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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7화 (2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7화

"자극은 점차 커지는 것이 좋지. 일상 에피소드부터 들어볼까?"

"별건 아니고요, 영감님 덕분에 큰돈을 벌게 됐으니까 작게 효도부터 하려고요."

"효도?"

"부모님이 저 뒷바라지한다고 등골이 휠 뻔했거든요. 차나 한 대 사 드릴까 하고요. 맛있는 식사도 대접하고요."

저번에 새 차 한 대 뽑아준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에건 폴처럼 사람의 감정선을 정교하게 건드리는 연출은 못하겠지만 효도 콘텐츠는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박은 어려워도 소소하게 중박 정도는 친다나 뭐라나.

"아, 그리고 영감님은 그렇다 치고 미국맵의 어떤 남자가 저를 특정해서 찾아왔거든요?"

"벌써? 자네 1인칭 시점으로만 플레이를 진행하지 않았나?"

"동료들의 얼굴은 다 보이니까요."

"그렇군."

"그래서 저희 신상을 좀 가리려고요. 중계상점에 보니까 신분을 속이는 가면을 팔더라고요."

중계상점에 유효기간 1년짜리 '기만자의 가면'을 판다.

이걸 쓰면 진짜 얼굴이 가려진다.

하나에 무려 1,000만 다이아나 하는 고가품이다.

"그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마음먹고 찾으면 찾을 텐데."

"뭐 그래도 귀찮은 일 하나쯤은 덜어지겠죠."

"그건 그렇겠지."

"그래서 이 가면 사는 것도 간단한 에피소드로 넣으려고요."

"좋은 생각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감님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메인 에피는?"

"메인 에피는."

영감님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췄다.

"지구서버 최초 공개고요, 황금 골렘을 사냥하러 갈 겁니다."

"오?"

영감님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 눈에도 아마 생기가 돌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전혀 모르는 맵이라서 나도 좀 설렌다.

"기대되는군."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언제쯤 시작할 거지?"

"글쎄요. 저랑 같이하는 애들이 너무 약해서 한 1주일 정도는 수련을 하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넉넉히 2주 잡고 기다리겠네. 좋은 방송 기대하지."

* * *

사준다고 하면 안 받을 것이 뻔해서 일단 질러서 가져왔다.

검은색 대형 세단이었다.

"세상에……."

엄마는 눈을 비볐다.

아빠는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뭘 이런 걸로 그렇게 감동을 하고 그래요?"

"취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걸 사! 알뜰살뜰 돈 모아야지!"

"화내는 거야, 좋아하는 거야?"

화도 내면서 좋아하는 거 같다.

눈에 눈물도 좀 글썽거렸다.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좀 크게 받았어."

"도대체 뭐하는 회사길래 신입한테 이렇게 돈을 많이 줘?"

"엄청 글로벌한 회사야. 근데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하진 않아서 말해줘도 모를 거야."

엄마 아빠는 내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거 아니냐, 위험한 일을 하는 거 아니냐, 약간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차진솔. 넌 내가 어디 취직했는지 알지?"

"어? 어, 알지."

"이상한 곳 아니지?"

"……그렇지?"

"거봐. 이상한 곳 아니라니까."

내 말에는 약간 의심하던 부모님이지만 차진솔의 보증에 금세 납득했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한 거다.

'이제야 사람 구실을 좀 하는 거 같네.'

차진솔이 '나는? 오빠 나도 차 갖고시포.'라고 혀짧은 소리를 내서 화날 뻔했다.

그냥 평범하게 사달라고 했으면 사줬을 텐데.

그래도 좋은 날이니 화를 내지는 않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저녁은 내가 쏠게."

한남동의 한우 오마카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새 차를 운전하는 아빠는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새 차의 성능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 조금 티가 났다.

엄마는 계속 호들갑을 떨었다.

"오마나, 라디오도 이렇게 잘 나온다니?"

"라디오가 잘 안 나오는 차도 있어요?"

"우리 차 안 나왔잖아. 엄청 지직 거리고."

그랬었나.

괜히 미안해지네.

아무튼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매일 나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 하루 플레이어 관련 범죄로 인하여 49명의 사망자가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어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를 훨씬 웃도는…….

이제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한 전염병과 비교하여 다뤄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넣었던 전염병.

그 전염병이 하루 수백 명씩 사람을 죽이기도 했는데, 이제 플레이어 관련 범죄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그에 근접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시스템이 어쩌고, 마물이 어쩌고, 피해가 어쩌고, 치안이 어쩌고.

-정부에서도 대응책 마련을 위하여 직접 플레이어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플레이어들의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땐 듣자마자 저기 지원했었는데.'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많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었고.

'이제는 안 그래야지.'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죠셉이 차진혁의 집을 직접 찾아왔다.

차진혁은 죠셉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집을 찾아와?"

차진혁은 약간 화가 났다.

차진혁의 기준은 미래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무턱태고 남의 집 찾아오면 찔려도 할 말 없는 건데.'

참고로 그런 일이 벌어져도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상대가 암살자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미래에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미리 연락을 취하고 오는 것이 룰이었다.

차진혁의 어머니가 물었다.

"누구니?"

"아, 거래처 사람인데 할 말이 있나 봐."

다만 집에 엄마가 있어서 조금 참기로 했다.

"연락 좀 하고 오지 그랬어요? 찌를 뻔했네."

"……."

죠셉은 순간 잔뜩 긴장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말에 담긴 뾰족한 살의가 느껴졌다.

"통역을 안 데리고 왔는데 내 말을 다 이해하나 봐요?"

"……예."

죠셉이 품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꽤 괜찮은 통역 구슬이었는데 이걸 벌써 구하다니, 확실히 수완이 상당했다.

"할 말은요?"

"당신의 영상을 쭉 봤습니다."

죠셉의 눈에는 창대한 미래가 보였다.

"성의 없는 썸네일, 깔끔하지 못한 연출, 비규칙적인 라방, 소극적인 카메라 무빙. 오로지 1인칭과 비소통을 고수하는 답답한 진행. 스트리머로서 모두 자격 미달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는 본질. 당신은 그 본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반드시 스타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분명 가능성이 뛰어납니다."

"에건 폴보다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죠셉은 진심이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반짝반짝 빛날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럼 필요 없습니다."

"오 역시 그럴 줄…… 예?"

"한 번만 더 무턱대고 찾아와서 남의 시간 빼앗으면, 그때는 그냥 안 넘어갑니다."

"하, 하지만……."

죠셉은 계약금으로 10만 달러를 불렀다.

이걸 조건으로 내밀면서 굉장한 것을 베푸는 양 호들갑을 떨었는데 차진혁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필요 없다고 했어요."

차진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는 날 찾지 마요. 진짜 죽일 거니까."

왜 평범하게 살려는데 스타를 만들어주겠다고 난리야.

구국영웅쯤 되는 스타는 이미 한 번 해봤고, 별로 좋을 것도 없다.

차진혁과 헤어진 죠셉은 에건 폴과 통화를 나눴다.

에건 폴은 심기가 몹시 불편한 모양새였다.

-멍청한 선택이군. 알겠어. 미국으로 돌아와. 본인이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다가온 기회를 잡는 것도 결국 본인의 역량인 거니까.

그러나 죠셉은 에건 폴을 설득했다.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인재라는 주장이었다.

죠셉이 열변을 토하자 에건 폴도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네가 그 정도로 말할 줄은 몰랐는데. 좋아, 그럼 확인을 한 번 해보자. 네 눈썰미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교차검증은 필요하겠지.

-뭘 어쩌려고?

-'검은 나비'를 보내볼게.

-뭐?

에건 폴은 어벤져스 군단을 이끌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 중이었다.

검은 나비는 어벤져스 군단의 암살자 케일린을 일컫는 말이었다.

* * *

부평역 던전을 클리어하고서 일주일이 흘렀다.

차진혁은 각 파티원들에게 나름대로의 숙제를 나눠줬는데, 그중 하나가 모두 레벨 35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내 레벨은 39였고, 랭킹보드에 등재된 각 계열의 최상위 랭커들과 비슷했다.

나는 진짜 설렁설렁하는데 왜 나랑 레벨들이 비슷한 건지 답답해 죽겠다.

이제 나는 안다.

'내 기준이 너무 미래에 맞춰져 있었어.'

낮춘다고 낮췄는데 그게 충분하지 않은 거 같다.

나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더 기준을 낮추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어쨌든 김정현이 레벨 35를 제일 빨리 달성했네.'

아, 참고로 애들한테는 유효기간 1년짜리 '기만자의 가면'을 모두 나눠준 상태.

신상보호 설정이 걸려서 얼굴이 다들 바뀌어 있었고,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 기능이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목재현 혹은 찐따 등으로 부르면 '탱커' 등으로 대체 되어 방송에 노출된다.

어차피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귀찮음을 피할 수 있을 거다.

김정현이 말했다.

"특성으로…… 죽음…… 면역이 생기더…… 군요."

생각보다 빨리 얻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조금더 적극적으로 플레이에 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각종 공포효과나 디버프에도 저항력을 갖게 되는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특성과 충돌도 없고 말이다.

"어? 우리도 그거 얻었는데."

"……."

서둥이들도 얻었고.

"저도 얻었어요, 형!"

"오빠. 나도!"

목재현과 차진솔까지 모두 죽음면역을 획득했다.

저레벨 구간에 튜토리얼 필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건데 다들 잘 얻었다.

'열심히 수련한 보람이 있군.'

나는 모처럼 뿌듯해졌다.

언어도 어릴 때 배워야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있듯, 특성도 저레벨 때 획득하는 게 효율이 제일 좋다.

'차진솔도 저걸 얻을 줄은 몰랐지만.'

보통 힐러 직군은 귀족이며 죽음을 잘 경험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힐러는 살리려고 드니까.

그러니까 차진솔은 힐러치고 상당히 많이 굴렀다는 뜻이다.

아주 바람직했다.

아참, 차진솔은 결국 사표를 내고 플레이에 올인 중이다.

플레이가 적성에 아주 잘 맞는 모양이었다.

'설마 최상위 랭커가 되지는 않겠지?'

그건 어중간한 노력과 각오로는 어렵다.

과거의 나 정도로 미친놈들이나 최상위 랭커가 된다.

암살자나 각성자 사냥꾼들도 힐러는 거의 안 건드린다.

힐러를 살해했다가는 국제적인 비난에 휩싸일 테니까.

생각해 보면 힐러 직군이 안정적인 미래를 꾸려가기에는 제일 좋은 직업이기는 했다.

'나도 아주 잠깐이나마 힐러를 생각해 보긴 했는데.'

근데 힐러는 진짜 상상 이상으로 너무 약하다.

아무리 양보하고 또 양보해도, 솔직히 힐러는 못할 거 같다.

선제각성 스트리머는 중계결계라도 있지, 힐러는 진짜 답이 없다.

지금 생각해도 힐러 선택 안 한 건 잘한 선택이다.

"그럼 신도림역으로 출발하자."

우리는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황금골렘성은 신도림역사에 위치했다.

'어디 보자.'

신도림 역 안에는 인파가 상당히 많았다.

테크노 마트로 올라가는 길목, 벽면에는 광고판들이 상당히 많았다.

'네 번째 광고판.'

입구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금골렘 성의 지도'를 가지고 네 번째 광고판에 손을 대며 게이트가 열리는 설정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겠어.'

딱히 길잡이가 없어도 발견이 된다는 건, 이 던전이 어마어마한 난이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진짜 상급 던전은 길잡이 없이 발견조차 못한다.

'근데…….'

저기 암살자가 있는 거 같다.

정확하게는 안 보이지만 대충 다 느껴졌다.

'다른 애들 눈에는 안 보이나 보네.'

그전에 중계자의 시선으로 저 암살자가 숨어 있는 곳을 봤다.

[LV37/검은 나비/특급암살자/스킬/천인유혹]

주황색이면 8성인데.

꽤 괜찮은 직업을 가졌고 레벨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한 번 위치를 파악하자, 암살자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였다.

딱 봐도 암습을 노리는 모양새다.

저런 걸 그냥 내버려 두고 플레이하면 뒤통수가 시린 법이다.

"서지아. 독침 같은 거 갖고 있지?"

"네."

"저기 여섯 번째 전광판 안에 사람 숨어 있는 거 느껴져?"

"……느껴볼게요."

말수가 없어서 그렇지, 실력은 제법 뛰어난 서지아라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실망이었다.

아니지.

기준을 낮추자, 기준을 낮추자.

나는 마음을 다잡고서 다시 말했다.

"뭐 그러면 전광판에 저기, 왼쪽 눈동자 있는데 있지? 거기에 독침 쏴."

"제가 가진 건 사독(死毒)밖에 없어요."

"괜찮아. 그냥 쏴."

레벨 차이도 나겠다, 거리도 꽤 있겠다, 아마 죽지는 않을 거다.

죽을 만큼 괴로울 수는 있겠지만.

지아는 내가 요청한 대로 티나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여서 독침을 발사했고, 정확히 쫄쫄이에게 명중했다.

쫄쫄이는 기절해서 쓰러졌다.

나는 거기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레벨만 높지 별거 아니네.'

레벨 35인 서지아의 급습에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정도면 저거 다 물레벨이다.

아참, 극한의 훈련없이 그냥 노가다로 마물만 때려잡아서 레벨 올린 허접들을 물레벨이라고 한다.

기계적으로 레벨만 올린 거라 본인 레벨에 비해 훨씬 약하다.

저런 암살자들이야 주변에 널리고 널렸을 테니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황금골렘 성의 게이트를 열었다.

[던전, 황금골렘 성에 입장합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방송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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