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3화
천사소녀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던 남자 둘.
존재감이 없으니까 유령이들이라 부르겠다.
유령1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유도를 배운 건지 몸동작이 체술가와 비슷하기는 했다.
그런데 칼을 들고 있는 상대한테 저렇게 무턱대고 접근하면 안 된다고 배운 적은 없나 보다.
푹!
일단 유령1의 어깨를 찔렀다.
옆에서 유령2가 달려들었다.
유령1보다는 상태가 좀 남았다.
* * *
* * *
'한 방에 제압이 어렵겠는데.'
여러 차례 공방을 섞으면 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급소가 아닌 곳을 공격하여 무력화하는 온화한 방법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까지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급소를 찌르자.'
푹!
유령2의 목덜미를 찔렀다.
유령1보다는 피가 훨씬 많이 났다.
즉사는 아니지만 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한 파악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건 진짜 적응이 안 되네.'
내가 이상한 건지 얘네가 이상한 건지.
아무튼 이런 상황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차진솔. 쟤 죽지 않게 좀 해줘."
훗날, 레이드나 던전 탐사 등은 무조건 팀 단위로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팀원들이 나눠가진다.
한 명이 트롤짓을 하면 팀원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게 던전이다.
그렇기에 훗날에는 모두가 같은 책임을 지고 있었고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해석한다.
그런데 그 운명 공동체의 뒤통수를 친다?
'그건 열 번 죽어도 할 말 없는 일이지.'
진짜 성질머리 더러운 애들은 천사소녀랑 평소 친분이 있다 알려진 모든 플레이어를 잡아다 족칠 수도 있다.
적어도 플레이에 한해서, 그리고 배신에 관해서 만큼은 연좌제가 적용된다.
그게 당연한 거다.
나는 쓰러진 천사소녀와 유령이들을 힐끗 살펴봤다.
나름 치명상을 입은 건 유령2밖에 없었는데, 저대로 내버려 두면 다들 죽을 것 같다.
무슨 도적들이 회복제도 안 들고 다니는지 원.
뒤에서 칼 맞을 준비를 하고 다녀야 진짜 도적인데 말이다.
'그냥 죽일까?'
이런 사건은 재판으로 끌고 가도 정당방위 나온다.
사람들은 공무원이었던 우리에게 상당히 가혹하고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는 우리 편을 들어줬다.
던전에서 남의 것을 훔치려면 원래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근데…….'
차진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얘는 최상위 랭커로 올라가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애가 너무 착하고 순하다.
사람 피를 보면 꼭 저렇게 놀라더라.
좀 다행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특별히 허락해 줬다.
"치료해도 돼."
차진솔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빠인 차진혁이 갑자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세 명 모두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치명상이었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상황 자체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충격은 차진솔만 받은 게 아니었다.
어느덧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생성되었지만 아무도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진혁의 충격적인 돌발행동에 모두가 얼어붙은 것이었다.
차진혁이 말했다.
"치료해도 돼."
그 모습은 마치 원래는 치료하면 안 되는데, 선심 써서 그냥 치료하게 해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치, 치료한다?"
"응. 네가 정 찝찝하면."
차진혁은 약간 뿌듯해졌다.
동생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이해해 주다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오빠가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차진솔이 황급히 힐을 사용하여 '유령2'의 상처를 회복시켜주었다.
혈사제는 자신의 피를 매개체로 하기에 너무 많은 능력을 한꺼번에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완전회복 시키면 탈진하고 말 거다.
'일단 생명을 붙여놓기만 하고.'
적당히 힘을 나눠서 세 명을 모두 치료했다.
그리고 차진혁은 목재현에게 얇은 형태의 수목산성을 펼쳐달라 요구했다.
"야, 야, 얇은 형태의 수목산성이요?"
"그래. 넝쿨처럼 길게 뽑아서 수갑을 좀 만들어봐. 수갑처럼 정교한 게 어려우면 포박줄 같은 거라도 괜찮으니까."
목재현도 겁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
그의 능력이라면 차진혁의 단도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이건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나마 '제왕의 격'을 가지고 있어서 이 정도 평정심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해본 적 없는데……."
"할 수 있을걸?"
"아, 알았어요. 해볼게요."
공포가 그를 성장시켰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그는 포박줄 형태의 기다란 넝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거봐. 하면 되잖아."
차진혁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목재현의 시선으로 봤을 때에는 미치광이 살인마 같았다.
차진혁이 세 명을 꽁꽁 묶었다.
"그럼 좀 기다려볼까."
'대도적의 손길'을 파훼했다.
그렇다면 송하영의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텐데, 송하영이 아직 의식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는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다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마지막 순간에 뒤통수를 치려는 도적들이 얼마나 괘씸했겠어.
내 동료들 중 가장 온순한 축이었던 권왕 김정현도 이런 상황에서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애들은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애들의 성장이 조금 뿌듯했다.
'목재현이 포박줄을 이렇게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준 걸 보면, 무척이나 화가 났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서지수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빠. 설명이 좀 필요해."
서지수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했다.
어찌 보면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는데,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약간 화가 난 게 아니라 진짜 화가 났나 보다.
암살자이자 딜러인 얘 입장에서는 역시 죽이는 게 나았나 보다.
"역시 죽여야 했지?"
"……뭐?"
"근데 우리 힐러가 좀 심약해서 말이야."
"……."
"그래서 눈앞에서 죽이는 건 좀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내 동생이잖아."
서지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인 것 같았다.
그래, 뭐 암살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거긴 한데 얘도 참 인정사정없다.
너도 피붙이 한번 잃어 봐라, 마음이 약해지는 게 인지상정이지.
이윽고 서지수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찌른 건데?"
잠깐.
뉘앙스가 약간 이상해서 확인을 한 번 하고 넘어가야겠다.
"죽이지 않았다고 화내는 거 아니었어?"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역시 내 사회성이 떨어진 게 틀림없다.
중계자의 시선의 감도를 높여보았다.
[#이해불가 #왜 죄없는 사람들을 찔러? #미친놈이야? #그래도 이유가 있겠지.]
생각지도 못한 상태라서 약간 황당했다.
서지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랑 같이 플레이한 사람들을 왜 갑자기 찔렀냐고! 우리 다 같이 클리어해서 엄청 기뻐하고 있었잖아!"
조금 당황스럽네.
"나는 오빠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좀 해주면 좋겠어."
"……."
서지수의 아랫입술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중계자의 시선은 착실하게 정보를 전해주었다.
[……#간절한 희망]
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걸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였어?'
나는 애들을 둘러봤다.
다시 보니 애들도 약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와, 천사소녀가 내 인벤토리를 털려고 할 때보다 더 당황스럽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 설명을 하지 않아?"
"보통은 그냥 이해할 거라 생각했지."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건 마치 애들에게 숨 쉬는 방법이나 눈을 깜빡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가장 방심할 수 있는 순간에, 내 인벤토리에서 갑자기 금괴가 떨어졌지? 그때를 잘 돌이켜봐. 금괴가 떨어질 리 없는 타이밍에 금괴가 떨어졌어.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있던 상대가 도적 직업이었고."
"……."
"그리고 쟤네 둘의 위치가 생각 나?"
애들은 클리어의 기쁨 때문에 유령이들의 위치를 못 본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내게서 어떤 반항이 발생하면 제압하기 좋도록 좌우에 딱 나눠서 서 있었어.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고."
클리어가 끝난 직후인데 왜 긴장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황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뭘 말하겠어? 얘네가 내 인벤토리의 금괴들을 훔치려다 실패했다는 거겠지?"
"……."
"플레이 도중, 특히 던전 내에서 같은 팀원의 뒤통수를 치는 애들은 죽이는 게 최선이야. 내 등을 믿고 맡길 수 없으니까."
이런 애들 한둘 때문에 팀원들 여럿이 전멸하기도 한다.
던전에서 제일 무서운 건, 믿을 수 없는 아군이다.
그렇기에 던전 내에서 배신하는 행위는 연좌제까지 적용시켜서 엄히 처벌하는 거였고.
어느덧 의식을 되찾은 송하영이 버럭 소리쳤다.
"모함이에요!"
오,
이렇게 나오시겠다?
"저는 그쪽 인벤토리에서 뭔가가 떨어지길래 주워주려고 했을 뿐이라고요."
저 커다란 눈망울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올라서 뚝뚝 떨어졌다.
누가 보면 진짜인 줄 알겠다.
저 정도 연기실력이면 배우 해도 될 것 같은데.
차진솔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오빠, 저 사람 말이 진짜야?"
얘는 또 무슨 답답한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본 차진솔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우리오빠가 거짓말을 했다고? #저년이 돌았나? #뚝배기를 깨버릴까?]
겉으로는 나를 추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향한 시선에는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어지는 상태가 좀 살벌하기는 했다.
온화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약간 틀린 모양이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증거 있어?"
"증거?"
그러자 천사소녀가 말했다.
"증거가 있을 리 없죠. 나는 그냥 피해자니까."
"오빠, 스트리머잖아. 영상 따놓은 거 있지 않아?"
"있지."
천사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어깨가 많이 아픈지 한쪽 어깨를 꼭 부여잡고 있었다.
"어디, 그 영상 나도 좀 봐요."
얘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스킬이 다 읽혔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그게 당연하기는 했다.
나조차도 이 중계자의 시선의 효과에 놀랐을 정도니까.
"영상을 굳이 보여줄 필요까진 없을 거 같고."
"거봐요. 증거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증거가 곧 생길 텐데."
나는 턱을 매만지면서 기다렸다.
원래 보상이 크면 클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다.
초보 구간에서 무려 '8배 효과' 정도라면 당연히 오래 걸린다.
"슬슬 배상하라는 알림 뜨지 않아?"
"뭐라…… 고요?"
얘가 칼을 맞고 정신을 잃어서 잠시 까먹었나 본데 이쯤이면 배상 알림 뜰 때가 됐다.
"내가 가진 금괴 다 훔치려고 했잖아. 8배 배상하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천사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무슨 알림이 들리고 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천사소녀는 혼절했다.
그리고 내게도 알림이 이어졌다.
[각성명 '천사소녀'님의 배상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시스템을 이용한 중재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와 진짜 잘못 걸렸네.
시스템이 중재한다는 건 쉽게 말해 돈을 대신 갚아준다는 소리다.
일단 시스템이 먼저 배상해 주고, 그 다음 쟤한테 뜯어낸다.
혹은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거나.
[경우에 따라, 시스템이 구상권 청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동의.'
시스템은 꽤 합리적이어서, 시스템이 판단하기에 합리적인 배상을 내려줄 것이었다.
이왕이면 금괴를 또 복사해 주면 좋겠는데.
[시스템이 현 상황을 중재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긴고아' 외 물품 1개가 인벤토리에 전송되었습니다.]
긴고아?
이게 왜 여기서 나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