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1화 (1/50)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01

“권 사장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 대출 진행이 어렵습니다.”

내 말에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차마 놓을 수 없는 절박함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부여잡으며 호소한다.

“이보게 하대리. 이번만 넘기면 된다니까. 이번 대금만 처리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니까. 새로 거래처도 물색 중이고······ 우리 밸브 경쟁력이야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알고 있다.

20년간 자동차 브레이크 밸브만 만들어온 일진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 죄송합니다.”

나로서는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팬데믹과 연이은 전쟁의 여파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힘든 상황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팬데믹 때는 오히려 기업의 대출 연체율이나 어음부도율은 낮았다. 정부 차원에서 쏟아낸 각종 금융지원 정책 덕분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대부분의 금융지원이 종료되면서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졌다.

일진기업도 하루아침에 고정거래처 두 곳이 파산을 맞으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런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정부자금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

급기야 자체적으로 기업신용등급제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은행은 일진기업을 D등급으로 결정했다.

[기업신용평가등급 D]

부도 위험 70% 이상의 부실기업에게 매기는 등급이다.

D등급으로 결정이 나게 되면 대출 중단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금 환수까지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내겐 그걸 바꿀 아무런 권한이 없다.

고작 입행 6년차 일개 대리일 뿐이니까.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은행을 알아보시는 게······.”

“뭐? 다른 은행?”

막막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던 권영섭 사장이 버럭하며 내 멱살을 잡는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니들이 공장 부지를 늘려야 한다고 해서 늘렸고 자동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 기계도 싹 다 바꿨어! 그때 담보란 담보는 싹 다 걸어가 놓고 뭐? 다른 은행? 니들한테 돈줄 다 묶여 있는데, 니들도 안 빌려주는 돈을 다른 은행에서 빌려줄 것 같아? 그때 그렇게 무리하게 대출만 받지 않았어도······ 니들이 그렇게 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우리 회사가 이렇게 힘들어지지도 않았을 거라고······.”

버럭 화를 내며 내 멱살을 잡았던 늙고 주름진 손에 서서히 힘이 빠진다.

그리고 무너지듯 내 앞에 주저앉으며 애원한다.

“제발 도와주게. 지금 우리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건 한성은행 밖에 없어. 제발 좀 살려주게. 우리 공장 직원들······ 거리에 나앉게 할 수는 없지 않나?”

“······ 죄송합니다.”

“그 양반 갔어?”

대부계 차장 한정훈이 슬그머니 다가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잘래잘래 젓는다.

‘양아치 새끼. 권 사장님이 그렇게 난리를 칠 때는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하여튼 그 노인네 진짜 질기다니까. 이게 대체 몇 번째야? 게다가 상장 욕심에 자기가 무리하게 돈 끌어다 써 놓고 이제 와서 우리 탓은 왜 하는 거야? ”

순간 울컥 화가 치민다.

당시 일진기업 담당자는 나였지만 권영섭 사장에게 공장을 넓히고 자동화 전환을 권유하고 부추긴 것은 한정훈 차장이었다.

3년 안에 상장도 가능하게 해주겠다느니, 더이상 구멍가게로 썩히기에는 아깝다느니 하며 순진하기만 했던 권영섭 사장에게 잔뜩 바람을 넣은 것도 그였다.

그렇게 무리하게 진행시킨 대출 실적으로 고과 빵빵하게 받고 39세의 나이에 차장까지 달아놓고 이제와서 일말의 가책도 없이 남의 일 말하듯 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정례 회의에서 워크 아웃, 즉, 기업개선작업이 가능한 상태의 C에서 그마저도 어렵다는 D등급으로의 등급 수정을 주장한 것도 바로 한정훈 차장이었다.

“일진기업이 이런 상황이 된 데에는 분명 우리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 책임? 무슨 우리 책임? 팬데믹을 우리가 만들었어? 전쟁을 우리가 일으켰어? 유가, 곡물, 원자잿값이 치솟는 게 우리 탓이야? 그저 당시에는 대출을 해줄 만했기에 해줬을 뿐이고 일진기업이 그저 지지리도 재수가 없어서 망한 것 뿐이야.”

“아직······ 안 망했습니다.”

“흥! 곧 망하겠지. 재정상황도 최악이고 고정거래처를 잃은 이상 시장 지배력도 완전히 결여된 상태인데 그 바닥에서 버틸 재간이 어딨어?”

“일진기업이 가진 기술력이면, 조금만 시간을 주면 충분히 새로운 거래처를 뚫을 역량이······.”

“야인마! 하성운! 네가 지금 몇 년차인데 아직도 그런 순진한 소리나 하고 있는 거야! 은행이 무슨 도박장인 줄 알아? 꿈과 희망을 담보로 밑 빠진 독에 고객의 소중한 돈을 퍼붓기라도 하라는 말이야?”

“······.”

“잘 들어. 여긴 은행이지 자선 사업단체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고객의 돈을 지키고 동시에 은행의 수익을 올려야 하는 뱅커고. 내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담보 설정을 꼼꼼하게 해둔 덕분에 그나마 지금이라도 막으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그 기약 없는 희망 따위에 베팅을 하자고? 그러다 손해가 커지면? 네가 그걸 다 메꾸기라도 할 거야?”

말이 좋아 이럴 때를 대비한 꼼꼼한 담보 설정이지, 실상은 순진한 권영섭 사장을 꼬드겨서 무리하게 담보물을 잡아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게 다 나 좋자고 이러는 거야? 일진기업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면 담당자였던 하 대리가 무사할 것 같아? 내가 그래도 사수라고, 어떻게든 하 대리를 커버쳐주고 있는 거잖아 지금!”

개소리도 참 정성스럽게도 한다.

‘날 위해서라고?’

당시 일진기업으로 올린 실적은 죄다 자신의 공으로 돌려놨으면서.

그 덕분에 우수은행원상도 타고 동기들보다 먼저 차장 자리까지 꿰찼으면서.

그저 자기 고과에 문제가 생길까봐 빠르게 손절한 주제에 내 핑계는.

단언컨대, 정말로 일진기업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책임을 내게 전가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 인간이다.

한정훈이란 인간은.

할 말은 많지만 참았다.

대부계 동료들의 눈총에 얼굴이 다 따끔거릴 지경이니까.

‘대체 저 인간은 맨날 왜 저러는 건데?’

‘그냥 좀 예 예 하면 될 걸 꼭 한마디를 해서 한 차장 심기를 건드린다니까.’

‘오늘 이 분위기 또 어쩔 거야? 자기는 할 말 다 하니 속이라도 편하겠지만 우리는 무슨 죄냐고.’

익숙한 반응들.

누가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팀원들에게 그저 난 웅덩이 물을 흐려놓는 미꾸라지 한 마리에 불과하니까.

※※※

pm 10시 23분.

내 퇴근 시간이다.

하루 종일 꿍해 있던 한 차장이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내일 지점장에게 보고할 수익 진척 데이터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한 차장에게 밉보인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이런 식의 괴롭힘도 일상다반사였다.

그나마 내가 실적이라도 좋았기에 망정이지 실적마저 나빴다면 진즉에 대부계 업무에서 배제되어 예금계로 밀려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유난히 더 버겁다.

‘하아······ 이제라도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동료들의 은근한 왕따도 지겹고 한 차장의 노골적인 괴롭힘도 지겹다. 무엇보다 권영섭 사장의 그 간절했던 눈빛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좀 더 주의 깊게 살폈더라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이 주머니 속 사직서를 한 번 더 매만지게 만든다.

그렇게 은행 문을 나서며 터덜터덜 걸음을 내딛고 있을 때였다.

“이제 퇴근하는 건가? 하 대리는 여전히 퇴근이 늦는구만.”

앞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염없이 땅만 보고 있던 내 눈이 전방을 향했다.

“권······ 사장님?”

나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일진기업의 권영섭 사장이었다.

“이 시간에 어떻게······ 설마 지금까지 절 기다리신 겁니까?”

“그냥······ 아까 낮에 내가 너무 생떼를 쓴 것 같아서 말이야. 하 대리 입장이야 뻔히 아는데······.”

“아닙니다. 그저 제가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뭐, 그것도 그렇지만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말이네. 어때? 예전처럼 같이 한 잔 할 텐가?”

권 사장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손에 든 검은 봉지를 흔들어 보인다.

내가 고객 유치를 위해 일진기업 공장으로 뻔질나게 영업을 나가 허드렛일을 돕고 있으면 권영섭 사장이 항상 내밀던 추억의 레파토리.

소주 두 병과 새우깡 한 봉지.

그걸 보자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그럼 그럴까요?”

우리는 근처 편의점의 야외 벤치에 마주 앉아 종이컵을 잔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고 보면 하 대리를 처음 봤을 때가 벌써 4년 전이군. 참 특이한 친구다 싶었지. 은행원이라는데 예금을 권하길 하나 대출을 권하길 하나, 그러면서도 일손 부족하면 우리 직원들보다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 도와주고, 직원들 돈 문제로 곤란 겪을 때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여기저기 발품까지 팔아가며 처리해주고······ 1년을 그러고 있는데 나도 염치가 있지 모른 척 할 수가 있나. 결국 코가 꿰여버리고 만 거지. 허허허.”

“죄송합니다.”

만일 그때 그렇게 한성은행으로 거래은행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한 차장 같은 하이에나한테 걸려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권영섭 사장이 일평생을 바쳐 일궈온 건실한 회사가 이렇게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부도 위기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말 말아. 솔직히 하 대리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잖아. 자네는 몇 번이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말을 내가 무시했었으니까. 상장이다 뭐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그리고 아까 기술보증기금에 갔다가 신 과장에게 들었네. 기금이다 공단이다, 정부자금 받을 수 있는 곳은 죄다 들쑤시고 있다지?”

“······.”

“자네는 정말 변한 게 없구만. 어째 내 회사 일에 나보다도 더 열심인지······ 미안허이. 하 대리 자네는 사람을 참 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그래서 이렇게 소주병을 들고 찾아온 모양이다.

미안하다는 말······ 그 말에 코끝이 찡해 온다.

울컥 목이 멘다.

누구라도 원망을 하고 싶은 심정일 텐데, 그래야 겨우 버틸 수 있을 만큼 지금 가장 힘든 것은 권영섭 사장 본인일 텐데, 이 사태의 책임자 중 하나인 내게 사과까지 하고 있다.

“제가 그때······ 좀 더 강하게 막았어야 했습니다.”

경력, 직책, 실력······ 햇병아리인 나와는 비교도 안 되기에 한정훈 차장을 차마 거스를 수 없었다.

아무렴 나보다는 더 정확한 판단을 했겠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지시에 따랐다.

“제가 무책임했습니다. 제가 너무 모자랐습니다. 이런 사태까지 충분히 계산하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무능했습니다.”

“그런 말 말게. 자네가 신도 아니고, 시대의 변덕까지 맞히겠다는 건 너무 오만이지. 그래도······ 자네라면 그런 능력 쯤 가져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군. 아닌 게 아니라, 이참에 내가 신에게 부탁이라도 좀 해줘? 자네에게 시대의 변덕까지도 맞힐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그래서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서 우리 착한 하 대리가 그만 좀 괴로워하게 해 달라고. 내가 이래 봬도 기도빨이 좀 먹히는 사람이거든. 아닌가? 그랬다면 이렇게 회사가 망할 일도 없었겠지? 허허허허.”

“······.”

권영섭 사장은 썰렁한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없이 웃었지만 나는 차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잔의 술이 더 오가고, 권영섭 사장이 아쉬운 듯 이제 다 비어버린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술도 다 떨어졌고······ 이만 일어날까?”

“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을 너무 늦게까지 붙들고 있었어.”

“아닙니다. 잠시간은 늘 이보다 늦습니다.”

“그래? 그럼 뭐······ 아무튼 그만 들어가 보게. 난 좀 걸으면서 술을 좀 깨야겠어. 가뜩이나 집안 분위기 뒤숭숭한데 이런 꼴로 들어가면 우리 할망구가 날 아주 쥐 잡듯 할 게 뻔하거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이내 몸을 돌린다.

비틀대는 걸음.

그 뒷모습이 유난히 춥고 왜소해 보였다.

그 등에 대고 외쳤다.

“권 사장님······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보면 분명 뭔가 길이 있을 겁니다!”

“포기? 내 사전에 포기란 없어. 나 맨주먹 하나로 일진기업을 키운 사람이야.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사업 같은 건 시작도 안 했어! 내일부터는 아주 대한민국에서 돈 나올만한 곳은 싹 다 뒤질 생각이라고!”

“예! 그럼요! 저도 더 알아보고 더 찾아볼 테니까, 힘내십시오!”

죽을 만큼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 잘 알지만 지금 나로서는 그 말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 내 가소로운 응원에도 권영섭 사장이 힘껏 손을 흔들어준다.

하지만······.

그날 그렇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그 춥고 왜소한 등이 내가 기억하는 권영섭 사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권영섭 사장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 시대의 변덕까지 읽어내는 능력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