁니까?"
"그건……."
왜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시스템 오류라고 말할 거면서.
"……시스템 오류다."
"시스템 오류?"
"내가 조작을 잘못해서 가디언 시스템이 활성화됐어."
"그렇구나. 조작 잘못해서 날 죽일 뻔했구나."
키하엘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방송 좀 꺼주면 안 되겠냐?"
"응, 안 돼."
* * *
대충 상황은 알겠다.
키하엘 입장에서는 이게 최선이었을 거다.
아마 진작에 시스템 가디언을 멈출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것 같다.
'한 수 배웠다, 키하엘.'
내게도 좋은 배움이었다.
시스템과 관리자에게 쏟아질 비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타이밍에 나타나 공격을 대신 받아주었다.
큰 부상을 감수하면서, 불의의 사고라는 걸 강조했다.
'진짜 재밌다.'
연출법 하나를 배운 거 같다.
이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다음에 나도 이런 방식 써봐야지.
아무튼 키하엘은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일시적 오류로 인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느니, 버그인 줄 알고 청소부 시스템이 가동되었다느니, 뭐 다 그런 말들이었다.
"이 건과 관련한 보상은 추후 따로 논의하도록 하지. 일단 나도 치료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지금 하자."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어지럽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협상이 안 돼."
솔직히 납득은 안 된다.
저 정도 피를 흘린 게 어지럽다고?
근데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진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엘튜브각 세울 수 있겠다.'
보상 건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도 될 거 같다.
나는 결국 던전,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에서 빠져나왔다.
좋아요 숫자를 보니 1만 개가 넘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트리밍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다고?'
검만 재밌는 게 아니네.
하마터면 소통금지를 풀어내고 시청자들이랑 소통할 뻔했다.
시청자들이랑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나한테 이런 욕구가 있을 줄 나도 몰랐다.
'좋아요 숫자도 빠르게 오르고 있고 시청자 숫자도 많고.'
에건 폴에 비하면 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준수한 편이지 않은가.
내가 시청자 숫자를 좀 속이고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에건 폴과 거의 비등비등한 수준이다.
'시청자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원래 3등만 하기로 했는데.
그럴 거면 그냥 2등 하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하고.
'그냥 2등을 목표로 할까?'
마지막 양심이 있어서 1등 하겠다는 목표는 안 갖기로 했다.
나는 아직 사람이다.
* * *
집으로 돌아온 차진혁은 룰 브레이커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템빨이 진리지?"
아주 오래전, 회귀 전의 차진혁은 아이템의 중요성을 간과했었다.
명장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 중 하나였다.
진짜배기 플레이어는 아이템에 의지하지 않고 본신의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그는 깨달았다.
명장들의 실력이 고만고만하면 결국 남는 것은 템빨이었다.
"아이템을 좀 더 전문적으로 갖춰야겠어."
룰 브레이커가 있으니까.
검술가 전용 아이템도 착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제일 먼저 얻어야 할 건 역시 라칸 대검이겠지?"
차진혁이 150 이하 레벨에서 가장 요긴하게 썼던 아이템들 중 하나였다.
아주 커다란 양손검이었고, 그가 검왕으로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검이었다.
"양평 어디서 얻었다던데……."
라칸 대검은 내가 직접 얻은 게 아니라 정부를 통해 지급 받았다.
첫 발견은 양평 어딘가였다던데 정확한 정보는 모른다.
"일단 그쪽 일대를 샅샅이 뒤져야겠다."
차진혁은 팀원들과 함께 양평쪽 던전들을 탐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 2주일이 흘렀다.
탐사에 함께하게 된, 길잡이 한세린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런 자잘한 던전들을 찾아다니는 건데?"
그녀는 과연 랭킹 2위의 -현재는 두더지맨에게 밀려서 2위다- 뛰어난 길잡이답게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팀의 실력이 아깝지도 않아?"
"지금 플레이가 뭐 어때서?"
"너무 허접한 짓들만 하고 있잖아. 너희 도와주다가 난 랭킹이 2위로 밀렸다고!"
"싫으면 관둬. 두더지맨한테 연락할 거니까."
"그건 싫거든!"
"왜? 내가 두더지맨이랑 플레이하면 너한테 좋은 거 아냐?"
"앞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꿀은 두더지맨이 빨 것 같은 같은 괴상한 기분이란 말이야."
한세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도 이게 김철수란 플레이어가 가지는 힘이겠지.'
막연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
언젠가는 커다란 무언가를 물어다줄 것이라는 기대감.
그것 때문에 한세린은 차진혁과 계속 동행했다.
한편, 죠셉 역시 약간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슬럼프인가?'
양평 근방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다.
이 정도 활약은 다른 스트리머들도 다 보여주고 있다.
'너무 무난한 플레이이다. 차별점이 없어. 콘텐츠가 떨어진 건가?'
혹은 바로 이전.
시스템 가디언의 등장 콘텐츠가 너무 강렬한 자극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풀어가는 것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앞에 너무 강력한 콘텐츠를 풀어버리면 뒤에서 할 얘기가 없다.
'결국 한계에 봉착한 거지.'
실시간 시청자 숫자도 3천 명가량 빠졌다.
'내가 필요할 거다. 나라면 김철수를 진짜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사이, 차진혁은 60레벨을 달성했다.
한세린은 폭발했다.
"나 더 이상은 못 해!"
"엉?"
"이제 진짜 못 참는다. 난 빠질 거야."
"그럼 두더지맨 부른다?"
"마음대로 해!"
한세린은 어느덧 랭킹 3위로 떨어졌다.
2위와 3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녀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진혁이 말했다.
"나 레벨 60 달성했어."
"근데? 스트리머 레벨업 속도 빠르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잖아."
"이왕이면 하루만 더 참아봐. 나 새로운 스킬 익혔거든."
레벨 90에 익히는 스트리머 전용 스킬.
'미리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스킬인데? 그리고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이거 말이야."
한세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차진혁의 말을 듣던 한세린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진짜로? 그게 가능하다고?"
"어."
그녀는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보여줘. 제발."
"간절함이 없는데?"
한세린이 차진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보여주세요 제발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