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5화 방학 (9)
배상현은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받았다.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건 튀김 우동인 컵라면과 소떡소떡이었다.
물을 올리고 소떡소떡은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웅웅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늘 준비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돈이 좀 깨지기는 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전 조사를 한 보람은 아이의 미소에서 모두 받았으니까.
지금까지 해준 게 없는 걸 이걸로 다 메꿀 수 없겠지만 말이다.
‘원래라면 평범하게 가족들이랑…….’
배상현은 잠시 감상에 빠졌다.
아기였던 시하가 그녀의 품에 안겨서 행복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옆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지만 그녀의 행복을 바랐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더 잘할게. 부족함 없이.’
띵.
전자레인지의 소리와 함께 상념에서 벗어났다.
접시 위에 올려둔 소떡소떡을 꺼냈다.
혹시 뜨거울까 봐 휴지로 손잡이를 감쌌다.
그걸 들고 시하에게 건네 주었다.
“여기 소떡소떡 먼저 도착했어.”
“우와! 미술쌤. 엄청 맛있어 보여요!”
시하가 소떡소떡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배상현은 빙긋 웃으며 접시를 시하 앞에 놓았다.
키보드는 앞으로 밀리고 접시가 놓였다.
“어서 먹어봐.”
“미술쌤 먼저.”
시하가 소떡소떡을 배상현에게 들이밀었다.
“응?”
“어른이 먼저 먹는 거랬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그냥 제가 먹여주고 싶었어요.”
배상현은 시하의 말에 조금 감동했다.
어디서 이런 예쁜 말을 배웠을까. 아마 옆에 있는 시혁 씨 덕분이겠지.
만약 자신이 키웠다면 시하가 이런 예쁜 말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아~”
“아~”
배상현의 입에 소시지가 하나 들어갔다.
“맛있네.”
시하가 오기 전에 사전조사를 하면서 미리 먹어본 거였지만 그때보다 시하가 준 게 더 맛있었다.
입으로만 먹은 게 아니라 예쁜 마음이라는 조미료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는 걸까?
인간의 뇌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배상현은 지금 맛에 너무나 만족했다.
나중에 소떡소떡을 혼자 만들어먹더라도 이런 맛은 나지 않을 것이다.
“형아도!”
시하가 떡 부분을 시혁이에게 내밀었다.
시혁이 앙 하면서 떡을 먹었다.
배상현이 그 모습을 보다가 자리를 떴다.
“저는 다음 요리 준비해서 올게요.”
부엌에 가니 포트에 담긴 물은 이미 다 끓어서 꺼져 있는 상태였다.
튀김우동에 물을 부었다.
뚜껑을 닫아서 이것 역시 가져다주었다.
마지막 마무리로 대망의 짜계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끓고 있는 물에 면을 넣고 동시에 계란프라이를 했다.
배상현이 이때를 위해 온 마음을 집중했다.
띡.
타이머가 움직였다.
달걀은 반숙이 되는 것이 중요했고 치즈와 어우러지기 위해 짜파게티의 물의 양이 매우 중요했다.
잘못된 비율을 만들면 짜게 될 수가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정확한 타이머의 힘과 눈대중이 필요했다.
배상현은 시하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보다 더더욱 집중하는 것 같았다.
“후우.”
어느새 배상현의 손 위에 짜계치가 완성됐다.
쟁반에 예쁜 그릇에 담은 짜계치를 올렸다.
젓가락을 챙기고 다시 피씨방(?)으로 들어갔다.
“완성됐습니다.”
시혁이 그런 배상현을 보더니 황당하게 말했다.
“그렇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할 정도로 중요한 거였어요?”
“물론입니다. 제가 연습한 최고의 비율입니다.”
“연습까지 했다고요?!”
“네. 당근이란 곳에 부탁하니까 먹으러 와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다들 친절하시더군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당연히 시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서.”
시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방금 말은 그냥 드립 같은 거로 말해 봤어요.”
“드립이 뭡니까?”
“네? 아…. 그냥 애드리브? 대충 개그라고 아시면 될 것 같아요.”
“아. 그 드립 말이죠. 저도 압니다.”
“네. 밈 같은 거라고 생각하셔도.”
“밈이 뭡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굳이 조사 안 하셔도 되요.”
배상현은 짜계치를 놓았다.
그리고 밈을 검색해 보았다. 대충 뜻을 알고 초딩 밈도 검색해 보았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이게 대체…….”
“하하. 짜계치나 먹죠.”
시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릇을 들었다.
배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짜계치는 노른자를 터뜨려서 치즈와 면과 함께 잘 비벼서 먹으면 됩니다.”
“뭔가 고급 요리 나왔는데 셰프가 나와서 설명해 주는 것 같네요.”
시하가 시혁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형아. 빨리 먹자. 맛있겠다.”
“응.”
시혁이 노른자를 터뜨려서 잘 비볐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서 입으로 후후 불었다.
“시하야. 아~”
“아~”
음식이 들어간 시하의 볼이 빵빵해졌다.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우와! 맛있어!”
“정말?”
“응. 형아도 빨리 먹어봐.”
“알았어.”
시혁도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배상현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배상현은 그런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게 아이들에게 요리해 주는 엄마의 마음인 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줄 몰랐다.
겨우 그런 작은 행동과 말.
그렇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말.
맛있다.
그런 단어 하나에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배상현은 감사를 느꼈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오늘 함께해 주어서.
“정말.”
배상현은 그저 감사를 전했다.
그 말에 시하가 받았다.
“저도요. 오늘 피씨방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미술쌤. 여기 진짜 최고예요.”
“하하하.”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오고 싶어요.”
“그럼. 언제든지 친구들이랑 놀러와. 준비하고 있을게.”
“우와. 정말요?”
“그럼. 근데 미리 말은 해두고 와야 해.”
“네! 미술쌤 최고.”
배상현은 그저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시하가 최고라고.
물론 그 말은 그저 속으로만 말했다.
그때 시혁이 말했다.
“시하야. 미술쌤도 시하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진짜?”
“응. 진짜.”
배상현은 시혁을 보며 조금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독심술이라도 익힌 건 아닐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니 고마웠다.
마음을 들켜 조금 쑥스럽기도 했고.
“미술쌤. 진짜요? 시하 최고예요?”
배상현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응. 최고지.”
“헤헤.”
배상현은 시혁이 빙긋 웃는 모습을 보았다.
고마웠다. 언제나 자신을 도와주는 게.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이끌어주는 게.
마치 그래도 된다는 듯이 긍정해 주는 게.
이런 집에 있는 피씨방이 누군가에게 꿈만 같은 공간이라고 인터넷에서 봤다.
배상현은 그저 이렇게 함께 있는 게 꿈만 같았다.
시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준다면서 오히려 추억이 생긴 건 자신이었다.
언젠가. 그 추억에 미술쌤이 아니라.
어색하지만 친아버지로서 설 수 있는 날이 오길.
조금은 욕심을 부려본다.
***
시하가 집에 왔다.
곧바로 삼촌에게 달려가더니 오늘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자랑한다.
“2층에 방도 엄청 커서 컴퓨터가 많았어. 완전 피씨방이었어!”
“우와~ 좋겠다~”
삼촌의 영혼 없는 리액션.
하지만 시하는 거기에 상관하지 않았다.
“게임도 엄청 재밌었어! 형아도 처음 하는 게임이라서 잘 못했는데 나중에 잘해졌어!”
“우와~ 대단하다~”
“총 게임이었는데 HP가 깎여 나갔어. 근데 삼촌은 총 게임 잘 못하지?”
“아니! 어딜 나한테 총 게임을 못한다고 해!”
대충 대답하던 삼촌이 총이라는 것에 반응했다.
“내가 설마 게임이라고는 해도 총으로는 어디 가서 안 져.”
“정말?”
“그럼.”
“근데 삼촌이 말한 총은 빵 쏘면 끝이잖아. 이 게임은 HP가 있어서 삼촌도 힘들걸?”
“시하야. 삼촌은 그런 게임이라도 총이 들어가면 잘해.”
“그럼 다 이길 수 있어?”
“당연하지!”
시하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시하의 배은망덕한 얼굴에 한 소리 했다.
“어허. 그 못 믿겠다는 눈은 뭐야. 불손하다.”
“삼촌은 티비만 보는데 어떻게 게임을 잘해.”
“너 삼촌이 VR 게임도 사왔던 거 잊었어?”
“아. 맞다. 근데 삼촌. 그거 사왔다고 해서 잘한다고 할 수 없어.”
“요즘 학교 다니고 나서 많이 똑똑해졌네?”
“나는 원래 형아 닮아서 똑똑했어!”
“그래. 너 잘났다.”
삼촌이 그렇게 말한 뒤에 방에 쏙 들어갔다.
시하가 그 뒤를 따라갔다.
“삼촌 어디가? 삐졌어?”
“아니. 안 삐졌는데?”
삼촌이 금세 총을 꺼내왔다.
“총?”
“어. 여기 풍선을 불어서 넣는 거지.”
“그게 왜 삼촌 방에서 나와?”
“삼촌은 언제나 총이 준비되어 있는 남자거든.”
나는 삼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또 쓸데없는 것만 잔뜩 산 건 아닌가 싶었다.
삼촌 방에는 잘 들어가지는 않지만 만약 들어간다면 버릴 것이 엄청 많지 않을까?
물론 내 눈에만 버릴 것이고 삼촌은 필요하다고 어필하겠지.
삼촌이 풍선을 불어서 총구에 끼워 넣었다.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자.”
“삼촌. 지면 뭐 할래?”
“흐음. 지면…….”
“삼촌. 지면 하루 동안 티비 금지야.”
“뭐?!”
“왜? 질 것 같아?”
시하의 도발.
삼촌은 그 도발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총 게임에 왜 저런 자존심을 거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좋아. 콜. 그럼 시하 너는 지면 하루 동안 형아랑 못 놀기야.”
“!!!”
설마 그런 조건이 나올 줄이야.
“삼촌. 내가 더 안 좋잖아.”
“무슨 소리야. 티비 금지랑 맞먹는 거거든?”
“으음. 알았어. 내가 이길 거니까.”
“하하. 예능 보면 꼭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지더라.”
시하가 씩 웃었다.
“삼촌. 나도 예능 봤는데 이런 거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 진대.”
“크흠.”
삼촌은 시하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둘 중에 누가 이길지 흥미진진하다.
처음에는 어이없이 봤는데 어느새 두 사람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그럼 나부터 한다.”
삼촌이 관자놀이에 총을 가져다 대고 쐈다.
딱.
첫 번째는 터지지 않았다.
“이번에 나.”
시하가 총을 들고 삼촌을 따라서 쐈다.
딱.
두 번째도 불발.
그다음은 삼촌. 딱. 세 번째 불발.
그다음은 시하. 딱. 네 번째 불발.
이 정도 왔으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후우.”
삼촌이 심호흡을 했다.
불안한 눈빛이 보였는데 나랑 같은 직감이 온 것 같았다.
터질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삼촌이 방아쇠를 당겼다.
펑!
이변 없이 풍선이 터졌다.
“으어어어.”
“삼촌 졌다!”
시하가 얼빠진 삼촌을 보며 방방 뛰었다.
나는 시하가 이길 줄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총 게임이라도 저런 운을 가진 요소를 끌고 오다니.
저런 게임은 본래 시하가 강한 편이었다.
그리고 게임하기 전에 시하가 말했지 않나.
먼저 게임 제안하는 사람이 꼭 진다고.
어쩔 수 없이 징크스라는 리스크까지 진 삼촌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아, 안 돼…….”
“삼촌. 이제 하루 동안 티비 못 본다.”
시하가 리모콘을 가지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티비가 검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티비 보기 금지!
자연스럽게 시하랑 나도 티비 보기 금지가 되었지만 어차피 우리 둘은 그렇게 잘 보지도 않으니 상관이 없었다.
삼촌은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다.
“내 인생의 낙이…….”
“인생의 낙은 바꾸면 되지.”
“뭐로?”
“나랑 놀아주는 거로!”
“그건 하나도 낙이 아니야!”
나는 삼촌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왜 총 게임 부심을 부려서 이런 상황까지 왔나 싶었다.
그리고 내기할 때 너무 큰 걸 걸었다.
삼촌이 소파에 털썩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하가 삼촌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흔들었다.
“삼촌. 놀자.”
삼촌이 소파에 팔을 벌려서 등을 기대다가 시하를 힐끗 보았다.
“신에게는…….”
“응?”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삼촌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시하를 향해 흔들었다.
“하하하!”
“앗! 삼촌 반칙이야!”
“티비 못 본다고 했지 스마트폰 금지는 없었어!”
“안 돼! 그럼 안 돼!”
“하하하! 난 천재다!”
시하가 총을 들고 왔다.
“그럼 한 판 더 해. 삼촌 총 게임 잘한다며.”
“싫다!”
“이거 이기면 티비 보게 해줄 건데.”
“오늘 하루 안 봐도 돼!”
삼촌이 시하를 피해 폰을 들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시하는 곧장 삼촌을 따라 들어갔다.
방에서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둘이 정말 잘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