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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3화 (3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3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던전 88층.

이곳은 '강철 지네'의 서식지였다.

사람보다 더 커다란 지네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강철 지네들이 엉켜서 서로 몸을 비비적거리며 끼긱- 끼긱-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온몸을 비벼대고 있는 것이 어쩌면 교미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징그럽고 역겨워서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다.

'미친!'

워낙에 자잘한 쇳소리가 많이 들리는 탓인지 강철지네들은 세리를 느끼지 못했다.

아주 멀리, 은은한 빛이 보였다.

마치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작은 빛이었다.

'저곳이 탈출구?'

저 수많은 강철지네와 싸워서 생존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어차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춘 상태.

올라오는 것은 가능했지만 다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 수많은 지네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들키지 않고 최대한 조심스레 이동해야 했다.

'난 여기서 못 죽어!'

어째서 먼저 이동한 차진혁 일행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일단 지금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지하 서식처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다들 도착했네."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강철지네는 한 마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8층으로 올라간 미끼가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88층에 한 명이라도 플레이어가 진입하면, 이 '지하 서식처'의 난이도는 대폭 낮아진다.

상대해야 할 강철지네의 숫자가 절반 이상 줄어드는 데다가 비교적 약한 개체만 조우하게 되는 설정이다.

"오빠. 근데 왜 그렇게 굳이 거짓말을 한 거야? 그냥 아래로 오라고 하면 됐잖아."

"아, 미행이 붙어서."

"미행?"

"어. 나랑 같이 들어오더라. 저번에 걔인데, 새로운 은신 스킬을 익힌 모양이더라고."

새로운 은신 스킬에 대해서 정확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괜히 그랬다가는 눈치챈 게 너무 티 날 거 같아서.

대충 40레벨에 익히는 '잠행' 같은 거겠지 뭐.

"근데 왜 그냥 뒀어?"

"위층으로 보내려고?"

"왜? 굳이?"

"거기에 플레이어가 들어가면 여기 난이도가 엄청 낮아진대. 미래일기에서 봤어."

"그럼 거기 있는 플레이어는?"

"글쎄?"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기척을 죽이고 자꾸만 나를 따라다니던 암살자다.

사실상 미행을 들켰다는 시점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은신 실력과 생존 본능이 엄청 뛰어나면 살 수도 있고, 같잖게 덤벼들었다가는 죽겠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었다.

근데 나한테도 들키는 그런 실력으로는 아마 죽을 거다.

차진솔이 두 눈을 끔뻑이며 나를 봤다.

"오빠, 가끔은 좀 무서운 거 알지?"

"왜?"

"그걸 모르는 게 더 무서워."

"무서울 것도 많다."

차진솔은 원래 어릴 때부터 나를 좀 어려워하기는 했다.

나는 차진솔의 말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 뒤 나름대로 작전을 설명했다.

방송을 안 하니까 구구절절 개연성을 보강하지 않아도 됐다.

"일단 땅부터 파자."

나는 애들과 함께 땅을 팠다.

꽤 커다란 구덩이가 필요했는데 목재현 덕분에 꽤 쉽게 파낼 수 있었다.

"목재현. 네가 여기 애들 보호하면서 있어."

"혀, 형은요?"

"저쪽에 마물 한 마리 있거든?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릴 거야."

아마 애들이 위험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기는 했다.

위층의 검은 팬티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걔가 버텨준다면 아주 쉬울 것이고, 걔가 오래 못 버텨준다면 조금 쉬울 것이다.

'위층에 사람 있으면 한 마리씩 덤비는 구조였어.'

나는 앞을 향해 걸었다.

[LV37/강철지네/스킬]

강철지네가 위험한 이유는 무리를 지어서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씩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 들어서 강철지네 쪽으로 던졌다.

탁!

강철지네가 나를 발견하고서 이쪽을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끼기긱-!

다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우, 저 쇳소리.'

오랜만에 듣는 건데 정말 듣기 싫었다.

간만에 보니까 진짜 징그럽게 생겼다.

간혹 실력이 무척 뛰어난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저런 절지동물류 마물에게는 유독 힘을 못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게 이해가 되기는 했다.

'생각보다 빨라.'

놈이 빠르게 접근해서 내게 독액을 내뱉었다.

'중계결계.'

한 방 한 방의 공격은 그리 강하지 않다.

나는 중계결계를 사용해서 놈의 독액을 막아냈다.

스킬을 사용하는 틈에 녀석과의 거리가 조금 더 벌어졌다.

'쉽네.'

구덩이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있었고, 나는 거기를 딛고서 구덩이를 건넜다.

강철지네는 구덩이 안으로 빠졌다.

"오, 오빠. 올라오는데?"

"당연히 올라오지?"

쟤네는 어지간히 미끄러운 유리면도 그냥 타고 올라오는 애들이다.

올라오는 게 너무 당연하다.

나는 품속에서 포션을 하나 꺼냈다.

──────────

[하급 부식액]

특정 성분의 모든 것과 반응하여 부식시키는 액체.

──────────

이거 그냥 플레이어들 통해서 구하면 한 병에 5만 다이아밖에 안 하는 건데.

지금 당장 구하기가 힘들어서 중계상점에서 샀다.

참고로 중계상점에서 구매하면 한 병에 100만 다이아나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폭리다.

어쨌든 하급 부식액은 레벨 40 이하의 모든 '강철'류 마물에게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정확히 머리에다 부어야 효과가 제일 좋아.'

머리에다 정확히 흘려 넣는 게 제일 좋다.

이건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실험하여 증명된 방법이었다.

치이이익-

강철지네의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차진솔이 기겁했다.

"오, 오빠! 계, 계속 올라와!"

"왜 자꾸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해?"

나는 태연히 부식액을 흘려 넣었다.

레벨 40에 근접하는 마물이 이거 한 방에 죽을 리는 없다.

계속 기어 올라오는 게 당연하다.

진짜 돈이 썩어나는 애들은 저 부식액을 엄청나게 많이 구매해서 저 웅덩이를 부식액으로 가득 채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나는 그렇게 비효율적인 짓은 별로 안 하고 싶다.

치이익-!

한 병을 모조리 쏟아부었을 때, 지네의 머리가 내 발 가까이에 닿았다.

'중계결계.'

콱!

녀석이 내 발을 물었으나 별 타격은 없었다.

부식액 덕분에 녀석의 껍질은 흐물흐물해진 상태.

원래부터 급소인 머리가 더욱 치명적인 급소로 변했다.

게다가 부식액에 당한 놈은 더욱 난폭해지며 필사적으로 변한다.

내 발을 물자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턱에 힘을 꽉 줬다.

'그럼 땡큐지.'

나를 꽉 물고 있다는 건 고정이 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단도를 들어 올려 녀석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푹!

녹색 피가 튀었다.

이 피에도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몇몇 트러블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눈에 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푹! 푹! 푹!

단도를 사용해 보니 손맛이 꽤 좋다.

[강철지네를 처치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 병은 좀 아슬아슬하긴 한데."

차진솔은 내 말을 오해했다.

"그럼 두 병 써야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가장 아슬아슬했다'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장 효율이 뛰어났다'가 된다.

저비용 고효율을 포기하고 고비용 저효율로 가라니.

미친 소리다.

"저기 또 한 마리 생성됐거든. 같은 방식으로 사냥할 거야. 너네는 그냥 구경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위층에 검은 팬티는 아직도 살아 있나 보다.

걔가 죽었으면 두세 마리씩 리젠될 텐데 한 마리씩만 리젠되고 있었다.

다음 나타난 녀석은 레벨이 1 낮아서 조금 더 수월했다.

다음 한 마리는 처음 녀석보다 레벨이 1 높았는데, 내가 이 짓에 익숙해진 덕분에 오히려 처음 녀석보다 더 쉽게 사냥했다.

나는 계속해서 강철지네를 사냥했다.

'이번이 스무 마리째인가.'

처음에는 손맛도 있고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약간 지루해졌다.

애들이 부식액에 너무 속절없이 당해서 위기감이 안 느껴진 탓이었다.

위기감이 하나도 없으니 재미없을 수밖에.

푹! 푹!

나는 마지막, 스무 번째 강철지네의 머리에 단도를 사정없이 쑤셔 박았다.

[강철지네를 처치하였습니다.]

그를 끝으로 더 이상 강철지네는 리젠되지 않았다.

어차피 공략 내용을 전부 알고 있기에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강철지네 리젠은 끝난 모양이네. 이동하자."

나는 애들과 함께 기다란 통로를 따라 걸었다.

'이 길 끝에 작은 유리상자가 있을 거고.'

그 유리 상자 안에 붉은색으로 빛나는 스크롤이 있을 거다.

그 스크롤을 찢으면 특성, '정신방벽'을 획득할 수 있다.

'저기 있네.'

예전에는 이거 얻겠다고 고생을 좀 했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클리어하면 클리어할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특수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랑 내 동료들이 대략 80번째 정도로 이곳에서 '정신방벽'을 획득했는데, 우리 이후로는 '정신방벽'이 사라져 버렸다.

'응?'

근데 조금 이상했다.

──────────

[?]

──────────

원래 '정신방벽'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보여야 할 텐데 이름이 '?'로 표시되었다.

이런 경우는 직접 손을 대 흡수해야만 어떤 특성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정신방벽이겠지, 뭐.'

처음 얻게 되는 사람이 '정신방벽'을 획득하고 나면 이름이 공개되는 설정인 거 같다.

나는 의심치 않고 스크롤에 손을 뻗은 뒤 그대로 찢어버렸다.

이내 알림이 들려왔다.

[특성, '제왕의 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엥?'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왜 여기에 제왕의 격이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너무 좋은 게 튀어나왔는데?'

3등만 하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이렇게 지나치게 좋은 게 나와버리면 너무 감사합니다.

제왕의 격을 획득하자, 저만치 앞에 다시 엘리베이터가 생성되었다.

저기서 '▲'버튼을 선택하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올라가게 되고, 던전이 클리어된다.

"자, 다들 봤지? 엄청 쉬운 던전이야."

"……."

어쩐지 애들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다들 내 말에 동의하나 보다.

"이거 반복해서 너네도 이 특성을 하나씩 얻자."

"……."

"다음은 김정현 차례."

나는 '첫 판정'이라서 특수하게 제왕의 격을 얻었다고 치고.

애들까지 설마 제왕의 격을 얻지는 않겠지?

직접 해봐야 알 것 같다.

* * *

검은팬티가 생각보다 오래 생존하고 있는 듯했다.

난이도가 무척 낮았다.

"빨리빨리 진행하자."

이왕에 88층에 미끼가 있을 때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사실 이건 얘네한테도 좋은 기회였으니까.

"제왕의 격을…… 얻었……어요."

와 미친.

김정현도 '제왕의 격'을 얻었다.

초기의 소수 인원에게는 '제왕의 격'이 주어지고, 나머지에게는 '정신 방벽'이 주어지는 설정이었나보다.

"다음은 목재현."

설마 얘도?

"저, 저도 제왕의 격을 얻었어요."

다음은 서둥이들.

"나도 제왕의 격 겟!"

"같은 거. 얻었어요."

설마 설마 했는데 다들 제왕의 격을 얻었다.

대략 10시간 정도가 걸렸고 나는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서, 무슨 녹색 괴물이 된 것처럼 변해 있었다.

온몸이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악취도 굉장히 심하게 났는데, 이 정도쯤 되니 나도 약간은 찝찝해져서 얼른 씻고 싶었다.

차진솔이 말했다.

"오빠, 진짜 나는 그거 안 얻어도 돼?"

"너랑은 상성이 안 좋아."

초재생과 초인은 다른 특성과 충돌을 일으킨다.

괜히 추가했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그래도."

"특성끼리 충돌 나면 없느니만 못해. 내 말 믿어."

방송 안 켜길 잘했다.

방송 켰으면 개연성 부여한다고 구구절절 떠들어야 했을 텐데.

"……알겠어."

차진솔은 납득하기 좀 어려운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듣기는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게 고마워하게 될 거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던전을 일부 클리어하였습니다.]

완전히 클리어하려면 위층도 클리어해야 한다.

그런데 수고에 비해서 얻는 게 무척 적어서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4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오?'

너무 저레벨이라서 레벨 자체에는 신경을 별로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40레벨을 달성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직업 스킬이 하나 개방되겠다.'

나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만능 스트리머' 직업을 갖고 있다.

본래 일반적인 선제각성 스트리머들은 레벨 40 때 '초고속 촬영'이라는 스킬을 얻게 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장면을 초고속으로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이었고 스트리머라면 필수로 익히는 스킬이기도 했다.

[직업 스킬이 개방 작업이 시작됩니다.]

뭐 비슷한 게 나오겠지.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어릴 때 뽑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조금 설레기는 했다.

[직업 스킬이 개방됩니다.]

'이게 뭐냐?'

정말 비슷한 게 나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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