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3화
"……."
김정현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기대도 안 했다.
'저 꽉 막힌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네.'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측 가능한 범위여서 오히려 기분은 좋아졌다.
내가 아는 김정현을 만난 느낌이랄까.
'뭐, 저 어설픈 정의감 때문이겠지.'
대충 어떤 상황인지 그려진다.
아마도 '고수익 보장 알바' 같은 홍보문구에 낚여서 합류하게 됐을 거다.
김정현은 그 존재만으로 꽤 위압감을 풍기는 녀석이니, 색깔이들이 고용하기 좋았겠지.
특색이 있는 놈이어서 혹시나 문제 되었을 때 얘한테 떠넘기기도 좋았을 거고.
'이미 계약서에 도장 찍었으니 도망도 못 쳤을 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일이 여기까지 와버린 것 같다.
그리고 지가 잘못한 걸 또 알아서 그냥 눈을 내준 것 같았다.
"뭐, 그래. 아무래도 좋아."
녀석의 눈에 공포가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눈을 그렇게 찔리고도 이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다.
아무리 뛰어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도, 저 고통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면 랭커가 될 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정현은 피지컬과 멘탈을 모두 갖춘 맞춤형 인재였다.
"돈이 많이 급했나 봐? 이유를 좀 말해봐."
"당신에게……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별로 안 급한가 보네."
나는 카운터 쪽으로 가서 볼펜을 잠깐 빌려서 냅킨에 내 번호를 적어주었다.
"혹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여기로 연락해."
"……."
"아, 나는 스트리머이고, 너랑 콘텐츠 진행하면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하는 제안이야."
이제 선택은 김정현의 몫이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푸딩 먹자."
"오빠는 이 상황에 푸딩이 넘어가?"
"너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죽여 버린다!
얘 푸딩을 가져오려 하자 얘는 자기 푸딩을 열심히 사수했다.
"먹을 거면서 뭘."
우물우물.
노랑이가 대신 주문해 준 푸딩은 맛있었다.
역시 누가 사준 돈으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 * *
김정현과 만난 이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김정현은 결국 내게 연락을 해왔다.
"염치 불고…… 하고…… 같이…… 해보겠습니다."
"나랑 같이 일하려면 말을 좀 빨리해."
"노력해…… 볼…… 게요."
와. 많은 발전이다.
옛날에는 '이건…… 개인의 특성이고…… 존중받아야 할 자유…… 다. 사람다움을…… 침해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친구.'라고 말을 해대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노력은 해본단다.
김정현과의 계약은 성공적이었다.
"일단 선금으로 2,000만 원 지불했다."
나는 녀석의 계좌에 2,000만 원을 넣어줬다.
"고맙…… 습니…… 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말 빨리 하랬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 지."
얘기를 들어보니 김정현 어머니의 치료비가 2,000만 원 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외상이면 차진솔이 치료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병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
"내 콘텐츠에 출연해 주는 대가는 확실히 지불 될 거야. 몇 번 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 찾아서 가도 돼."
"……왜 내게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거죠?"
"그다지 파격적인 제안 같지는 않은데."
김정현을 겨우 선금 2,000만 원에 부릴 수 있다면 아주 남는 장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대신 뽕은 확실히 뽑을 거니까 콘텐츠 제작에 확실히 참여해 주면 좋겠어."
"약속…… 하겠습니다."
따로 계약서는 안 썼다.
얘가 선금 2,000만 원 먹고 튈 녀석도 아니고, 혹시 튄다면 잡아 족치면 된다.
아직 변변한 회의실조차 갖추지 못한 나는 나와 함께 할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목재현.
차진솔.
서둥이들.
거기에 김정현까지.
참고로 서둥이들은 저번에 나와 함께 플레이한 뒤에는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따로 움직여봤는데 나랑 같이할 때만큼의 희열을 느끼지 못했다나 뭐라나.
"희열도 희열인데 돈도 오빠랑 할 때만큼 안 벌렸어."
돈맛을 본 서지수는 많이 사근사근해졌다.
"나 버리면 안 돼."
"……."
"우린 영원히 함께야."
눈빛에 약간 광기가 서린 것 같기도 한데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아무튼 내 콘텐츠에 저토록 적극적인 건 내게도 좋은 일이었다.
"서둥이들의 공격력이 강하기는 한데, 너무 기습 특화야. 일단 공격이 노출되면 위력이 반감되니까."
아참, 서지수는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말을 놨는데 나도 딱히 거슬리는 건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뒀다.
"공격이 노출되면 위력이 반감된다고?"
"맞잖아."
서지수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내 말에 자존심이 약간 상한 모양이었다.
"기습에 잘 성공하면 우리가 치명타 넣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얘기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차피 같은 표현인데."
"아, 얘기가 그렇게도 되는구나."
나와 눈이 마주친 서지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니, 그렇다고 불만은 아냐. 그냥 그렇다구."
어쨌든 김정현의 합류는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내 계획으로는 약 레벨 60~70 수준까지만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
김정현은 우리 파티에 있기에 재능과 잠재력이 지나치다.
그때까지만 서로 이용할 거 이용하고, 나중에는 갈 길 알아서 가면 될 것 같다.
평소 말수가 별로 없는 서지아가 입을 열었다.
"목적지가 어디인가요?"
"부평역 던전."
그 말에 목재현이 눈을 크게 떴다.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이라고 알려진 거기요?"
최악이라고 불리는 건 맞다.
그런데 중요한 건 '최악'이 아니라 '튜토리얼'이라는 거다.
튜토리얼이 최악이여 봤자 튜토리얼이다.
'히든피스 정보도 확실히 알고 있고.'
히든피스를 공략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아, 물론 스트리밍하기에 좋은 콘텐츠라서 즐겁다는 뜻이다.
던전 그 자체.
히든피스 그 자체를 즐기는 차진혁은 이제 없다.
나는 그걸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상기 중이다.
'안 그래도 최악의 튜토리얼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콘텐츠로 써먹기 좋지.'
내가 말했다.
"맞아, 거기.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엘튜브각인 거 같아서."
생각해 보니 거기 히든피스 만족시키면 '첫' 판정 업적도 받을 수 있잖아.
'오, 첫 판정.'
아 또 설렐 뻔했네.
이런 성취에 설레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근데 이거 고칠 수는 있는 건가?'
나름대로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하고는 있는데, 이게 고쳐질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설레는 이유를 찾아냈다.
'그거 해내면 3억 다이아 벌 수 있잖아?'
오, 맞다.
그런 이유가 있었지.
무려 3억 다이아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렐 수 있지.
적절한 명분(?)을 찾아서인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출발은 내일할 거니까 집에서 충분히 쉬어둬."
* * *
나는 어지간하면 저녁 식사만큼은 가족들과 함께하려고 하는 중이다.
부모님이 차려준 집밥을 먹으면서 괜스레 또 마음이 뭉클해졌다.
"차 한 대 뽑아드릴게."
엄마 아빠는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한 브랜드의 대형 세단을 말하면서 웃었다.
그게 국산차 중 최고라나 뭐라나.
뻥 아니고 진짜인데, 나중에 뽑아서 갖다 드리면 많이 놀라시겠지.
그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밤, 차진솔이 내 방을 찾아왔다.
"오빠. 근데 부평역 던전 클리어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
"글세. 나도 안 들어가 봐서 몰라. 왜?"
"휴가를 얼마나 내야 하나 잘 모르겠어서."
아, 맞다.
쟤 회사원이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근데 어색하게시리 자꾸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다.
"오빠."
"왜 자꾸 분위기를 잡아?"
"나 회사 그만둘까?"
"그러든지."
"응?"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차진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말려?"
"왜 말려?"
나는 얘가 뭘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돈은 내가 많이 벌 거고, 얘는 그냥 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된다.
"다들 미쳤냐고 하던데. 이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정신 나갔냐고 그러던데."
[#미약한 기대 #그만두라고 말해주라 #내 마음 좀 알아줘 #근데 혈육이잖아 #글러먹었어]
뭔가 마지막 상태가 거슬리긴 하는데.
쩝, 이걸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얘는 지금 누군가 '그만둬도 돼'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무튼 중계자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는 할 말을 하기로 했다.
"진심이야.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진짜? 나 그래도 돼?"
"어."
"왜? 왜 그렇게 말하는 건데?"
"그렇게 말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엄청 좋은 직장이잖아. 어쩌면 비슷한 급의 회사에 다시는 취직 못 할지도 몰라."
"취직 안 하면 되지."
"그럼 나 뭐 먹고 살라고?"
"대충 먹고 살길은 다 있어.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몰라. 고민 중이기는 한데……."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거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거 아냐?"
"……응."
"그럼 그렇게 해."
[#엄마아들이? #내 마음 알아준 사람 처음인데 #나 조금 고마워도 되나]
차진솔이 다시 물었다.
"진짜 그래도 돼? 고민 더해라, 뭐 그런 잔소리 안 해?"
"어차피 많이 고민하고 나한테 말하는 거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내 말이 뭐라고 차진솔은 약간 감동받은 모양새였다.
주변에서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라나 뭐라나.
뭔가 오빠 노릇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는 한데 이런 건 또 처음이라 민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돈 빌려달라고만 하지 마."
돈 안 빌려줄 거다.
그냥 줄 거다.
"우씨."
차진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됐다.
이 훈훈한 분위기가 드디어 깨졌다.
어색해서 죽을 뻔했네.
"아, 그리고 너 아이템 세팅 어떻게 했어?"
"그건……."
얘는 얘 나름대로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걸 세팅이라고 한 거냐?"
"왜, 왜? 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잘했다고? 진심이냐? 진심?"
"……잘하지 않았어?"
안 되겠다.
동생 참교육 콘텐츠 한번 찍어야겠다.
[동생 참교육합니다.]
엘튜브각 하나 나온 것 같아서 방송 채널을 열었다.
"왜 방어템 몰빵인 건지 이유를 물어보겠습니다. 어차피 얼토당토않은 이유겠지만요."
방송을 켠 차진혁이 말했다.
"방어템을 맞추면 어떡하냐? 어차피 힐러는 한 방 컷이야."
"무슨 소리야? 오빠는 인터넷도 안 해?"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직업 종류별 올바른 육성법등에 대한 내용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상황.
"거기서 사제는 방어템 몰빵하라디?"
"어. 사제는 방어력이 엄청 약하니까."
"그래. 그게 핵심이지. 어차피 방어력이 약한데 왜 방어력을 키워?"
내 말은 사실상 시청자들한테 하는 말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신서버까지 기웃거리는 시청자들은 대부분 고인물이다.
그 고인물들은 지금 지구에 퍼져 있는 공략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을 거야.'
지금이야 초보 구간이니 사제가 방어템끼면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지만, 결국 나중 되면 대부분 한방에 죽는다.
일단 맞는 순간 죽는다고 보는 게 옳았다.
사제는 어떻게 하면 잘 방어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맞느냐,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보호받느냐가 더 중요하다.
차진솔이 답답한 소리를 해댔다.
"방어력이 약하니까 방어력을 키워야지!"
나는 오빠로서 큰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시청자들이 얼마나 좋아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튜토리얼 필드가 영원할 거 같냐?"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기만큼 죽음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고 생각해? 거기서 많이 맞아보고 죽어봐야 돼. 그리고 최대한 살아남아 보고. 그런 경험 하라고 만들어놓은 곳인데 거기서 안 죽겠다고 방어템 덕지덕지바르면 그게 옳은 거냐?"
나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좋아요' 숫자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는 몰랐다.
이 영상이 그렇게 유명해질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